체크아웃을하기위해후론트데스크에갔을때손에받아쥔청구서에는내가알수없는
두가지항목의요금내역이적혀있었다.
방값이야이미알고있는것이지만그두가지항목은나와는전혀무관한것이었으며
금액도적지않았다.
나는데스크직원에게그내용을설명하고청구서를다시체크해보라고했다.
사무실에들어갔다나온직원은틀림없이내가지불해야할금액이라고주장한다.
긴얘기해봐야소용없다는것을잘알기때문에메니저를불러달라고했다.
내가내민청구서를받아든메니저도내설명을들은후직원들과얘기해보고,사무실에
들어갔다나오더니자기들에게는착오가없다는것이다.
나는영국과이태리에서도비슷한일을겪은경험이있다.
이럴때가장중요한것은흥분하면안되는것이다.
절대로침착해야한다.
주변을살펴보니로비엔손님들이꽤있었다.
우선그청구서를약간높이들어잘보이게한후잘못된항목을손가락으로짚어가면서
조금은큰소리로말하는것이다.
말하자면주변사람들도잘볼수있도록연출을해야한다.
메니저에게도내게도피차부족한영어로입씨름해봐야해결되지않는다는것을나는
잘알고있다.
그렇다고내가갑자기아랍어를할수있는것도아니다.
그때부터아주침착한,약간분노한목소리로,
한국어로욕을해대는것이다.
틀린건네놈들이다.
손님을우습게보고덤테기씨우려고하는게네놈들술수라는것도다안다.
이건내가낼돈이아니기때문에한푼도줄수없다.
청구서를다시작성하지않으면경찰을부를수밖에없다.
대개이런내용이다.
그런데,
참으로신기한것은이방법이먹혀들어간다는사실이다.
(아내의표현을빌자면,내게는연극적인기질이다분하다는것이다.)
결국메니저는두손을들고항복했고,
청구서를재작성,체크아웃한후영수증을받는것으로마무리했다.
왜내방법이먹혀들어갔을까.
그건전적으로기(氣)싸움에서내가이겼기때문이다.
물론내가옳기때문에내말에힘이실리는것도사실이다.
내가아무리영어를잘한다해도모국어가아니면기(氣)는생기지않는다.
청구서를모두가볼수있도록약간쳐들고손가락으로부당한부분을짚어가며한국어로
욕을해댈때만이그기(氣)가살아나는것이다.
거기에더해메니저는업자이고나는손님이아닌가.
로비의분위기는언제나손님편이다.
그손님들의집중되는시선역시호텔측으로는부담스러운것이다.
그모든약점을활용하는것이다.
특히아랍지역에서는더욱그래야한다.
협상(協商)은,
말하자면그방법이점잖은논쟁이다.
어떤목적에부합되는결정을얻기위한입씨름인것이다.
물론서로가더큰이익을챙기려는분명한목적이숨어있다.
서로를탐색하고,정보를수집하고,전략을세우고밀고당기는게협상이다.
이협상이나라와나라사이의것이되면그파장과영향력이크기때문에신중을기할수
밖에없으며여러번의결열까지도각오해야한다.
우리는국제관계에서볼때아직협상력이약한나라다.
이미여러번겪어잘알고있는일이기도하다.
왜그럴까.
가장큰이유는독립국가로서외국과의협상경험이일천하기때문이다.
말하자면국제적인협상에대해축적된노하우가적은것이다.
이점은인정하지않을수없는우리의약점이다.
또한가지는문화적인차이때문이다.
우리에게는전통적으로’대화,토론문화’가없다.
유교문화의핵심이’순응의미덕’이기때문에자기를주장하는방법에서툴다.
그러다보니우리가아니면모두가적이고,흰것이아니면모두검은것이라는
이분법적사고방식이의식구조의근저를이루고있다.
무서운흑백논리가그것이다.
때문에서로가이익을챙기려는국가간협상에서’의사소통과정’에취약하다.
그과정은전문적이고기술적이고상당한인내심을요구한다.
여기에서세번째걸림돌을만난다.
급한것이다.
이성적이고냉철하기보다는쉽게감정적이된다.
이약점이상대에게간파되면그협상은이길수가없다.
일단급하고감정적이되면실리는잃어버리고명분에만집착하게된다.
외국의물건을사주면서오히려파는쪽이돼버리는것이다.
빨리빨리의정서가부정적으로작용하면이렇게엉뚱한결과가생긴가.
다른하나는전문인력의부족이다.
국가간협상에는거의해당부서관료들이나간다.
우선그들의영어실력이문제다.
영어를모국어로쓰는협상팀과영어가외국어인협상팀은그근본에서동등할수가
없다.
과거에도협상과정에서있었던큰실수는영어좀한다는관료들이꼼꼼하게따지지
못하고덜컥저지른것이많다고한다.
