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다른 노년(老年).
사람은나이가많아지면’본색-本色’이드러난다고한다.
‘어린애처럼된다’는말도있다.
본색은본래의바탕이나색깔또는본래의생김새라는뜻이다.
후천적으로가지고있던여러가지껍데기가벗겨지면서그인간적인바탕이드러난다는
얘기다.
교육,가정에서의위치,사회적인신분,대인관계에서의절제들이무너지면서그것들
이전의본래모습이나타나는것이다.
이세상에늙지않는사람은없다.
결국은모두가노인이되는것이다.
이공평한섭리를깨닫고사는사람과자기와는무관한일인줄알고사는어리석은인간
이있을뿐이다.
깨닫고있는사람은준비하고그반대는어는날범을만나듯맞딲뜨린다.
인간의노년은사람마다다르기때문에그하나하나를가지고좋다나쁘다얘기할수는
없다.
그러나크게봐서대단히긍정적인노년을살고있는사람과부정적인노년을살고있는
사람으로크게나눌수는있다.
또그렇게하는것이더교육적이다.

나는오래동안가까이에서두분할머니를관찰해오고있다.
일부러그런것은아니지만여러가지개연성이그들에대해많은것을알게되는기회를
가질수있었기때문이다.
다른한가지는,
그두분은공통점도있지만각자의삶의내용에서거의극단적인대조점을가지고있기
때문에흥미롭기도하고나름대로그이유에대해생각해보기도했다.
말하자면그두분은서로다른노년을대표하는모델케이스가될만하다는뜻이다.
같은세대의두할머니이지만그들은그바탕에서너무나다르다.
정말글자그대로서로다른노년을살고있는것이다.

김할머니와박할머니로구분하는두분의공통점은,
우선그들의나이가80대후반,곧90이되는분들이다.
거의한세기를살아온,장수화는분들이다.
똑같이남편과는사별하고혼자살고있으며,슬하에5남매를두고있는점도같다.
두분모두크리스챤이며교회에서직분도가졌던분들이다.
우선김할머니는,
남편과사별한후혼자서아파트에살고있다.
효심이지극한딸이바로옆동에서살면서모든수발을들고있다.
박할머니도남편과사별한후,
남편이남긴큰이층집에서자기는아래층을,아들네는이층을쓰고있다.
거주문제에서두할머니는전혀불편이없는환경에서사는셈이다.
거기까지가공통점이다.

김할머니는주변에서알아주는요리솜씨로식구들의밥상을준비하던분이다.
그런데지금그솜씨를물려받은딸이준비하는음식에대해타박이자심하다.
식사의양도적고,소화도잘안되고,신진대사에서큰불편을겪고있다.
몸을움직이는일이없으니식욕도없다.
본인도힘들지만음식을장만하는딸의고충은이루말할수없다.
박할머니는,
제시간에맞춰며느리가정갈하게준비한식사를한다.
아주맛있게,깨끗하게,그리고감사한마음으로음식을든다.
먹는양은많지않지만몸을움직이는정도만큼식욕이유지되기때문에식사도잘
하는편이다.
물론음식을준비하는며느리로서도시어머니가음식을잘자시니마음이편하다.
노년의섭생은건강과직결되기때문에식사하는태도와식사내용은대단히중요한
의미를가진다.

김할머니의5남매들과며느리,사위,손자손녀들은할머니에게전화하는일을매우
꺼린다.
특별한날이아니면모이기가어려운게현대인의삶이다.
따라서전화라는편리한방법으로할머니와소통하는것은사실바람직한일이다.
그런데왜식구들은전화하기를꺼릴까.
할머니의’넉두리’때문이다.
‘종일혼자있으니집이감옥같다.’
‘왜너희들은자주찾아오지않느냐.’
‘나죽은다음에야와볼것이냐.’
‘여기저기몸이아파서죽을지경이다.’
모두가사실이지만,
듣기에민망한이런얘기만일방적으로늘어놓으니대화가안되는것이다.
그러니자연전화하는일을기피하게된다.
그만큼김할머니는더외로울수밖에없다.
상당한원인이자기에게있지만그점을깨닫지못하고있는것이다.

박할머니의자녀들은전화를자주한다.
그게누구둔전화가걸려오면할머니의대답은간단명료하다.
‘오,아무개구나,
그래그동안잘지내고있지?나도잘지내고있단다.
전화줘서고맙구나,
나지금바쁘니까이만끊자.’
그것으로끝이다.
그러니아쉬운건저쪽이다.
따라서전화를자주할수밖에.
그리고박할머니의자식들은하나같이어머니를자주찾아뵙고용돈도두둑히드린다.
따라서며느리나사위도할머니에게아주잘한다.
집안분위기가그렇기때문이다.
박할머니는평소그누구에게도아쉬운소리를하는법이없다.
자식들과오히려거리를두려는그태도때문에자녀들은더어머니에게가까이가려고
한다.

