常 의 나라.
세모(歲暮)라는말이있다.
세밑이라고도하는데한해의마지막때라는뜻이다.
한해와또다른한해의매듭은보이게존재하는개념은아니다.
그러나사람들은‘달력’을만들어쓸정도로시간을쪼개어의미를부여하면서
살아왔다.
어떤때를싯점으로과거를정리하고내일을새롭게출발하기위해필요한
‘시간의구분’이기도하다.
세모가되면,
청소년들은주변3미터이내만관심하는,오늘만을생각한다.
장년들은어제와오늘을함께생각하고,나이많은노년들은어제와오늘,
그리고내일까지를연계해서생각한다.
시간을비교할수있는세대와그반대의차이가그안에있다.
어제의결과가오늘이고오늘의결과가내일이되는게역사다.
과거,현재,미래를함께봐야하는지혜는그역사의올바른전개를위해
필수적인정신작업이기도하다.
세모의참뜻도그안에있을것이다.

정신사적(精神史的)측면에서.
지금우리사회의가장큰특징은무엇일까.
그게‘혼란(混亂)’이다.
온갖것이뒤섞이어어지럽고,모든게뒤죽박죽이되어질서가없다.
구세대인나같은사람들은정말처음경험하는아주특이한사회현상이다.
혼란은중심을잡아주는‘구심점’이없기때문에일어나는정신적인공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구심점’은무엇인가.
그것은하나의국가,사회공동체를정신적으로지탱해주는‘바탕정신-가치관’
이다.
급속한산업화는시골동네의젊은이들을도시에모여들게했으며
새로운‘밀집지역’에서시골과는전혀다른각박한일상을살게했다.
거기엔시골의것이아닌,새로운도시문화의정형이아직구축되지못한채
껍데기만의‘서양’이이들을지배했다.
자기것을잃어버리고아직새것을찾지못했던혼란이사실은지금까지이어져
오고있는것이다.
껍데기로서의겉모습은첨단을가고있지만그안은속빈강정그대로다.
학문적으로는이를‘정체성의상실’이라고부른다.

원시부족이나야만족이아닌이상,
지구상의모든민족,국가들은나름대로의전통적인‘바탕정신’을가지고있다.
예를들어,
미국은청교도정신과실용주의가치관이그것이며.
일본은사무라이정신이거기에해당된다.
그렇다면우리한민족의대한민국이가지고있는바탕정신은무엇인가.
우리에게는그대답이궁색하다.
실로모든혼란의원인이거기에있다.
산업화와민주화를이룬것은사실이지만,
산업화는아직천민자본주의의수준을크게벗어나지못하고있으며
민주화는토론문화도없고,다수결에승복하지도않는폭력적인독선이
그대로있다.
그래서끊임없이좌,우가충돌하고있다.
(지금연말국회에서벌어지고있는반민주적,폭력적행태가그것이다.)
바탕정신이없다는것은철학이없다는뜻이고‘가치관’의정립이아직
안되어있다는의미다.
말하자면구심점인‘바탕정신’이없기때문에온갖혼란이재생산되고있는게
지금의우리나라다.

그렇다면본래부터우리에게는‘바탕정신’이없었는가.
대한민국에앞선우리나라가‘조선’이다.
두나라사이에일제의식민기간이있었기때문에정치,경제,사회,문화의
정상적인승계가차단된게불행의시작이었다.
일제는가장가혹한방법으로‘조선’을말살하려고했다.
나라의글자를못쓰게하고심지어는조상대대로물려받은성(姓)을갈게했고
이름까지바꾸게했다.
1894년(고종31)의갑오경장(甲午更張)은전통적사회계층인반상(班常)을
폐지했으며일제식민기간과8.15광복,6.25전쟁을겪으면서조선과대한제국의
지도적상위계층은완전히무너지고말았다.
하나의민족,국가에서상위계층은소수에불과하지만그들이국가를운용해
온것이또역사이기도하다.
반상의붕괴는반(班)이가지고있던정신문화체계까지무너졌다는뜻이다.
그리고반(班)이사라진자리에남은건常뿐이었다.

연암박지원(朴趾源1735-1805)은,
조선시대의문장가이자실학의대가였다.
사은사박명원을따라청나라에다녀온후우리나라의정치,경제,사회,문화등에
대해비판하고개혁의필요성을강조한‘열하일기-熱河日記’를남기고있다.
그의저서‘허생전’과‘양반전’은당시양반계층의타락상을고발한작품이다.
그만큼그는양반계층에대한이해가깊었다.
이제그의설명을들어보자.
주로책을읽는사람을사(士),선비라부르고,
벼슬을받고정치하는사람을대부(大夫).
인덕(仁德)을갖춘사람을군자(君子)라고했다.
결국사족(士族)과양반은일치하고있지만,
양반이라고해서반드시선비가되는것은아니다.
선비는한시(漢詩)를지을수있어야하고,
육경(六經)중하나를전공,전문적이어야하며,
육예(六禮)중하나에통달해야했다.
이런재능이없으면신분상으로는양반이지만선비는되지못했다.
반면그신분은낮아도선비로서의조건을갖춘사람은선비대우를받았다.

