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현실.
나이40이넘은친구의아들이갑자기결혼하게되어오래간만에장거리외출을했다.
한번갈아타기는했어도왕복140여분동안지하철을탔다.
나는지하철을타면사람들에대해여러가지를살피는습관이있다.
글의소재를얻기위해서다.
표정,말,행동거지모두가관찰의대상이다.
지하철의풍경은날것생선처럼오리지날하다.
그리고가장평균적인대한민국의현실이기도하다.
그건지하철안의사람들이사실은가장평균적인한국인들이라고할수있기때문이다.
돌아오는길,
아직퇴근시간이멀어지하철안은별로붐비지않았다.
마침내오른쪽엔50대중반의부인두분이나란히앉아얘기를나누고있었다.
첫눈에고등교육을받은,경제적으로도중산층에속하는사람들임을알수있었다.
결코큰소리로나누는대화는아니었지만그들의얘기는내귀에도잘들렸다.

그중한대목,
-영국가서산게한10년되지?
-거의그렇게돼,세월이참빨라.
-오래간만에돌아왔으니생소해진것도많지?
-별로그렇지는않아,살던곳이고모두가익숙했던것들이니까.
그런데깜짝놀랜게있어,
-그게뭔데,
-사람들이아주많이변했어,표정들도무서워지고,뭐랄까…아주각박하고살벌하기
까지해.
-그건점점살기가어려워져서그래.
-그래도이상하게마음이자꾸슬퍼져.
그말을들은친구는한동안침묵한후,
-그래,슬픈현실이지.

‘슬픈현실’
그말이아프게가슴에다가왔다.
밖에나가10년을살았으면돌아와서느낀그느낌은진솔한것이다.
‘슬프다’는표현은참으로많은것을함축하는,시(詩)와같은말이다.
그안에는실망,서글픔,안타까움,그리고어떤바램까지도같이있을것이다.
그리고무엇보다도그건배운사람만이할수있는격조높은표현이기도하다.
무엇이우리들을슬프게하는가.
그리고누가그슬픔을슬픔으로느끼며사는가.
그게슬픔인지도모르고사는사람들은또누군가.

나는일주일에한두번은꼭동네빵집에간다.
주로막구워낸식빵을사기위해서다.
그날도식빵을사려고빵집에갔고,식빵코너에가니이미나보다앞선손님이있었다.
초등학교4학년정도의손녀를데리고온어떤할머니였다.
그런데그할머니는검지손가락으로막구워낸식빵을계속이것저것찔러보고있었다.
이미여러개를찔러봤기때문에복원되지못해움푹들어간식빵도여러개였다.
나는가급적부드럽게말했다.
‘할머니,손가락으로빵을찔러보면안됩니다.
손가락자리가난그빵을누가사가겠읍니까.’
이미그빵들은상품가치가많이떨어진상태였다.
내말을듣고고개를휙돌려나를쳐다보는그할머니의눈빛은소름이쫙끼쳤다.
그건먹을것을움켜쥔동물의무서운눈이었다.
그할머니는,
평생을통해얼마나많은주변사람들을괴롭히면서살아왔을까.
덫에걸려신음하는며느리의모습이떠올랐다.
어찌며느리뿐이겠는가.

쓰레기통에쓰레기봉투를버릴때마다늘비슷한크기의검은봉투가있다.
돈을주고사쓰는규격봉투가아니라그냥검은봉투에쓰레기를담아몰래갖다버리는
것이다.
우리가사는아파트에거주하는수준이라면쓰레기봉투를못살처지는아닐것이다.
어떤인간들이그런짓을하는것일까.
그게’노예들’이다.
주인의식이없는,노예근성으로사는비천한인간들인것이다.
사회공동체의모든공공재(公共財)는모두가그것의주인이라는전제하에만들어지고
설치된다.
그주인의식이모든공공재가운용되는기반인것이다.
검은봉투의도둑쓰레기는그공공재를훼손하고,훔치는노예들의짓이다.
노예근성은쉽게없어지지않는다.
그리고대물림하는게보통이다.
그게벌이다.

우리가살고있는지역은교외지역이기때문에차량들의주,정차가그리까다롭지않다.
그만큼땅의여유가있다는뜻이기도하다.
그런데자주,
자기가쉽게일을보기위해차량을횡단보도에세워놓는사람들이있다.
횡단보도가무엇인가.
차량이아니라사람들이길을건널때안전하게걸어가라고만든차도위의합법적인
인도가아닌가.
바로거기에차를세워놓는다는것은자기는편해도많은사람의교통을방해하는,
아주이기적이고나쁜행동이다.
한번은마침그렇게세워놓은차로돌아오는젊은이를만나게됐다.
나는아주부두러운목소리와표정으로말했다.
‘횡단보도에차를세우면되겠읍니까.’
나를한참노려보더그젊은이는,
‘주차단속원입니까.원별꼴다보겠네’였다.
내눈에그젊은이는인간으로보이지않았다.
집에서기르는강아지도훈련만잘받으면그런인간들보다는더품위가있다.
차도와횡단보도-인도를구분못하는의식수준이라면거의틀림없이큰교통사고로
화를당할것이다.
지금지체장애인중80%는후천적장애인들이며거의가교통사고를당한사람들이다.

