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용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는,
지중해에면한이집트중북부의주요항구도시다.
기원전331년마케도니아의알렉산더대왕이이집트원정때나일강하구에건설,
자기의이름을따서알렉산드리아로명명했다.
그후알렉산더휘하의장군이었던포틀레마이어스가(家)가이집트의수도로삼았으며
헬레니즘시대문화,경제의중심지로발전했다.
클레오파트라7세(재위BC51-30)는이왕가의마지막여왕이었다.
특히왕가의보호정책에힘입어학문과예술이크게발전했으며자연과학의연구가
활발했다.
무세이온(학문연구소)과그부속도서관,
천문대,해부학연구소,동물원등이세워졌으며
기하학의유클리트,지리,역사,자역과학의에라토스테네스,
지라학의포틀레마이어스,문헌학의칼리마코스등의대학자를배출했다.
AD3세기에는신풀라톤파철학의중심지가되었으며클레멘스,오리게네스등의
대신학자가배출되기도했다.
640년아랍의지배에들어가기까지알렉산드리아는지중해세계의문화적중심지의
위치를지켰다.

특히이시대의알렉산드리아도서관은장서70만권의세계최대,최고의도서관
이었으며그리스문헌의취합뿐아니라지중해,중동,인디아등지의언어를
그리스어로번역하는작업까지했다.
이도서관은로마제16대황제인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재위161-180)때
일어난내란으로파괴되고말았다.
최근들어이집트정부와유네스코의적극적인지원으로노르웨이의스노헤타사의
설계가채택되어2억2천만달러의건축비로시공되어2002년10월에재개관했다.

고대의문화도시알렉산드리아에서일어난학문적업적의하나는이후서양문화사에
결정적인영향을끼치게된다.
원칙에서서구문명은유대-그리스도교의정신이그핵심이다.
‘Septuaginta’
보통‘70인역성서’라고부르는책이그것이다.
기원전3세기알렉산드리아에서번역된이성경의원전은‘히브리어구양성서’다.
처음에는모세5경만번역되었으며그후100여년에걸쳐정경전부가번역되었다.
‘70인역성서’는히브리어성경의그리스어번역이다.
당시알렉산드리아에는물론중동과지중해지역전역에퍼져살던유대인들은(디아스
포라)모국어인‘히브리어성경’을읽지못했다.
이미그때의세계는그리스어가국제어가되어통용되었기때문이다.
히브리어성경을그리스어로번역하지않으면죽은책이될수도있었다.
말하자면시대적인,현실적인요구에의해히브리어성경은그리스어성경으로번역
될수밖에없었던것이다.

또하나의사건은,
유대인인예수의가르치심과그에대한기록이히브리어가아니라그리스어로
기록된사실이다.
‘신약성서’는처음부터히브리어가아니라그리스어로기록되었다.
그것도고급그리스어가아닌,시정(市井)에서보통사람들이사용하는코이네
(koine)그리스어로쓰여졌다.
예수자신은그리스어를쓰지않았다.
그분께서는고전히브리어의하나인‘아람어’를주로쓰셨으며지금은시리아의
일부지역에남아있는언어다.
구약정경이그리스어로번역되고,
신약성경이처음부터그리스어로기록되었다는것은그게그때의‘국제어’였기
때문이다.
기독교의급속한전파와확장은그리스어에의한혜택도컸다고봐야한다.
그때의세계는지중해를중심으로하는지역이전부였다.
이탈리아베네치아의상인마르코폴로가중국을여행하고귀국한것이1295년
이며기원전2세기를전후해서장사꾼들이튼‘실크로드’는있었지만그때까지도
지중해세계와동양은국가간접촉이없었다.
따라서서양문화사에서지중해를중심하는국가간의접촉은모두가그리스어를
매개로했다.
그리스어알파벳은,지금은영어의알파벳이기도하지만본래는페니키아의
상인들이장사에필요한기록때문에만든것이며이집트의상형문자에서크게
영향을받았다고한다.
세계가비록서로다른언어를쓰면서도접촉하는일은고대나지금이나마찬가지다.
지중해가중심이되었던헬레니즘의세계에서그리스어는모두의소통을가능하게한
국제어였던것이다.
그리고그것은마케도니아의‘힘’에의한통일이기도했다.
그리스어는신화와신학,그리고철학의언어이기도하다.

