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대대통령이었으며역대대통령중9개월이라는최단기의재임기간을기록했다.
강원도원주출신인그는,
광복후서울대사범대학교수를거쳐농림부의농지관리국장서리,외무부통상국장
으로서관료의길을걷게된다.
1959년주일대표부공사,그해외무부차관이되었고1967년에외무부장관이되었다.
이어대통령외교담당특별보좌관이되었으며1975년국무총리로발탁되었다.
여기서끝났다면그는성공적인관료로서은퇴할수있었을것이다.
그러나1979년의10.26사건은박정희대통령의유고(有故)와함께그에게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짐을지게했으며같은해12월6일,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대통령
으로선출되었다.
그의불운은12.12사태와1980년5월의‘광주사태’를겪으면서신군부에의해
치욕적으로밀려난후2006년10월칩거하고있던자택에서노환으로타계할때까지
이어졌다.
그긴세월을침묵한채식물인간처럼산것이다.
관가(官街)에서최규하씨의별명은,
일찍부터‘최주사-崔主事’였다.
어떤때는‘좁쌀’로불려지기도했다.
주사는,행정의일반업무를담당하는6급의일반직공무원에대한관명이다.
신군부에의해아무저항없이쫓겨나는대통령을보면서모두가‘탄식’했던것도
그때문이다.
최규하씨개인이옳다,그르다의얘기가아니라그자리에앉을수없는사람이
분수에맞지않는일을하다가당하는수모가국민의마음을아프게했기때문이다.
그를‘좁쌀’이나‘주사’로부른것은,
무엇보다도사람됨의크기와기량,역량에서대통령이될수없는‘작은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그는배역(配役)을잘못맡아실패한대표적인케이스로회자되고있는것이다.
배역은,
연극이나영화에서배우에게출연할역(役)을나누어맡기는것이다.
즉무대에서그가해야할일을맡기는것이다.
배역과연기가맞으면성공이지만그반대는파멸이다.
말하자면최규하씨는배역이잘못된배우가되어비극적결말을맞은것이다.
우리들은인생-人生을흔히‘무대’라고말한다.
그리고우리들의일상을그무대위에서의‘배역-배우’로설명하는경우가많다.
크게보면틀린얘기가아니다.
이미직업도5만가지가넘었으니개개인들이종사하고있는‘생업’도천차만별이고
그수준과질에서이루말할수없는다양성이있는것도사실이다.
그래서우리들은모두가세상이라는무대위에서자기가맡은배역을연기하는
배우이기도하다.
문제는‘배역’과‘내’가궁합이맞는가하는점이다.
그런면에선자기가잘하고즐기는일이직업이된사람들이가장행복하다고말할수
있다.
그반대는평생을불만과스트레스만받다가끝낼수도있다.
옛날에는직업에대한‘선택의폭’이아주좁아서‘배역’자체가목적이었지만
지금은사정이많이달라졌다.
‘평생직장’은옛말이다.
자기에게더잘맞는,더알아주는,돈도더많이주는곳으로쉽게옮길수있는
세상이다.
그만큼살기가좋아졌다는뜻이기도하다.
아무리실업자가많다해도옛날과는다르다는얘기다.
배역-配役,하면우선떠오르는것이영화배우다.
같은배우가서로다른영화에서딴역을맡아연기하는것을보면쉽게이해할수
있을것이다.
같은배우인데도배역에따라전혀다른연기로딴사람처럼보이는것이다.
그만큼배역은중요하다.
이제우리모두가잘아는여배우케이트윈슬렛(katewinslet)으로눈을돌려보자.
1975년10월영국잉글랜드버크셔리딩출신인케이트는이미우리들이알고있는
많은영화에출연한바있다.
그러나1997년‘제임스캐머런’감독이만든영화‘타이타닉’과2008년‘스티븐
달드리‘감독이만든영화’더리더‘에서의케이트는전혀다른,분명히대조적인
‘여자’로바뀐다.
