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문제.
모든인간의육신이가는길은정해져있다.
생로병사(生老病死)가그것이다.
태어나고,늙고,병들고,죽는것이다.
이길을피할수있는인간은없다.
병이없이건강하게산다해도늙고죽는것은마찬가지다.
그리고이러한순환은자연의섭리이기도하다.
사람이나이가많아지면죽음에대해너그러운마음을가지게되는것도섭리라고볼수
있다.
오히려죽을때가다된사람이단지그육체적생명을연장하기위해필사적으로노력
하는것은의미도없거니와보기에도안좋다.

우리사회가전통적으로가지고있는오복(五福)에고종명(考終命)이있는것을보면
예로부터죽음을지극히일상적인인간의일로수용했다는것을알수있다.
하늘이주신명대로살고,제집에서,가족들앞에서편히임종하는것을다섯가지복의
하나라고정의한것이다.
우리선조들의지혜가돋보이는대목이다.
생과사는그렇게자연스러운것이기도하다.

그러나현대의학의발달은고종명의의미를희석시켰으며인간이하늘이주신명대로
사는섭리를간섭하게됐다.
인간의죽음에의료해위로간섭,이미죽은사람을단지동물적으로연명하게하는
행위가그것이다.
뇌사(腦死)는죽음에대한한가지정의로서뇌의기능이완전히멈추어져본래의상태로
회복될수없는상태를이르는말이다.
뇌가죽었다는것은그원인이어떠하든한인간의’인간적-정신적-인격적’기능이소멸
됐다는뜻이다.
그때부터는’식물인간’이된다.
호흡,순환,소화,배설등의육신적기능은의료보조기기등으로유지되지만사고(思考-
생각),운동,지각등대뇌기능이상실되어의식불명인채살아있는사람이바로’식물
인간’이다.
정신은죽고,몸만살아있는것이다.
식물인간에대해그육체적생명을우선하는기준과정신이죽은것을우선하는서로다른
기준이마찰을빚는것은당연하다.
그래서’선택’의문제가제기되는것이다.

다른한가지는법의판결이가지는시차(時差)의문제다.
그대표적인예가2004년6월에있었던’보라매병원사건’이다.
외상에의한뇌출혈로뇌수술을받고중환자실에입원해있던환자가의학적권고에도
불구하고가족들의완강한요구로치료를중단하고퇴원한후사망한사건이었다.
대법원은환자부인에게는살인죄를,퇴원을허락한의사에게는살인방조죄를적용,
확정판결했다.
그이후모든병원에서는회복이불가능한환자-식물인간에대한인공호흡기제거등치료
중단이나퇴원에대해아무리가족들의요구가강해도이를거부해왔다.
보라매병원사건으로부터4년이지난2008년6월10일,
서울서부지법305호법정에서는비슷한사건에대한재판이열리고있었다.
75세의김모여인의가족들이
‘식물인간상태에빠진어머니에게서인공호흡기를제거해달라’며병원을상대로낸
가처분신청에대한첫재판이었다.

현행형법은’환자의인공호홉기를제거’하는것은살인,혹은살인방조죄로규정하고있다.
식물인간이된김씨의가족들은,
‘환자의평소뜻에따라자연수명만누리고의미없는치료를받지않을권리를인정해
달라’는것이었고,
병원측의주장은,
‘보라매병원사건처럼의사들이치료를포기하면살인방조죄로처벌받도록돼있는현행
법이개정되지않는한인정할수없다’는것이었다.
원고측변호인은,
‘회복이불가능한상황에서인공호흡기를달고있는것은생명연장이아니라죽음의
과정을늘리는것뿐이며무의미한의료행위로환자본인과가족이겪는고통은물론
그사회적비용도줄여야한다’고주장했고,
피고측변호인은,
‘환자의치료를중단해의사와환자가족이형사처벌을받은대법원의판례를존중해야
하며환자치료를위해최선을다해야하는의료인의기본윤리를저버릴수없다’고
주장했다.

2008년7월10일.
서울서부지법민사21부는,
‘치료중단을허락하는것은현행법상에서보장하고있는절대적생명보호의원칙’에
어긋나며의식불명상태인본인의의사를확인할길도없다는점등을들어가족이
제기한가처분신청을기각했다.
그이후재판부(민사12부)는9월1일신촌세브란스병원중환자실을방문,현장검증을
실시했으며8일에는서울대병원과서울아산병원에김씨에대한신체감정을의뢰
하기도했다.
이재판이가지는사회적파급효과를생각하는신중한조치가이어진것이다.
그리고28일,
서울서부지법민사12부는,
‘병원은김씨에게부착한인공호흡기를제거하라’고판결했다.
이에대해연세의료원측은1심판결에대해2심(항소심)을거치지않고곧바로대법원에
상고하는비약상고를하겠다고밝혔다.

이판결이나온후,
천주교서울대교구생명윤리위원회는임종환자의무의미한연장치료중단을인정하는
입장을밝혔으며,
불교조계종도사회적합의와제도가마련되면존엄사를긍정적으로검토할수있다는
입장을밝혔다.
한편대한의사협회는환자측으로부터충분한동의를얻는다면무의미한연장치료는
중단할수있어야한다는성명을발표했다.