한가지사례로,
WTO관련한분과위에서,
미국과중국대표들이마주앉아협상하게됐다.
그런데쟁쟁한미국대표들이중국대표들에게밀리는현상이생겼다.
장소가베이징이고,
중국대표들은동시통역을사이에두고자기들모국어로여유만만하게,유머까지섞어
가며공세를폈던것이다.
논쟁,협사에서말-언어에서비롯되는기세(氣勢)는모국어가아니면생기지않는다.
중국은,중국에서하는모든국제협상에서반드시중국어만사용한다.
그런데우리는우리땅에서하는협상에서도영어를쓰고있다.
우리관료들은통역을세우면어떤자격지심을가지는이상심리가있다.
그러나통역을사이에세우면모국어로말할수있기때문에기(氣)싸움에서
밀리지않을수있고,실수도줄일수있다.
지난해말,
미국의노스웨스턴대학에서16개국CEO들의협상능력을조사,그순위를발표
한바있다.
우리나라는16위로꼴찌였다.
크게놀랄일도아니다.
그게사실이니까.
‘미국에서광우병이발생할경우,
국제수역사무국(OIE)이미국광우병지위를바꾸지않는한수입중단은할수가없다.’
수역(獸疫)은,짐승의돌림병을이르는말이다.
국제수역사무국은프랑스빠리에그본부를두고있으며,
1924년가축전염병으로인한여러나라의공통적인위험을인식하여새로운가축질병이
발생했을때이를각회원국에신속히알리고필요한정보를제공하여전염병의확산
방지와근절을목적으로하고있다.
한편동물의유행병예방과그연구를주요활동으로하고있다.
1995년WTO의’위생식물검역조치에관한협정’이발효되면서,
동물검역에관한국제기준을수립하는국제기관으로공인되었다.
우리나라는1953년에가입했으며현재160여개의회원국이있다.
쉽게말해,
우리가수입하는미국산쇠고기에대해그위생적품질을우리가검사,구입여부를
판단하는게아니라제3자의판단이기준이된다는것이다.
어떻게하다이런훼괴한문장이협상문안에들어갔을까.
아무리국제수역사무국이세계공인기관이라해도마찬가지다.
상품은그물건을사는당사자가자기기준에따라평가하고값을치르는것이다.
국제무역이라해도다를게없다.
우선한미간의쇠고기협상은그협상단의구성과내용에서우리가열세였다.
우리가8명인데비해미국은13명이었으며,
우리가수의,검역전문가를중심으로팀을짠반면,
미국은국제경제,교역전문가로팀을짰다.
광우병자체에대해서는우리쪽이더강했는지는모르지만협상문작성단계에서는
그들이더전문적이었다.
그리고협상용어가영어였다.
우리땅에서우리말로기(氣)를살리지못한것이다.
또한가지생각해야할것은,
협상자체는대통령이나,총리,장관이직접하는게아니다.
그들은기본방침을정할뿐이다.
협상은고위실무자들,즉관료들이하는일이다.
그들의전문성부족,기(氣)를살릴수없는언어구사력의한계는물론,고의적인
사보타주(sabotage)도있을수있다.
그구조와전문성에서우리팀은전혀우위에있을수가없었다.
다음은시간싸움에서지고말았다.
미국이우리와쇠고기협상을시작한것은노무현정부때였고,이명박정부까지기다리는
동안준비하는기간도그만큼충분했다.
이번협상은4월11일부터시작되었으며이명박대통령의캠프데이비드도착은19일
이었다.
일주일정도의여유밖에가질수없었던시간압박은이미미국측이간파하고있던
우리쪽의약점이었다.
여기에FTA비준까지물려있었으니불리한건우리쪽이었다.
명분때문에실리를버리는고질병이도진것이다.
대통령의미국방문과쇠고기협상을분리할수없었던게지금정권의정치수준이고
한계라는얘기다.
이제우리에게남아있는히든카드는거의없다.
나는원료를수입,이를제품으로가공한후세계여러나라에수출하는철강회사에서
일했다.
경제에대한학문적인설명은못하지만몸으로오래동안익힌실물경제에는밝은편이다.
정부고시로그수입이개방된어떤상품이라해도그것을수입,판매하는것은장사꾼들
이다.
‘한국수입육협회’가그것이다.
70여개의회원사들이똘돌뭉쳐30개월이상된쇠고기는수입하지않으면된다.
또그렇게할수있다.
아무리미국이라해도우리가안사주는데야팔도리가없다.
구매자체는결코강제할수없는상행위이기때문이다.
미국산쇠고기문제는복잡하게생각하면어려울것같지만간단하게생각하면쉽게
결론이나는일이다.
안사주면되는것이다.
사주되우리가골라사면된다.
구매자,소비자가우리이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