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素描.
서두르면진다.

얼마전황장엽씨는미국방문중이런말을했다.
‘김정일과무엇을해보려고하는것은불과싸우는것이아니고불의그림자와싸우는
것이다.‘
그동안미국과북한간의길고긴협상에서단한가지도결실이없는것은미국이
북한의본체(本體)에다가서지못했기때문이다.
대개의독재자가그러하듯김정일도전혀전면에나서지않는다.
지난번의화폐개혁이그런경우다.
따라서미국은김정일의하수인들과씨름할수밖에없었으며본체에다가설수
없었던만큼어떤결정적결론도도출해내지못했다.
한편김정일이미국을무서워하는것은충분히납득이가는대목이다.
미국이이라크에대한공격을개시한후그는상당기간지하벙커에서지냈다.
자기도후세인처럼미국의타깃이될수있다는것을알기때문이었다.

김정일은악하기만한것이아니라아주교활하기도하다.
미국처럼큰나라가부담하고있는국제적인기준들을교묘히악용,자기는빠지고
미국은곤혹스러운입장에빠지게하는‘살라미전술’도서슴치않는다.
김정일체제는더잃을것이없기때문에그것이큰무기가되어거인인미국을
괴롭히고있는것이다.
그동안북한과의길고험한협상을진행해온미국의관료들은북한에사기를
당했던아픈경험을토대로격언하나를만들어냈다.
‘서두르면진다.’
북한과의모든문제는그래서‘인내’가절대로필요하다.
그게승리의결정적인열쇠다.
시간싸움에서먼저이겨야승산이있다.
북한에는있는것보다없는게더많다.
그허점을조이는것은‘시간’밖에없다.
‘서두르면진자’는말은그래서사실이다.
조급하면,참지못하면당하게되어있다.
그래서우리들의’냄비기질‘에대해반성해야한다.
화끈해야할때는불같이일어나더라도기다려야할때는납처럼무거워야한다.
그게이기는길이다.

곤룡포와가사.

곤룡포는왕이업던정복(正服)이다.
그리고가사는중이입는법의(法衣)다.
장삼위에왼쪽어깨에서오른쪽겨드랑이밑으로걸쳐입는다.
김대중은스스로장만해두었던곤룡포를입고화려한관속에들어갔으며국장을
거쳐동작동국립묘지에묻혔다.
법정은관도없이낡은가사만걸친채다비식을가졌으며사리도찾지못하게한채
그재는그가사랑하던산천에뿌려졌다.
이상한것은,
그주검의크낙한울림에서왕의곤룡포가중의가사에압도당한점이다.
법정이입적했을때사람들은어시를잃은것같은마음이되어속으로울었다.
그리고그가우리들에게무엇을남겼는지를챙기기시작했다.
아주작은것이라도,그하나라도더간직하려고분주했다.
그분이떠난자리가그렇게클줄은정말아무도몰랐다.

수십억원의인세를받은분이병원에서퇴원할때돈이없어홍라희여사가자기돈
으로6000만원이넘는병원비를치렀다.
세상에그보다더값지게쓰인돈은없을것이다.
왜이런차이가나는것일까.
가진것,신분,그장례의크기로말하자면법정은아무것도없는분이다.
그런데도그울림은세상을흔들고그가르침은사람들마음속에살아나스스로
순종하게한다.
‘참’과‘거짓’의차이인것이다.
자기를거짓으로꾸미고평생사람들을속이고개인의영달을위해나라도제것
처럼이용한위인과마지막남은가장작은것까지도남에게베푼‘참’의말씀과
생활이같을수가없기때문이다.
‘진실은반드시전달된다’는격언이바로그뜻이다.
시간이지나면,김대중은본인의희망과는달리잊혀지고만다.
그러나법정은사람들마음속에서언제까지나살아있을것이다.
그분이떠난지금그분이남긴책들은더큰울림으로우리들에게다가온다.
참,진실의힘은그렇게큰것이다.

의사삼형제.

편작(篇鵲)은,
중국의전국시대(bc403-221)의명의(名醫)다.
성은진(秦)이며이름은월인(越人)이다.
종래의주술적(呪術的)의술을바꾸어경험을토대로한치료를행했다.
환자의오장을투시하는경지에까지이르렀다고한다.
‘편작이열이라도못고치는병이다.’라는속담이있을정도다.
그런데그편작에게두형이있었는데,
모두가당대의명의였다.
두형에대해편작은이런글을남겼다.
‘큰형님은사람들의얼굴-안색만보고도병이나타날것을안다.’
말하자면예방의술에뛰어났었다는얘기다.
‘그래서사람들은큰형님이병을막아주고낫게해준것을잘모른다.
작은형님은덜아플때미리미리치료해준다.
그만큼사람들을잘살피고그때그때적절한처방으로병이깊어지는것을막았다.
그래서사람들은작은형님이큰병을낫게해준사실을잘모른다.
그런데나는사람들이몹시아파해야비로서병을알아본다.
그래서두형님들에비하면하수(下手)인것이다.
그런데도사람들은내가큰병을고쳐주었다며나를존경한다.‘

