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가장많이주고받는새해인사는
‘새해복많이받으시고건강하세요.’다.
복받는것과건강이우리삶에서얼마나중요한것인지를잘나타내는인사말이다.
이두가지를마다할사람은없다.
그누구라고복과건강은최대의관심사이며사실그것을얻기위한우리들의노력은
그어떤것과도비교할수가없다.
그렇다면복(福)이란어떤것인가.
건강은복에비하면그개념이확실한단어다.
그러나복은대단히광범위한뜻을가지는말이며그해석도여러가지일수있다.
우선사전적인의미를풀어보면,
복은편안하고만족한상태와큰행운이며,
이로인해얻는기쁨과즐거움이다.
큰행운과만족은’물질’이전제되는개념이다.
따라서일반적의미의복은’돈-물질’이라는등식이성립될수있다.
우리의문화사적인영역에서가장전통적인복은유교에서말해지고있는오복(五福)
일것이다.
‘이빨이좋은것도오복의하나다.’라는말이있다.
물론치아의건강이오복에드는것은아니지만그만큼중요하다는의미이며이를
오복에빗대어말하는것은우리사회에서오복이하나의기준이되어있다는뜻이기도
하다.
그오복은,
수(壽),오래사는것이다.
지금의발달된의학은인간의기대수명을120세까지잡고있다.
육체적으로오래사는것이꼭좋은것인지는별문제지만오래살기를원하는인간의
오래된염원은변함이없다.
다음이부(富),
재물-돈-재산을싫어할사람은없다.
그러나모두가알고있는사실이지만재산은자칫인간을망칠수도있다.
그래서부도자기분수에맞게가지는지혜가필요하다.
강녕(康寧),
몸이건강하고마음이편안한상태다.
사실은돈보다더중요한복일지도모른다.
건강을잃으면모든것을잃는것이다.
‘진수성찬도소태맛’이라는말은마음의평안이얼마나소중한것인지를잘나타내고
있다.
유호덕(攸好德),
도덕을지키는것을낙으로삼는일이다.
올바르게사는사람이오래사는게이런이유일것이다.
끝으로고종명(考終命).
제명대로살다가편히죽는것이다.
비명횡사(非命橫死-뜻밖의재난이나사고등으로죽는것)하지않고제집에서,
자식들앞에서임종해야한다는얘기다.
사전적인의미의복이나전통가치로서의오복을살펴보면가장뚜렷한공통점은
그안에’종교적’요소가없다는점이다.
지극히인간적이고,현세적이고,물질적이다.
복과오복은평범한모든이들이바라고있는긍정적인희망사항이기도하다.
전혀나쁜것이아니다.
그렇게만될수있다면얼마나좋겠는가.
우리모두는이러한’복’의개념속에서태어나성장했다.
때문에이복들은우리의뇌리에깊이각인된고정관념이기도하다.
이런전통문화에서성장한자연인이종교를가지게될때대부분의경우이’복’개념이
신앙생활속에쉽게이입되는것은일반적인현상일수있다.
그러나그이입이신앙생활의’내용’에서변질을가져오는’매개’가될수도있다.
일반적인의미에서의’복’과종교가말하는’복’이그의미에서질적차이를가지기
때문이다.
이차이를모르기때문에기복화와미신화의현상이일어나며종당에는본래의모습을
벗어나는변고가생기게된다.
그서로다름을깨달아아는노력이부족하면그게어떤종교라해도딴것이될수밖에
없다.
지금한국종교의대부분이여기에해당된다.
넓게볼때,
구약의복은하나님의말씀을청종하는,의로운생활을하는자에게주시는선물이었
으며생명,건강,많은자손,안전,풍성함등이었다.
그러나신약에서의복은그본질에서영적(靈的)인것이다.
그것은하나님을알고,그분과지밀하게지내는생활자체다.
말하자면기독교의복은세상이말하는돈-물질이아니라하나님을깨달아알고,
그분의말씀에청종하는영적인것임을알수있다.
이차이는절대적이고근본적이다.
유대,기독교의복을가장소상하게,길게설명하는유명한본문이시편1편이다.
시편(詩篇-TheBookofPsalms)은,
구약성경의19권째책이며,
히브리식이름은’찬양의책-테힐림’이다.
시편이란명칭은구약그리스어역인’70인역’에서유래했다.
히브리의성경분류기준으로시편은성문서-케투빔에속한다.
모세,아합,코라자손,솔로몬,에단,헤만등이작자로언급되지만그대부분이
다윗의작품들이다.
모세때인주전1500년경부터에스라때에이르기까지약1000여년에걸쳐쓰여젔다.
5권150편으로편집돼있으며공통적으로각권의마지막편은송영으로되어있다.
시편은이스라엘과개인에의해읊어진신앙정서들이다.
내용의대부분이하나님에대한절대신뢰와감사,자신의죄에대한참회,미래에대한
소망등세가지흐름으로대별되며특히미래에대한소망안에는’메시야’대망이
나타나있기도하다.
방대한시편의제1편은,
‘복있는사람-복받은사람’에대한기사로시작된다.