김할머니는그일상에서’자기것,자기의일’이없다.
그래서하루종일소파에앉아TV보는게일과다.
손에서리모컨을놓지못한다.
거기에더해난청이심하기때문에볼륨을있는대로높여서전화벨이울리는것을
못들을정도다.
때문에그누구도할머니댁에오래있을수가없다.
모두가어떤구실을만들어서라도도망나오듯떠나려고한다.
밖에나와도한참동안은귀가멍멍하다.
보다못한큰아들이성능이좋은보청기를사다드렸지만불편하다고쓰지않는다.
그래서김할머니집은’극장’이라는별명으로통한다.
아무리사랑하는어머니라해도그누가그높은스피커의볼륨을견딜수있겠는가.
김할머니는자식들이집에오는것을자기가쫓아내고있는것이다.
그러면서도자주오지않는다고원망한다.

박할머니는그누구에게서도배운일이없는,
자기가좋아서그림을그리는화가다.
처녀때부터그림그리기를시작했으니거의평생을그림을그려온셈이다.
그분은자기집1층에아뜰리에를마련하고자기도그림을그리고자기를찾아오는
사람들에게그림을가르치기도한다.
뿐만아니라회화성이높은,많은그림들이계속팔려나가기도한다.
박할머니는매월자기의수입에서150만원을며느리에게건넨다.
생활비에보태라는뜻이다.
박할머니는그림그리는시간이아까워TV는가까이하지도않는다.
90이다된노인이젊은이보다더많은그림을그리고있으니놀라운일이다.
‘자기일’이있고,거기에집중하고,몰입하다보니나이보다정정해보이며,
거기에더해경제적으로도독립해있으니더견고할수밖에없다.
정말바람직한케이스다.

김할머니는약보따리를안고산다.
병도여러가지지만약이외의어떤치료법도거부하기때문에약이없으면죽은목숨
이다.
너무여러종류의약을지속적으로복용하기때문에식구들이걱정하고만류해도
막무가내다.
박할머니는약을먹지않는다.
젊었을때자기어머니에게서배운경락(經絡)에에대해잘알고있으며침자리도많이
알고있다.
스스로자기를치료할수있고다른몇가지보조기구를가지고있기때문에자기건강은
자기가관리하고있다.
90노인이꼿꼿한자세로’자기일’을하는,대단히건강한노년을사는것이다.

김할머니의모태신앙은,
내일을위해주변을정리하고준비할줄모르는모호한것이다.
아직도매사에노탐(老貪)을그대로가지고있다.
죽음에대한두려움도크고,구원에대한확신도분명치않다.
박할머니의신앙은아주실제적이다.
교회의변질을비판할만큼식견을가지고있으며내일떠나도아쉬울게없이주변을
정리하면서살고있다.
그분은자기의노년을덤으로주신것이라며늘감사하고있다.
부르심을받으면즉시떠날준비를하고있는것이다.

김할머니는옛날소학교3년중퇴의학력이며한글을겨우읽는수준이다.
그나마지금은시력이나빠져성경도거의읽지못하고있다.
박할머니는그옛날,’경성사범-京城師範’을수석입학,수석졸업한재원(才媛)이다.
지금도일본인동창들이그분을찾아온다.
그의유창한일본말은일본사람들도놀랄정도다.

김할머니도박할머니도그바탕에서는순수한조선사람들이다.
90이다된지금의그들이보여주고있는극단적인노년의차이는결국교육에서그
원인을찾을수밖에없다.
김할머니도박할머니처럼교육을받았다면지금의박할머니처럼살수있는것이고,
박할머니도김할러니처럼교육을받지못했다면지금의김할머니처럼살수있다.
교육의힘은그런것이다.
한가지우리가유념해야하는것은,
박할머니가받은교육은대학입시를위한도구과목국,영,수가아니라한인간을
인격적으로가르친전인교육이었다는점이다.
선행학습인국,영,수로는그런인격과실력,품격을길러낼수없다.
그게누구든인간은적절한교육을통해전혀다른,뛰어난인격자가될수있다.
문제는지금우리에게그런교육커리큘럼과시스템이있는가하는점이다.
지금의국,영,수출신세대들이척박한수준에서건조하고각박하게사는모습을보면
더긴설명이필요없을것이다.
그노년이어떤것이될지도충분히예측할수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