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구해야 하는것.
우리들이살고있는세상은,
변할수있는것과변할수없는것이함께있다.
‘값’은변할수있지만‘가치’는변할수없는게그런것이다.
일반적인의미에서,
우리의동물적-본능적조건을위한것들은가변적이지만정신적존재이기도한
인간을‘인격적존재’가되게하는조건들은불변의세계에속한다.
도덕과윤리,그리고종교의신앙내용이바로그런범주에든다고말할수있다.
인간의부류를크게나누면,
동물적-본능적조건에더충실한사람들이있고정신적존재로서의인격적조건에
더충실한사람들이있다.
‘값’을추구하는것과‘가치’를추구하는차이가바로그런것이며,
그것은철학이다르고인생관이다른것이기도하다.

‘값’에대한대표적인표현이‘돈’이다.
더넓게는물질일반이그것이다.
물량(物量)은현대의물신(物神)이되어수많은사람들로하여금그앞에엎드리게
하고있다.
돈을더많이벌기위해수단과방법을가리지않는악은그뿌리가인간의탐욕
이며더깊게는동물적본능이라고말할수있다.
‘가치’에대한대표적인표현중하나가종교의‘신앙내용’이다.
그것은‘구원’이목표이기때문에인간이비록땅위에살고있지만‘값’은수단이
된다.
신앙의세계는끝까지‘가치’를추구하는신비한세계이기도하다.
그신앙의세계에서가치가아닌값을구하는일이생기면그건근본적인타락이며
변질이된다.
수단이목적이되었기때문이다.
이는지금의한국개신교회가부딪힌가장큰문제로서‘기복신앙’이그한가지다.

‘그러므로너희는무엇을먹을까,무엇을마실까,무엇을입을까하고걱정하지
말아라.
이모든것은모두이방사람들이구하는것이요너희의하늘아버지께서는이
모든것이너희에게필요하다는것을아신다.
너희는먼저하나님의나라와하나님의의를구하여라.
그리하면이모든것을너희에게더하여주실것이다.‘
마태6:31-33.표준새번역개정판.
먹을것과마실것,그리고입을것은일상생활의필수적인것들이다.
그런데왜그필수적인것들을이방인이구하는것이라고했을까.
이때의이방인은유대인-이스라엘족속이아닌사람들이다.
그들을‘이방인’이라고부를때,
유대인은‘택하신백성’즉선민이라는의미다.
필수품을위해‘염려-걱정’하는것은이방인들인데그건그들에게하나님에
대한신앙이없기때문이다.
그래서그들은그생필품을얻기위해속을태우고마음을끓이는것이다.
이방인들에게그것들은곧‘목적’이기때문이다.

그러나너희는걱정하지말아라.
찾지도말고염려하지도말아라.
왜냐하면,
너희가믿고,의지하고순종하는하나님께서는그것들이너희에게도필요하다는
사실을다알고계시기때문이다.
주께서는하늘의새가먹을것을걱정하지않는예로서그가르치심의깊이를
더하고계신다.
이방인들에게는그것들이곧‘목적’이지만너희에게는‘수단’이라는뜻이다.
목적이올바른것이라면수단은따라온다는가르침이기도하다.
본말의전도(本末顚倒)라는말이있다.
일의순서가잘못바뀌거나중요한것과사소한것이뒤바뀐상태를이르는말이다.
지금한국의개신교회는목적과수단이뒤바뀌었고그것이교회의물량주의와
기복신앙으로나타나타락과변질의수렁으로깊이빠진상태다.

‘너희는먼저하나님의나라와하나님의의를구하라’
먼저,protos는,
모든것에우선하는첫째,
특별한것이며가장높고가장훌륭한것이라는뜻이다.
비교급에서최상이며모든순위에서일차적인것이다.
하나님의나라와하나님의의(義)는,
옛왕국의통치개념이다.
그때의나라는모두가왕국이었다.
따라서모든백성들은그게어디든왕의명령,왕의뜻에복종하면서살아야한다.
왕의통치가미치지않는곳은없기때문이다.
지금우리의신앙적일상이하나님의통치하심안에있어야한다는뜻이다.
성경을읽고,기도하고,예배드리고,그말씀에따라사는일상이바로그것이다.
행함이있는믿음의생활인것이다.
우리들을‘하나님의백성’이라고부르는것도그때문이다.
그것을‘구하라’.
구하다,zeteo는,seek,lookfor다.
찾고,수색하고조사하는것이다.
그것을요구하고가지려고하고목표로한다는뜻이다.
대단히적극적인개념을가지는단어다.
하나님의통치하심에대해이를전적으로받아들이고순종하는자세다.

종교를가지는인간이,
그신앙을의식주문제보다우선하는것은당연한것이다.
그만큼,‘절대적인세계’이기때문이다.
스님이나수도사들의인간의한계에까지이르는‘청빈’은그런정신이
없다면불가능하다.
오직‘신앙’을우선할때,
하나님께서는의식주를‘더하여주신다.’
shallbeadded.
willbegiventoyouaswell.
겻들여,덤으로받는,
부차적순위인것이다.
신앙이목적이될때물질은수단이될수밖에없다.
그래서이방인에게는목적이지만유대인-택한백성-신앙인에게는수단이되는
것이다.
그수단이목적이되는게본말의전도이고타락이며변질이다.

지금모든개신교회안에서가장자주쓰이고있는말이‘축복’이다.
5분에한번씩‘주님의이름으로축원’하면,
‘아멘’으로화답하는소리가그큰공간을채우고도남는다.
모두가물신앞에엎드려돈벼락이떨어지기를기다리고있다.
어떤종교라해도기복적요소가없을수는없다.
그러나그것이本이되면본말이전도되고만다.
기독교신앙의본질까지도밀려날수밖에없다.
예수없는예수교회가그것이다.
예수가없는데구원은어디에서오겠는가.

교회는모든시대에서‘변하지않는절대가지’를보존하는곳이다.
하나님의나라와하나님의의가그것이다.
그’가치‘의자리에’값‘이들어앉은게지금의한국개신교회다.
그래서예수없는,가짜의교회가됐다.
그럴수록각종이벤트와행사는더요란해진다.
속이비었으니겉이라도요란하게꾸미지않으면손님-교인들이모이지
않기때문이다.
더무서운것은,
이대로시간이흐르면사람들이그게‘기독교교회’인줄알고참교회를
오히려외면하는사태가올수도있다는점이다.
그렇게되면‘회복불능’의나락으로떨어지게된다.

‘누군가는객관적으로깨어있어야한다.’
사회뿐아니라,
오늘날교회에대해서도절실한얘기다.
지금교회안에는깨어있는‘눈’이보이지않는다.
개인적으로뛰어난분들도있지만,
그부류에있어거개의성직자들은우리사회에서3류로분류된지오래다.
개중에는파렴치범으로부터살인까지저질은자들이있다.
성직희망자를걸러내는조밀한시스템이전무하기때문이다.
여기에무인가신학교가속성으로배출해내는함량미달의사이비숫자가
압도적일때어찌기독교라고오염되지않을수있겠는가.
지금과같은사태가계속될때,
이미깊이기울어진배가그‘복원력’을상실하듯교회도자정능력을상실
할수도있다.
그건생각만해도무서운일이아닐수없다.
초기의기독교가이스라엘땅에서유럽으로건너갈때의발판이소아시아지방
이었다.
유명한계시록의일곱교회가모두거기에있었다.
그땅,터키에는지금기독교가없다.
이슬람국가가된것이다.
스스로교회를버린땅을,
하나님도버리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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