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의 노년.
우리부부는45년전인1966년5월에결혼했다.
그리고아내는1943년생이니세는나이로68세다.
말하자면물리적으로완전한‘할머니’인것이다.
자기키와비슷하게크고있는손녀까지있으며,‘할머니’로불리우고있으니
‘할머니’가분명하다.
그런데참으로이상한것은,
아무리뜯어봐도‘할머니’의모습이없다.
주변의거의모든사람들은한결같이아내를50대후반의‘선생님’으로알고있다.
평생,미술을가르치고있기때문에오래전부터아내의호칭은‘선생님’이다.
내일이면칠십을바라보는아내의모습은내가봐도50대후반의활발한여자다.
겉모습,말하는것,걷기등은젊은사람들보다더활기차있다.
운동을같이하는며느리나이의젊은이들이아내의보통걸음을따라가지못한다.
우리부부가함께등산하는경우나도아내의빠른걸음을따라가지못한다.
특히아내의정신세계-사고방식은아들이나며느리보다앞서있다.
세상을보는눈-안목도아주다르다.
아내에게물리적나이는별의미가없는것이다.
그래서나는아내를‘멈추지않는여자’라고부른다.
블로그에그런글을쓴일도있다.

가족과친척,그리고친지나친구의부인들,
그리고주변에있는아내나이의여자분들과아내를비교해볼때,
그차이는더구체적이고근본적임을알수있다.
언젠가나는아내의친구자녀결혼식에함께참석한일이있다.
그들부부는나와도친한사이였기때문이었다.
예식이끝난후아내의대학동창들이모여있는식당에들어섰을때,
거기모여앉은‘할머니들’은아내와는다른사람들이었다.
반대로말하자면아내는그들과전혀다른,세대차가날정도의‘별종’이었다.
한동창이이런말을했었다.
‘우린모두할망구들이고넌지금막공항에서온사람같아.’
실제로차이는그정도였다.
가끔대학동창회에다녀온아내는이런얘길하곤한다.
‘난동창회에나가면입을다물고있어야해,
처음부터끝까지화제는텔레비전연속극인데우린TV를안보잖아.‘
결국그들과아내의차이는생활환경의차이인것이다.
아내의‘세계’는남편인나와도아주다르다.
그래서우린서로상대의세계를인정하고,존중해주면서살고있다.

예를들어,
아내는쓰레기를버리러갈때에도옷을갖추어입고나간다.
물론가벼운차림이지만보색(補色)에는아주민감하다.
운동하러갈때와쓰레기를버리러갈때에는거의모자를쓰고나간다.
아내에게는아주특이한모자들이많다.
따라서모자,위아래옷,그리고신발까지도색을맞춘다.
그래서우리아파트에서아내는‘멋쟁이미술선생님’으로통한다.
아내가나이보다크게젊어보이는이유중하나는패션감각때문일것이다.
아내는평생자기수입이있기때문에좋은품질의의상을가지고있다.
문제는많지않은옷들로연출해내는‘패션감각’이다.
정장을차려입고외출할때,그놀라운컴비네이션에는나도놀란다.
그건배운것보다는타고난것이다.
그런데이상한것은아내는장신구를착용하지않는다.
귀거리나반지는물론,시계도차지않는다.
그리고아내에게는핸드백이없다.
대신종류도다양한배낭을이용하는데거의가고급품들이다.
배낭을메는패션이라면이미젊은이의모습이다.
게다가아내는스포츠형의헤어스타일이다.
그러니사람들이나이를짐작하지못하는것이다.