다음의사건이’불가타-Vulgata’다.
불가타는‘라틴어로번역된성서’다.
382년교환‘다마소’의명으로히에로니무스가편찬했으며,
신약은386년,
구약까지포함해서완성한것이404년이다.
불가타는이미그리스어로번역된‘70인역성서’를텍스트로했으며신약은
그리스어로된텍스트를사용했다.
라틴어는인도유럽어족의이탈리아파에속하는로마인들의언어다.
기원전1세기이후지중해세계의공용어,공통어로서넓게쓰여졌으며우수한
문학을남기기도했다.
특히라틴어는법(法)의언어이기도하다.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포루투갈,루마니아어의근원이된언어이며
오늘날라틴아메리카의언어이기도하다.
지금도영국의유명한‘이튼스쿨’에서는여왕이이학교에왕림할때
생도대장이교문밖에서기다리다여왕이도착하면정중한라틴어환영사를하는
전통이살아있다.
라틴어는기원전3세기경부터그리스문화권과접촉하면서고전라틴어가형성
되었다.

인류의문화사는이로서두번의‘국제어’를가진셈인데,
그리스어는마케도니아의알렉산더대왕의정복과함께광대한지역이헬레니즘
문화권에편입되면서‘세계어’가되었다.
알렉산더대왕은전장에나가면서도‘호메로스’를지참했다고한다.
이는스승이었던아리스토텔레스의영향이컸기때문으로해석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강도높게그리스문학과철학에대한교육을실시했다고한다.
그의스승은플라톤이었으며그는소크라테스의제자이기도하다.
헬레니즘은무력만이아니라문화와철학으로지중해세계를지배했으며피정복지의
백성들은스스로그리스어를배워썼다고한다.
유대인인사도바울의유창한그리스어구사는놀라울정도다.
성경이그리스어에서라틴어로번역되었다는것은지중해세계의지배세력이
마케도니아에서로마로교체됐다는뜻이기도하다.
팍스로마나-PAXROMANA는실질적인세력이었으며1천년을이어온로마의
힘은세계를라틴어로통일했다.
두번째의국제어가등장한것이다.
국경을넘나드는모든학문적교류는라틴어하나로모두해결되던시기였다.

1604년,
라틴어성경은드디어‘영어성경’으로번역된다.
영국왕제임스1세의지원으로47명의학자와성직자에의해1607년부터
3년에걸쳐번역되어1611년에출판되었다.
‘KingJamesVersion-흠정역(欽定譯)성경’이그것이다.
성경이영어로번역되었다는것은이제세계가‘영어’의세상이됐다는뜻이다.
‘영어산문의숭고한금자탑’이라는찬사를받는이흠정역,킹제임스버전은
영어를모국어로사용하는사람들뿐아니라영어를공부한모든사람들에게실로
오래동안사랑을받아온‘정신적지주’였다.
지금은여러나라에서학자들에의해히브리어나그리스어원전에서직접자기의
모국어로성경을번역하는일이일반적이지만,
Septuaginta,Vulgata,그리고KingJamesVersion은인류문화사에서
‘국제어’의등장과위치를시대적으로대표하는소중한인류의자산임은더
말할것도없다.

