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없는 집.
2009년9월현재,
우리나라의전체가구수는1.691만6.966가구다.
이중절반이상이아파트에거주하고있으며아파트의평균수명은22.6년이다.
아파트의수명은건물구조,즉건축물자체의문제보다는주거환경이나쁘게
변했거나미관,또는일부설비의노후때문이라고한다.
우리부부도30년이상네번이사다니면서아파트에살고있다.
지금우리가살고있는아파트는13층의계단식이며같은통로에26세대가입주해
함께생활하고있다.
여러아파트에살면서겪은일중하나는엘리베이터를타지않고걸어서계단을
오르다보면각세대의현관문모습이서로다르다는점이다.
그출입문들은처음엔똑같이새것이었을것이다.
그러나사람이살면서그집에살고있는사람의계층과신분,교육수준과인품에서
큰차이를나타내게된다.
어떤문은입주할때의모습그대로깨끗하고아름다운모양을간직하고있다.
반대로어떤문은같은아파트의현관문이라고할수없을정도로더럽고낡아보인다.
온갖스티커는붙여진채때가끼어있고,손잡이등부착물도더럽기는마찬가지다.

왜똑같은현관문인데이런차이가생기는것일까.
가장큰원인은집주인이사는집과세입자가살고있는집의차이때문이다.
집주인은자기들이애써장만한집이니애착이가고그만큼쓸고닦는다.
그러나세입자는자기집이아니기때문에손이가지않으며무관심이쌓여
전혀다른,더럽고낡아버린현관문이된것이다.
더놀라운것은,
세입자들의임대계약이일반적으로2년이기때문에이사가잦고,그때마다보게되는
집안의모습도현관문과똑같은차이가난다는사실이다.
험하게쓰고,손질을하지않기때문에벽면을포함한내부전체가심하게퇴락해있다.
그대로입주하는다음세입자고있지만대개는벽지등을다시바르고입주한다.
그러나그들역시떠나고난자리가황폐하기는마찬가지다.
‘내것’과‘네것’은이렇게근본적인차이를드러낸다.
주인이있는집과주인이없는집은전혀다른집이되는것이다.
아무리그바탕은똑같다해도결과에서의차이는마찬가지다.
결국한쪽은‘집’으로서의기능이살아있지만,다른한쪽은‘슬럼’이될수밖에
없다.
심한경우,농촌에는폐가(廢家)가많다.
주인이떠나버려진집들인것이다.

1950년6월25일부터1953년7월27일까지3년동안계속된6.25전쟁은,
남한에서만85만명에이르는군인과민간인이사망하거나실종되었으며8만명
이상이북으로납치됐다.
광복후남아있던빈약한사회경제적기반도송두리째폐허가된민족적인
재앙이었다.
그때로부터57년이지난지금대한민국은UN회원국이되었으며사무총장까지
배출하고있다.
또세계의부자클럽인OECD의회원국이며G20의의장국이기도하다.
그리고최빈국에서원조하는나라가됐다.
단두세대사이에완전히변신한것이다.
우리부부와같은구세대는,
이세기적인사건들을몸과마음으로겪으면서살아온세대다.
그건,그래서그때와지금을구체적으로비교할수있는‘증인세대’라는의미도있다.
아마도우리가마지막증인세대일것이다.

동양적인기준에서,
사람의일상생활을분류하는커다란카테고리는의,식.주(衣.食.住)다.
나는일제식민시대에태어나일본소학교를다녔으며,
광복과함께인민학교-국민학교를다닌세대다.
6년제중학생이었을때6.25전쟁을겪었으며,
대학재학중군복무를마쳤다.
최루탄을마시면서직장에다녔고,워카를신은채가마니위에서자면서공장을
건설했고,첫수출품을선적하면서뜨거운눈물을흘렸던세대이기도하다.
내게는고등학교와대학생이었을때외투가없었다.
아무리추운겨울이라도기운내복을껴입으면서견뎠다.
외투는우리집형편으로는살수없는비싼옷이었다.
미군들이입던유엔잠바염색한것을처음입었을때그아늑함과따뜻했던감촉은
지금도잊지못하고있다.
밤이면밤마다자당께서는전구를집어넣은양말을꿰매는일로쉴틈도없었다.
헤진양말한짝이귀한시절이었다.
대학4년동안염색한미군군복을입고다녔으며대학졸업후직장에들어간후
생전처음싸구려양복을입어봤다.

