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결혼식.
지금우리부부가살고있는아파트는7년전,새집이었을때입주한’우리집’이다.
집없는설음을겪어본사람은’우리집’이라는단어가가지는뉘앙스가어떤것인지
잘알것이다.
셋집설음은겪어보지않은사람은그고통을알지못한다.
와세다대학문학부출신인’고레에다히로카즈’감독이연출한영화중에’아무도모른다’
는작품이있다.
2004년칸영화제에서최연소남우조연상을받은영화이기도하다.
각각아버지가다른네아이를데리고새로얻은연립식셋집에이사가는날큰아이둘은
어두워질때까지밖에서기다리고제일작은애는가방에넣어운반한다.
엄마가집주인에게애가하나뿐이라고속였기때문이다.
그애들은낮에는밖에나가지못한다.
여럿이라는사실을들키면쫓겨날수가있고다시새셋집을얻는다는것은거의불가능
하기때문이다.
자기집이없는사람에게셋집살이는그렇게고달픈것이다.

우리앞집은,
처음부터세입자들이살았다.
그동안세가족이이사왔다갔으며이번에는신혼부부가이사오기로돼있다.
이사를오고다시이사가는세입자들의얼굴을보면깊은그늘이있다.
심한경우는고등학생자녀가있는부부가세입자인케이스도있었다.
한가족이’제집’을마련하는일이얼마나어려운지는우리모두가잘아고있는사실이다.
그것이어떤형태의집이든’자기집’에산다는것은행운이며감사할일이다.
집없는설음의마음고생은안해도되기때문이다.

이번에이사오는신혼부부도역시세입자다.
매일그집문앞에배달되어주인오기를기다리는물건들을보면모두가’혼수’다.
저녁때가되면결혼식을앞둔두젊은이가와서그물건들안으로옮긴다.
그리고그다음날이면다시다른물건들이택배로배달되어쌓이곤한다.
지금은셋집에살아도혼수는모두가고가의물건들이며품목도다양하다.
사회풍조가그렇다.
나는내경험을통해,
그수많은물건들이몇번의이사가끝나고나면부상병이된다는사실을잘알고있다.
큰물건일수록상처가더심하고섬세한물건일수록더잘깨진다.
그리고간난신고를겪은후’자기집’을마련했을때제모습으로살아남은물건은거의
하나도없게된다.
그래서큰돈을들여거의전부를새로장만해야한다.
이런일은그순서가바뀌었기때문에생긴결과다.

여러해전,
참으로오래간만에친구아들의결혼식에참석했었다.
동기대부분이나이가많은편이어서이미자식들을출가시켰기때문에결혼식에참석
하는일은거의없었다.
우선그결혼식은형태부터가아주달랐다.
좌석300석정도의작고아담한예배당이었고하객은채100명이안됐다.
더인상적이었던것은,
그예식은이벤트적인행사가아니라두젊은이의결혼,결합에촛점이맞추어졌고,
그의미가강조된진지한예식이었다.
정말오래간만에가슴에와닿는결혼식을볼수있었다.
결혼예배는30분정도소요되었고,
그날하객인우리가비좁은교회식당에서대접받은것은정성껏준비한잔치국수한그릇
과김치,그리고떡한접시였다.
음료는보리차였고,그게다였다.
그러나모두가즐거운마음으로맛있게,남기는것없이다먹었다.
집으로돌아오면서생각해봤다.
어떻게그런,간략하지만정중하고,의미가진지한결혼식이가능했을까.
지금의세태에서그런결혼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내계산으로그결혼식은100만원도들지않았을것이다.
엄청난돈을쏟아붓는,물량작전의체면치레가횡행하는사회에서어떻게그런,
전혀다른결혼식을구상하고실천할수있었을까.
어려서부터같이학교를다녔지만그친구에게그런결단력이있는줄은몰랐다.

그리고몇해가지난최근에특별한모임이있어나갔다가그친구를만났다.
나는모임이끝난후그친구와함께자리를옮겨여러가지얘기를나눴다.
특히그’특별했던결혼식’에대해내막을물어봤다.
그친구의긴얘기를요약하면이렇다.
아들은자기전문분야를위해공부하는기간이길었고,외국유학까지다녀오느라고
혼기를지나게됐다고한다.
그러던중,아들처럼전문분야때문에혼기가늦어진상대를만나게됐고,결혼을약속
하는단계가되어부모에게그사실을알리게됐다.
아들의결혼이눈앞에다가오자그친구는평소자기가가지고있던생각을실천할때가
됐다고판단했고,아내와아들에게그내용을설명했다.
자기의신혼기와집을장만할때까지의고생이너무컸고,고통스러운것이었기에
아들만은어떤어려움이있더라도’자기집’에서출발할수있게해야한다는명제가
그것이었다.
그건오래동안생각하고결심한,움직일수없는명제였다.
자기들형편에서아들에게집을마련해줄수없다는것은서로가아는사실이었기에
처음에는동의를얻을수없었다고했다.

