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인하나님의말씀이인간의상대적인언어와글로주어진’책’이다.
그내용은절대적인’진리’이지만그것이인간에게전달된방법은상대적인것이다.
그리고,절대적인것은변할수없지만상대적인것은언제나가변적이다.
때문에성경에대한여러가지신학적입장이생겨난것이며그입장에따라서로
다른주장을하게된다.
카톨릭교회가로마카톨릭교회와동방정교회로의분리,
그리고종교개혁을통해로마카톨릭교회와프로테스탄트교회가갈라선것도
지엽적인문제도있었지만크게보면성경에대한입장차이때문이라고할수있다.
같은성경에대한해석의차이는초대교회이후지금까지계속되고있으며앞으로도
계속될것이다.
입장에따라절대적내용에대한상대적해석이가능하기때문이다.
성경에대한가장보수적이고고전적인입장이’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이다.
성경의글자하나하나가모두하나님의영감에의해기록되었다는주장이그것이다.
이는원본과관계되는주장이며사본이나번역본에해당되는것은아니다.
어떤의미를정확하게전달하기위해서는단어하나하나의표현이중요하다는게
이이론의배경이며역사적으로는성경의절대적권위를인정하는신학체계에서
주로주장되고있다.
일반적인의미에서축자영감설대로라면성경에는전혀오류가없어야된다.
다른한가지는,
지금우리들이가지고있는성경들은그것이필사된’원본’이없다는점이다.
가장오래된필사본도4세기의것이다.
그이전의자료들은소실되어찾을길이없다.
따라서지금우리들은필사에필사를거듭한,수많은오류를가지고있는성경을
‘정경’으로가지고있는셈이다.
지난7월7일.
영국국립도서관은약20억원을들여디지털화한’시나이사본-codexsinaiticus’을
웹사이트에공개했다.
이사본은현존하는최고-最古의사본으로서
1844년독일의신약원전비평가인C.티센도르프가시나이반도에있는
성(聖)카타리나수도원에서발견한것이다.
이수도원은주후557년그리스정교회(동방정교회)가세운유서깊은곳이다.
나는특별한계기가있어일반인의출입이엄격히제한된이수도원의도서관에들어간
일이있다.
그곳은3000여점이넘는,고대의희귀사본으로가득찬보물창고였다.
마침그때는,수리를위해헌벽과벽사이에서한트럭분의고문서가쏟아져나와
그리스정부가첨단장비를투입,이를마이크로필름에담는작업을하고있을때였다.
나는책임자의허락을받은후,
촬영중인고문서를현미경으로들여다봤다.
그건에라스무스의기도서였다.
정말감회가깊었으며지금도그때를생각하면가벼운흥분을느낄정도다.
그후이사본은150여년동안대영도서관과러시아국립도서관,독일의라이프치히
대학등이나누어보관하다가이들기관이공동디지털화를합의한지4년만에
빛을본것이다.
나는사이트에들어간후초기화면에뜬누가복음부분을확대했고,다시확대경을
사용해서읽어봤다.
그것은전형적인사행(四行)필사본이었으며소문자없이모두가대문자로기록
되었으며장,절이없는것은물론띠어쓰기조차안되어있는투박한사본이었다.
(모두가아는대로성경의장,절은인쇄업자들이나중에만든것이다.)
여기에비하면1947년에이스라엘쿰란에서발견된’사해사본’은기원전2세기의
필사지만지금의인쇄술보다더정교하고아름다운필체로적혀있다.
나는예루살렘의’지혜의신전’도서관에서사해사본을두번이나읽어봤으며지금도
그정교하고아름다운히브리어필사에감탄하고있다.
전통적인축자영감설에대해전혀다른입장을가지는학술단체가미국의
‘예수세미나-JesusSeminar’다.
신약학자인로버트펑크와존도미니크크로산에의해1985년에설립되었으며
약200명의회원을가지고있는연구모임으로,
성서비평학-biblicalcriticism분야에서그활발한연구활동으로상당한주목을받고
있는단체이기도하다.
