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바라보기도아름답지만밭사이로보이는모습이더아름답다.
여기에사물을보는비밀이있다.
노출보다는알맞게가려진모습이더욱아름답다는사실이다.-법정.
이제바야흐로철쭉과진달래의계절이다.
꽃이피어서봄인가.
아니면봄이어서꽃이피는것일까.
겨울동안움추렸던몸과마음이밖을향해나서는계절이된것이다.
심한노출보다는알맞게가려진것이더아름답다는법정의말씀은사실이다.
지금우리사회는모든분야에서너무노출이심하다.
그게’극단화’다.
가장대표적인것이’생각의극단화’로서내생각만있고다른사람의생각은인정
하지않으려는무서운독선이그것이다.
토론문화가없고,내것만극단적으로주장하다보니나와다른것은모두가적이되는
살벌하고각박한사회가된것이다.
지난3일경기도고양시킨텍스-KINTEX에서는’2009서울모터쇼’가열렸다.
그날,행사장인킨텍스의1홀31번게이트앞에서는’비정규직보호와처우개선’에
관한민주노총회원들의기자회견이있었는데,
회견도중갑자기자동차에피-선지를뿌리는퍼포먼스가발생했으며,이를제지하던
의경을폭행한일이일어났다.
국제적인행사장에서,
그행사를반대하는합법적인시위도할수있는것이고,
자기들의의견을발표하는기자회견도할수있다.
그러나그런현장에서피-선지를뿌리는행위는국내외를막론,찾아보기힘든,참으로
극단적이고무서운일이아닐수없다.
어떤의미에선극악(極惡)하다고도할수있다.
감정과주장이가려지는게없이그대로,극단적으로노출되는것은설득력을가질수없다.
그방법이미개하기때문이다.
광우병촛불과함께용산철거민참사도결국은’극단적방법’이남긴사회적상처가된게
그런이유다.
왜우리에게는극단을가리는’정신의도구’가부족한것일까.
정말모두가깊이생각해봐야할숙제가아닐수없다.
안중근의사가하얼빈감옥에서쓴휘호가운데는
‘하루라도책을읽지않으면입안에가시가돋는다’는게있다.
그분이부단한독서가였음을알게해주는글이다.
지금무역협회회장직을맡고있는사공일(69)씨는,
평소나이가들수록더공부해야한다는주장을펴는분이다.
아무리바빠도하루3시간이상을각종서적과연구보고서,국제경제칼럼등을읽는다고
한다.
‘책읽는것이내게는휴식이자또취미다.
현대인은점점기계의노예가되어가고있다.
인터넷,휴대폰없이는한시간도살지못하는정도다.’
정진석추기경의말씀이다.
우리가인터넷이나휴대폰을통해얻을수있는것은’정보’다.
그것은대부분정제되지않은날것이기때문에익혀먹지않으면탈이날수있는
일차적이고무책임한정보들이다.
그러나책은’정신의양식’이다.
지식과상식을얻을수있으며인간적으로성숙해지는자양분을얻을수있다.
2008년도에우리나라에서출판된신간도서는총4만3099종에1억651만5675부가
발행됐다.
2007년에비해종류는4.9%증가했지만발행부수는20%가감소했다고한다.
독서인구가그만큼줄어들었다는얘기다.
한편2008년에우리나라가해외에수출한책은1103종이며,그중36%인403종이
어린이용학습만화류다.
전부23나라에책을수출했지만중국에326종,태국에287종,대만에179종등
동남아가주대상이었다.
더심한불균형은우리가수출하는책은수입하는책에비해10분의1수준이라는
점이여이는아직도우리가지식을수입하는단계라는뜻이다.
2008년도에수입,번역된외국서적은1만3391종으로우리나라도서의전체발행부수
에서30%이상을차지하고있다.
선진국은사실상’지식총량’에서의선진사회인것이다.
지식을수입해야하는단계를벗어나지않는한선진국진입은그만큼어렵다고봐야
한다.
법무부통계에따르면2008년에우리나라에입국한외국인은682만38123명이다.
그리고현재서울에는100여개매체에서270여명의외신기자들이상주하고있다.
전세계에퍼져살고있는우리의교포가이미700만명수준이며서울에상주하고있는
외국인도20만명을넘어서고있다.
물리적으로는세계적인개방국가가됐다는얘기다.
더구나지금UN의사무총장은한국인반기문이다.
사실상세계대통령이한국인인셈이다.
그러나안을살펴보면이국제화시대에서우리가얼마나배타적인나라이며쇄국적인
국가인지금방드러난다.
지난해의광우병촛불시위와한,미FTA반대가대표적인사례가될수있다.
광우병촛불은사실상세계적인웃음거리가된부끄러운케이스다.
미국은물론,우리와똑같이미국산쇠고기를수입한141개나라중,광우병의’광’자도
꺼낸곳이없기때문이다.
거짓과왜곡보도로국민을우롱한MBC가지금’순교자연’하는비열함은정말더봐줄
수가없는목불인견이다.
전중권이쓴’호모코레아니쿠스’에이런대목이있다.
‘한국은압축성장의사회다.
