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판으로42행성서를인쇄한것이1460년이다.
그이후서양세계는다른세상이되기시작했다.
일부극소수의권력이배타적으로독차지하고있던‘정보’가인쇄라는매체를
통해보통사람들도소유할수있게되었고그‘지식’은사람들을일깨워‘억압’에
대항할수있게만든것이다.
1789년에서99견까지의프랑스시민혁명을‘프랑스혁명’이라고부른다.
서양근대사에서영국의산업혁명과함께왕정과귀족의봉건제도가무너지는
역사적인뜻을가지는사건이었다.
비로서민주주의와자본주의가새시대를열기시작했고소수가아니라보다많은
사람들이‘자유인’으로인간다운삶을누리는시대가열린것이다.
‘정보’가세계를바꾼처음사례라고할수있다.
철옹성같던공산동구권이도미노현상처럼붕괴된것도결국은‘정보’가있었기
때문이며그때가장큰도구는‘FAX’였다.
말하자면‘정보’는세상을바꿀수있는막강한힘을가지고있다는사실이증명된
것이다.
지금우리모두는‘인터넷’시대에살고있으며,
‘인터넷’이세상을바꿔놨다는사실을실감하면서생활하고있다.
그리고거기에는긍정과부정의양면이있다는사실도체험을통해절감하고있다.
인터넷-internet은,
아르파네트(ARPANET)에서시작된세계최대규모의컴퓨터통신망을이르는용어다.
랜(Lan)등소규모통신망을상호접속하는형태에서점차발전하여지금은전세계를
망라하는거대한통신망의집합체가되었다.
전자우편-e-mail,
원격컴퓨터연결-telnet,
파일전송-FTP,
유주넷뉴스-UsenetNews,
인터넷정보검색-Gopher,
인터넷대화와토론-IRC,
전자계시판-BBS,
하이퍼테스트정보열람-WWW.
온라인게임등그이용범위는아주다양하며동영상이나음성데이터를실시간으로
방송하는새로운서비스가계속개발되어그범위를넓히고있으며이제우리들은
인터넷을‘정보의바다’라고부르기에이르렀다.
1969년미국국방성의지원으로4개의대학을연결하기위해구축한‘아르파네트’가
눈부신진화를거듭,지금에이른것이다.
‘DigitalNatives’라는용어가있다.
‘디지털원주민’이라는뜻으로어려서부터자연스럽게인터넷을접해활용하는‘N’
세대를의미하기도한다.
여기에대해성인이된후테크놀러지기기들을다루기시작한세대를‘Digital
immigrant’즉‘디지털이주민’이라고부른다.
두세대의결정적인차이는디지털환경과그이용에대한빠르고,느린반응에서
나타난다.
한쪽이즉흥적이고,표피적이고,선동적이라면,
다른한쪽은신중하고,생각하고,판단한다.
회사사무실의내책상에‘모니터’가놓인것이1974년봄.
지금으로부터36년전이다.
철강회사의‘자재관리부’부서장이었던나는철광석에서기름을닦는걸레까지
그아이템이5000을넘는온갖자재의관리와수불(受拂)이수작업(手作業)으로는
불가능하다는사실을절감하고있었다.
스테인리스강판에서부터대포의포신까지만들고있던회사도결국은컴퓨터
시스템을도입하기로결정했고,
합작파트너인‘마루베니’(丸紅,일본의5대상사중하나)와협의,일부원료를공급
하고있던히다찌(日立)의컴퓨터프로그램과시스템을임차해서쓰기로했다.
그때는아직우리나라에‘인터넷’이라는개념이없을때였다.
따라서나는나이와관계없이‘인터넷원주민1세대’에속하는셈이다.
그모니터는흡사‘요술상자’같았다.
아이템이5000개가넘는자재의입고,출고는물론,재과와필요재고의수량까지
일목요연하게보여주는기능은정말놀라운것이었다.
그이후내가개인적으로처음구입한컴퓨터는IBM의486세트와HP의프린터
였다.
당시로서는고가의첨단기종이었다.
그리고지금은DM-C2000의최신모델에Windows7을깔아서쓰고있다.
‘칼’은우리의일상에서없어서는안되는‘도구’다.
그칼도주부가들면모두를위한요리를만드는‘도구’가되지만,
강도가들면사람을해치는흉기가된다.
말하자면컴퓨터-인터넷도단지하나의편리한‘도구’일뿐이다.
어떻게쓰느냐에따라전혀다른도구가될수도있다.