이제조선선비가가졌던‘선비정신’을살펴보자.
선비는죽음앞에서도자기의소신(所信)을분명히하고일을추진했으며
학식(學識),덕성(德性),예술성(藝術性)을갖추고있었고,
특히출세와재물에눈이멀어부패하지않으며,
뇌물에손을대는순간선비대열에서탈락한다.
따라서선비는예의와의리,덕성으로사람들을이끄는참지도자였다.
이선비들이지녔던정신이곧‘선비정신’이며,
조선의상위계층이가졌던,사대부(士大夫)들의‘선비정신’이그것이었다.
따라서엄격히말해‘선비정신’은미국의청교도정신,일본의사무라이정신과
맞먹는우리의본래적‘바탕정신’이되는것이다.
이놀라운정신이승계되지못한것은크게아쉬운일이지만또한역사의아이러니
이기도하다.
일제의식민은우리가약했기때문이었으며,
6.25의참담했던전쟁은김일성의오판때문이었다.
그러나그결과적인재앙은아무도피하지못했다.

班이사라진자리에남은게상대적드로숫자가많은常이었다.
양반은조선시대문반(文班)과무반(武班)을아울러이르는말이며뒤에가서는
과거의급제여부와관계없이모든사족(士族)을가리켰다.
반상-班常에서의,
상-常은,조선중엽이후양반에대해평민을일컽는말로서,
상민-常民,상인-常人을의미했으며,
거기에서파생된일상단어가상것,상것들,아랫것들,상놈등이다.
지금도역사드라마에서는그대로이명칭들을사용하고있다.
조선시대,
常은결코班이될수없었다.
신분이철저히세습되었기때문이며常은선비가될수있는조건에접근자체가
안되었다.
이말은,班이붕괴된후그정신까지붕괴된것은常이그정신을수용,보전할수
없었기때문이라는얘기다.
지금우리가외형에서는선진국수준에가있으면서도내용적으로선진국이
되지못하는것은‘바탕정신’이빈약해서이다.
때문에빈약한바탕정신에대한학문적모색이반드시시도되어야한다.

常의대표적인속성이무엇인가.
그게‘주인의식’이없는것이다.
반은늘주인이고상은반에소속된피지배계층이었다.
처음부터자주적이고독립적인주체가아니었다.
조선시대의종문서(從文書)는신분의세습이법으로정한것임을보여주고있다.
일제식민과광복,6.25전쟁,그리고최근의산업화를겪으면서班의정신-
선비정신이붕괴된자리에들어선게常의속성이다.
지금우리가겪고있는전대미문의큰혼란도결국은常의속성이빚어낸
부정적측면의총합이라고보면크게틀리지않는다.
班이사라진세상에서,
常이추구한일차적인목표가‘신분상승’이다.
사실그건당연한것이고나무랄이유도없다.
문제는신분상승을꾀하는수단과방법에서온갖나쁜것들이다드러난것이다.
수단과방법을가리지않으면이미그자체가일대혼란이며쥐죽박죽이다.
서로가먼저꼭대기에올라서려고남을밟는일이예사가된게지금우리의모습이다.
전통적인것은다잃어버린,자기것이아직없는,‘바탕정신’이라는구심점이없는
혼란스러운사회가된것이다.

악화(惡貨)가양화(良貨)를구축하는것은절대로경제만의법칙은아니다.
언제든지나쁜것은빨리퍼지고그것을수습하는데큰비용과시간이소요된다.
가장이기적인출세교육-천민교육이사교육시장을팽창시켜공교육을죽였고,
시청율에죽고사는영상매체들,특히공영텔리비젼방송들은온갖악을끄집어
내어사회를깊이병들게했으며,
온갖종류의정치모리배들이정권을찬탈,국가를위기에몰아넣었었으며,
타락하고부패한종교는사람들의맑은정신을오염시켰다.
돈은귀신도부린다는사탄의속삭임에속아황금만능주의가인간의정신을타락
시켰으며,크고많으면좋다는물량주의는삶의질을훼손했다.
상식과원칙이통하지않는무법천지는‘법질서’가설자리를선점했으며,
근거도없는악의적선동에촛불이나타나는천박성,경박성은세계의웃음거리가
됐다.
677명의홍성군청공무원중108명이5년간7억원의세금을훔친것은그들이
‘주인’이아니기때문이다.
주인은자기것이기때문에훔치지않는다.
주인의반대가노비이며그노비들을‘상것들’이라고불렀었다.

바탕정신으로서의‘선비정신’이아무리좋은것이라해도지금그것을문자적으로
계승할수는없다.
여기에서학계의노력이요청되는것이다.
그정신의핵심을연구,지금의‘바탕정신’이되게해야한다.
사실우리사회의구심점을만드는일은하루가시급하다.
지금의극심한사회적혼란을수습하는건결국바탕정신-가치관-정체성의
수립으로만가능한일이기때문이다.
그리고그요체는‘교육’이다.
특히인성교육이더그렇다.
학교라는제도교육뿐아니라가정,사회가학습장이되어이정신을배울수있어야
한다.
지금우리나라는국격(國格)이회자되는수준의단계에와있다.
따라서‘바탕정신’으로서의정체성이그어느때보다절실한싯점이기도하다.
이일은결코그누군가가우리를대신해서해줄수있는사안이아니다.
더이상常의나라로남아서는안된다.
결국이중차대한일은우리모두의숙제요책임이다.
한사람,한사람의노력이합해져서나라의모습과내용이달라져야한다.
2010년이그시작이되는해이기를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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