내게는설날보다는팔월한가위가더기억에남는일이많다.
먹는음식때문이다.
그고소한쇠고기의맛,일년에두번설과한가위에만먹어볼수있었다.
쌀밥만먹게된것도불과얼마전이다.
보리고개는절대해보는소리가아니다.
실제로절양농가-식량이떨어진집이많았으며채익지도않은곡식으로‘풀떼기’
를만들어연명했었다.
38선을넘어남쪽으로내려온후‘피란민’으로분류되어미군의C레이션을배급
받은적이있다.
돼지고기로만든햄은환상적인맛이었으며,
우유,치즈,잼,껌,과자들은놀라운음식이었다.
그때는집집마다쌀독이있었는데,‘쌀독긁는소리’는문학적인표현이아니라
이웃끼리듣게되는일상이었다.
쌀이바닥나면쌀독긁는소리가난다.
그소리는불안과공포의소리였으며이웃의가슴을찢는아픈소리였다.
쌀은됫박으로봉지에담아팔았으며이웃끼리식량을꾸어먹는일은다반사였다.
어떻게,그렇게도먹을게부족하던시절을헤치고살아남았는지알다모를일이다.
‘배고픈게끝’이라는사실은어린나이였지만6.25전쟁을겪으면서뼈아프게
느낀체험이었다.

자기전에머리맡에떠놓은‘자리끼’가,
아침에일어나면꽁꽁얼어있었다.
겨울이면매일그랬다.
말하자면물이어는추위속에서잤다는얘기다.
그때는모두가그랬다.
아무리이불을뒤집어써도물이어는방은달리방도가없었다.
난방이원시적이었기때문이다.
그좁은단칸방은여러식구들의거실이자식당이고,또침실이었으며공부방이었다.
어둠침침한,천장에매달린촉수낮은전등도제한송전때문에초저녁만지나면
꺼졌다.
초는비쌌기때문에그으름이심한석유등잔도아껴서써야했다.
연료로서의19공탄은공로도크지만수많은사람들의목숨을가스중독으로앗아갔다.
추운겨울,마당을가로질러가야하는변소는지금생각해도끔찍하기만하다.
입는것,먹는것,주거환경어느하나도편하고쉬운것은없었다.
나는지금도밥알하나를버리지못한다.
그건,내기준으로는‘악’이기때문이다.
춥고배고픈게어떤것인지를아는세대로서지금의우리네살림이‘천국’이라는
것을증거하고,감사하며살고있다.
단두세대사이의천지개벽같은이변화는,
‘우리모두가우수한자질을가진사람들’이었기때문에가능한일이었다.
여기엔의심의여지가없다.

와싱턴정가(政街)에서자기들끼리하는소리가있다.
‘미국은이스라엘과한국은포기하지않는다.’
2차대전이후경제원조,외교,정치적으로성공한대표적인케이스가두나라이기
때문이다.
두나라는미국이세계게내세우는업적이다.
이스라엘이중동의교두보라면한국은중국과아세아에대한교두보인것이다.
단두세대전,
한국은‘폐허’였으며‘민주정치의불모지’였다.
1만1000미터해저에서원유나개스를뽑아올리기위해서는첨단설비인
드릴쉽(drillship)이있어야한다.
초속41미터의강풍,높이16미터의파도까지도견디면서드릴쉽의위치를정확
하게,안정적으로유지해야하는최첨단종합기술이있어야만들수있다.
2008년기준,대당가격9억달러의이드릴쉽은2000년이후전부44척이
발주되었다.
그리고대한민국혼자서다수주했다.
지금전세계에서한국의드릴쉽만큼성능이우수한심해시추선을만들수있는
나라는없다.
반도체,철강,자동차,첨단대형건축물시공,원자력발전소,대규모담수시설,
새나라정신까지수출하고있는게지금의우리들이다.
지금세계는전혀다른눈으로우리들을주시하고있다.
우리가어떤저력을가지고있는지를드디어깨달았기때문이다.