압축성장에짓눌린사회다.
한몸속에전(前)근대와근대,그리고탈(脫)근대라는세지층이공존하는
그로데스크한사회다.’
grotesque는괴상하고,기이하다는뜻이며흉측하고우스꽝스럽다는의미다.
국제화된지구촌시대를살면서그의식구조-사고방식에서변방,주변부국가수준
인것은우리사회가’혼란스러운사회’이기때문이다.
겉으로보이는모습이화려해도기초,기반이허약하기때문에기울어지는집과다를게
없다.
속빈강정을버릴때가된것이다.
얼마전음식점에서의’반찬재사용’이큰화두가된일이있었다.
사실따지고보면그것처럼비위생적이고위험한일도없다.
당국은식당에서의남은반찬재사용을막기위해여러가지처방을내놓았으며지방
자치단체도이에호응,여러가지캠패인을벌이고있다.
결론적으로말한다면,
우리의’식사문화’가바뀌지않는한이문제는개선될수도,해결될수도없다는점이다.
그원인이아주깊은곳에있고,가지치기만할수있을뿐뿌리에는접근조차하지못하고
있기때문이다.
아무리서양식페스트푸드나퓨젼요리가많아져도결국우리의주식은’밥’이다.
밥,김치,고추장이기본이다.
그런데밥이라는음식은다른반찬들과는달리아무리먹어도물리는법이없다.
맛이없기때문이다.
그래서반찬과함께계속먹을수있는게밥이다.
그리고밥이라는음식은반드시국,탕,찌개가있어야쉽게먹을수있는음식이다.
우리음식에서탕류가발달한게그대로먹기에뻑뻑한밥때문이다.
지금은큰음식점에서는찌개나전골류를주문하면국자와함께각자에게작은접시를
주지만가정이나작은음식점에서는찌개그릇을가운데놓고여럿이함께떠먹는다.
여러개의숟갈이한찌개그릇에들락거리는식사문화는너무나오래된것이어서
그누구도큰부담감없이식사하고있다.
그러나그게비위생적인것은더긴설명이필요없는일이다.
찌개를같이떠먹는다는것은다른반찬도공유(共有)할수있다는개연성을가진다.
‘반찬재사용’의뿌리가거기에있는것이다.
다른한가지는우리의전통적인식사문화에서해법을찾을수있다.
우리의음식은,
상다리가휘어지도록한상가득히차려내는’공간전시형-空間展示型’이다.
전통한식집에서백반한상을받아보면우선반찬의가짓수에놀라게된다.
식사문화에서도실리보다는가짓수라는명분(名分)이앞서는것이다.
일본의옛글을읽어보면큰영지를가지고있는영주도그식사는아주검소했다.
반드시잡곡밥에국,그리고반찬은세가지로제한하고있다.
일즙삼채-一汁三采가그것이다.
지금도일본사람들의검소한밥상에는이런식사문화의전통이스며있다.
지금우리나라식당들은반찬의질보다는가짓수로경쟁한다.
소비자가그걸기준하기때문이다.
따라서채산성-수지를맞추기위해서는이미손님상에올렸던반찬들을재사용할수
밖에없는구조적문제를가지게된다.
한번쓴반찬을다버린다면가게문을닫을수밖에없기때문이다.
말하자면어쩔수없는악순환이계속되고있는것이며당국의어떤조치도이구조앞에
서는실효를걷을수가없다.
이미어떤사람의수저가닿아침이묻어있는음식을다른사람이다시먹는다는것은
사실’범죄’다.
그비위생성은불특정다수를향해총기를난사하는것과하나도다를게없는사회악이다.
생각해보면무서운일이다.
나는오래동안미국인들과생활하면서그들의식사문화가가지는장점을몸으로체험
한바있다.
그들의식사문화는,
서로다른음식이차례로나오는’시간전개형-時間展開型’이다.
거기에더해모든음식은자기접시에먹을만큼만덜어먹는실리형이다.
따라서남은음식도깨끗한상태로보관했다다시먹을수있다.
음식을’재사용’해도위생적인문제는전혀없는것이다.
우리부부는내안식년에한달간빠리에체재한일이있다.
제17구빌리에의프랑스인중산층가정에서한달동안민박했다.
매일아침과저녁식사는그들과함께했으며그들의식사문화도미국인들과같다는것을
확인할수있었다.
솔직히말한다면그식사내용은우리보다는빈약했다.
‘로마제국은유산,불임,여러가지질환,정신병을일으키는납중독으로붕괴됐을가능성
이크다’는주장이있다.
나는재를걷어낸폼페이의유적지에서가정에들어와있는납으로된수도파이프를
보면서그럴수도있다는생각을한일이있다.
당시로마인들은납이얼마나무서운비철금속인지모르고그걸일상적으로사용했던
것이다.
치명적인질병으로병상에누워있는환자는,
자기가어디에서무엇으로부터전염되었는지를모른다.
누구에게도책임을물을수없는절대적인피해자인것이다.
몸이병에걸릴수있다면정신도병에걸릴수있다.
재사용되는반찬처럼우리사회안에있는’현대의납’을찾아야하는이유도거기에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