‘타이타닉’에서의‘로즈’역은과거를회상하는늙은여인의젊은시절을맡은,
‘아름다운젊은여자’역이었지만,
‘더리더’에서의‘한나슈미츠’역은미모뿐아니라성격배우로서의그녀의진가가
있는그대로드러난수작이다.
타이타닉과는비교도할수없는그눈부신연기는보는이들을압도하고도남는다.
그배역이그녀에게적격(適格)이었기때문이다.
‘베른하르트슐링크’의동명소설‘더리더’를그녀가읽은것은영화제작
6년전이었으며감동에겨워밤을새우면서읽었다고한다.
그후뜻밖에도스티븐달드리감독으로부터한나슈미츠의역을제안받았지만
‘레볼루셔너리로드’촬영때문에고사할수밖에없었고,한나역은니콜키드만
에게돌아갔다.
그러나촬영중키드만이임신했고,
결국한나역은다시케이트에게돌아왔다.
‘더리더’에서의한나슈미츠는글자를읽지못하는문맹으로서그사실이밝혀
지는수모를겪지않으려고더큰고통까지감내하는여인이다.
케이트는한나역에대해자기에게주어진가장큰도전이라고생각했고실패할수도
있다는생각으로겁에질리기도했다고고백했다.
‘타이타닉‘의’로즈‘로서는보여줄수없는,케이트윈슬릿이아니면해낼수없는
연기가그래서나온것이다.
배역이임자를만났고,사람이자기에게가장잘맞는배역을만난케이스가된
것이다.
다음이한나슈미츠의상대역인‘마이클’의랠프파인즈(ralphfiennes)다.
1962년12월,사진작가인아버지와소설가인어머니사이에서,영국에서태어나
성장했으며로얄아카데미아트스쿨에다녔다.
파인즈는1995년연극‘햄릿’에서햄릿역으로토니상을수상한유일한배우이기도
하다.
그의연기력이인정받은것이다.
2002년‘브렛레트너’감독이만든‘레드드레곤’에서랠프파인즈는
어린시절학대받고자라면서그심성이왜곡되고사악해져‘괴물’에가까운
인간으로나온다.
그배역에서악역을맡았던것이다.
그러나‘더리더’에서의성장한마이클역은파인즈가아니면소화할수없을정도의
‘적격’이었다.
준수한마스크,미묘한표정들,섬세하고신중한행동은한나슈미츠와함께
이영화의수준을높이는조건이되었다.
케이트윈슬렛이아카데미여우주연상을받은것은파인즈의역할이컸기때문이기도
하다.
다른영화에서의악역이그의연기를절반밖에드러내지못했다면‘더리더’에서는
그의모든것을보여준배역이라고할수있다.
배역은한인간-배우를전혀다른사람으로만드는기능이있는것이다.
나오미왓츠(naomiwatts)는,
1968년9월영국잉글랜드에서출생했으며14세때호주로옮겨연기수업을받게
된다.
2003년‘알레한드로이냐리투’감독이만든영화‘21그램’에서의나오미와
2007년‘데이빗크로넨버그’감독이만든‘이스턴프라미스’에서의나오미는
완전히다른배우처럼보일정도로차이가난다.
아름다운미모,풍부한얼굴표정,조신한행동하나하나가그배역이자기것임을
유감없이드러낸다.
‘21그램’에서의나오미는거기없었다.
전혀다른,뛰어난연기의나오미가‘이스턴프라미스’에나타난것이다.
이유는단하나,‘배역’때문이다.
구약성서의‘욥기’는,
대략기원전900년대에쓰여진대표적인지혜문학이다.
욥기를읽으면독자는두개의무대를동시에볼수있는관객이된다.
윗무대는하나님과사탄이욥을두고그를시험하는문제에대한대화가있고,
아랫무대는부자욥이자식들과모든재산을잃은뒤재위에앉아기와조각으로
헌데를긁는장면이다.