1944년7월,
미국뉴헴프셔주브레튼우주에서는44개국대표가모여2차대전이후자유로운
세계무역체계를만들기위해‘브레튼우주협정’을체결했다.
국제통화문제,국제결산은행의청산문제,적산의처리등을결정했으며
IMF와세계은행의설립을결정했다.
그후1947년10월제네바에서,
‘관세와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T’가체결되었으며지금의WTO-세계무역기구
가그후신이다.
2차대전이후세계는본격적으로국가간상업거래가활발해졌으며브레튼우주
협정과GATT는‘무역’의기준과규칙을정한약속이었다.
국가간의교역인‘무역’에서수출입계약서나대금지불방법,그청산은행등을위한
일체의서류작성은어느일방의언어가아닌제3국언어를쓰는것이관행이며
지금은그것이‘영어’다.
무역뿐아니라국가간의‘국제적인협정,협약’도그공용어는거의가‘영어’다.
말하자면지중해시대의그리스어와라티어가국제어였다면지금의글로벌-
자본주의시대에서국제어는‘영어’인것이다.
PAXAMERICANA의시대가그것이다.

내수시장이제구실을하기위해서는최소한1억이상의인구가있어야한다.
소비재의채산성이가지는한계때문이다.
그래서인구5천만인우리는처음부터‘수출’로먹고사는나라가됐고이패턴은
앞으로도변하지않는다.
수출은곧무역이고모든거래는우리끼리가아닌다른나라와해야한다.
그거래에서사용되는세계공통어가바로‘영어’다.
시장에서는모두가함께쓰는‘말’을잘해야장사도잘할수있다.
아주간단한이치가그것이다.
지금은물건을만들어서내다팔기만하는시대가아니다.
다른나라물건도사와야하며특히외국인투자를받아들여산업의규모를
키우고이문을나눠먹는시대다.
그누가국제공용어인영어소통이어려운나라에투자하겠는가.
지금처럼약한영어로는세계시장을파고들기도어렵다.
영어가약하다는것,그건그냥단점이아니라죽고사는문제와연계돼있다.
그만큼‘국제어의소통’은절대적인요구다.

학교에서10년이상영어교육을받고,
사교육비의40%가영어교육에쓰이고있는데도왜우리의영어는약한것일까.
영어를일상적으로쓸수있는공간이없기때문이다.
공부하는것으로끝나기때문이다.
말은생물과같은것이어서쓰면쓸수록늘고,
쓰지않으면죽어버리고만다.
아무리입시용의암기,독해위주의영어공부라해도계속해서쓸수있는공간이
있다면살아날수가있는것이다.
영어의공용화는할것인가말것인가의문제가아니라언제시작하느냐의문제다.
이미우리는한참뒤지고있다.
영어를공용어로사용하는나라들을여행해보면영어때문에모국어를못하는
사람은하나도없다는것을알게된다.
영어공용화의구차한반대는결국우물안‘폐쇄성’에서오는고질병일뿐이다.
그리스어시대가있었고,
라틴어의세계가있었다.
그리고이제는영어의시대인것이다.
인터넷검색사이트의80%이상이영어다.
우리나라메니아중자유롭게이사이트들에접속할수있는사람은얼마나될까.
이제영어공용화는더미룰수가없는다급한숙제다.
이미늦었기때문에서둘러실시해야한다.
그방법에서는유연해야하고,점진적일수있어도공용화자체는결코미루어서는
안된다.
언제나막차를놓치면멀고먼길을걸어가야하기때문이다.

이른아침의런던,
나는체크아웃하기위해호텔로비로내려갔다.
그때사색이되어내게달려오는한국인아주머니가있었다.
페키지여행을따라왔는데일행이자기만남겨두고떠났다는것이다.
이아주머니가시간을지키지않아생긴,드문불상사였다.
영국런던의한복판에서,
아는사람도없고,말도통하지않고,무엇을어떻게해야할지전혀모르는이
아주머니는글자그대로‘죽은목숨’이었다.
나는프런트데스크에부탁,전화로가이드를불렀으며버스는다시돌아와
아주머니를태우고떠났다.
‘말’을못하면이렇게된다.
그때그아주머니에게필요한말은한국어가아니라‘영어’다.
영어만,아주기초적인영어만할수있었어도그렇게사색이되지는않았을것이다.
아마도그아주머니는그지옥같았던순간을평생잊지못할것이다.
나역시그아주머니가내게달려오면서한말을평생잊지못한다.
‘아이구,이제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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