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素描.
세상에존재하는모든‘내용’은반드시그것을담는‘그릇-형식’을가지고있다.
형식자체는껍데기일뿐이지만그안에가지고있는내용때문에응분의대접을
받는것이다.
극단적인입장에서형식을배제하는사람들도있지만형식은내용을담기위해
반드시필요한것이기도하다.
대표적인예를들어보자.
평소그렇게자유분망한젊은이들도취업을위해‘면접’보러갈때에는예외없이
모두가정장을입는다.
좋은인상을주기위해성형수술까지하는경우도있다니놀라울뿐이다.
그들이가지고있는전문실력도정장이라는포장-형식을통해야만그가치를
드러낼수있는계기를만들수있기때문이다.
장사를치르고있는상가에붉은타이를매고가지않고검은타이를매는것도조의를
표하는형식의한가지다.
반대로결혼식에는검은타이를매지않는다.
일상안에있는이런형식은결코하루아침에생긴것들은아니다.

하나의사회공동체와그공동체의내용적수준을측정하는방법에는‘형식’이
어떻게지켜지고있는지를살피는것도중요한방편이될수있다.
특히전통적인형식의일상화가어떻게변하고있는지를살펴보면‘시대정신-
의식구조‘의변화까지도읽을수있다.
얼마전세계최고수준의‘베르린필’이비엔나에서연주회를가진적이있다.
‘캬라얀추모음악제’로서,
오자와의지휘로차이콥스키의교향곡6번‘비창’이연주되었으며,
‘안네소피무티’의협연으로베토벤의D장조바이올린협주곡이연주되었다.
음악회자체도세계최고수준이었지만청중들의옷차림이특히인상적이었다.
모든청중,남녀불문최고의정장을입고있었으며고가의장신구를착용한귀부인
들도있었다.
그들은정중했고,연주를진지하게들었으며절제되었지만,열열한박수도아끼지
않았다.
합스브르크가(家)의제국,‘오스트리아’를다시보는듯한착각이일어날정도였다.
최고와일류는정말저런것이구나하는감탄이절로나왔다.
음악회의분위기가그랬다.

같은날,
TV를통해KBS교향악단의연주도시청하게되었다.
우선규모면에서는KBS쪽이더컸다.
그러나연주실력은현저히큰차이가느껴졌다.
특히‘베르린필’의‘정제된소리’와KBS의‘생소리’가크게대비되었다.
실력,연습량,연륜모두에서생기는어쩔수없는차이였으며여기에KBS의
관료주의와노조라는울타리안에안주하고있는철밥통들의소리이기도했다.
그러나정작더충격적이었던것은객석맨앞자리에반바지의사나이가앉아있는
모습이었다.
심포니오케스트라의연주를들으러오면서반바지를입고나타났으니그상스러운
의식구조에대해어떤설명을할수있겠는가.
기초-기본에서허무러져있는것이다.
음악회에반바지를입고간게뭐가나쁘냐고할수도있다.
그런데,
면접보러가면서반바지에슬리퍼를끌고가는망나니는없지않는가.
때와장소는거기에걸맞는형식을요구하는게문명이고문화다.
음악회가정장을요구하는게그런케이스다.
넥타이를매지않으면입장자체를거부하는음악회도있다.
결혼식장에서반바지에슬리퍼를신고있는신랑이없는것이나,핫펜츠를입고있는
신부가없는것도마찬가지다.

그외형에서가장보수적인전통이유지되고있는곳이종교의‘예배시간’이다.
엄숙과경건이요구되는것은물론,
음악회보다더완고한복장을요구하는것도종교의‘예배의식’이다.
이는동서고금에차이가없다.
얼마전까지는분명그랬다.
그런데그예배시간에전같으면생각할수없는일들이자주목격되고있다.
우선젊은여자신도들이핫팬츠를입은채예배당에들어서는일이그렇고,
남자애들이모자를쓴채예배드리는모습이또그렇다.
(여자는모자를착용해도남자는벗는게관례다)
더기가찬것은커피같은음료를들고들어와홀짝홀짝마시면서예배를드리는
진풍경이다.
놀라운것은,
이런일이반복되는데도주의를주거나말리는사람이없다는점이다.
사실은몰라서그럴수도있지않는가.
교인들에게가급적듣기싫은소리를안하려는목회자들의보신주의는그래서악이다.
이대로간다면예배시간의진풍경은계속늘어날것이다.
형식이깨지면내용이망가지는건불문가지다.
그래서두렵다.