아내가운전면허를취득한것이1974년,
그때나는흰색의아름다운일제브리사를사서선물했다.
포니원이막생산을시작할때다.
아내의나이31세,그후37년간운전을계속하고있는것이다.
그동안자동차도7번바뀌었으며아내의운전은베테랑중배테랑이다.
무엇보다도아내는자동차운전을‘크게즐기는’타입이다.
특히밤운전,안개,비와같은악천후에대단히강하다.
런던에서차를렌트한후잉글랜드와스코트랜드를일주하는14일동안,
3.600여킬로를거의혼자서운전했다.
물론나침반과지도를읽고코스를안내하는일이어렵기때문에그일을내가맡은
이유도있지만도무지핸들을넘길생각도하지않았다.
70이코앞인여자가새벽에떠나섬진강에가서그림을그린후밤늦게돌아오는게
아내다.
아내는우리집차를‘식구’라고부르고또‘나의방’이라고도부른다.
내가차를쓰기위해문을열었을때발디딜틈도없을만큼온갖물건들이쌓여있다.
정말그건또하나의‘아내의방’인것이다.
그래서자동차는아내의‘날개’다.
때문에정비를철저히하고잘관리해야한다.
그게어디든그림을그리고싶을때면거침없이떠난다.
그러니늙을짬이없는것이다.

아내의영어사랑은나이가들수록더깊어지는것같다.
아내는휴식이필요할때바느질을하거나영문소설을읽는다.
소설이아닌번역서를읽는경우그내용이좋으면반드시외국에주문,원서를
구입해서읽는다.
아내가사용하는사전들을들춰보면그게얼마나오래동안혹사당했는지를금방
알수있다.
둘이서외국을여행하는경우,
특히영어권에서는아내가영어로쓴숙박계가현지인들을놀라게한다.
필기체이지만인쇄한것처럼아름다운글씨때문이다.
그때부터그들이우리를대하는태도가달라진다.
아내는외국서적을읽다가의문점이나더다른자료가필요할때직접영문편지를
쓴다.
그리고거의정중한답장을받는다.
우리딸이영어를잘하는것도제어머니를닮지않았나싶다.
사람이외국어에능숙하다는것은말하자면또다른세계를볼수있는눈-안목을더
가지는것이다.
내가성서를그리스어원문으로읽는것도마찬가지다.
번역이가지는어쩔수없는한계를넘어설수있기때문이다.
독서에열중하고있는아내의모습은‘학생’이지할머니는아니다.

아내는개인전경력이있는미협정회원이다.
현역화가인것이다.
남자보다여자의경우,나이들어서도이젤앞에앉아그림을그릴수있다는것은
분명축복이다.
그게‘창작의세계’이기때문이다.
아내는수채화전문이지만유화보다더질감이뛰어난그림을그린다.
아내는모든그림을반드시‘실물’앞에서그린다.
그래서아내의그림은회화성이크고설득력이있다.
지금집안에서사진을베끼는화가들이얼마나많은가.
전시회에가보면금방알수있다.
아내는그런그림들을‘죽은그림’이라고부른다.
우리집에는막움직이는것처럼보이는‘곤돌라’그림이한점있다.
아내는이그림을완성하기위해여러번베네치아를다녀왔다.
나목에쌓인눈을그리그위해그추운겨울차를나무앞에바싹대놓고
차안에서그림을그린다.
이젤앞에서그림그리기에몰두하고있는아내를보면정말‘행복’이무엇인지를
조금씩알게된다.
아내의‘빠레뜨’는마르는날이없다.
그러니늙을짬도없는것이다.

아내는아주노련한‘미술선생님’이다.
30년이상사람들에게미술을가르치고있다.
내가늘감탄하는것은,
아이들에대한아내의순수한사랑이다.
그리고아이들은그사랑을알기때문에한번맺어진인연은오래지속된다.
소재를준비하고,
개인별진도와지도방법을연구하고,애들이다녀간후학부모에게학습과정에대해
문자를보내는모든일에서아내는헌신적인전문가다.
어른제자들은각자의‘개성적인그림’을그리도록강조한다.
다른사람들에게무엇인가를가르치기위해서는반드시자기가먼저공부해야한다.
자료를모으고,정리하고,활용하는모든노력은그자체가대단한노동이다.
그래서아내는식사도잘하고잠도잘잔다.
식욕이없다,잠이잘안온다는얘기는모두가‘노동이부족해서’라는게아내의지론
이다.
여자가나이들어서도자기분야의자기일이있다는것은그렇지못한사람들과는전혀
다르게산다는뜻이다.
실로그내용적차이는엄청난것이다.