이들의연구는,
기독교신앙이교회의’교리-敎理’가아니라예수의말과행태에뿌리를두고있다는
확신에서출발한다.
복음서의형태는기록당시의초대교회가처한삶의정황을우선적으로반영하는것은
사실이지만그안에는그정황과는반대되는역사적예수의말씀과행동이숨겨져
있다는것이다.
예수의육체적부활을부정하는등기독교의전통적인신앙을거부하는이들은,
모두10년에걸쳐두단계로그연구를진행했으며
처음5년동안은주후3세기까지의기독교문헌들에서예수의말이라고알려져있는
약1.500개의사료들을분석해서진정한예수의말을가려냈다.
두번째는예수의행적중후대에의해편집되지않은원래의것을찾는작업이었다.
그연구결과를요약하면,
예수의말과행적의82%가예수가한말이나행동이아니며후대의추종자나다른
전승에서온것으로분류한다.
1.6%는예수가실제로그런말을했거나아주비슷한말을한것으로분류되며,
12.2%는예수가비슷한말을한것으로,
26.7%는예수가한말을아니지만예수의생각을담고있는것으로분류했다.
(이수치들은모두가가중치임)
말하자면공관복음에기록된예수의말씀과행동은약20%만이직접그분과관련
된다는연구결과다.
한편1998년예수세미나는’예수의행적’이라는책을출판했다.
그주요내용을요약하면,
-예수는헤롯왕시절베들레헴이아닌’나사렛’에서태어났다.
-그는사회적으로소외된자들과함께한떠돌이설교자였고현자-賢者,Sage였다.
-그는숙련된의사였으나원시적인의학이나마술을사용하지않았다.
-그는정신적으로고통받는이들을구원했다.
-물위를걷거나오병이어의기적,물로포도주룰만드는기적을행하지않았다.
-그는유대인이아닌,로마제국에의해예루살렘에서십자가형에처해졌다.
일부신학자들은예수세미나가역사적예수연구에치중,복음서의역사적배경을
무시하고있다고비판한다.
축자영감설과예수세미나는극과극을달리는상반된주장을한다고볼수있다.
이럴경우,
어느쪽이옳고어느쪽이그르다는결론은내릴수없다.
모두가인간의상대적인주장이기때문이다.
그것은선택의문제일뿐이다.
신앙생활자체가선택의연속이아닌가.
그래서신앙적인선택을결단-決斷이라고부르른것이다.
바트어만(BartEhrman)은,
신약성서본문비판및본문전승과초대교회,그리고예수의생애에대한연구에서
세계적인권위를가지고있는신학자다.
성공회교인의가정에서태어났지만,
그가학문적전환점을가지게된것은프린스턴신학대학에서컬린스토리-Cullen
Story교수와마가복음주석에대한과정을밟을때였다.
그는성서연구를위해헬라어와히브리어를철저히공부했으며수많은필사본들을
연구하면서’성경과오류’의관계를학문적으로정의한업적을가지고있다.
이하,그가쓴책’성경왜곡의역사-누가,왜성경을왜곡했는가’중서문의주요
부분을발췌,소개하려고한다.
크게참고가될것이다.
성서가그글자하나까지도하나님의영감으로되었다는축자영감설에는명백한
문제점이있다.
우리들은실제로신양성서의원(原)문서들을가지고있지않다.
우리가가지고있는것은수십년이지난훗날에만들어진필사본들이다.
대개는수백년후의것들이다.
심지어완벽하게정확한필사본은하나도없다.
그이유는사본들을만든필사자들이실수로,혹은고의로본문을여기저기
변개(變改)시켰기때문이다.
모든필사자들이그렇게했다.
따라서우리는원본문-originaltext이라고할수있는성서의자필원고를가지고
있는것도아니며그자필원고에나타났을지도모르는영감으로된말씀을가지고
있는것도아니다.
우리는자필원고를베낀사본만가지고있는셈이다.
오류투성이의사본말이다.
어느한사본도다른사본과일치하는사본이없을정도다.
