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평등, 결과의 평등.
모든국가공동체의정치적‘틀’을설명할때,
대표적인것이‘기회의평등’과‘결과의평등’에대한것이다.
그리고이서로다른틀에대해가장설득력있는설명이백미터달리기이다.
일반적으로‘기회의평등’은보수파의정치적이념이며‘결과의평등’은좌파가
높이들고있는기치다.
지금의우리사회는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에서쉽게나타날수있는소득의양극화
때문에갈등구조가커지고있으며더이상‘공정성’이훼손되면안되는순준에와
있다고말할수있다.
빈부의격차는어느시대,어느사회에나있는것이지만그내용과대응에서는큰차이가
나기도한다.
빈부의격차와사회적인계층은정치체제가어떠하든절대로없어지지않는속성이
있다.
구소련시절의‘공산귀족노멘클라투라’와지금북한의김정일일가가여기에해당
된다.
똑같이보수파와진보파의대립도역사와함께하는사회현상의한가지다.
문제는‘균형’을잃었을때발생한다.
그균형을잡아주는힘이곧‘공정성’이며이는언제나집권세력이가지는숙제이기도
하다.
지금의한나라당이외면받는것은이숙제를풀수있는역량이없다고평가되기때문이다.
그렇다고야당인민주당이그것을가지고있다고말할수도없다.

때문에좌파가집권했다고해서즉시해소될수있는문제도아니다.
김대중,노무현의집권을‘잃어버린10년’이라고부르는게그증거다.
이데올로기-이념도다른것과마찬가지로양면성이있다.
시대에따라어느한쪽이더선호되는것은양면중한쪽이그시기에적합했기때문이다.
박정희의‘개발독재’가없었다면오늘의경제대국‘한국’이존재할수없는게그런
사례다.
이승만의‘자유민주주의’선택이없었다면대한민국은탄생되지도못했을것이다.
오늘의북쪽과남쪽을비교하면대답은분명하게나온다.
그누가이현상을부정할수있겠는가.
인문사회분야의‘논문-이론’중,그인용빈도에서최고의저작은칼마르크스의것들이다.
소크라테스보다앞서있다.
칼마르크스는,한개인의‘잘못된이념’으로2억이넘는사람들에게피해를입힌기록을
가지고있다.
징기스칸도,히틀러도여기에는못미친다.
구소련과동구권이붕괴된지금까지도마르크스,레닌주의의기치를높이들고있는좌파가
있다는것은마르크스,레닌의이념이꼬인사람들의‘수단-도구’가되었기때문이다.
한국좌파의‘이론적빈곤수준’은사실유치할정도다.
피나는연구를통한‘신념’이아니라필요에따라얻어탄무임승차이기때문이다.

이제백미터달리기로이이념전쟁의순기능과역기능을풀어보자.
기회의평등은,
모든사람이같은출발선에서같은시간에함께출발하는것을그핵심내용으로한다.
그출발,즉기회에서평등해야하기때문이다.
특혜와편법,부정부패,전관예우,낙하산인사,불공정거래등이법의심판을받는것은
기회의평등을훼손하기때문이다.
그래서함께,같은출발선에서는것은바로‘공정성’이된다.
물론이공정성과기회의평등을관리하는것은집권세력-정부다.
그최종책임자가민선으로직접선출된대통령이다.
또한쪽은자기선거구유권자들에의해직접선출된대의원-국회의원들이다.
입법부를구성하는것은물론,다수당은집권여당이되어국정운염의한몫을담당한다.
대한민국의정치적비극은이국회-국회의원들이무능하고부패하다는데있다.
‘표’밖에눈에보이는것이없으니다른것은생각할틈이없다.
물이새들어오는배위에서계파에따르는‘공천싸움’하기에여념이없다.
아무도위험에처한배는걱정하지않는다.

