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또 수도회(修道會) 의 공로.
지금,우리들이일류,선진국이라고부르는대부분의나라들은똑같이그정신문화의
바탕에기독교라는종교를가지고있다.
지중해를중심으로하는지역과유럽,그리고북미가그러하다.
어떤차별을의도하는것은아니지만,
마그레브(maghreb)지역과일부동남아를포함하는이슬람문화권은반대로낙후된
후진국이많다.
특히테러리즘에서이슬람이보이고있는과격성은배타적인열등감에서기인한다는
오해를받기에충분하다.
중세까지도찬란했던아랍의문화가더발전하지못한것은하나의’틀’로서의이슬람
이라는종교의영향이크다고볼수도있다.
그내용과형식에서지나치게경직되어있는게사실이며인간의개성적이고독창적인
발전을가로막고있는부족적전통과지나치게보수적인규율이그러하다.
인구의절반인여성인력은전혀활용되지못하고있으며낙후는그만큼구조적이다.

르네상스를잉태했던중세는,
모든사람들이교회의종소리에따라생활했던,지극히종교적인시대이기도했다.
쇠(鐵)의가장큰수요가교회의종(鐘)을만드는일이었으며다음이군대의대포
였다.
문화사적으로’암흑시대’로불렸던이시기는,그러나한편으로기독교가인류문명에
크게기여한시기이기도하다.
오늘날기독교국가들이누리고있는풍요와안정은’유대-기독교정신’이낳은가장
긍정적인결과들이다.
이슬람이집체적(集體的)이었다면기독교는개성적,개인적이었고여기에서도전과
창의,과학이나타난것이다.
오늘날의서양정신이바로그것이다.
기독교가서구사회에끼친순기능적영향은다양했으며특히그중하나가수도원의
존재와역할이다.
봉건사회의귀족들은자녀중하나는반드시수도원에보냈으며막대한금액을수도원
에희사했다.
이는그들도구원의반열에서기위해서였다.

베네딕또(Benedictus480-547)는,
529년경,몬테카시노에서베네딕또수도회를시작한,존직적수도생활의창시자다.
비로서수사(修士)들은한데모여일정한조직밑에서공동생활을할수있었다.
베네딕또가쓴수도생활의회칙(會則)은이후서양수도생활의모범이되었다.
그가창설한베니딕또수도회는,
청빈,동정(童貞),복종의의무를맹세했고기도와노동을표어로했으며교육과전도에
힘썼다.
교회음악으로유명한프랑스의’소렘수도원’도소유하고있다.
말하자면수도원은,
수사,또는수녀가공동생활을하는곳으로서설립목적에따라농장,관상,학교,사회
사업등을경영하기도한다.

수도원제도(monasticism)는,
가장초기이집트사막에서시작되었다.
4세기초,자기를따르던사람들을모아초기의단순한공동체를조직한사람은,
이집트의은수사성안토니우스(250-355)였다.
수사들은가족관게,성생활,재산을포기하고끊임없이기도하면서극단적인금욕
새활을했다.
이러한초기의수두원제도는4-7세기비잔틴제국시대에급속히퍼져나갔으며
1050년에키에프,1354년에모스크바에서자리잡았다.
조직적인수도원생활이서쪽으로이동해유럽에전해진것은5세기경이며
라틴수도원제도를확립한사람이앞에언급한누르시아의성베네딕또다.
수사들을위해그가만든회칙은,
수도생활형태의탁월함,대수도원장의권위,적당한금욕생활,정해진시간에드리는
기도와찬송의성무(聖務)의중요성을잘설명하고있다.
이회칙은점차확산되어결국다른회칙들을대체하기에이르렀다.
중세시대전반을통해수도원제도는기독교의전파,로마주교들의권위향상,학문의
보전과증진등중요한사회적역할을했으며경제적,문화적으로도큰영향을끼쳤다.

수도회(修道會)는,
카톨릭교회에서청빈,성결,순종의서원을세우고복음에의한완덕(完德)을목표로
공동생활을영위하는수도사나수녀회의조직이다.
크게두가지로나누어보면,
관상수도회(觀想修道會)가그하나로서,
이는수도원안에서기도와근로에전념하여완덕에도달하고자하는조직이다.
예루살렘근처에있는한수도원은그수도회에가입할때’침묵’을서약하며
죽을때까지말을하지않는경우도있다.
극단적인신앙생활의한유형으로볼수있다.
다음이활동수도회(活動修道會)다.
수도원밖에서애덕과구령(救靈)과봉사를목적으로전도와교육과사회사업에열중
한다.
그중하나가제수이트-예수회다.
수사들로조직된예수회는로마교황에대한복종을맹세하며수덕(修德)과전도에
힘쓸것을목적으로1534년이그나티우스로욜라등이결성했다.
한국에는1954년에진출,서강대학교를설립,운영하고있다.
예수회는특히학교경영에탁월한능력을보유,전세계에서수백개의대학을위탁받아
전문적으로운영하고있기도하다.