‘칼’이라는도구도‘어른’이간직하면안전하지만‘철없는애들’이가지고있으면
사고가날수밖에없다.
이때의어른과애들은신체적이기보다는정신적인성숙과수준을의미하는것이다.
지금우리사회공동체가안고있는디지털문화의가장큰문제는인터넷이라는
막강한정보력을가진도구가일부사악한애들손에서사람의인격을해치는
‘흉기’로변해가고있는점이다.
심지어는‘자살’하는사람까지생기는수준의‘사회문제’가되었다.
‘광우병촛불’과‘타진요’사건은근자우리가겪었던대표적인‘인터넷사건’이라고
할수있다.
두사건의분명한공통점은과학적이고객관적인사실이아니라허구-허상에근거하고
있었던점이다.
국기를흔들고개인의인격적살인까지서슴치않는이광기(狂氣)는어디에서
시작되어어디까지가고있는것인가.
사회학자들인송호근,김수진교수의조사에의하면,
사이버공간의여론주도층은고작1%에불과하다고하며댓글을통해의견을개진
하는열혈네티즌이15%정도이고,85%의네티즌은침묵한채선동되고있다는
것이다.
그리고이들의특징은‘읽는것’을기피한다는것이며대학생100명중신문을
정독하는비율은10%가채안된다고한다.
선동을시작하는1%나,열열히반응하는15%나,여기에쏠림현상으로그들을
추종하는85%의가장큰속성은무엇일까.
두께가없는,얇은,경박성이며때로는천박하기까지하다.
그리고이런현상은객관적으로증명이가능하다.
고대,서강대,서울대,성균관대,숙명여대,연세대,이대,한양대등8개대학도서관
에서2008년1-7월기준,가장많이대출된책이‘해리포터시리즈’였다.
(한나라당권영진의원이공개한자료)
그들에게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연암박지원은장식용고전일뿐이다.
그얄팍한독서에서무엇으로안을채울수있겠는가.
빈깡통이되는건너무나당연하다.
선진국대학에서철학강의가굳건히그자리를지키는것은그게가장기본적인
지식의‘소스’이기때문이다.
우리에겐그것이없다.
안에든게없으니헛것이보이고그걸좇다보니함정에빠지는것이다.
문제는이과정이끝날때까지의사회적소모전과거기에들어가는엄청난사회
비용이다.
그건전부우리공동체가부담하는의미없는손실이며국가적인약점이되고있다.
해적(海賊)은,
해상에서다른배를습격,재물을빼앗은강도이며공해상에서사적인목적을위해
다른선박과그선박안에서폭행,약탈을감행하는자들이다.
인터넷이‘정보의바다’라면,
그바다에서사회공동체에대해서나특정개인에대해사실이아닌거짓을유포,
공격하는것은‘해적행위’이며함께살고있는이웃을인격적으로죽이는살인행위
라고할수있다.
악플러들에게시달리다스스로목숨을끊은사람은물론,일상적인사회생활을
할수없음만큼치명적인타격을입은사람들도부지기수다.
한번퍼진나쁜소문은엎질러진물과같다.
아무리‘진실’의그릇을가지고있어도이미쏟아진물은다시담을수가없다.
인터넷이라는정보의바다에서해적떼들이노리는게바로이점이며,
‘인터넷에올리겠다’는위협이바로그것이다.
해적의목적은약탈이며노예로팔수없는인간은전부죽인다.
해적은무법자들이다.
사이버공간의무법자들은사실‘해적떼’보다더무서운존재들이다.
나쁜소문을퍼뜨리는수단과속도에서는경찰도그들을따라가지못한다.
21세기인이대명천지에서도소말리아의악명높은해적들은군함사이를비집고
다니면서사람들을납치한다.
사이버공간도마찬가지다.
언제,어디서나해적떼들은있는법이며그숫자가줄지도않고,수많은사람들을
괴롭히고있다.
그들은어디에서왔을까.
가장대표적인원인은‘학교교육-공교육’이죽었기때문이다.
인간이다른사람들과더불어생활하는존재인이상,교육의기본은‘대인관계’다.
도덕과윤리과목이입시도구과목에밀려사라진후,지금그후유증이확실하게
나타나고있는것이다.
다른사람에대한예의,배려는인격교육의기초다.
나자신과함께다른사람도존중하는것이중요하다는교육이없었기에해적떼와
같은무차별공격을감행하는것이다.
‘민주시민’을교육하지않았기에‘책임’이무엇인지모르고있다.
