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만드는 기술.
모든사람들이행복을추구하는것은지극히자연스러운현상이다.
어떤사람은그행복을찾았고,어떤사람은찾지못하는게세상살이다.
어떤사람은자기가이미가지고있는행복을알아차리고,감사하고행복해하는데
어떤사람은상대적으로더많은행복의조건을가지고있으면서도그것을알아
차리지못해자기는불행하다고생각한다.
그렇다면우리는무엇을‘행복’이라고하는가.
사전적인의미는,
생활에서충분한만족과기쁨을느끼고흐믓해하는상태라고한다.
만족은마음에흡족한것이며,
기쁨은욕구가충족되었을때느끼는감정이다.
그리고흐믓한것은마음에흡족하여불만이없는것이다.
그래서행복의주체는‘마음’이다.
행복은물건처럼손에쥐는것이아니라자기가마음으로느끼는것이다.
‘세상만사마음먹기에달렸다.’는게그뜻이다.
중요한것은이때의‘마음’은남의것이아니라바로자기의마음이다.
따라서행복은주관적으로느끼는것이다.
행복의요체가거기에있다.

이세상에는200여개의나라가있으며,
우리는그중13번째로잘사는나라다.
생각해보면정말대단한일이아닐수없다.
우리나라에잡혀온소말리아해적이자기나라의웬만한호텔보다우리나라유치장이
더좋다고너스레를떨정도다.
세계의부자나라들클럽이라는OECD회원국은34개나라다.
우리는그안에서도13위의경제대국이다.
스칸디나비아에있는나라들과미국,영국,독일,프랑스는분명우리보다잘살지만
스페인,이탈리아,그리스등나머지는우리만못한것이한눈에보인다.
단두세대전,
우리는다음끼니를걱정했다.
고기는설과한가위에만맛볼수있었다.
대중교통수단이없어그게어디든걸어다녀야했다.
미군의군복을염색한옷을입고학교에다녔다.
지금분리수거로내놓는물건들은,그때라면전부집어가는유용한물건들이다.
자고일어나면방안의물이어는추위속에서살았으며제한송전으로석유등을쓰고
살았다.
지금우리네살림은,천지가개벽한만큼달라졌으며모두가부자들이다.

조선일보와한국갤럽,글로벌마켓인사이드가10개국5190명을상대로조사한내용
에서,
‘매우행복하다’고대답한한국인은7%였다.
브라질이57.2%로가장높았다.
우리국민의대다수는‘매우행복하지않은것’이다.
금방이라도싸울것같은표정을보면이수치가거짓이아님을알수있다.
일단시비가붙으면불같이커져서주먹다짐이오가는심성(心性)도마음속이
불편하고불행하다고느끼기때문일것이다.
세계에서13번째로잘사는나라의국민치고앞뒤가안맞는현상이다.
이번설문조사에관여한12명의해외자문단은,
‘한국인은급격한경제성장을겪는과정에서돈과행복의관계를제대로정립하지
못했다.이제는부(富)의증가가곧행복이라는생각에서벗어나진정한행복에
대해고민해야한다.‘고충고하고있다.
그들은체험을통해돈이곧행복이아님을알고있는것이다.
충분조건과절대조건의차이를알고있다는얘기다.
압축성장이건너뛴많은과정중돈과행복에대한‘상대적관계’도포함된다.
학습이없었기때문에오해가생긴것이다.
그래서이제는그것을바로잡아야한다.

‘매우행복하지못하다’고느끼는조건중,
첫째는,돈이곧행복이라는잘못된생각이다.
돈은행복할수있는많은조건중하나일뿐이다.
그래서돈은‘충분조건’이다.
돈의가장큰속성은‘구매력’이고그건곧‘편리’와직결된다.
그러나아무리편리해도그편리자체가곧행복은아니다.
값비싼진수성찬도소태처럼써서못먹을수있고,
값싼라면도꿀맛일수있는게그차이다.
돈이곧행복이라면그진수성찬은언제나맛이있어야한다.
다른하나는,
돈은벌어도벌어도끝이없다.
벌면더벌고싶은게돈이다.
그러나그누구도자기가원하는만큼의재물을쌓을수는없다.
로마인들은돈을‘소금물’이라고했다.
마시면마실수록갈증은더심해지고계속마시면결국은죽게된다.
돈이곧행복이라고생각하는사람은결코행복해질수없다.
돈이곧행복은아니기때문이다.
우리사회는’돈‘때문에다친사람들이많다.
고위직에있던사람들의끝이교도소담장안에서마감하는사례는얼마든지있다.
모두가‘돈’을탐하다나락으로떨어진것이다.
돈에대한집착은그렇게무섭다.