‘뒤에서보면이십대다.’
에어로빅을같이하는며느리나이의젊은이들이아내에게하는말이라고한다.
체중45킬로는변하지않고유지되고있으며지금도처녀때의치마허리를그래로
입는다.
그만큼아내의운동은지속적이고강도가높다.
‘어머니는운동때문에그만큼건강하신겁니다.’
내과의사인아들이하는소리다.
그런데,
아내는밖에서의매식을즐기지않는다.
불결하고비위생적이라는게첫째이유고,
조미료를많이사용,뒷맛이나쁜게둘째이유다.
그리고무엇보다집에서먹는음식보다는맛이없다는것이다.
그래서바빠지는게바로나다.
식사준비는거의전적으로내가하기때문이다.
최근의에피소드한가지.
그림을배우러오는아이중밭에서나는배추로직접김장을담그는학부형이있다.
늦가을,겨울김장을담그면우리두사람이겨우네먹을수있을만큼큰통에담아
보내준다.
그시골김치맛은사실별미라고할수있을정도다.
봄이되면다시가을까지먹을수있을만큼묵은지를보내온다.
나는묵은지가그렇게맛이있는줄을몰랐었다.

그묵은지에국내산돼지삼겹살을넣고김치찌개를끓이면평소김치를잘안먹는
아내도한그릇을깨끗이비운다.
묵은지와삼겹살은3대2비율로하되삼겹살은보통길이를3등분하는정도로크게
썬다.
묵은지와함께냄비에넣고중간불에오래동안볶는다.
김치와고기가완전히익으면내용물이겨우잠길정도로물을붓고약한불로오래
끓인다.
다음,소금으로적당하게간하면끝이다.
김치조각과삼겹살을포개어입에넣고씹으면누웠던사람도일어날정도다.
아내의까다로운입도묵은지와삼겹살찌개앞에서는군말이없다.
우리부부의식탁은아주검소하다.
고시히까리와찹쌀을조금썩은,맛이있는밥.
가끔서리태나강낭콩을섞기도한다.
그리고반찬은포인트가되는한가지,김치나깎두기,멸치볶음이밑반찬이다.
특히멸치볶음은나의‘특허’인데,
아직까지그걸싫어하는사람은보지못했다.
아내에게있어그멸치볶음은없으면안된는절대밑반찬이다.

한번은이런일이있었다.
아내는서울시내에나가면오후시간은거의광화문의교보문고에서보낸다.
그렇게책을좋아한다.
한번은주위가하도조용해서읽던책을덮고살펴보니사람이하나도없더라는
것이다.
급히출입구에가보니셔터가내려져있었다.
영업시간이끝난줄도모르고책에파묻혀있었던것이다.
겨우직원을찾아셔터를올리고아주늦게집으로돌아온일이있다.
아내는보석보다는책을더좋아한다.
그렇게태어난것이다.
대학동창들이‘할망구’이고아내가금방공항에서온사람처럼다르게보이는
이유가실로거기에있는것이다.
속사람이다르니겉사람도다른것이다.
나는아내를‘행복한사람’이라고부른다.
70이눈앞인데젊은사람처럼살고있다.
그러한일상의원천이‘그림’에있음은더말할것도없다.
아내는‘화가’다.
그래서나이에관계없이‘그림을그리는화가의삶’을살고있는것이다.
참으로많은젊은분들이아내를향해같은말을한다.
‘저도나이들어선생님처럼살고싶어요.’
그건진심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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