같은라인에서똑같은시간에똑같이출발한선수들은목표지점을향해달리기를시작
한다.
이게바로‘과정’이다.
과정에서가장중요한요소는‘변칙’이없어야하는점이다.
그래서민주주의는‘결과보다과정’이더중요하다고말해진다.
대표적인것이‘토론문화’다.
같은문제에대한서로다른‘시민의의견’을충분히듣고얘기를나누는게토론이다.
우리들에게‘토론문화’가없다는것은모두가인정하고있다.
내생각과틀리면바로적이되고,그건초전박살내야하는대상이된다.
‘냉면으로통일!’해야되지,거기에다대고‘난설렁탕’하면그건반역자가된다.
서로의생각이다르다는것은사실당연한것이다.
서로가다른것을인정하는것,그게민주주의시작이며끝이다.
한국의도로는‘무채색’이다.
모두가은색이다.
튀면안된다는피해의식이잠재해있기때문이다.
역사적으로모가나면정을맞는일이계속되었기때문이기도하다.
그러나어떤경우에도민주주의는혹독한토론과정없이는정치적으로발전할수없는
정교한시스템이다.

예를들어축구경기에서,
주심이나선심들은선수들과똑같이뛰지만시합은하지않는다.
변칙을막고,변칙에대해페널티를줄뿐이다.
정부는,말하자면축구경기의심판처럼우리사회의‘과정들’을관리하는역할을해야
한다.
달리기선수중‘부정한방법’을사용,남보다앞선다면응당제재를가해야한다.
옐로우카드와레드카드가그것이다.
근자프로축구선수들이돈을받고승부조작에가담한것은정말시사하는바가크다.
민주시민사회라해도그사회공동체를갉아먹는‘해충들’은얼마든지있다.
서양사회에서‘마피아’를근절하지못하는게대표적인사례다.
우리의경우는공개적으로,일상적으로국가공권력이해충들에의해무너지고있는게
그런현상이다.
‘과정’에대한관리가제대로이루어지지못하면결과에대한승복이어려워진다.
그리고그건사회의기반이흔들리고있다는반증이기도하다.
과정이공정하고엄격히관리됐다면우,열의결과에대해승복할수있다.
객관적설득력을가지기때문이다.
디테일이공정하고분명한데누가이의를제기하겠는가.

모두가똑같은출발선에서똑같은시간에출발했지만,
결승점에선1등과2등,그리고3등과기타가생긴다.
인간은그능력과기량,실력에서똑같을수가없기때문이다.
우리는그것을인간의우,열이라고부른다.
달리는과정에서핵심이되는긍정적요소는‘경쟁’이다.
역사적으로모든사회공동체와국가들은안팎으로‘경쟁’을통해발전해왔다.
이원칙은지금도변함없이마찬가지다.
오히려더치열해졌다고말할수있을정도다.
시장의속성도경쟁에있다.
경쟁에서이기는뛰어난인간,두뇌가많을수록경제적으로앞서는나라가될수있다.
지금은단순집약노동인‘가발’을만들어수출하는시대가아니다.
부가가치가높은상품은고급두뇌에서나온다.
우수한인력의수급이얼마나중요한것인지는긴설명이더필요없을것이다.
그러나모든경쟁에는반드시‘비인간적요소’가있게마련이다.
그만큼경쟁은냉정한것이기도하다.
그것을정서적으로순화시키는것이예술과종교,그리고스포츠의세계다.
발전한국가일수록이분야에더신경을쓰고투자를확대하는것도그중요성을
알고있기때문이다.

모든경쟁에서는반드시‘탈락자’가생기는것이원칙이다.
왜냐하면1등과2등,그리고3등은단지세사람뿐이기때문이다.
문화,문명은그‘탈락자’를관리하는수준에대한다른이름이다.
그게시스템으로서의‘복지’다.
인간이최악의상태에이르렀다해도동물처럼되어서는안된다.
인간에게는‘기본적인권’이있기때문이다.
국가가예산으로‘잠자리와먹을것’을마련하는게그때문이다.
나라에따라그내용과수준은크게다르지만‘복지’에대한정신만은마찬가지다.
근자서구의선진국중복지지출의과다때문에국고가바닥나디폴트수준까지간
나라들이나타나고있다.
‘가난구제는나라도못한다’는한국의속담은정말정곡을찌르는경구가아닐수
없다.
올해중앙정부의복지예산은86조원이며,지방자치제들도26.5조원이책정돼있다.
복지수혜대상자는전부990여만명,
사실국가재정규모로볼때큰지출이아닐수없다.
그럼에도불구하고‘탈락자’전부를카바하지못하는게현실이다.
모든나라가마찬가지다
가난구제는나라도할수없기때문이다.