‘매우행복하지못한’또하나의이유는,
남과자기를끊임없이비교하는정체성부족때문이다.
비교는경쟁을낳고,
반드시이겨야한다는강박관념을가지게된다.
더나아가서는자기를‘남’을통해보려는착시현상까지가지게된다.
인간은그게누구든,
속이비어있으면남과자기를비교한다.
그속이꽉찬사람은‘나는나다’하면서산다.
이런사람들의안중에는비교해야할‘남’은존재하지않는다.
남과자기를비교해서스스로만족하는사람은없다.
박탈감이생기고그게열등감으로연결되면불행해지는것이다.
지금충분히행복하게잘살고있는데도남과비교하기때문에불행하다고생각하게
된다.
경쟁은발전의원동력이기도하지만그게지나치게되면경쟁자체가목적이되어
사람을못쓰게만든다.
강박관념은그다른이름이‘감옥’이다.
이증세가커지면우울증이생기고극단적으로는자살에이른다.
때문에남과자기를비교하는것은대단히위험한골목으로들어서는첫걸음이다.

세계에그유례를찾아볼수없을만큼우리사회만이가지고있는특징중하나가,
오직‘일등’만있는현실이다.
2,3등도사실은일등에버금가는실력임에도오직일등,최고만이존재하는게우리
사회다.
언제나일등은하나뿐이다.
나머지는그숫자가아무리많아도전혀어떤인정도받지못한다.
하나만‘행복’하고나머지모두는‘불행’할수밖에없는이상한풍토다.
‘일등’은철저히배타적이다.
나머지를포용하지않기때문에모두가더더욱일등만하려고한다.
그래서지금처럼살벌한사회가된것이다.
오직‘결과’에만매달리는,모든중요한‘과정’을인정하지않는무서운사회인
것이다.
사실,따지고보면‘과정들’이쌓여일등이나오는것이다.
그래서과정의중요성을깨닫고인정해야한다.
일등만사는세상은아니잖는가.
2등도3등도나름대로가지고있는가치와의미를인정해야한다.
1,2,3등모두가사실은우수한것이다.
그차이라는게종이한장정도다.
그걸알아야한다.

‘행복’은마음으로느끼는감정이다.
그렇다면행복을느낄수있는마음은만들어질수있는게아닐까.
휴넷의대표이사인조영탁이이런말을했다.
‘행복은마음먹기에달려있다.
행복은바이올린연주나자전거타기처럼배울수있는기술이다.
사람은행복해지겠다고마음먹는만큼행복해질수있다.
행복은지금당장취할수있는선택이다.‘
들어보면이게체험에서나온얘기임을곧알수있다.
‘행복은배울수있는기술이다.
행복은당장취할수있는선택이다.‘
무슨말인가.
이미자기주변에주어져있는것을알아차리고차지하라는것이다.
기술이무엇인가.
주변에있는것들을내생활에적합하도록이용하는수단이다.
행복은누가주는것도,멀리있는것도,내일나타나는것도아닌,지금내주변에
있다는통찰이다.
그래서선택이고기술이된다.
‘행복은배울수있는기술이다.’
정말마음에드는표현이다.
그게사실이기때문이다.

