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를 사는 지혜.
우리모두는현실적으로‘오늘’에살고있다.
오늘이라는‘제한적인시대’에살고있는것이다.
그것은과거도아니고미래도아닌현재다.
그게누구든‘오늘-현재’라는물리적시간을벗어나서살수가없다.
그래서모든인간은‘자기시대’의요구와속박에서자유하기가어렵다.
‘오늘’은우리들을규정하고,우리들에게시대적인조건들을요구하고,
시대적정신이라는이름으로우리들을구속한다.
한사회공동체안에서진보적인생각과그것을표현하는인간이나타나는이유는
건전한‘저항’의필요성때문이다.
다른한가지는,
오늘만사는인간이있고,어제를알고오늘을사는사람이있는가하면,어제를
알고오늘을살면서도내일을예측해보는인간도있다.
시간-시대의연속성을알기때문이다.
‘오늘’은앞뒤를잘라낸‘토막’이아니다.
어제를알아야하는가장큰이유는어제를알아야오늘을정의할수있기때문이다.
‘비판의힘’이그것이다.
그안에는우,열에대한판단이있게된다.

정체성-正體性이란말이있다.
사물의본래모습이라는뜻이다.
오늘-현재라는시점에서‘정체성’이가지는의미는각별하다고할수있다.
보통사람들의일상-日常이복잡해졌고,매일빠른속도롤더복잡해지고있기
때문이다.
좋게말하면다양성-多樣性이지만그속내는‘변화의속도전’수준이다.
오늘의‘새것’이내일고물이되는속도라면그안에살고있는사람인들온전할리가
없다.
‘자기정체성-自己正體性’이중요해지는이유도거기에있다.
그무엇에도휘둘리지않고,자기나름대로의판단과기준으로살아갈수있는역량이
크게요구되기때문이다.
극단적인표현으로모두가북쪽을향해갈때혼자서라도,그게옳다고판단했다면
남쪽으로갈수있어야한다.
그게‘개성적인삶’이다.
이기심과개성적인것은전혀다른것이다.
그런데도이서로다른두개념이크게혼동되고있는게지금의우리사회다.
이기심은자기를위해남을해롭게하지만개성적인삶은자기만의문제일뿐이다.
남들과다르다는것은‘차이’이지나쁜것이아니다.
그래서진정개성적인인간은남과자기를비교하지않는다.
인간이상대적존재임을알기때문이다.

가족형태의변화.

불과50년전만해도한가정에는3대가함께사는게일반적이었다.
그리고식구들도많았다.
위계가분명했고,검소,검박했으며어렵게는살았지만서로의지하며지냈다.
한개인은여럿중하나였으며성장한후에따로살아도연대감은충실했다.
말하자면50년전의인간은‘가족’의일원이었으며여럿중하나였다.
두세대가다지나가기전,
가정-가족은핵분열을했다.
‘핵가족’이등장한것이고,지금은그핵가족도다시분해되고있는중이다.
‘가족이없는인간은등뼈가없는것과마찬가지다’
아랍의속담이다.
한인간에게있어가족-가정의의미는‘구성’이상의것이다.
자기의‘인간적존재’가가족-가정이라는거울을통해보여지고그들과의관계
에서‘위치’가정해졌었다.
형수님과제수씨,그리고고모부와매형은밖에서들어온새가족이었다.
작은갈등들이없었던것은아니지만가정-가족이라는큰울타리는한인간을
감싸주고지켜주는보이는‘틀’이었다.
거기에는언제나계산이없는‘안정감’이있었다.
그러나세상은변했다.
이제개인에게더이상그런안전망은없다.
‘홀로서기’의시대인것이다.