복있는사람,복받은사람은어떤사람인가.
이제성경스스로의풀이와설명에귀를기울여보자.
실로그안에는우리신앙생활의기둥이되는요체가들어있다.
-악인의꾀를쫓지아니하며,
여기서악인(惡人)은나쁘고사악한사람이며그행실이옳지못한부도덕한사람이다.
그리고’꾀’는의도와계획이다.
복받은사람은,
그러한악의자리에가지않는다고했다.
그근본에서악이계획되는영역에는접근하지않는다는뜻이다.
-죄인의길에서지아니하며,
죄인은하나님앞에서악을저지른자이며그에게서벌을받은사람이다.
죄인의길에서지않는다는것은그영역을밟지않는다는뜻이다.
그런곳은거닐지도않으며스스로차별화하는것이다.
-오만한자의자리에앉지아니하고,
여기서오만하다는뜻은’비웃는자’라는의미다.
남을비웃는다는것은자기는잘났다고생각하는것이며남을없신여기는태도이기도
하다.
그런거만하고남을조소하는사람들과는어울리지않는자가복받은사람이다.
-오직여호와의율법을즐거워하여그율법을주야로묵상하는자로다.
율법은’말씀’이며성경이다.
그말씀을기뻐하고즐거워하여항상명상,눈을감고깊이생각하는자,
그말씀을되새기는자가복받은사람이다.
다음은복받은사람의’일상’이설명된다.
-저는시냇가에심은나무가시절을좇아과실을맺으며그잎사귀가마르지아니함
같으니그행사가다형통하리로다.
이본문의해석은끝부분이앞에오게된다.
만사형통이그것이다.
그에게는안되는일이없다는것이다.
물가에심겨진나무는물이마를일이없다.
그근본이바로돼있다는의미다.
잎사귀가마르지않으니열매가풍성할것언정한이치다.
물질적인풍요로움이느껴지는대목이다.
다음부분은’복받은사람’과정반대편에있는악인에대한설명이다.
-악인은그렇지않음이여,
여기서의악인은이미등장했던’비웃는자’다.
여기에사악(邪惡-마음과생각이간사하고악독함)이더해진다.
-오직바람에나는겨와같도다.
겨는버려지는물건이다.
바람은하나님의힘-입김이다.
바람에흩날리는,무가치한존재다.
-그러므로악인이심판을견지디못하며.
하나님의불꽃같은눈을피할수없으며그죄악을감출수도없으며머리조차들지
못한다는뜻이다.
-죄인이의인의회중에들지못하리로다.
염소가양의무리안에들지못하는이치다.
이미분리된죄인이선한부류에들수없다는하나님의판단하심을의미한다.
-대저의인의길은여호와께서인정하시나,
인정하신다는것은지켜보시고,보살핀다는의미다.
그길을걷는사람은넘어지지않고앞으로나아갈수가있다.
그래서목적지에도착할수가있는것이다.
-악인의길은망하리로다.
그’비웃는자’거만하고,오만한자,
하나님의말씀을즐거워하지않고명상하지도않는죄인은,
멸망할것이다.
타락해서사라질것이다.
궁핍때문에죽는다는뜻이다.
하나님의심판을견디지못하기때문이다.
우리가깊이명심해야될사실은,
본문1절과2절에묘사된’복있는사람-복받은사람’의특징은,
그복이’소유’에있지않다는점이다.
전부가’어떤상태’로설명되고있다.
‘소유’는그상태의결과로주어진사실에주목해야이심오한본문을바르게이해
할수있다.
기독교교회안에서말해지는’복’은성경의복이다.
성경이말하는어떤상태로서의복만이교회안에서말해져야한다.
기복(祈福)이문제가되는것은교회안에서세상의복,돈-물질을구하기때문이며
그것이신앙내용을왜곡,변질시키기때문이다.
지금한국교회의가장큰당면문제가그것이다.
이문제게관한한,
주께서는이미분명한기준을말씀하신바있다.
‘너희는먼저하나님의나라와하나님께서의롭게여기시는것을구하라그러면
이모든것(무엇을먹을까,무엇을입을까)도곁들여받게될것이다.’마태6:33.
먼저할일은,
먹을것과입을것,돈과물질을구하는것이아니라하나님이기뻐하시는’의로운생활,
올바른신앙생활’을하라는것이다.
그것이이루어졌을때먹을것과입을것은곁들여받게되는것이다.
지금교회의위기는이순서가바뀐데있다.
교회의물량화,기복화,미신화가그것이다.
인간이원하는세상의복을하나님에게요구하는오만함이그안에있다.
그’소유’를더하기위한종교는미신일뿐이다.
진정한종교는,신앙적삶은,
인간이말씀을통해변하는것이다.
그걸구원이라고부른다.
예수의마음을알고,그마음을품고사는것이신앙생활이다.
때문에성경의복은끝까지어떤’상태’일수밖에없다.
주께서영생을구하는부자청년에게주신말씀이그뜻이다.
‘먼저네가가진것을모두팔아가난한자들에게주고그후에나를따르라.’
분수에지나친소유는신앙생활의’짐’이된다는경고의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