가끔있는일이기는하지만,
할인매장의계산대앞에서새치기를볼때가있다.
바로내앞에서새치기가끼어든경험도여러번이다.
대개는담배한갑,음료수나아이스크림같은간단한상품을손에든사람들이다.
공통점은,
놀랍게도그게모두젊은이들이다.
정말멀쩡하게생긴사람들이태연하게새치기를하는것이다.
차례를기다리지않고다른사람들의차례를훔치는행위는우선비열한이기심이다.
많은사람들이모여사는사회공동체에서차례-질서가필요한것은가장비효율적인
혼란을막기위해서다.
그리고차례대로가시간도가장적게먹힌다.
말하자면새채기는이견고한구조를깨고수많은사람에게혼란이라는재앙을안겨
주는질이나쁜죄악인것이다.
새치기가없는사회는없다.
언제나문제는그숫자에있다.
더무서운것은그뻔뻔한표정들이다.
젊은새치기가상대적으로더많다는것은국가의앞날을위해서도걱정스러운일이다.
그해충들은계산대앞에서만새치기하는것이아니기때문이다.

지금은모두가문을열어놓고사는더운계절이다.
문제는낮이아니라밤이다.
일반적인상식으로는밤10시가지나면큰소리를삼가는것이예의다.
일찍자는사람도있고,조용히자기만의시간을가지는사람들도있다.
헌데,
밤10시가지나,심할때는새벽1시까지온갖소리를내지르며뛰어다니는애들이있다.
방학때는더하다.
경비원이제지해도듣지않으며심지어는애들기를죽인다고악을쓰고덤벼드는
에미들도있다.
밤10시는문명과문화,그리고야만이갈리는시간이다.
여럿이모여사는공동주택인아파트에서밤10시가지났는데도이웃을배려할줄모른
다면그게축생과다를게뭐있는가.
그렇게자란애들이커서망종이되는것은불을보듯뻔한일이다.
‘나쁜이웃은지옥’이라는서양격언은그래서생겼을것이다.
다른사람들을배려할줄모르는것은그걸배우지못했기때문일수도있다.
아무데서도가르치지않았기때문이다.
국,영수에는그런내용이없다.
그러니어디에서배웠겠는가.
에미들이나애들이나모르기는마찬가지다.
우리의진정한위기는바로거기에있다.
밤10시이후가지금과달라지지않는한선진국진입은꿈도꾸지말아야한다.

우리나라,우리국민들을실제로통치하고있는게누구일까.
지금그게대통령이아닌것만은분명하다.
모두가그를쳐다보고,그가만든것을구경하고,모였다하면그의얘기만한다.
그게누굴까.
TV의연속극을쓰는극작가들이다.
대한민국에서그연속극빼고나면남는게뭘까.
사실아무것도없다.
정신적으로그렇게빈약한게우리들이다.
시청율의지상명령에따라온갖불륜,퇴폐,사악함,폭력,엽기적인내용들을만들어
내는TV연속극의극작가들은가장막강한통치자들이다.
생각해보면어처구니가없는일이지만그게현실이다.
아침에대통령이근엄한표정으로담화를발표해도저녁에TV에서코미디언이그
흉내를내면서’웃겨’하면그걸로끝이다.
국민모두가TV의노예들이기때문에가능한일들이다.
그건마약과같은중독성이있기때문에끊기도어렵다.
그러는동안점점나빠지는건대한민국이다.
나중엔뭐가될까.
자못궁굼하다.

예를들어,
지하도의아케이드는아주나쁜공기로꽉차있다.
그안에서늘사는사람들은이미크게중독되어그사실을잊고있다.
사실은매일매일죽고있는데도말이다.
밖에있던사람이그곳에들어가서그탁한공기에대해얘기할때,
그말의의미를알아듣고단연코그곳을정리하고밖으로나가는사람은살지만,
그렇지못한사람들은서서히죽어갈수밖에없다.
슬픔도마찬가지다.
우리들의일상에서’슬픔’을느끼는사람들은말하자면그정신이깨어있는사람들
이다.
결국슬픔을느끼는사람과’슬픈현실’을모르는사람들의비율이모든것을결정할
것이다.
우리는어떨까.
반반일까,아니면40대60일까.또는30대70일까.
사람마다그평가는다르겠지만,
지금대로라면’죽는쪽’으로가고있는것이거의틀림없다.
이성이아니라육감(六感)이그렇게말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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