그렇다면존엄사(尊嚴死)란무엇인가.
‘말기환자가임종단계에들어갔을때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영양치료등생명연장
의료행위를하지않고자연스런죽음을맞도록하는것을의미한다.’
연명치료중단의범위를넓게잡으면소극적안락사에해당될수도있다.
이에대해안락사(安樂死)는,
‘말기환자의고통을덜어주기위해약물투여등적극적인의료행위로환자의생명을
단축하는것’을말한다.
결국존엄사나안락사가가지는’인위적인개입’때문에찬,반의논란은계속될수밖에
없다.

2008년12월18일,
연세의료원은2심을거치지않고곧바로대법원에비약상고하려했으나김씨가족이
이에반대해서울지법에항소장을제출했다.
항소심은서울고등법원에서열리며한쪽이그결과에불복하면대법원에서최종심이
열리게된다.
세브란스병원측은,
‘존엄사에대한사회적합의가없는상황에서1심판결만으로존엄사를수용하기에는
한계가있다’는입장을밝혔다.
2009년2월10일,
서울고등법원민사9부(재판장이인복)는,
‘기계에의한의존상태를벗어나자연스로운죽음에이르는것이인간으로서존엄과
가치를회복할수있는길’이라고하면서,
‘인공호흡기를제거하라’고판결했다.
동시에연명치료중단의4가지요건도제시했다.
-환자가돌이킬수없는사망과정에진입할것,
-환자의진지하고합리적인치료중단의사가추정,판단될것,
-고통을완화하거나일상적인진료는중단불가.
-치료중단행위는반드시의사가할것.

이어서재판부는,
‘현대의료현실에서인간이기계장치에의해연명되는사례는이후로도많을것이고
개개의사례들을모두소송을통해해결하는것은비현실적이니만큼국가가입법을
통해국민의기본권을구체화할필요가있다’고밝혔다.
‘생명연장중단이무분별하게남용되지않으려면사회의견해를폭넓게반영해연명
치료중단에관한절차,방식,남용에대한처벌과대책등일정한기준을만들어야한다’
는부연설명도있었다.
이미2008년5월11일,
김씨가족들은정부가’존엄사’에대한법률을제장하지않은것은헌법에위배된다며
헌법재판소에헌법소원을낸바있다.
결국가장직접적인책임은국회-입법부로귀결되는것이다.
모든가정이당할수있는민감하고어려운문제를법과제도로풀수있는길을마련하지
못한것은전적으로입법부의책임인것이다.
언제나총론(總論)에만강하고,당리당략에는폭력까지서슴치않는무능국회가’각론
(各論)에약한것은당연하다.
존엄사문제는아주세밀한법과시행령,시행세칙이뒤따라야한다.
이는전적으로’각론-소프트웨어’의문제다.
지금의깽판국회수준으로는감당하기어려운숙제다.
의지,전문성모두에서그렇다.

아직존엄사에대한사회적합의는없지만그동안있었던찬반논의를정리하면,
찬성하는쪽은,
-무의미한치료(의료장치등)를받지않을수도있는권리를인정해야한다.
-소용없는치료로인한환자가족의정신적,경제적부담을덜어줘야한다.
-회생가능한다른환자들의치료받을기회를빼았지말아야한다.
반대하는쪽은,
-소생가능한환자가치명적피해를입을수있다.
-사회보장제도가미흡한현실에서경제적이유로남용될위험이크다.
-생명경시풍조가만연하게된다.
양쪽의의견들은모두가나름대로의충분한이유가있다.
문제는’존엄사’를현실적으로봐야하는시대적요구다.
감정적인면만으론해결될수없다.
여기에이성적인판단이필요한당위가생긴다.

대중적인인기가큰미국의TV드라마C.S.I.를보면,
버스전복사고로중상을입은외과의사가병원에도착,수술실로들어가기전,
‘생명연장을위한의학기구의부착을거부한다’는서류에서명하는장면이있다.
자기가’식물인간’이되는것을거부하는것이다.
미국이1989년부터시행하고있는,치료의한계를환자가미리밝혀두는
‘생전유언-LivingWill’이그것이다.
프랑스,독일등선진국에서도시행하고있는제도다.
서울아산병원의경우,
말기환자가연명치료를받지않겟다는’소생술거부-NotResuscitate-DNR’서약을하면
그뜻을인정해주는제도를관행적으로시행해왔다.
아산병원의경우매년150-200명의말기환자가이서약을통해자연스러운죽음을
맞고있다.
일본은존엄사선언에서명한사람이10만명을넘고있으며우리국민도88%가존엄사에
찬성하고있다.
매년24만여명이생로병사의길을가고있다.
그들이고종명할수있게하는게우리모두의책임이며몫이다.
의료의발달이오히려덫이되어고종명할수없다면이를바로잡아야한다.

가족한사람이식물인간이되어의료기기를부착한채중환자실에누워있다면,
그리고그게장기화된다면그가정은거덜나는것이다.
이미죽은사람이산사람들을저승으로끌고가는것이된다.
있는집이라면무슨걱정이있겠는가.
그래서존엄사는고통스러운선택이기도하다.
단지,법률이그선택을합리적으로,현실적으로할수있도록큰금을그어줘야하는
것이다.
아직까지그금을긋지못하고있는게우리의후진성이다.
찬성을하든,반대를하든,내가먼저환자가족들의절박한입장이돼봐야한다.
현실은가혹한것이다.
인간이거기에매몰되지않게화는게법과제도가아니겠는가.
온몸에주사바늘과의료기기들을주렁주렁달고의식도없이침대에누워있다면그걸
어찌인간의삶이라고할수있겠는가.
고종명을오복에넣은선조들의지혜를다시한번음미해볼때가됐다.
생로병사를피할수있는인간은하나도없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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