인간이겪는고통의문제에대해욥기처럼치열하게논쟁하는책도드물다.
그먼옛날,이문제에접근,문학작품으로남긴인간이있었다는자체가경이롭다.
관객인우리들은두개의무대를동시에볼수있지만‘내’가배역을맡아선
인생의무대는관객이되어볼수가없다.
내가,객석이아닌무대위에있기때문이다.
그것은우리들의한계이자인간성의속성이기도하다.
그래서자기의배역에대해생각하는사람을‘철학자’라고부른다.
무대위에있는5만가지가넘는배역중내가맡은배역은어떤것인가.
나와배역이맞으면그무대는성공의길이되지만맞지않으면고통스러운삶이
되는것이다.
앞선세대를살았던구세대는무대위의배역이너무적고,그담도높아‘선택’의
여지가거의없었다.
먹고살기위해,가족을부양하기위해자기에게맞지않는,고통스러운배역도
불평한마디못하고소화해야했다.
거기에능율이나즐거움,보람이있었을리가없다.
그런면에선구세대들은고생이컸던불우한세대이기도하다.
그러나지금은다르다.
아무리백수가많은,실업율이높은시대라해도무대도크고배역도부지기수다.
용기만있다면,스스로배역을바꿀수있는시대라는의미다.
사람이그한평생을재미도없고,즐겁지도않고,효율도없는직업에매여
산다는것은가장큰불행이다.
그보다더불쌍한사람은달리없다.
배역을바꾸는데가장큰걸림돌은,
전통적인사고방식과고정관념이다.
그래서남의눈을의식하면자기의삶을제대로살수가없게된다.
그것이남을해치거나해롭게하는것이아니라면,
그것이사회공동체에나쁜것이아니라면지금이라도더늦기전에‘배역’을
바꾸는것이행복으로가는길이다.
그래서처음부터자기배역을제대로맡은사람들이행복한것이다.
인간은,자기가좋아하는것,자기가잘하는것을모두하나씩은가지고있는데
그건절대로변하지않는다.
그래서그배역에나를맞춰야지생소한배역이나를선택하게해서는안된다.
그직업이사람들과인터뷰하는저널리스트가있다.
오래동안수많은,서로다른직업과직위에있는사람들과인터뷰했으며,
거기에는계층도여러가지였다.
이제그가정리해서내린결론을보자.
자기가인터뷰한사람들중자기분야에서성공한사람들의특징은,
자기가좋아하고잘하는일을한것이그한가지고,
하고싶은일을하다보니더열심히,힘들어도즐겁게몰두했다는것이다.
말하자면좋아하는일을열심히하다보니성공했고,
그성공이물질의보상과함께‘행복’까지가지고왔다는것이다.
그반대가‘행복하지않은성공’이다.
성공은했지만행복하지는않은것이다.
그성공안에‘즐거움’이없기때문이며이는배역이잘못되었기때문이다.
버스를타고가도편한마음으로앉아있는사람과,
운전사가딸린리무진을타도마음이불편한차이가그것이다.
행복하지못한성공은의미가없는것이다.
사실,그건무대위에서의근본적인차이이기도하다.
지금나는어떤무대에서어떤배역을맡고있는것일까.
정말한번쯤은진지하게생각해봐야한다.
인생은생각보다짧고,단한번뿐이기때문이다.
엊그제,평소존경하던학승법정이입적하셨다.
김수환추기경에이어그분까지가시니이제우리사회에어른이없다.
그래서두렵다.
그분은‘자기식대로살기위해’출가했다고했으며입적하는순간까지자기가
선택한배역에충실했고,그만큼행복한분이었다.
그분께서우리모두의사표가되는것은자기삶을스스로선택한‘용기’때문이다.
그분이우리모두에게남기신큰가르침도바로그‘용기’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