화가인아내는음악을들으면서그림을그릴때가있다.
그때음악은예외없이‘바하’의‘무반주첼로모음곡’이며반드시‘아너비스마’의
연주를듣는다.
첼리스트의선택에서아내는아주민감한편이다.
다른연주자들은스트링을사용하지만,아너비스마는‘카트-양의창자를꼬아만든줄’
을사용한다.
그소리가스트링보다부드럽고우아한것은더말할것도없다.
통계적인것이기는하지만,
아내가바하의음악을들으며그린그림들은하나같이좋은그림들이다.
그아내가이런얘기를했다.
‘한가지분야에서전문가가되는데는10년정도걸리지만,
어떤경지에이르는데는30년이상걸린다.‘
평생그림을그려온아내가이제야비로서물감섞는법을알것같다는것이다.
이얘기는아내가운전하는차안에서나눈대화다.
아내가자기차를가지고운전을시작한것이1974년.
그후36년간을운전했으니어떤경지에이른것도사실이다.
밤운전,비올때의운전,안개가심할때의위험한운전은반드시자기가한다.
산전수전,공중전까지다겪은백전노장인것이다.
그래서편한게바로나다.
내가처음운전면허를받은게1968년,42년전이며그때는1.2종구별이없었다.
그러나실제의운전시간은단연코아내가더많다.
아내에게있어자동차는또하나의자기공간이다.
온갖화구들,음식,음료,간식까지싣고벌이꽃을찾아다니듯그림소재를찾아
쉴사이없이돌아다닌다.
뒷트렁크에는대형비치파라솔까지싣고있다.
아내는오래동안그림을그리고차를운전하고다니면서사람이한분야에서어떤
경지에드는데는10년이아니라30년이넘는기간이필요하다는‘자기철학’을
가지게된것이다.
‘전문가’는많은데,진짜전문가가없는게지금의우리사회다.
모두가‘자격증-전문가’라는착각을하고있기때문이다.
자격증이무엇인가.
이제그분야에서시작해도좋다는인정일뿐이다.
그때부터30년은지나야경륜이쌓이는것이고그게곧‘달인의경지’인것이다.
점점더얄팍해지고있는우리사회를걱정하게되는소이도거기에있다.

나는개인적으로,
‘베르린필’의연주를시청할때제일먼저더블베이스쪽을본다.
앞줄외쪽에서있는건장한모습의청년‘에딕손루이스’를보기위해서다.
다른단원들과함께연주하고있는그를보면가슴이뭉클하고눈시울이뜨거워진다.
100여명의치열한경쟁자들을물리치고열일곱이라는어린나이에‘베르린필’의
최연소단원이된베네주엘라의영웅이‘루이스’다.
그는10살때부터타고난소질과상상을초월하는연습으로더블베이스의고수가
됐다.
‘엘시스테마’가배출한최고의뮤지션이그‘에딕손루이스’이며,다른한사람이
세계적인지휘자‘구스타보두다멜’이다.
서울평화상위원회는,
지난9월27일제10회서울평화상수상자로베네주엘라의‘호세안토니오아브레우
(Abreu71)’박사를선정했다.
아브레우박사는,
음악만이빈민굴의아이들을구할수있다는불타는신념으로35년동안‘엘시스테마’
를운영하고있으며그는오르간연주자이자석유경제전문가이기도하다.
2세부터17세까지의빈곤층과불우아동,그리고청소년35만여명이전국214개의
엘시스테마지부에서음악교육을받았으며,받고있다.
이중80%가빈곤층아이들이다.
그리고이들중90%이상이고등학교까마치고있다.