편작의이글을읽어보면삼형제가의술도뛰어났지만그의가좋았던것을
알수있다.
얄팍한건오히려환자-사람들이다.
모두가‘내가받은치료’를기준하기때문이다.
세상이복잡하고사회가혼란한것도상당부분이‘주관적견해’때문이다.
서로다름,차이를인정하지않으려는‘독선’처럼무서운것도달리없다.
나와다르면그대로적이되는게지금의살벌한우리사회다.
‘창의력’이다양성에서나온다는사실을생각하면참으로슬픈현실이다.
‘차이를인정하는것이교양이다’라는말이있다.
그게악하거나나쁜게아니라면서로다름-차이는발전의원동력이될수있다.
사실은모두가똑같은게더무서운것이다.

멀쩡한사람.

김두식씨는,
경북대법학전문대학원에서형법,형사소송법,형사정책을강의하고있는대학교수다.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의교양부문저술상을받은바있는작가이기도하다.
그가최근펴낸책에이런내용이있다.
‘지난10여년간비교적진보적인정치인,학자,기자,시민운동가들로부터내가
가장자주들은질문은,
당신은멀쩡한사람인것같은데왜아직도기독교에남아있는가하는것이었다.‘
이얘기를뒤집으면,
멀쩡한사람은교회에남아있어서는안된다는뜻이다.
비약적인표현을빌리다면,
교회는멀쩡하지않은,이상한사람들이모이는곳이라는뜻도된다.
‘비교적진보적인사람들’이볼때교회는이미정상적이아니라는얘기다.
이때기독교는개신교를의미한다.
로마카톨릭과성공회와는다른종파로서의개신교회인것이다.

지금한국의개신교가지탄받고있는단골메뉴는이미오래전교회안에자리
잡은것들이다.
산업화와함께교회에들어선물량주의배금주의,
한국인들이지극히좋아하는복-福을배급하는기복주의신앙,
그복이전달되는통로로서의굿판심령대부흥회와무속화.
교인들을빼앗기지않으려는각종사회적이벤트들,
정규신학교보다더많은무인가사이비신학교가쏟아내는사류목회자들의수준,
목회성공을위해‘영합’도서슴치않는신앙적타락,
교회를세습하는부패까지모두가반기독교적인요소들이다.
이대로가면교회는무엇이될것인가.
그대답이‘멀쩡한사람은갈수없는곳’이되는것이다.
얼마전‘뜻있는천주교평신도모임’에서는
‘성당에가서미사드리기가무섭다’라는5단광고를신문에게재한일이있다.
사제들의‘정치화’에대한거부반응인것이다.
성공회의‘좌경화’는이미신부이재정이기자들앞에서‘기독교사회주의’를
표방하는수준이다.
이모두가멀쩡한사람들이기독교를떠날수밖에없는시대적변고인것이다.
예수없는예수교회의모습이그러하다.

긴장하면패배한다.

작년10월26일,
뉴욕의양키스구장에서는포스트시즌의아메리칸리그챔피언십6차전이진행되고
있었다.
엘에이엔젤스와뉴욕양키스가월드시리즈출전권을놓고겨루는시합이었다.
사실양팀선수모두가긴장했던건사실이다.
그만큼중요한경기였기때문이다.
헌데,
엔젤스의1루수는자기앞에정확히송구된볼을놓쳐아웃될수있었던양키스
선수를세입시켰으며,
내야땅볼을잡은투수는1루에악송구,볼이높아1루수가잡지못한채빠졌다.
뿐만아니라엔젤스의타자하나는쓰리볼을훠볼로착각,1루로걸어가다
되돌아오는헤프닝까지벌렸다.
결과는5대2로양키스가승리,양키스는월드시리즈에나가챔피언이됐다.
야구의경우,미국의메이저리그에서뛰는선수라면사실세계일류들이다.
더구나리그챔피언십까지올라왔다면그실력이탄탄했다는증거다.
그런데그런선수들이어떻게아마추어같은실수를저지를수있단말인가.
‘긴장’했었기때문이다.
그긴장이평소의실력이발휘되는것을막은것이다.
그런큰시합에서평심(平心)을유지하는것이결코쉬운일은아니겠지만그러나
그날의범실들은너무나어처구니없는초보적인것들이었다.
그게자기들홈그라운드였다면,
리그챔피언십이아니었다면그런범실로패배하지는않았을것이다.
긴장한다는것은,
평심을잃는다는것은‘실수-잘못’을만들어내는원인이된다.
긴장하면판단이흐려지고제실력이나오지않는다.
그래서객관적인입장이되기위해서는‘냉정’해야한다.
긴장하고흥분하면헛것이보이고그걸따라가면망하게돼있다.

사안이어렵고복잡할수록긴장하고흥분하면안된다.
엔젤스가월드시리즈출전의문턱에서무너진것은실력이모자라서가아니라
긴장-흥분했었기때문이다.
헛것을쫓아가다수렁에빠진것이다.
평심은이성적일때만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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