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과 형식, 기독교의 토착화.
유대교의두랍비가달걀을먹는문제로끝도없는논쟁을계속하고있다.
안식일에낳은달걀을먹어서는안된다.
먹어도아무문제없다.
문제의발단은암탉이알을낳는일이안식일에쉬라는율법을어긴노동이기때문에
그달걀을먹어서는안된다는것이고,
쉬라는율법은인간에게-자기백성에게주신것이기때문에가축은이에해당되지
않는다는게반론의요지다.
지금도유대인들은크고작은613개의율법을지키면서살아가고있다.
심한경우,
잊어버리고끄지못한전등이안식일낮에켜져있으면유대인이아닌이웃을불러
꺼달라고한다.
스위치를내리는것이노동이기때문이다.
정말무서운일이다.

긴역사를가진유대교가세계화하지못하는이유중하나가율법에대한지나치게
경직된해석과적용때문이다.
율법이주어진가장큰목적은올바른신앙생활을위한것이다.
말하자면’신앙의삶’을지켜주는울타리인것이다.
그러나그율법이내용은잃어버리고껍데기-형식만남아있다면그건이미죽은종교가
될수밖에없다.
제4계명인안식일규례는,
안식일을기억하여거룩하게지키라는것이다.
안식일을기억한다는것은야훼를기억하라는뜻이며,거룩하게지키라는것은야훼를
찬양하고예배드리라는뜻이다.
안식일의휴식이없다면삶은고달픈것이고쉬지못하면능율도없다.
전등의스위치까지대신꺼달라고하는건내용이사라진,껍데기뿐인,형식만남았다는
얘기다.

안식일은금요일일몰시간부터토요일일몰시간까지다.
이는셈족의사막생활특유의문화이기도하다.
지금도이스라엘에서는금요일오후가되면모든방송매체들이안식일이시작되는
각지역별시간을알려준다.
그들은지금도그렇게안식일을지키고있다.
따라서예수당시,유대인들이가지고있던안식일에대한생각은지금보다더엄격했다.
마가2장과누가6장의내용을정리해보면,
‘어느안식일에예수일행은밀밭사이를지나가게되었는데제자들이밀이삭을잘라
손으로비벼먹었다.’
안식일규레로는밀이삭을자르는것은묵인할수있어도그것을손으로비비는것은
타작,즉노동이되기때문에율법을어기는행위가된다.
‘보라,당신의제자들이안식일에해서는안되는일을하고있지않은가.’
본문에서는바리세인들이항의했다고되어있다.
‘바리세’는’구별된’종파로서율법에몹씨열중하는보수적인사람들이다.

놀라운것은,
유다지파의유대인인예수의반론이다.
‘아히멜렉이(놉땅의)제사장으로있을때,
몹시허기진다윗과그일행이제사장밖에는먹을수없는진설병을먹지않았는가.’
진설병(陳設餠)은,
성전의상위에차려놓는빵으로서,
두줄로여섯개씩12개를놓는다.
이는이스라엘12지파를상징하는것이다.
하나님앞에바쳐진그빵은제사장만이먹을수있다.
예수께서는다시,
‘안식일이사람을위해있는것이지사람이안식일을위해있는것은아니다.’라는
가히혁명적인말씀을하신다.
제자들은배가고팠고,밀이삭을잘라비벼먹는것은안식일정신에저촉되는게
아니라는해석이다.
지금생각해도’예수정신’이얼마나위대한것인지,핵심을찔러깨닫게하는그
능력에감탄이절로나온다.

원시기독교의창시자이자당대최고의이론가인바울의입장을살펴보자.
신약성경최초의책인갈라디아서3장을읽어보면,
‘어리석도다갈라디아사람들아예수그리스도께서십자가못박히신것이너희눈앞에
밝히보이거늘누가너희를꾀더냐.
너희가성령알받은것은율법의행위로냐듣고믿음으로냐.
너희가이같이어리석으냐.
성령으로시작했다가이제는육체로마치겠느냐.’
일부유대인기독교도들이이방인들에게할례-율법을강요한일에대한바울의강경한
반대입장인것이다.
그는2장에서더적극적인자기표시를한다.
‘내가율법으로말미암아율법을향해죽었으니이는하나님을향해살려함이니라.
만일의롭게되는것이율법으로말미암았으면그리스도께서헛되이죽으셨느니라.’
정말대단한사람이아닐수없다.

예수도바울도껍데기-형식만남은율법의폐해에대해검침없이반박하고나선것이다.
그율법이.
지금은613개로정리되어유대인의족쇄가되고있다.
GlobalChangeLtd.의회장,
PatrickDixon의책을읽어보면대단히의미심장한부분이있다.
현대인들은급변하는생활환경과복잡한시스템에서사는만큼영성,영적인안식에
대해더큰갈망을가지고있다는것이다.
즉종교의수요가전보다높다는뜻이다.
현재20억명에육박하는크리스챤은세계인구의32.5%를차지하고있는데,
기독교는아프리카,아시아,라틴아메리카에서상당한증가를보이고있으며이는
상당기간지속적인흐름으로볼수있다는분석이다.
한편선진국들은,
기독교신앙의의미에대해현대적인지적수준(知的水準)에서재해석하려는강력한
움직임이있다는것이다.

