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와 바늘귀.
이미세상을떠나신구세대의부모님들은‘전세대-前世代’라고불린다.
그리고그전세대의자녀들이지금의구세대이며,그자녀들은신세대가된다.
일반적으로한세대는약30년을기준한다.
전세대와구세대,그리고신세대의물리적인시간은100년안에들지만각세대가
살았던,또살고있는시간은‘시대-時代’로구분한다.
그리고모든시대는그특유의‘시대정신’을가지고있는것도사실이다.
전세대들이일상안에서,자녀들앞에서가장많이사용한말이있다.
‘남부끄럽다.’
‘남들이뭐라고하겠느냐.’
‘남의눈이있지않은가.’
이대표적인표현들은그분들이없이는살았지만‘체면문화-体面文化’속에서
살았음을알수있다.
‘체면’이무엇인가.
남을대하기에반듯한면목,즉남앞에서의떳떳한얼굴인것이다.
그건상대적으로가치의세계이기도하다.
체면문화의여러가지폐단에도불구하고그것이고상한정신임엔틀림이없다.

전세대의자녀들인구세대는지금생존해있는노인들이다.
구세대는전세대의‘가치-체면’과신세대의‘실리-값’의사이에서균형을찾으려는
노력으로세상을살아왔다고할수있다.
그러나,그럼에도불구하고언제나결정적인순간엔오히려‘가치’쪽으로기울어
지는것도사실이다.
그렇게교육받았고,그런사례들을눈으로보면서자랐기때문이다.
그렇다면지금의‘시대정신’은무엇으로표현하고규정할수있을까.
그건단연코‘물질-돈-값’이다.
같은아파트의같은통로에살아도비좁은엘리베이터안에서아는체를하거나인사
하는법은거의없다.
‘남-타인’은경쟁의상대는될지언정내가유의해야할이웃은아닌것이다.
내가생각하는것,집착하는것,노심초사하는대상은오직‘출세와돈’이다.
그래서학문적으로이시대를‘물신시대-物神時代’라고부른다.
물량주의(物量主義)나황금만능주의(黃金萬能主義)같은부정적인단어들이바로
거기에서파생된현대어들이다.
인간이만든‘돈-화폐’가인간의주인이된맘몬(mammon)의시대인것이다.

처음의크리스챤은그대부분이예수를따르는유대인들이었으며그들은초대교회와
유대교회당을오가며살았다.
그때의크리스챤들은평범한유대인의옷을입고있었다.
그리고지금대한민국의크리스챤들은한국인으로서현대인의복장을하고있다.
겉으로봐서는처음의크리스챤들과는전혀다른모습이다.
서로다른모든나라의사정도마찬가지다.
그런데도,그렇게겉모습이달라졌는데도기독교가같은기독교인것은성경에근거
하는‘신앙’이같기때문이다.
다른말로하면겉모습은변하고달라져도,또2000여년이라는긴시간이지났어도
그신앙내용의같다면똑같은에클레시아-교회인것이다.
뒤집어말하면‘내용적변질’이없는한교회는하나라는얘기다.
이원칙은미래에대해서도마찬가지다.
그러나‘신앙내용’에서변질이있다면그건같은교회가될수없다.
예수그리스도의몸된교회라는‘이름’은가지고있지만이미예수의가르침을떠난
세상의인간조직이된것이다.
신학에서는그것을‘사이비교회’라고부른다.
겉은진짜같이보이지만그속은가짜라는뜻이다.

예수의가르치심은,
‘너희는세상의빛이며소금이다.’
빛이있는곳에악과어두움이있을수없으며,
소금이있는곳에부정과부패가있을수없다.
지금의우리사회가겪고있는혼란과고통은빛과소금의기능이없기때문에생긴
결과라고봐야한다.
사회학적인진단과신앙적진단은그질에서다를수밖에없다.
빛과소금이못된것은,무엇보다도빛과소금이되려는마음이없었기때문이다.
‘신앙적사명감,소명감’이없는것이다.
그렇게된가장큰이유는,
처음부터목표가달랐기때문이다.
물신시대는교회의물량화를불러왔고이는대표적인역세속화현상이기도하다.
전세계개신교예배당의크기와규모에서1위에서5위까지전부서울에있다.
적어도그겉모습과숫자에서는‘기독교국가’라고부를수있을정도다.
그런데도빛과소금의기능이없었다는것은‘예수의교회’가아닌‘다른것-
사이비‘이기때문이다.
지금의교회는복을받는통로로전락한지오래다.
모두가부-재물,맘몬을얻기위해혈안이돼있다.
목표가아니라수단이된것이다.

구원받기위해계명을다지켰다고말하는부자청년에게,
‘네가완전한사람이되려거든가서너의재산을다팔아가난한사람들에게나누어
주어라.그후에나를따르라.‘(마태19장)
실망한청년이떠난후,
주께서는제자들에게말씀하셨다.
‘거듭말하지만부자가하나님나라에들어가는것보다는낙타가바늘귀로빠져
나가는것이더쉬울것이다.‘
인간으로서는불가능하다는것이다.
이어서다른말씀을하신다.
‘아무도두주인을섬길수는없다.
한편을미워하고다른편을사랑하거나한편을존중하고다른편을업신여기게된다.
너희는하나님과재물을아울러섬길수없다.‘(마태6장)
이두가지말씀에서,
그대상은공통적으로맘몬이다.
어근은mamona로서부(富),소유,재산을뜻하며이익을의미하기도한다.
더중요한것은mamona는sem어로서단순한재물만가리키는것이아니라물신
까지의미하며돈에집착하는인간의탐욕까지포함하고있는점이다.

