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에서나를지켜보시던어르신한분이같은말씀을여러번하신일이있었다.
‘자넨검사가되었어야해.’
왜그렇게생각하시느냐고야쭈어보니
‘말을조리있게하고글을명료하게쓰는재주가있다’는것이었다.
사실언변과문장은타고나야하는측면이있기는하다.
머리속에방대한지식을가지고있으면서도말이어눌해이해하기힘들게말하는
사람이있는가하면,알아보기어려운난해한문장을쓰는사람들도많다.
심한경우는글씨가엉망이어서도저히읽을수없는경우도있다.
오래전,내가미국인들과일했을때한번은홍콩에있는미국인신부의편지가우리
사무실로배달된일이있다.
그러나그글씨가너무나악필이어서그편지의발신인과수신인을정확히알아내는
일부터가쉽지않았다.
더난감했던것은미국사람인수신인이영어로쓴그편지를읽을수없다는사실이었다.
한문장에서한두개의단어만겨우읽을수있었고나머지부분은여러사람이돌려가며
읽어봐도전혀그뜻을알수없는악필이었다.
할수없이나와그편지의수신인인미국인은가까이에있는성당에가보기로했다.
신부님들끼리는통할수있지않을까하는기대때문이었다.
그러나그곳에계시는미국인신부님도혼신의힘을다해그편지를읽어보려고
했지만실패했다.
결국그편지는’읽을수없는편지’가되어쓰레기통에버리고말았다.
말도,글도심하면그렇게될것이다.
나는거의매일블로그에올리기위한글을쓰고있다.
지금은5일간격으로글을올리기때문에전보다는여유가있지만결코쉬운작업이
아니다.
한달에평균6편의글을쓴다는것은웬만해선엄두도못낼일이다.
나역시여러해동안글을계속해서써왔기때문에가능한것이지갑자기그렇게많은
글을쓰라고한다면불가능할것이다.
나는지금도종이에볼펜으로글을쓰고있다.
물론충분히한글워드를사용할수있지만그방법은글을쓰는’재미’가없기때문에
종이에쓰고있다.
한번쓴초고는여러번수정하고,교정하게된다.
그때종이위의문장은벅벅지워버리는통쾌감이있지만한글워드는그런시원한
재미가없다.
그래서계속종이에글을쓰고있다.
볼펜이종이를스치는사각사각하는소리도듣기에좋다.
그러나더깊은이유는내가컴퓨터세대가아니라는점이다.
지금컴퓨터를자유자재로사용하고있는것은사실이지만그근본에서나는종이와
연필세대다.
말하자면습관이그렇게된것이다.
한가지다른점은글씨를써내려가는속도에서아주빠르기때문에A4용지10장정도의
글도2시간안에다쓸수있다.
물론거기에는글을쓰기전,글로쓸내용을숙성시키는과정이충분하기때문에가능한
일이기도하다.
그만큼써야할글에대해깊이생각하고,다듬고,치밀하게정리하는사전작업이있는
것이다.
국악인인황병기교수는곡하나를만드는데2년의숙성기간이필요하다고했다.
아무리말을조리있게하고표현력이좋다고해도그것만으로글을쓸수있는것은아니다.
계속해서,그내용이충실한글을쓰기위해서는호기심과관심이있어야한다.
호기심과관심이없으면’문제점’이보이지않는다.
호기심과관심은나이와반비례한다는말은사실이다.
나와동연배들을잘관찰해보면정말매사에무심하게지내는사람들이많다.
그만큼단순해지고,빨리늙을수밖에없다.
계속해서글을쓴다는것은,쓸수있다는것은호기심과관심이살아있다는증거다.
사람이나이를먹는경우,
육신과정신이같이늙는사람이있고,육신은늙어가도정신은더성숙해지는경우가
있다.
치매가육신이승한쪽이라면’창작’을한다는것은정신이육신을극복한케이스일
것이다.
그만큼정신적으로는젊게사는것이다.
실제로젊게보이는것도사실이다.
글을쓴다는것은결국’자료’와의싸움이다.
그게바로’공부’다.
정말엄청난공부를해야한다.
우선여러분야의사전류가구비돼야하고,상달량의분류된스크랩북은필수다.
대형의우리말사전과한문사용을위한큰옥편은더말할것도없다.
내경우,늘휴대하고다니는카드에그때그때현장에서메모한자료들이수만장에
이르고있으며그건거의일생을통해수집된살아있는자료들이다.
이카드를분류,저장하기위해주문한설합장-한방의약재설합장같은-이따로있다.
다음이책과신문등이다.
정기구독하는일간지,주간지,월간지가6가지이며,
신간단행본의경우연70-100권정도구입해서읽는다.
은퇴생활하는지금,가장큰문화비지출이도서비이며다음이내가좋하는영화DVD
들이다.
21세기를사는가장큰혜택은컴퓨터다.
내가처음구입한컴퓨터는IBM의486세트였다.그때는정말비싼물건이었다.
지금나는정말수도없이많은검색을하고있다.