거주공간에서‘원룸’의개념은생소한것이지만계속그영역을넓혀가고있다.
건축양식-주거공간의변화는가장큰일상의변화라고볼수있다.
1인세대가등장한것이엊그제같은데이미그숫자는기하급수로늘어나고있으며
혼자밥먹는,칸막이식당이등장했고1인용소비재가그품목을더해가고있다.
혼자사는인간이늘어나고있다는증거다.
통계청자료에의하면1인가구는이미전체국민의20%에육박하는수준에있다.
이추세는가라앉지않을것이다.
서울에거주하는중,고등학교학생1.039명을대상으로설문조사한결과,
여학생의55.6%만이결혼하겠다고대답했으며그중59.7%만이자녀를가지겠다고
응답했다.
결혼하지않겠다는대답중그가장큰이유는,
돈이많이든다가43.9%.
혼자사는게편하다가33.3%였다.
혼자사는인구는계속늘어날것이고‘나’도이미그안에포함돼있을수있다.
여론조사가절대적인것은아니지만어떤‘시대정신’이반영되는것은사실이다.
아직까지우리사회에서는혼자사는문화는생소한편이다.
그러나그게‘현실’이되는세상이라면대처하는‘지혜’도있어야한다.
사회가발전할수록혼자사는사람도함께늘어나는이유에대해공부해야한다.
의미를부여해야하기때문이다.

극단의시대.

여자들이입는속옷을‘이성-異性’을가리는천‘이라고표현한작가가있다.
생각해보면절묘한표현이다.
알몸보다는중요한부분을살짝가린모습이더아름답기때문이다.
‘간접적’이라는것은은근하다는뜻이기도하다.
여백이있어야자기의생각을담을수있다.
분명히‘어제’까지는우리가그렇게살아왔다.
불과50년사이,
모든것은‘직접적’인것이되었고극단화했다.
이세상에서가장무서운것이‘상업주의’다.
장사꾼-기업에도덕성을요구할수없는것은그들의목적이돈버는일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규제’가생긴것이다.
지금은생살을그대로드러낸,아무것도가리지않는극단의상업주의시대다.
선동적이고,선정적이고폭력적이기까지한‘상업광고’가그것들이다.
우리들의일상에파고든온갖광고들은비수가되어우리의인간적일상을헤집고
있다.
우리는세계에서‘제품의싸이클’이가장짧은나라다.
earlyadopter가반드시긍정적인것만은아니다.
평균3년에한번씩차를바꾸는나라도우리밖에없다.
소비를자극하는환경때문이며그주범이‘집요한광고’들이다.

전에는물건을사기위해현찰을쥐고시장이나상점에나가야했지만지금은집에
앉아서주문하고,대금지불하고,택배로받는세상이다.
뿐만아니라플라스틱으로못사는것도없다.
편리한것은사실이지만,
소비가쉬워졌다는것은‘과소비’와‘낭비’를낳을수밖에없다.
길거리에좌판을만들어놓고,남녀노소관계없이원하는사람누구에게나‘신용카드’
를만들어준게엊그제다.
개인파산이어디에서왔겠는가.
‘외상이면소도잡아먹는다’는속담은오늘도그대로다.
이극단의시대에서‘자기정체성’을가지기위해서는반드시‘자기철학’이있어야
한다.
눈만뜨면사방에서소비를충동질하는‘광고’를차단할수있어야한다.
상업주의-광고-시청율-막장드라마의연계는절대로끊어지지않는다.
스스로자기를지키는일이왜중요한지를깨달아야한다.
욕하면서따라하는게보통사람들이다.
정신이오염되는것은육체가병드는것보다몇배더무서운일이다.
인간이못쓰게되기때문이다.
텔레비전을무분별하게오래보면그렇게된다.

정보의홍수.

어제는‘정보의독점’으로독재가가능했다.
그러나‘오늘’은불가능하다.내일은더어려울것이다.
‘광우병촛불’에이명박정권이흔들리던모습에서그현장을본셈이다.
50년전엔,
한문투성이의4면짜리신문이전부였다.
그신문이평균50면이넘는일간지가되었다.
거기에텔레비전,인터넷은물론,트위터까지등장,온작정보를홍수처럼쏟아내고
있다.
심지어는‘개인정보’까지매매하는장이서는수준이다.
정보의홍수속에는진실과함께온갖못된쓰레기들도함께섞여있고,오히려
쓰레기가더많은게사실이다.
지금과같은정보홍수시대에가장필요한기능은분별력과판단력이다.
말하자면‘걸러내는기능’이필수적이다.
이기능이있어야‘정보력’에서앞설수있고경쟁에서유리한위치에설수있다.
이기능은,
절대로하루아침에가질수있는것은아니다.
날것을익히기위해서는불만이아니라도구도있어야한다.
그것들을갖추는길은왕도가따로없다.
‘공부’해야된다.

