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것들이 다 말해준다.
같은시대,같은지역.
좁게는같은동네,같은아파트단지.
더좁게는같은골목,같은동(棟)의같은통로에살아도사람사는모습은모두가서로
다르다.
겉으로봐서는비슷한것같지만조금만잘살펴보면거기엔천차만별의미묘한
차이가있다.
그리고그건근본적인것이기도하다.
사람들의생김새가다르고,성격이다르고,취향이다르고,수준이다르기때문이다.
그래서겉으로봐서는모르는,서로다른‘삶의질’이그안에담겨져있다.
얼른생각하기에는큰집에서좋은옷입고,좋은음식먹으면서살면행복할것
같지만실상은그렇지가않다.
‘소유’는편리한것이지행복의절대조건은아니다.
재벌형제들이피나게싸우는게그것이다.
한가정의참된행복은절대로물질만으로이룩되는것은아니다.
그래서외형으로보이는‘사는모습’이전부는아닌것이다.
한편,그럼에도불구하고집의모습은‘행복’을담는가장구체적인그릇이기도하다.

상대적으로,더개성적으로살고있는서양에이런속담이있다.
‘남에게보이기위한집은식구들에게는불편하다.’
서양의집구조는현관을통해응접실-거실까지는들어가기가아주쉽다.
그러나그이상의구역은거의들어설수없다.
집의설계상구조도,그들의생활관습도그렇게굳어있다.
반대로우리는대문에서는까다롭지만일단집안에들어서면비교적쉽게집전체를
파악할수있는생활패턴을가지고있다.
그래서어떤가정을방문할경우별로힘들이지않고집구경을할수있으며보이는
것들을통해그댁의생활모습을알아차릴수있다.
보이는것들이다말해주기때문이다.
여권에스탬프도찍지않고통과시켜주는나라는안에서의불법취업이안된다.
그러나입국시여권심사가까다로운나라일수록일단들어서면불법취업은쉽다.
그안이대문에서만큼단단하지못하고허술하기때문이다.
우리나라도그중하나다.

우리들이어렵게살던옛날에는,
방한칸이거실이고,식당이고,공부방이었으며밤에이불을깔면그대로침실이었다.
대개가그렇게살았었다.
그러나지금은그구분이분명하다.
일단어떤집이든들더서면,
우선거실의응접세트를이용하게된다.
경험적인얘기이긴하지만,
첫눈에도고가의제품으로보이는소파가편히앉기에불편한경우가많다.
인체공학과무관한,보이기위한디자인이기때문이다.

그런데어떤집은지극히평범해보이는소파나의자인데도앉아보면그렇게편할
수가없다.
‘비싼물건’임을과시하는그소파는실용성이부족하고오히려평범한물건인
소파나의자가사람을편하게하는것은그내용에서친인간적이기때문이다.
한쪽이눈만으로물건을샀다면다른쪽은하나하나앉아보고가장편한것을선택
했다는얘기다.
남에게보이기위한,과시하기위한고가의물건은손님뿐아니라그집식구들
에게도똑같은불편을제공하고있을것이다.

소파에앉아고개를들면,
탁자넘어로큰벽이보인다.
아파트를‘토끼장’이라고부르는것은,
그크기에관계없이기본구조가같다는의미다.
우선,
그벽은그집의대표적인속성을그대로보여준다.
백의아흔아홉은거기에텔레비전이있다.
그것도이제는그크기가점점커져그넓은화면으로맞은편에앉은사람들을
압도한다.
말하자면텔레비전은물리적으로도그집의가장중심지점에위치하고있으며
모두가그것을중심으로앉도록의자들이배치돼있다.
식구들모두가입을굳게다문채텔레비전을시청하는모습은흡사경건한종교적
행사처럼보일정도다.
텔레비전은그렇게제왕이되어식구들사이의커무니케이션과릴레이션쉽을
앗아가고,자기를시청하는것외에그어떤다른것들과의접촉을차단한채
완강하게군림하고있다.
매일매일텔레비전을통해당하는세뇌는가장편협하고개성을박탈당한
‘소외된인간’을만들어가고있다.

아주드문경우이긴하지만,
그벽에텔레비전이아닌다른것이있는집이있다.
자기가수집한수석(壽石)을아름답게만든진열장에보기좋게진열한집이있다.
돌이그렇게아름다운것임을그때처음알았다.
또어떤집은,
그벽에잘만든받침대롤놓고그위에자기가조립한고가의오디오시스템을
가득올려놓은경우가있었다.
기기도스피커도여러가지였다.
물론그옆벽면은오래동안수집한엄청난양의각종음반들이가득차있었다.
그들이,
수석에대해,오디오시스템과희귀음반에대해설명할때의모습은‘신들린사람’
들같았다.
거기에바보상자가들어설틈은전혀없었다.
어떤가정은,
그하얀벽에사람의마음을단숨에사로잡아감동시키는놀라운‘그림’이걸려있다.
물론그밑에는상당한수준을말해주는꽃꽂이가놓여있다.
텔레비전이없다는것은‘다르게산다’는뜻이다.
자기의일상을개성적으로자기가지배하면서사는마니아들인것이다.