보다좋은자료를찾기위해영어사이트에도계속접속하고있으며뜻밖에놀라운
자료를얻을때도많다.
자료의분량이많을때는인쇄로내려받은후밑줄을쳐가며분석적으로공부한다.
글을쓴다는것은,
더구나좋은글을쓴다는것은결국방대한자료에대한선별과연결이다.
따로떼어놓고보면아무것도아닌것같지만그것을선별하고연결해놓으면대단한
내용이되는경우가비일비재하다.
이때결정적으로필요한것이풍부한지식과상식이다.
그도구가없다면자료의효율적활용은불가능하다.
지식과상식은따로시간을정해놓고학습할수있는학과목은아니다.
평소의독서량에의해결정되는게그것이다.
때문에글을쓰는사람은언제나,어느곳에서나손에서책을놓으면안된다.
책은정신의양식이자우리의삶을풍요롭게하는마르지않는샘이며,한인간의삷을
전혀다른차원으로옮겨주는기적의손이기도하다.
책을많이읽으면사물을보고판단하는능력이달라진다.
성숙한인간이되는것이다.
동헌(東軒)에서퇴청한사또가평상복으로갈아입은후사랑에서서책을읽고있었다.
이때당돌한아전의어린아들이겁도없이살금살금다가와질문한다.
‘원님,지금뭐하세요.’
마음씨가너그러운사또는부드러운목소리로대답한다.
‘보면모르느냐,책을읽고있지않느냐.’
이놈이물러서지않고또질문한다.
‘그안에뭐가있는데요.’
‘이안에는뭐든다있단다.’
‘밥도있나요.’
‘그럼밥도있지.’
‘그러면옷도집도있나요.’
사또는빙그레웃으면서설명한다.
‘얘야,정말책속에는뭐든지다있단다.그러니너도책을읽어야하느니라.’
오래전읽었던이글은지금도내게는신선한자극제가되고있다.
얼마나감동적인장면인가.
때로는큰부담을느끼고,
어떤때는글이잘써지지않는경우도있다.
그런어려움을겪으면서도계속글을쓰는이유는무엇인가.
글쓰는것말고도내겐충분히바쁘게해야할일들이많다.
최근,체력의한계를느껴평생해왔던바다낚시를그만뒀다.
그동안수집해온온갖낚시대들,여러종류의릴들,수많은소도구들을눈으로보고,
손으로쓰다듬어보는것만으로도충분히즐겁다.
그러나내가계속해서블로그에올릴글을쓰는것은,나이는들었지만’창조적’인
삶을살기위해서다.그게이유다.
글을쓴다는것은’창작’이다.
창작은인간만이할수있는고도의정신작업이다.
프랑스의시인인폴발레리는,
‘생각대로살지않으면,사는대로생각하게된다.’는유명한말을했다.
능동적으로살것인가,
수동적인삶으로끝낼것인가의의지와선택의문제인것이다.
나는개인적으로,
최소한텔리비젼리모콘을손에쥐고,소파에파묻히는,’사는대로생각하는’노인이
되기를거부하는것이다.
그래서텔리비젼을전혀안본다.
백해무익한게그바보상자이기때문이다.
지금까지살아오면서학습된,경험된,축적된모든것을쏟아’창작’에몰입하는
‘생각대로사는삶’을원하기때문이다.
아내가화가인것도내게는큰자극제가된다.
미술은가장적극적인창작의세계다.
내게는’글’이바로그세계다.
우리부부가젊어보이고,실제로젊게사는것도’창작’이라는정신작업을하기때문일
것이다.
아내가자기의작업공간을사랑하는것만큼,나는내서재를사랑한다.
내가좋아하는것,내게필요한것은모두이안에갖추어져있기때문이다.
그래서서재에앉아있으면감사하고,편하고,행복해진다.
방을가득채운책한권한권,음반한장한장,DVD하나하나,낚시도구들과컴퓨터,
6개의스피커까지모두내게는소중한재산들이다.
그리고내가사랑하는목관클라리넷과첼로가있다.
우리집안에서는물론,
내주변에서,보통사람으로나만큼빠른속도로컴퓨터자판을사용하는경우는보지
못했다.
손녀이표현을빌자면,’드르륵탁탁’이다.
무슨얘긴가.
숙달이그만큼무섭다는뜻이다.
나는1960년대중반이태리올리베티사에서만든김동훈식4벌한글타자기로시작,
지금의두벌식까지평생을타자기를써왔고,영문타자기는더빨리칠수있다.
자기가받은천부와기능을죽이지않고계속사용하고,향상시키는것이젊게사는
길이다.
지금은은퇴하고도20,30년을더살아야하는시대다.
죽을때까지소파에앉아손에리모콘을들고텔리비젼연속극만보고살수는없지
않는가.
정말그걸’생활-삶’이라고할수있겠는가.
사람은그게누구든자기가좋아하고잘하는일이있다.
그걸찾아내야하고그일에열중할수있어야한다.
그게죽는날까지’젊게사는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