돈에대한초대교회의입장은처음부터분명했다.
‘우리는아무것도세상에가지고온것이없으며
아무것도가지고갈수없습니다.
먹을것과입을것이있으면그것으로만족하시오.
부자가되려고애쓰는사람은유혹에빠지고올가미에걸리고어리석고해로운온갖
욕심에사로잡혀서파멸의구렁텅이에떨어지게됩니다.
돈을사랑하는것이모든악의뿌리입니다.
돈을따라다니다가길을잃고신앙을떠나서결국격심한고통을겪은사람들도
있습니다.‘(딤전6장)
예수나바울의가르침은결국같은것이다.
일만악의뿌리가mamona라는뜻이다.
먹을것과입을것이있다는얘기는이미가지고있는것에대한자족(自足)의기준이다.
성경에분명하게기록되어있는이가르침을기준할때,
지금교회의물량주의와기복신앙이얼마나잘못된것인지는자명해진다.
예수의가르치심과는정반대의길인것이다.
복-돈-재물이목표이기때문에빛과소금의기능도,소중한이웃도없는‘미신’이
되고말았다.
샤머니즘-미신은그근본이이기적인이익뿐이기때문에상대적으로‘남-이웃’은
존재하지않는다.
그런개념자체가없다.
기독교가미신화되는것은,그래서기독교가아닌딴것이되는것이다.

19세기이후대표적인자본주의나라는미국이다.
글자그대로모든것이‘돈’이기준이되는세상이다.
그런데그세상의속내를들여다보면전혀다른측면을발견할수있다.
그들이‘자기것’을주장하는것만큼‘남의것’도존중하는점이다.
서로다른의견,이념까지도존중한다.
돈은소중한것이지만‘남-이웃’을능가하는가치는아니라는얘기다.
자본주의가민주주의와함께있을수있는해답이그안에있다.
값과가치의균형이있기때문이다.
지금우리의문제는,한국기독교의문제는이균형이없다는데있다.
값만있고,가치가없다는것은불구(不具)라는얘기다.
우리사회가깊이병든이유가그것이다.
교인도,비교인도mamona를쫓아그포로가되었고,
물신에잡혀제정신을잃었다.
일전,‘예수를닮는인격,하나님의일’을준비시키는,제자훈련으로잘알려진
목회자한분이별세했다.
평생집한칸없이지낸분이라고한다.
신문의5단광고란에실린대형부고에는장례위원과집행위원848명의거창한
명단이실려있었다.
웬만한사회장에버금가는규모다.
이‘위선’은무엇을의미하는것일까.
왜장례식까지도세-勢를과시해야하는가.
내용에서자신이없기때문이다.

한인간이종교를가진다는것은,
‘다르게살겠다.’는결단이고선언이다.
법정-法頂이쓴글을읽어보면자기는다르게살기위해출가했으며그때까지는
불교에대해잘알지못했다고했다.
‘자기식대로다르게살기위해’사바세계를버리는결단은‘종교’가무엇인지를
다시생각하게하는대목이다.
복(福)-돈-물질을더많이얻기위한종교라면그건미신일뿐이다.
노골적으로굿판을벌리는게더낫다.
크리스챤의자기진단은사실간단하다고말할수있다.
‘돈-물질’에대한자기의태도,입장은어떤것인가.
그정직한대답이자기의신앙수준이된다.
값을추구하는가.
가치를추구하는가.
그둘사이의균형을유지하고있는가.
있다면그건어떤것인가.
먹고마실것이있으면자족하는가.
더많이얻기위해노심초사,집착하고있지는않는가.
교회에출석하는진정한목적이무엇인가.
빛과소금이되려는결심은있는가.
자기가부르심을받았다는소명(召命)을깨닫고있는가.
종교는절대로간단한문제가아니다.
성(聖)이썪으면더악취가나는게그때문이다.

바울은‘로마인에게보낸편지-로마서’에서,
유대인을빗대어인간의부패와악을고발하는유명한문장을남기고있다.
‘올바른사람은하나도없다.단한사람도없다.
깨닫는사람도,하나님을찾는사람도없다.
모두가비뚤어져쓸모없게되었다.
선한일을하는사람도없다.단한사람도없다.
그들의목구멍은열린무덤이며,
그들의혀는거짓을말하고입술에는독이흐르니
그들의입은저주와독설로가득하다.
그들의발은피흘리는데날쌔며
간데마다파괴와비참을남긴다.
그들은평화의길을알지못하고
그들의눈에는하나님을두려워하는기색이없다.‘(로마서3장)
당시의기준으로바울은최고의교육을받은‘로마시민’이며엘리트였다.
그의날카로운통찰력과비판의내용은바로‘오늘’에대입해도전혀
이질감이없다.
인간의부패와악은그본질에서같기때문이다.
뿐만아니라부패와악은시간과함께진화해온것이역사이기도하다.
mamona는그때도,지금도그리고앞으로도변함없이인간세상에함께
있을것이다.
그래서철학은‘악도선과함께신비’라고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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