아들이자기의애인을부모에게소개하던날,
이친구는식사가끝난후아내,아들,그리고며느리가될아가씨앞에서평소자기가
가지고있던소신을밝히고그구체적인계획을설명했다고한다.
특히그아기씨에게는자기의뜻을잘소화해서앞으로만나야할부모님에게잘말씀
드리라는당부도했다.
우선주문한것이’혼수’는일체준비하지않는것이고,
예물은이미자기가까르띠에에가서백금으로아름답게디자인된반지두개를봐
뒀으니그것으로끝이며,신부드레스는친구의것을빌리고,아들은입던양복으로
예식에서라고했다.
결혼식은가족이출석하고있는예배당에서’결혼예배’로드리고,
하객은가족과직계친척만으로제한하며폐백은생략,피로연은교회식당에서잔치국수
와떡으로끝낼것임을단호하게선언했다고한다.

그리고세사람의놀랜얼굴을보면서말했다.
‘결혼비용은최소한으로줄이고,모든경비를합쳐’집’을장만할것이다.’
우여곡절은있었지만,
사돈될댁에서도그친구의’정신’이옳다는것을인정,동의했다고한다.
양가에서써야했던결혼비용을모두합쳤으며,거기에양쪽부모들이성의껏보탰고,
구입하려는집을담보로은행융자까지합쳐21평짜리아파트를구입,조촐한신혼여행후
두사람은’자기집’에서살림을시작했다.

그릇과침구,간소한가구들은모두양쪽집에서쓰던것을가져다사용했으며,
은행융자를갚을때까지는옷한가지도사지않았으며전문직의맞벌이부부답게융자금
의상환도빨랐다고한다.
그후,
그들은작은세간부터대형냉장고에이르기까지살림살이하나하나를장만해나갔으며
지금은거의모든세간을다가지고있다고했다.
물론그중에부상당하거나깨진물건을하나도없다.
처음부터’자기집’에있었기때문이다.
앞으로그들이이사간다면그건더큰집으로옮긴다는뜻이다.
영민하고침착한며느리는한결같이시아버지에게감사한다고했다.
시부모님의’앞선생각’때문에자기들이’자기집’에서출발할수있었음을감사하고,
그런부모님을만난것을행운으로생각한다는것이다.
얘기를끝내고일어서기전그친구가말했다.
‘더배웠다는게뭐겠나,
잘못된것을바로잡는일이지.
그게잘못된것을다알면서도고치지못한다면더배웠다는게무슨소용이있겠는가.’
정곡을찌르는얘기였다.

지금도수많은신혼부부들이비싼혼수를장만한채셋집을전전한다.
그동안그것들은다깨지고못쓰게된다.
집이먼저고,그안에들여야할물건이나중이라는것은다알고있다.
그런데왜이순서가뒤바뀐채로있는것인가.
제일큰이유는체면이고,다음이’용기’가없기때문이다.
여기에예식장을비롯한관련업체들의횡포도빼놓을수없다.
세상에제일무서운게상업주의다.
장례식장에가보면호구(虎口)가따로없다.
‘고인의마지막가는길’이라는,유족들이꼼짝못하는부적을드리대고무자비하게
돈을뜯어낸다.
결혼식장이라고하나도다를게없다.
‘일생에한번뿐인경사’가그부적이고여기에졸부들의허영심과무식,무지가겹쳐
그많은돈이장사꾼들의호주머니로들어가는것이다.
그렇게뜯기는돈이연간8조원규모라니그저놀라울뿐이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의못된민족성이있는그대로드러나는게이런사례들이다.

누가뭐라고해도우리는’유교문화권’에있다.
유교의정신체계는’仁’자로압축된다.
仁은’어질인’자다.
어질다는말은’그성품이인자하고덕행(德行)이높다’는뜻이다.
이웃,다른사람을정중히대하고예의를지키며따뜻하게보살피는정신이다.
그런데이본질을사라지고체면문화(體面文化)라는파생체계가우리의덫이되고말았다.
남의눈,남의평가,남의기준을의식하는허례의식과허장성세가그것이다.
자기일에주인이되지못하고실속은없으면서허세만부리는노예근성의뿌리가거기에
있다.
지나고보면부질없는것임을먼저깨달아아는게지혜다.
체면때문에,허세를부리느라그큰돈은엉뚱한데다써버리고결국은셋집으로전전
하는이모순을이제는끊어야한다.
다른일에는그렇게영악한지금의젊은이들이하나같이이함정에빠지는이유를
도무지알수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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