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사랑하는 길.
우리부부는.
휴일이면가끔서울인사동에나간다.
차가없는인사동거리를천천히걸으면서개인전이열리고있는여러개의갤러리에
들려느긋하게그림들을감상한다.
우리의일상에서그림을보는즐거움은빼놓을수없는중요한요소다.
아내가화가이기때문이기도하지만나도그림을무척좋아하기때문에해외여행
중에도미술관을찾는일은빼놓지않는다.
그게누구네집이건하얗게비어있는벽을보면섭섭한마음을가지게된다.
벽에걸리는한점의그림이집안의분위기를어떻게바꾸는지를모르기때문이다.
꽃시장이조금씩커지는것을보면머지않아그림시장도커질것같다.
꽃도그림도‘여유’가있어야생활속에들어오는문화이기때문이다.
아직까지도우리네일상속에서그림은제자리를잡지못하고있는게사실이다.
우선그림에대한인식이크게부족하다.

마침그날은제28회국전중구상부문이서울시립미술관경희궁분원에서시작되는
날이라인사동에서점심식사를한후시립미술관으로갔다.
전시장에들어서는순간,
인사동의갤러리와는전혀다른팽팽한분위기를느낄수있었다.
그림들의수준이달랐고그강열한메시지는감상하는사람을압도하고도남았다.
서양화몇점과한국화한두점은탄성이나올만큼완성도가높은작품들이었다.
인사동갤러리의그림들이느긋하게,일상을살면서그린그림들이라면,
국전의그림들,특히완성도가높은그림들은그그림을그린화가가‘전력투구’한
흔적이묻어나는강열한그림들이었다.
죽기아니면살기로한우물을판흔적이뚜렷하게보이는그림들이었다.
그래서호소력이컸고,그메시지의울림이팽팽한긴장감을만들어내고있었다.

아내의아뜰리에에는많은애들이온다.
일부러조사하거나물어보지않아도시간이지나면서그아이들의행동반경을
알게된다.
예를들어,
어떤아이는첼로,바이얼린,풀륫을함께배운다고한다.
여기에공부때문에세곳의학원까지다니고있으니사실잠잘시간도부족할것이다.
악기(樂器)는,
그것을제대로다루기위해서는참으로오랜시간과노력이필요하다.
나는중,고등학교6년동안브라스밴드에있었기때문에일찍악기를배우기시작
했고평생아내의선물인목관클라리넷을가지고있다.
최근,폐활량이전같지않아70의나이에악기를첼로로바꿨다.
시작한지3년이지난지금,겨우첼로의소리를내는수준이다.
말하자면제소리를내는데3년이걸린셈이다.
내생각엔,제대로된연주를위해서는10년은노력해야될것같다.
악기는그렇게어려운것이다.

그런데,
한아이가세가지악기를배운다는것은무슨뜻인가.
그렇게여러가지악기를배우는애들은뜻밖에많았다.
결론부터말한다면,
세가지중어느하나도제대로배우지못한채끝나게된다.
물리적으로불가능한얘기다.
따라서그비싼‘레슨비’는개물에타먹는,낭비되는돈일뿐이다.
악기하나를제대로다루기위해서는긴시간혼신의힘을다해야하며
그래도될까말까다.
악기는그렇게어렵다.
하루만연습을안해도당장표가나는게악기다.
특히관악기에비해현악기가까다롭고다루기어렵다.
그리고가장중요한것은,
사람이악기를좋아해야된다.
소질이없거나싫으면할수없는게악기연습이다.
그러나악기를좋아하면연습자체가즐겁고그만큼발전도빠르다.

그렇다면왜엄마들은자기아이에게세가지나되는악기를가르치고있을까.
이건정말심각한질문이기도하다.
악기뿐아니라다른여러가지과외와도연계되는질문이기때문이다.
첫번째대답은,‘경쟁심’이라고할수있다.
누군가가악기하나를하다가두가지,세가지로나가자너도나도질세라소질을
따질것도없이제자식도세가지악기를하도록강요하게되는것이다.
경쟁심은질투에뿌리박고있기때문에물불을가리지않는다.
아이에게소질이있든없든,좋아하든좋아하지않든,그런건문제가안된다.
다른애가세가지악기를하니너도해야된다는단순논리다.
강도가따로있는게아니다.

두번째는‘불안심리’때문이다.
내애만뒤처지는건아닌가.
불안은현실을왜곡하게되고과대망상증을불러온다.
세가지라는숫자의포로가되어내아이도세가지를해야해소되는나쁜정서다.
제자식이경쟁에서뒤지는것을참을수있는엄마는없다.
문제는무엇에서뒤지고있는가하는것을살펴야되는데불안심리는그것을
판단하고볼수있는눈을가린다.
그래서맹목적이된다.