‘엘시스테마’가배출한세계적인지휘자‘구스타보두다멜’이지휘하는
‘시몬볼리바르청소년오케스트라’는엘시스테마에서교육을받은단원들로
구성되어있다.
이들의연주를들으면그뛰어난실력에놀라게된다.
규모도엄청나지만그박력과순수성은타의추종을불허한다.
아주특이한것은,
엘시스테마의음악교육방법이다.
악기에대한기초교육은1대1이지만,
악보를보면서연주하는교육은‘여럿이함께’다.
처음부터차이콥스키의교향곡4번악보를함께보면서합주를하는방법이다.
개인기와합주실력이함께향상될수밖에없는이방법은엘시스테마의특징이기도
하다.
바이엘과체르니에갇혀있는‘피아노학원’의죽은교육으로는결코체험할수없는
살아있는음악교육인것이다.
세상에서가장바쁜지휘자‘사이먼레틀’은년간몇주를,
클라우디오아바도는몇달을이들과함께지내면서‘큰음악’을지도한다.
그들은똑같이‘엘시스테마’운동의중요성을깨달았으며음악이빈민굴의악에서
아이들을구할수있다는체험적확신을가지고있는선구자들이기도하다.

‘가나한집의한아이가음악을배우는순간부터아이를둘러싼가족과이웃이
변하기시작한다.
음악은폭력이나마약,성매매,나쁜습관등아이의삶의질을떨어뜨리는모든것을
막아주는제1의예방책이다.‘
이것이아브레우박사의철학이다.
‘빈곤층청소년들에게인생의가치를일깨워줌으로서건강한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에봉사할기회를주려는나의노력이인정받게되어영광스럽다.‘
서울평화상수상소식을듣고그가한말이다.

지난8월,
박용준이지휘하는‘성남청소년오케스트라’의연주를시청하는기회가있었다.
베토벤의‘에그먼트서곡’,
모차르트의‘오보협주곡’,
그리고베토벤의9번교향곡‘합창’이레파토리였다.
100명정도의큰편성이었고,대부분이중,고등학생이었으며일부대학생들이
보이기도했다.
물론그들의연주는전문오케스트라에비해그수준이크게떨어지는것은사실
이었다.
그러나‘감동’은몇배더컸다.
그어려운악기들을연주하는개구쟁이들이그렇게대견할수가없었다.
어떤여중생은몸집이작아어린이용첼로를가지고나와뒷자리에앉아있었다.
그러나자세히보니포지션은정확했다.
50여명의시립합창단과4명의솔리스트가함께한이날의연주는시청하는사람들뿐
아니라연주에참가한청소년들에게도깊은인상으로남을것이다.
베토벤의9번교향곡을연주해본청소년이라면그들의성장은이미‘선순환’에
속하는것이기때문이다.
나는학생이었을때,헨델의‘메시아’와하이든의‘천지창조’를합창단의베이스
파트에서연주해본경험이있다.
그이후나는음악을더사랑하게됐고,지금도그때의기쁨과감격을간직하고있다.
교과부는소외지역에있는학교,폭력이많은학교를중심으로내년에50개의초등학교,
2012년에50개학교씩100개초등학교를선정,학교당1억원씩을지원해악기를사
들이고연습실을만드는데쓰도록할예정이라고한다.
예술강사를파련하는것은물론,인근지역음대생들을강사로활용하는방안도마련중
이라고한다.
이놀라운계획이꼭성공하기를기원한다.
음악은‘인간의영혼이거니는뜰’이기때문이다.
아브레우박사의말이그뜻이다.
악을막아내는1차적인예방책인것이다.
100개의초등학교에서오케스트라의연주가울려퍼지는날,우리나라의교육풍토도
바뀔것이다.
이세상에음악의힘을이길수있는것은아무것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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