결과의평등은,
출발이후서로다른과정이야어찌됐든모두가똑같이,나란히결승점에들어오라는
것이다.
거기엔1등과2등,그리고3등의우,열이란없다.
따라서경쟁도없고,그긍정적결과인‘발전’도없다.
생산시설의국유화와,
집단농장이그표본이며그결과는‘가난과고통의평등’이전부다.
과거의동구권과지금의북한이그렇다.
태생적으로이기적인인간에게
‘능력만큼일하고필요한만큼가져라가’는사회주의슬로건이먹혀들수있겠는가.
마르크스가논리적으로예언했던프롤레타리아트혁명도,자본주의의멸망도,사회주의를
거쳐도달하는공산주의세계도그래서실현될수없었던것이다.
그이데올로기-이념은발로뛰지않고,처음부터‘책상에앉아서’공상했던반인간적인
것이었다.
레닌도,스탈린도그중극단적인부분들을왜곡해서해석하고재생산함으로서무서운
비밀경찰이지배하는‘감옥국가’를만들었던것이다.
그잔재의하나가지금의북한이다.
진정한의미에서‘사회주의국가’는단한번도세상에존재한적이없다.
현실적으로존재할수없는시스템이었기때문이다.
그리고이는앞으로도마찬가지다.
그래서좌파의이념은언제나하나의‘이상’이지현실은될수없다.

한국의보수우파는,
그진정한‘보수적가치’를정체성으로가지는자기노력이크게부족했다.
‘표’를따라카멜레온처럼표변하는얄팍한술수들을보고있노라면분노와함께
구역질이날정도다.
한국의좌파는,
자기들이무엇을주장하고있는지도모르는‘국제미아’의수준이다.
사회이슈가있는모든곳에얼굴을내밀고눈도장만받으려고한다.
‘표’때문이다.그러니정체성이있을수가없다.
왜‘잃어버린10년’이라는성토가나왔는지반성해보는기미도보이지않는다.
그들이집권하면지금보다는분명히나아질것이라는믿음을가질수가없다.
그들의이합집산은낡고낡은필름,그대로다.
우리나라에서가장후진분야가종교와정치다.
특히정치는날이갈수록그역기능이커지고있다.
정치가발전하지못하면국가도발전할수없다.
경제규모가커지는것만으로는선진국이될수없다.
정치와경제,사회와문화가균형을가져야진정한의미의선진국이될수있다.
선진국문턱에서십년넘게헤매고있는게대한민국의현실이다.

인간은그게누구든자기의약점을인정하기싫어한다.
그게인지상정이기도하다.
지금의자기처지가그근본에서는자기에게책임이있는것이지만그걸알면서도
그책임을다른것에전가하는것도인간의심리다.
사회계층에서‘주변부인생’이되었을때,
사람들은체제를비판하고,좌파의유혹에쉽게넘어간다.
지금우리사회가겪고있는심각한갈등의근저에는이런부정적현상이크게자리잡고
있다.
한가지우리모두가똑바로알고있어야할사실은,
좌파의‘결과의평등’이현실화되면‘가난과고통의평등’이찾아온다는점이다.
그게얼마나가혹한것인지는오늘의북한을보면된다.
정말그렇게되기를원하는사람이있을까.
없을것이다.
그래서한국의좌파는위선적이다.
솔직하지못하다.
그렇다면기회의평등을수용하는좌파는없는것일까.
그게서구의‘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다.
한국의좌파들은먼저그들을연구하는게올바른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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