교보문고의독서경영연구원의자료에의하면,
우리나라직장인들의평균독서량은한달에한권이다.
보통사람이상식과지식을습득할수있는길은독서가대표적이고다음은신문을
정독하는습관이다.
한달에책한권으로는날것정보를익히지못한다.
불도도구도다부족하기때문이다.
따라서정보를익힐수있는사람과의경쟁에서질수밖에없다.
경쟁에서진다는것은,지금은곧‘퇴출’을의미한다.
나는개인적으로글로벌자본주의의‘지구촌’시대를제대로살수있는사람의
기준을가지고있다.
그게어느나라든,혼자서해외여행을할수있다면합격이다.
그수준에가있다면모든경쟁에서충분히이길승산이있는사람이다.
종합적인기능을가지고있기때문이다.
정보의홍수는그것이글자그대로‘홍수-물난리’이기때문에‘재앙’이기도하다.
그홍수에서피해를입지않고오히려내게이롭게쓰기위해서는‘분별과판단’의
기능이필수적이다.
책-공부이외의방법은전혀없다.
50년전에는신문4면을읽어도살수있었지만,
지금은그10배인50면을소화해야제대로살아갈수있다.
세상이그렇게변한것이다.
보통의노력으로는살기힘든세상이된것이다.

고용없는성장의시대.

지금은아무리친한사이라해도대학을졸업한자녀가‘취직했느냐’고묻지못한다.
백수가널려있기때문이다.
수요도없는공급이넘쳐나고있다.
이미졸업생의절반은실업자들이고계속누적되고있다.
그렇다고앞으로고용규모가늘어날것이라는전망도없다.
사실은그반대가될것이다.
우선은,온갖폭력으로얼룩진노동운동이‘정규직’을기피,‘비정규직’을늘리는
원인을제공했고,
‘철밥통’은신진대사를막아새사람들이들어설공간을차단했다.
다음이제조업인장치산업에서생산시설의자동화다.
예를들어,용접로봇은아무군소리없이인간의수백배의일을하면서도임금은
받지않는다.
불평도없고,불법-폭력파업도없다.
다음이업무의아웃소싱과공장의이전이다.
한국의높은인건비가낳은대표적인부메랑현상이다.
외주-外注,하청-下淸처럼속편한장사도별로없다.
그러면서도돈벌이도쏠쏠한게그시스템이다.

이제는뚜렷한목적,목표없이대학에가는것은자진해서‘백수’가되는길이다.
‘학력간판’의시대는끝나가고있다는사실을깨달아야한다.
혼자살기위해서는직업의고도한전문성-높은수입-저축이필수적이다.
문제는그‘정문성’이라는게대학에만있는게아니라는점이다.
홈런잘치고,공잘차고,스케이팅만잘해도엄청난돈을벌수있는게‘이시대’다.
그게어떤분야든,‘최고’만되면된다.
그래서‘타고난재주’에따라야한다.
그걸천부-天賦라고한다.
전교조가‘줄서기-경쟁’을반대하고‘평등’을외치는것은그래서죄악이다.
최고는경쟁-줄서기를통해서만탄생되기때문이다.
그게어디든경쟁이없는곳에는발전도없다.
인간은그게누구든,아무리돈이많아도세상의모든것을소유할수없으며,하고
싶은일을모두해보지도못한다.
결국,‘선택’의문제로귀결될수밖에없다.
‘선택’은안목이며자기철학이며한인간의수준이다.
그리고그것들의바탕은예나지금이나‘학습’이다.
사람이죽을때까지배워야하는이유도그것이다.
그래서지금도‘아는것이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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