세번째는‘탐욕’이다.
한가지도어려운데그것으론성이차지않는다.
적어도세가지는해야체면이서는것이다.
아이들의과열,과외경쟁은사실그속내를보면엄마들의경쟁이다.
불쌍한애들은대리전쟁을하고있을뿐이다.
그래서애들이더측은하고불쌍하다.
애들에게무슨죄가있는가.
인생에서가장중요한‘어린시절’을뺐기고있을뿐이다.

마지막이‘무지-無知’다.
악기는아무리뛰어난애라해도세가지를할수없다는사실을모르기때문이다.
그래서만용(蠻勇)을부리게된다.
만용은,사리를분별할줄모르고함부로날뛰는잘못된용기를이르는말이다.
고래싸움에새우등터지듯애들만고달픈것이다.

세가지악기에별도로세가지과외를받고있다면,
한아이가여섯가지를괴외로배운다는얘기다.
우리모두가아는대로,
대개의경우사람은한가지나,뛰어나도두가지정도만잘할수있다.
절대로여섯가지모두를잘할수는없다.
더중요한문제는,
여섯가지가나누어가지는시간들이정말잘하는한가지일에집중해야하는
천금같은시간들을뺐어간다는점이다.
그래서여섯가지는,그어는하나도제대로이루지못한채끝나게된다.
평생과외를받고사는건아니지않는가.
한아이의천부-하늘이주신재능이죽는것은물론,그여섯가지에오래동안
쏟아부은돈과정성,부모의노력이허사가되고만다.
이건상상이아니라불을보듯현실적인문제다.
어떻게한인간이여섯가지를모두잘할수있는가.

인사동갤러리에결려있는그림들과국전전시장의입선이상작품들은,
결코좁혀질수없는‘갭’을가지고있다.
전혀그차원이다른그림들인것이다.
어떤화가는입선한그림하나에일년동안매달렸었다고얘기했다.
오직한우물만판것이다.
그래도낙선된작품들이더많은게현실이다.
전력투구하는사람들도탈락하는세상에서여섯가지를배우겠다고뛰어다니는
애들이설자리는아예없다고보는게옳다.
그렇게해서는결코성공할수가없다.
한우물을깊게파내려가는사람옆에서여섯개의우물을파느라이리뛰고
저리뛰는사람이어떻게경쟁력을가질수있겠는가.
죽도밥도다안되는것이다.
무지하고어리석은,탐욕적인엄마들은큰돈써가면서애들을망치고있는것이다.
지나간시간은되돌릴수없기때문에더비극적이다.

자녀들이학교를졸업하고나서는사회에는또하나의구조적인현실이기다리고
있다.
매년,2년제전문대와4년제대학에서50여만명의졸업생이쏟아져나온다.
우리의경제,산업규모는그중채절반도흡수하지못하고있고조만간개선될
기미도보이지않는다.
장치산업의자동화와공장의해외이전,강성노조로인한외국인투자의감소로
일자리는줄어들가능성도있다.
솔지히말해,
속칭일류대를못나오면그대로백수(白手)다.
직장이없으니독립도못하고결혼해서가정도꾸리지못한다.
평균4억원을투자해기른자식이오갈데없어부모의짐이되어얹혀살게된다.
부모에게도,자식에게도못할일이그것이다.
본인인들얼마나괴롭겠는가.
그렇다고당장뾰죽한수가있는것도아니다.
그래서절망적이다.

이제는애들이아니라그부모가생각을바꿀때가됐다.
현실이그걸요구하고있음을알아차려야한다.
일류대학에들어갈실력이안된다면다른길을찾는게지혜로운일이다.
84%의,세계최고의진학율자체가큰함정이다.
애가‘좋아하고잘하는일’을빨리발견하고그길로나가게해야한다.
그게분명하게성공하는길이다.
이를위해서는학부모의‘가치관’이바뀌어야한다.
사교육을극복하는최대의변수가그것이며‘학벌’이아니라‘실력-실리’를
취하는지혜로운선택이바로그것이다.
자기자식이소중하지않은부모가어디에있겠는가.
그런데그부모의잘못된가치관과선택때문에사랑하는자녀들이평생제길을
잃고방황하게된다면이보다더큰비극이달리또있겠는가.
이제는‘출세를향한천민교육’을버려야한다.
애들이자기가잘하고좋아하는길로갈수있도록풀어주고,도와주고,밀어줘야
한다.
그게진정자식을사랑하는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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