나는책을읽을때정말행복하다.
책을읽으면2천년,3천년전사람들과대화를나눌수있고,
지구반대편에있는사람들과도얘기를나눌수있다.
공맹의가르침은물론,
소크라테스와플라톤의가르침도받을수있다.
몰랐던것을알게되고,생각지도못했던것을깨달을때의기쁨은다른어떤것과도
바꿀수없다.
책을통해예수에게질문할수도있고베드로를흘겨볼수도있다.
법정의글들을읽으면서또다른신앙의길이있음을깨닫게되고장하준을읽으면서
우리가가진사회체제의깊숙한모순들을알게된다.
이제사람들은,
flipboard라는최첨단의앱으로글을읽지않고눈으로보기만한다.
보는것은일과성이고표피적이고표면적이다.
그러나읽는다는것은사고-思考,생각을요구한다.
보는것으로끝나는인생은표층에서마감하지만읽는행위는심층에이르게해준다.
인간은심층에이르지못하면‘인생’을알수없다.
겉돌다가는것이다.
앱의시대에종이책을고집하는이유가그것이다.
책은단지간단한상품이아니다.
책은대단히감각적이고문화적인인류의진정한유산이다.
글자와읽기가있기전시대를선사시대-역사가있기이전의시기라고말하는게그
뜻이다.
독서는인간이구축한대단히견고한문화의기술이다.
앱때문에종이책을손에서놓는것은반쪽인간이되겠다는얘기다.
앱과종이책은필요에따르는선택의조건일뿐이다.
어느하나만이절대적일수는없는게세상이다.

나는음악듣기를아주좋아한다.
아니음악을지극히사랑한다.
교향곡을연주하는관현악단-오케스트라의연주는내게각별한의미를가진다.
현악기,목관악기,관악기,타악기를연주해본경험이있기때문이다.
심도있는음악감상은그자체가이미‘철학’이다.
그래서음악은‘영혼이거니는뜰’인것이다.
훌륭한연주가주는기쁨은말로다표현할수없는높은경지의행복이다.
한편,학문의길은어렵고힘들지만,
그안에서느끼는‘자기성장’은곧기쁨이며행복이다.
자료들을찾는일,그것들을읽고소화하는일,그리고글을쓰는일련의작업은
인간만이할수있는문화적인기술이다.
책을읽으면서느끼는행복,
음악을들으면서느끼는행복,
글을쓰면서느끼는창작에의기쁨과행복,만족감은모두가일상적인내주변에
있는것들이다.
찾아내서활용하면‘행복’이고방치해두면전혀쓸모없는것들이다.
나는언제나‘값’과‘가치’에서단연코가치를선택하는생활을한다.
값-물질-돈은일시적이고가변적이지만,가치는영원하기때문이다.
인간을내적으로성장시키는것은언제나가치였다.
‘돈을사랑함이일만악의뿌리’라는바울의가르침은그래서참이다.
왜법정이‘무소유’를가르쳤겠는가.
법정은떠났지만그말씀-정신은지금도내곁에살아있는것은그것이‘가치’이기
때문이다.

며칠전조용현은자기의고정칼럼에서이런얘길했다.
장성축령산의세칸오두막집에서추운겨울을지내고있는데장작,등산화,뜨거운
차(茶)가자기의세친구라고했다.
눈쌓인언더길을오르내리는데는등산화만한게없고,
밖에서언몸도온돌방에돌아와마시는뜨거운차한잔이면녹고,
아궁지앞에쭈구리고앉아장작과참나무를땐후방에들어와구들장에등짝을
대고누우면온몸이따뜻해진다.
그는,추운겨울에는등만따뜻해도인생의반절은성공하지않았나싶다고썼다.
읽을수록깊은의미가느껴지는대목이다.
아무것도아닌일일수도있지만등만따뜻해도행복을느낄수있다는,
그‘기술’만은평가해야할것같다.
나도나대로의원칙이있다.
‘행복하기위해서는개성적(個性的)이어야한다’는게그것이다.
행복은주관적인자기의느낌이기때문이다.
나는,결코나와남을비교하지않는다.
비교할이유가없기때문이다.
그게악(惡)이아니라면,그리고남에게피해를주는것이아니라면나는내식대로
사는게행복의지름길이라고믿고있다.
잘살펴보면행복은아주가까이에있다.
그걸발견하는것도,나를위해활용하는것도,그래서‘기술’이다.
‘매화를찾아세상을헤매다돌아오니제집뜰에매화가피어있더라’는옛어른들의
말씀이바로그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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