자기의말과행동에‘책임’을진다는것은인격적인간의기본이며기초다.
더불어함께살고있는이웃을거침없이약탈하는해적행위는그일차적인책임이
공교육에있음을잊으면안된다.
반드시가르쳐야될것을가르치지않았기때문이다.
현역대학교수한분이신문에기고한글중에이런대목이있다.
‘학생들의생각이예상했던것이상으로꼬여있었다.
나라나사회문제에대해선관심조차없었다.
그러나큰이슈가있으면음모론같은것에쉽게빠져든다.
가치관은각자다를수있지만나라와사회에대한최소한의공감대는있어야하는것
인데지금대학에서그런공감대를찾기는쉽지않다.
어쩌다이지경이됐는지모르겠다.‘
‘꼬였다’는것은,
일이제대로풀리지않고뒤틀렸다는뜻과함께비위가거슬려마음이뒤틀렸다는
의미도있다.
‘뒤틀렸다’는것은,감정,심리의움직임이사납고험하게비틀어진것이다.
가장큰비극은,
이악심(惡心)은태생적이라는사실이다.
본인이아무리노력해도바뀌지않는다.
타고난성격이며성품이기때문이다.
세상만사를비뚤어지게보게되고거기에자기의사악한심성과안목을접목,
악(惡)을생산하고,또재생산한다.
그리고그악은진화를거듭,가장사악한수단으로개인,사회,국가를좀먹는것이다.
이악심의선동에놀아나는대다수는자기정체성(正體性)이부족한‘무리’로서
이들이좋은먹이가된다.
그악순환이지금의우리사회의모습이다.
악플러차단을‘포털-Portal’이책임져야한다고말하는인사들이있다.
순진하거나바보중하나일것이다.
포털은순수하게‘이익’을추구하는‘장사꾼’일뿐이다.
장사꾼에서‘도덕적’이기를요구하는것은소귀에성경을읽어주는것과무엇이
다르겠는가.
‘정보의바다’에서해적떼가활개를칠수있는것은바로‘익명성’때문이다.
익명(匿名)은자기의본래이름을숨기는것이다.
말하자면그들은그늘에숨어있다남의등에칼을꽂는행위와같은것이다.
이비겁하고비열한행위가이터넷이라는사이버공간에서개인,사회,국가를
마음대로흔들고있는것이지금의우리사회다.
검찰을비롯한사정기관에서는,
‘무기명투서’는그내용이아무리값진정보라해도접수자체를안한다.
‘익명’은수용하지않는것이다.
‘해적떼’를잡는방법은어려운것도아니고멀리있는것도아니다.
전면적이고철저한‘실명제-實名制’의실시가그것이다.
결코다른방법은없다.
자기이름으로,자기책임하에자기의의견을자유롭게쓰는것이진정한‘언론의
자유‘다.
자기글에대해실명으로자기가책임진다면해적떼는사라질수밖에없다.
사법의‘칼’이무섭기때문이다.
이문제에관한한‘대한민국의썪은국회’는다시한번매를맞아야한다.
하루가급한입법이이루어지지못하고있는현실이한탄스러울뿐이다.
2009년7월.
영국의국립도서관은약200억원의비용으로고전그리스어로쓰여진
‘시나이성서사본-Codex-Sinaiticus’를디지털이미지로변환해서웹사이트에
공개했다.
‘시나이사본’은현존하는,가장오래된성서사본으로4세기중반콘스탄틴대제가
재위할때제작된것이다.
나는이보도를읽은즉시해당사이트에접속,시나이사본을내모니터에뜨게
했으며이를확대해서읽어봤다.
고전그리스어를읽을수있는내게있어이사본을내서재에서읽을수있다는
사실은정말기적같은일이아닐수없었다.
지금도그때의감격을잊을수가없다.
처음뜬누가복음부분은전부가4행의대문자로쓰여졌으며당시필사자의정성이
묻어났다.
인터넷이아니면있을수없는놀라운사건인것이다.
인터넷이우리의편리한‘도구’가되는것은인간의생각에달린문제다.
또그렇게쓰여지도록관리할책임도우리모두에게있다.
앞으로인터넷의지평은더넓어질것이다.
그만큼부정적인측면도증가할것이다.
따라서이도구를선용하는인간의마음도더넓어지고다듬어져야된다.
‘실명제‘에서도자기이름으로당당히글을쓸수있는네티즌들이늘어나야하는
소이도거기에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