반대로한국의개신교는이미하향곡선이시작되었으며상당히빠른속도로신자들이
줄어들고있다.
터닝포인트를돈것이다.
그것은,상황이새로운패러다임을요구하고있다는강력한신호이기도하다.
지금까지의심령대부흥회,물량주의,목회성공주의,기복신앙,각종이벤트로사람들을
교회에묶어놓는치졸한편법으로는그만회가어렵다는얘기다.
그럴수록더딴것이될뿐이다.
그렇다면지적재해석(知的再解釋)이란무엇인가.
계명-율법이그뜻은죽어버리고극단적으로형식화되면지금과같은죽은종교가된다.
역삼동성당의조준호주임신부의얘기를들어보자.
‘모든종교가흔히착하게,선하게살아야한다는총론은제시하고있지만,
일상안에서의구체성,즉각론에서는약한게사실이다.
유럽의성당들은비어있지만,
유럽인들의일상안에는신앙이스며있다.’
오늘을사는현대인들의일상안에서기독교신앙이가장가까운길라잡이가되고,
기준이되고,원리가되는게그것이다.
서구인들,그대부분은자기이름이이미성경안에있는,성경의사람들이다.

갓을쓰고도포를입은예수를그림으로그리고,
기와지붕의예배당을짓고,
두루마기를입고강단에서고,
국악으로예배드리는것을’기독교토착화(土着化)’라고주장하는어리석은인간들이
있다.
진정한의미의기독교토착화는,
한국인으로서,한국적문화속에서,한국인의일상-日常안에’예수정신’을구현하는
일이다.
겉모습이아니라속사람-정신이크리스챤이돼야하는것이다.
그게토착화다.
그래서우리의신앙은,반드시일상안에있어야한다.
이제는총론이아니라각론을얘기할때다.
아직까지각론에약한것은전적으로’수준’의문제다.
신학이,성직자가,교인들이지적(知的)으로말씀을재해석할수있는수준에가있지
못하기때문이다.
그리고그게한국개신교의가장치명적인취약점이기도하다.
본질에서가장멀리떨어진변질의하나가’기독교신앙의기복화(祈福化)’다.
전래의샤머니즘에먹히고있는것이다.

주께서말씀하신가장큰계명은,
하나님과이웃을사랑하라는것이다.
그게기독교신앙의핵심이다.
그래서이웃은기독교가기독교될수있는가장가까이에있는일상이며’터’다.
이제이이웃들과함께크리스챤으로서함께살아야하는일상성을살펴보자.
-아파트의층간소음때문에이웃을괴롭게한일은없는가.
-밤늦게까지애들이피아노를친일은없는가.
-자기가좋아서기르는개가짖어대는소리때문에시비는없었는가.
-차량도난방지장치가오작동되어새벽에그소리때문에단잠을깬이웃은없었는가.
-공공장소에서잘못길러진망종들이날뛰는것때문에사람들이불쾌한일은없었는가.
-점심시간사람들이밀려들어오는시간에식사가끝났는데도계속자리를차지하고
앉아집사님,권사님하면서한담한적은없었는가.
-식당의자에발을올려놓고앉아다른이들이그발바닥을봐야하는야만적이고무지한
행동은없었는가.
-모두가함께쓰는엘리베이터안에냄새나는음식쓰레기의국물을흘린일은없는가.
-규격봉투가아닌봉투에쓰레기를담아몰래갔다버린적은없는가.
-여러사람이모여있는데서너무큰소리로휴대폰을쓴일은없는가.
-식당에서식사가끝났을때그밥먹은자리가개밥그릇보다더더러운적은없었는가.
-사람들의통행이빈번한길한가운데모여서서수다를떤일은없는가.
-줄서기가싫어새치기한일은없었는가.
-난폭,끼어들기운전을한일은없었는가.
-저울을속여장사한일은없는가.
-대한민국국민으로서납세와병역에서떳떳할수있는가.

째째하다고?
정말그럴까.
각론은이렇게세세한것들이다.
이웃을사랑하는것은총론만으론불가능하다.
방법을모르기때문이다.
이제교회는,지도자들은이째째한얘기들을가르치고,깨닫게하고,실천하게해야
한다.
교회가’기독교’로살수있는길이그것이다.
그게기독교의토착화다.
다른방법은전혀없다.
‘위대한정신과그가르침’이일상안에있게하는일,그게교회와우리사회가사는
길이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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