한집안에있는여러가지물건중.
가장많은것은어떤것인가.
그게곧그‘집’이다.
그게곧‘그들’이다.
비싼가구로가득찬집이있다.
비싼그릇으로가득찬집도있다.
비싼옷으로가득찬집도있고비싼구두들과장신구들로가득한집도있다.
그런데그런집들은자기만의‘특징’이없다.
모두가비슷비슷하게보일뿐이다.
대신비싼물건은없지만아주독특한집들이있다.
슬라이트럼본과트럼펫이있는집을보았다.
두가지악기모두가직장에다이고있는둘째아들의것이라고한다.
큰아들의방에는벽하나가온통음반들로가득차있었다.
어떤집엔첼로가있었다.
그댁주부의것이라고한다.
처녀때부터첼로를했다고하니평생악기를사랑하고있다는얘기다.
어떤댁에서는큰딸방에있는피아노를봤으며보면대엔바흐의평균율이펼쳐져
있었다.
딸이돌아왔을때,그딸은놀라운솜씨로평균율을들려줬다.
그악기들은‘장식품’이아니었다.
그들의실생활이그러했다.

어떤댁은,
거실전체가아름답고특이한‘아뜰리에’였다.
그댁주부가화가라고했다.
텔레비전이있어야할자리에는벽면전체로큰책장들이있었고거기엔미술관련
책들이가득차있었다.
세워져있는이젤엔작업중인그림이있고,나머지벽들엔아름다운그림들이걸려
있었다.
같은공간인데,
전혀딴세상이거기있었다.
이제는우리나라에도상설꽃시장이있다.
먹는문제에서꽃으로사정이나아진것이다.
그러나아직도거의모든가정의벽들은하얗게비어있다.
‘그림’은아직일상적이지못한것이다.
그림은얻어다거는줄알고있다.
사실은,그림도제돈을주고사야‘가치’가있다.
그래야자주보게되고많은걸배울수있다.
좋은그림한점이한가정에미치는정신적이며문화적인영향은값으로따질수가
없는것이다.
그림의세계는그렇게신비하고놀라운것이다.

사람에대해,
가장빠른시간안에한인간,한가족을파악할수있는길이‘식탁’이다.
밥을같이먹어보면거의모든것을알아낼수있다.
식탁의모양과크기,
특히식탁보와냅킨의종류,사용하고있는컵들,
수저와그릇들은모두그댁의취향과수준을알게해준다.
특히음식을먹는모습,그행위에서는교육과교양을읽을수있다.
그리고음식,
최고의재료를사용했지만맛이없는음식이있다.
주부가손맛이없기때문이다.
그러나평범한재료로도그맛이뛰어난주부들이있다.
그집식구들은천하에행복한사람들이다.
그리고식탁에서의화제는,
학력,교양,정치적성향,종교,문화적수준,경제등에대해한집안이가지고있는
‘현실적수준’을가늠케해준다.
최고의저질은‘연속극’얘기로시종하는부류들이다.
이는다른화제를모르기때문이며다른분야에대한접촉이텔레비전때문에
차단됐기때문이다.
바보상자에갇혀살면서도그비극을깨닫지못하고있는슬픈가족들인것이다.
그래서식탁이있는부엌은,
한가정이가지고있는모든것의총화(總和)라고할수있다.

한집안이겉으로보이는모습이아니라진정그속내를드러내는장소가화장실
이다.
거기엔모든것치레를벗어던진알몸의가족들이남긴흔적이있다.
깨끗하고향기로운흔적도있고,냄새나고더러운악취도남아있다.
평소에깨끗한화장실은곧알아볼수있다.
단정한가정의모습이거기에묻어있는것이다.
그러나갑자기닦아낸청결은‘위선’이배어있다.
그게어떤곳이든,
‘화장실을먼저보라’는얘기가그래서생겼을것이다.

이세상에서가장부러운집은,
주인의손때가묻은책들로가득한서재가있는집이다.
싸구려전집을차떼기로실어다쌓아놓은,천박한위선의방이아니다.
한권한권이정독된,주인의숨결이살아있는책들이오랜시간동안쌓인,
그무게를해아릴수도없는가치들로가득한서재가그것이다.
그런서재엔들어서면곧압도당한다.
인간이만든구조물중서재라는공간을넘어서는것은아직없다.
그리고그런서재는결코아무나가질수있는것도아니다.
그래서부러운것이다.
그런서재엔책만있는것은아니다.
음악이있고,미술이있고,영화가있다.
전세계사이트의온갖정보를검색해내는고성능의개인컴퓨터가있으며
그안에는정기적으로글을올리는미니홈피와블로그가있다.
한인간이평생공부하고배우고정신적으로성장하는최고의형이상학적
공간이바로그런서재다.

어떤집에서,어떻게살것인가는전적으로개인적인선택의문제다.
그러나그결과는비선택적이다.
그건이미‘평가’이기때문이다.
겉을선택했다면‘안’을얻지못하는것이고,
‘속’을선택했다면겉에는신경쓰지않는다.
우리의삶은겉이아닌,속으로채워지는것이기때문이다.
‘내가일상을지배하지못하면일상이나를지배한다.’말은정말이다.
그원흉의하나가바보상자임은더말할것도없다.
그래서그것까지도선택적이어야한다.
우리삶의주인은바로우리들이기때문이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