콘스탄티누스대제가기독교로개종한것이312년이며,
데오도시우스대제가칙령으로기독교이외의종교를금지한것이380년이다.
종교는,
박해를받을때와그박해가사라졌을때위험한고비를만난다.
박해받을때의견고한신앙자세가그박해가사라지면느슨하게되고결국은세속화
되는게역사다.
박해가사라진기독교는행정적인조직이늘어났으며이조직을운영하는인적자원에서
더세속화하게된다.
그건그만큼초기교회의소박한신앙에서멀어진다는의미이기도하다.
이런세속화경향에대한가장단호한대응으로서나타난것이바로수도생활이었다.
그러나최초의수도사들은사제가아닌평신도로서그들은거의대부분고독한생활을
했으며극단적인고행을추구하는경향이강했다.

베네딕또수도원은,
일찍부터선교사업에열심이었다.
특히잉글랜드와독일의개종에는그들의선교가결정적인역할을했다.
베네딕또수도회의활동은,그러나신앙을전하는것으로끝나지않았다.
그들은서유럽의문화적동질감을창출하는데성공했다.
오늘날EU는,
정치적이념만으로유럽을통일한것이아니다.
그보다더깊은곳에는문화적동질성이있으며그바탕이바로기독교다.
터키의EU가입이번번히좌절되는것은상대적으로경제가낙후된이유도있지만,
더근본적으로는아랍민족이아니면서회교국이기때문이다.
유럽과의동질성확보가없는것이다.
(바울이세웠던소아시아의많은교회들만건재했어도결과는달라졌을것이다.)
아직도’유로화(貨)’를안쓰고’파운드’를고집하고있는영국이지만EU와의
이념적동질성에서는전혀문제가없는것도같은이치다.
그바탕이같기때문이다.

베네딕또수도회의수사들은대단한육체노동자들이었다.
소젖을짜고,쟁기질을하고,타작했으며망치질도서슴치않았다.
‘게으름은영혼의적이다.’
그들은그렇게열심히,규칙을정해일정시간육체노동에종사했다.
노동의존귀함에대한이러한본보기는그후서유럽문명의한가지핵심이되었으며
산업이발달,발전하는정신적기초기되었다.
지금도치즈,포도주,초코렛의최고명품이수도원에서생산되는예가그러한전통의
한가지다.
베네딕또수도회는이런육체노동을통해농업경영의큰노하우를축적했으며이는
바로서유럽의경제수준을높이는데크게기여했다.
뿐만아니라서유럽에서여러개의국가등장에재정적기여를하기도했다.

베네딕또수도회의또하나의공로는,
중요한라틴문헌의필사와보존이다.
우선수사들은성서와기도서를읽을수있어야했으며어린사내애들이수두원에
맡겨져수사로서의교육을받아야하는일도있었다.
최소한의교육이실시되었던것이다.
그러나고전문화의보존에추진력을제공한인물은카시오도루스(477-570)였다.
그는성경을포함한고전의필사(筆寫)자체가손으로하는육체노동이며들판에서의
고된노동보다수사들에게더적합한작업임을역설했다.
결국베네딕또수도회는수백년간에걸쳐고전교육과필사의유일한중심지가되었다.
중세초기이들의필사와보존작업이없었더라면라틴문헌들은오늘날한권도남아있지
않았을것이다.
이는정말위대한공로와기여가아닐수없다.
한편,귀중한그레고리안찬트의보존,연주에서최고의수준을보여주고있는
스페인의산토도밍고수도원의사례도같은것이다.

크게볼때,
한국인의신앙생활에는일상성(日常性)이거의없다.
종교의악과밖이판이하게다른문화로대치하고있기때문이다.
외래종교가가지는한계가그것이다.
반대로’굿’이나’굿판같은종교행사’에열광하는것은그게외래종교가아닌본래
우리것이기때문이다.
대표적인것이’심령대부흥회’다.
자고로샤마니즘은문화에기여하는기능이없다.
현대에남아있는원시종교의형태이기때문이다.
지금의기독교가순기능이없는것도그신앙이한국인의전통적인일상안에자리잡지
못하고있기때문이다.
이제는그겉도는정도가심해져서전혀딴것이돼가고있다.
한국의기독교가종교로서의사회적기여를하기위해서는먼저성경-경전을찬찬히
읽고공부해야한다.
신앙내용을충실히하는게먼저다.
지금과같은물량과이벤트중심으로는절대안된다.
다음이성직자의자질과수준을높여야한다.
지금의기량과수준으로는우리사회의향도(嚮導-길라잡이)가될수없다.
사회의일반수준에비해너무뒤떨어져있기때문이다.
인류문화사에서종교는언제나최고의’정신문화체계’다.
모든시대에서종교가그기능을다해야하는당위도거기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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