그것도한두군데다른것이아니라수천군데나차이가난다.
이렇게차이가나는본문을이문(異文)이라고하며신약성서의필사전승에서
얼마나많은이문이있는지셀수도없을정도다.
나는축자영감설이나성서무오설의입장에서성서를보지않는다.
이제성서는나에게매우인간적인책으로보이기시작했다.
인간필사자들이성서본문들을베껴쓰고변개시킨것과마찬가지로처음에성서본문을
‘기록한’이들도사람이었다.
그러니까성서는처음부터끝까지인간의책인셈이다.
성서는서로다는필요에따라,서로다른장소와서로다른시기에서로다른사람들이
기록한책이다.
모든면에서그들은서로달랐다.
그렇기때문에마가복음서와누가복음서의보도는똑같을수가없다.
마가복음서저자의의도와누가복음서저자의의도가달랐음으로그건당연한일이
겠다.
신약성서의각문서를기록한저자들은자신들의시각과지신들의믿음과자신들의
견해,필요,소망,이해와신학을가지고있는사람들이었다.
그리고이모든것들은그들이기록한문서들의밑바탕에깔려있었다.
따라서우리는신약성서를읽을때각저자들이쓴것을그대로읽으면된다.
어떤저자가보도하는내용이다른저자가보도하는내용과같다거나비슷하거나
일치해야한다고가정해서는안된다.
결론적으로말하자면’성서는매우인간적인책’이다.
마가복음6장8절에는,
‘여행을위하여지팡이외에는양식이나주머니나전대의돈이나아무것도가지지
말며신만신고두벌옷도입지말라.’
같은내용이마태10장10절에서는,
‘여행을위하여주머니나두벌옷이나신이나지팡이를가지지말라.’
누가복음9장3절에서는,
‘여행을위하여아무것도가지지말라.지팡이나주머니나양식이나돈이나두벌옷을
가지지말라.’
같은내용이복음서에따라그순서에서차이가나는것은구전(口傳)을통한전승
과정에서변형된것이며지팡이를제외하면내용적통일에서는양호한편이다.
한편,
마태복음27장5절에서,
‘(예수를배반한)유다는그은전을성소에내동댕이치고물러가서스스로목매달아
죽었다.’로되어있는데,
누가가기록한사도행전1장18-19절에서는,
‘120명가량모인교인들앞에서베드로가말했다.
유다는주님을판돈으로밭을샀다.그러나땅에꺼꾸러져배가갈라져내장이온통
터져나왔다.(죽었다.)’
성경안에서유다는두번죽은것이다.
성경이’매우인간적인책’이라는바트어만의얘기가바로그것이다.
다수의대형외항선을가지고있는해운회사에서일급통신사를모집했다.
수많은이력서를검토,최종대상자로압축한후이들을소집,직접면접하게되었다.
크고깨끗한대합실에는고가의응접세트가놓여있었고음료수와차,각종다과가
충분히준비되어있었다.
그리고아름다운음악이흘렀다.
사람들은그대합실에서오래동안기다렸지만면접장소로불려가는사람이없었다.
그러던중한사람이호명도없었는데자리에서일어나면접장소로들어갔다.
얼마후그는나왔고,
회사는면접이끝났다고발표했다.
일의내막은,
대합실에흐르는음악소리속에귀를기울여야들을수있는모스부호가함께들렸고,
그내용은’이모스부호를듣는사람은면접장소로들어오라’는것이었다.
오직한사람만이그모스부호를들었고,합격한것이다.
성경책,교회,교회라는조직,직분,예배,사람들을붙잡아두는각종이벤트와행사들,
교단과교파등모든것은아름답게들리는음악일뿐이다.
그것들은결코우리들을구원하지못한다.
그속에서주께서하시는미세한말씀을알아듣는자만이구원받는것이다.
믿음의선조들은그것을’성령의역사’라고했으며,
‘귀있는자는알아들을지어다’가그뜻이다.
본질적인것과비본질적인것을구분하는것은언제나인간인우리의몫이다.
그래서성경은더욱인간적인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