천재일우(千載一遇)란말이있다.
‘천년에한번만난다’는뜻으로좀처럼얻기어려운좋은기회라는뜻이다.
우리같은구세대가보기에지금우리나라는이귀한천재일우의기회를맞고
있는것이다.
선진국문턱에서10년이상을허비했으니이제는이기회를단단히잡아야
한다는생각을안할수가없다.
외형(外形)을거의다갖추고도앞으로더나아가지못하고있는것은‘안’에
문제가있기때문이다.
따라서이제는‘안’을다져야한다.
명분은과감히버리고실리(實利)를택해야한다.
지구촌시대의선진국,일류국가가되는것은절대로쉬운일이아니다.
안에우리것을단단히챙기면서밖을향해‘세계화’해야한다.

그첫째가정치다.
민주정치의요체는서로다른것을인정하고토론할수있어야한다.
제주장만하지말고남의말도들을줄알아야한다.
내생각과다르면‘적’이되는이분법도버려야한다.
그리고무엇보다도‘다수결’에승복할줄알아야한다.
물리적으로회의장을점거하는폭력을그대로가지고는선진국은될수없다.
그래서정치1번지인국회부터바뀌어야한다.
국가공무원들의‘무사인일’도다를게없다.

우리나라의물가는동경,뉴욕과맞먹는높은수준이다.
GNP를생각하면오히려더높은편이다.
무서운상업주의가어리석은소비자들을등쳐먹기때문이다.
온갖감언이설-광고로소비심리를부추겨제이익만챙기는악덕기업들을
밀어내야한다.
불매운동이그중한가지방법이다.
더이상속지말아야하며무엇보다‘절약’을체질화해야한다.
지금과같은과소비,사치로는오래견디지못한다.

우리사회의‘사탄’은‘무질서’다.
기초질서가서지않고일류국가는불가능하다.
‘법’앞에서불평등하면생활문화가생기지않고그게길어지면‘정신적후진국’이
된다.
상식과원칙이통하는사회를만드는일은생각보다어렵다.
중진국선두주자였던아르헨티나가주저앉아죽을쑤고,
일본이확실한선진국이된게그차이다.
절대로‘기초질서’를우습게보면안된다.
글자그대로그건‘바탕’이기때문이다.

우리나라TV에는‘연예계’와‘막장드라마’만있다.
기가찬것은계도와교육은없고시청율경쟁때문에퇴폐와불륜,폭력이난무하는
저질상업방송을‘공영방송’이라고우기고있는점이다.
대통령의근엄한한만디도개그맨이무대에서‘웃겨’하면그걸로끝이며따라웃는
시청자들의수준도마찬가지다.
골빈PD몇명이나라를휘두르고있는상황이바뀌지않는한정신문화는설
자리가없다.
‘천박함’은재생산까지되어본래선비의나라였던대한민국을개천에처박아놓고
있다.
TV를끄기전정신문화는없다는냉엄한현실을똑바로봐야한다.
그리고수준높은정신문화없이일류선진국은될수없다.
TV보다더깊이,더넓게대한민국에상처를내고있는‘괴물’은달리없다.

지금과같은세계화된지구촌시대에서국가간경쟁은부존자원,나라의크기,
인구의숫자가아니라‘교육받은인적자원’으로결판난다.
말하자면‘교육’이나라의미래를결정하는새시대인것이다.
그래서우리의공교육붕괴와사교육시장의팽창은우려의수준을지나재앙이
될수도있다.
서둘러손을쓰지않으면만회할수없는파국으로갈수도있기때문이다.

우리나라는인구의절반이상이종교인이다.
신앙의내면화보다는구복(求福)의이기심이앞서기때문에‘기능이죽은종교’가
되고말았다.
그리고그수준은날로바닥을향해떨어지고있다.
무교화(巫敎化)도그중하나다.
더가슴아픈것은상당기간개선될기미가보이지않는것이며악화일로를가고
있는현실이다.

1970년대후반,
직원세명이돈을모아차를샀다.
필요할때마다서로가시간을조정,공동운용했다.
그러나얼마가지않아엔진이타서붙어버리고말았다.
세사람중아무도엔진오일을갈아주는일에는신경도쓰지않았던것이다.
모두가주인이었지만사실은아무도주인이아니었던것이다.
나라라고무엇이다르겠는가.
국경일에태극기게양율이지금처럼5%를넘지못한다면‘주인없는나라’라고
봐야한다.
나는금년이단기4343년임을똑바로기억하고있으며,
언제어디서든태극기를정확히그릴수있다.
애국가는내파트인베이스로악보없이부를수있다.
그건내가‘손님’이아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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