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느낌이다.
지난달25일,
경기도고양시화전동의쪽방촌,
4평정도의어둠컴컴한쪽방안에서장정6명이땀을흘리며일하고있었다.
물이새는벽과천정에석고보드와합판을잘라붙이는작업이었다.
두꺼비집과형광등도새로달았다.
사실이날의작업은도배만해주는것이었는데욕심이생겨서천정수리,벽바르기,
형광등과두꺼비집까지교체한것이다.
월회비18만원을초과,38만원이들어갔고모자라는17만원은6명이나누어서부담
했다.
지금까지이들이이렇게자기들돈으로수리한집이20곳이넘는다.
이6명은뺑소니,절도,사기등의죄로법원으로부터80-120시간씩사회봉사
명령을받은5명과법무부직원1명으로구성된‘반딧불봉사단’맴버들이다.
어떤외부지원도없이자기들이갹출한회비로열악한주거환경에있는어려운
사람들을돕고있는것이다.

봉사명령을받은5명은,
2009년6월법원명령에따라고양시백석동임대아파트를한달동안함께수리
하면서의기가투합됐다.
남을위해땀을흘려보자고뜻을모은것이다.
자기의생업을영위하면서한달에한번씩시간을내어남을돕자는의미에서
‘반딧불봉사단’으로이름을지었으며매달한번씩어려운처지에있는사람들의
집-거처를수리해주고있는것이다.
목수,도배공,어부,장판공,전기공인이들은하루벌어먹고사는어려운사람들이다.
전과가없는,단한사람이법무부보호관찰소책임관인윤현봉(40)씨다.
그는5명의계속되는봉사활동을보고‘나도끼워달라’고간청,맴버가됐다.
5명이가지고있는체험은비슷했다.
‘비록법원명령에따른강제적인봉사였지만난생처음,남을위해일하는기쁨을
체험한‘것이그것이다.
윤현봉책임관은이렇게말한다.
‘이들은진정으로행복한봉사에나선사람들이다.’
말하자면‘반딧불봉사단’의6명은‘행복’이무엇인지를체험으로깨달은사람들이다.

반딧불봉사단은하루벌어먹고사는어려운사람들이다.
돈이없는사람들인것이다.
한편으로그들은돈은없지만자기들이하는일,집을수리하는일에는자기분야에서
전문성을가지고있다.
남을위해봉사할수있는‘수단’을가지고있는것이다.
고양노인복지센터가사회봉사단체로등록하면지원해주겠다는제의도거절했다.
‘입소문나고사람북적거리면뭐든오래못간다’는게그이유다.
그들은매월각자3만원씩회비를내고있으며이돈으로한달에한번씩‘집수리봉사’
를계속하고있다.
공사비가초과되면이를나누어부담한다.
그런데도이들은이일을자진해서계속하고있다.
왜일까,
‘행복’하기때문이다.
남을돕는일을통해자기를다시발견하고,
자기의가치를발견하고,
자기의일을통해다른사람들이행복해지는것을체험했기때문이다.
그‘행복’이너무나값진것이기때문에이들은이일을놓지못한다.
‘삶’에의미가부여됐기때문이다.

모든인간은행복을추구할권리가있고,
자기가얻은행복을누릴자격도가지고있다.
그렇다면모두가애써추구하는그‘행복’은무엇인가.
거의모든사람들은행복하면,우선적으로‘돈’을생각한다.
돈은물질의대명사다.
그구매력은거의모든것을살수있으며소유할수있게해준다.
그래서소유가행복인줄로생각하는것이다.
‘니키쿠삭’은,
46세의평범한영국여인이다.
2009년그녀는43억7000만원의복권에당첨되어아루하침에거부가되었다.
미련없이직장을떠난그녀는4억9000만원짜리집부터샀다.
그후쿠삭은개들에게물려병원에입원했다가유방암진단을받게된다.
두번의큰수술과항암치료를받는동안매일병상에누워있게되었으며그때
그녀는복권에당첨되기이전의건강하고평범한생활이얼마나행복한것이
었음을깨달았다.
돈을많이가지고있는것자체는행복의절실한조건이안된다는것을알게된
것이다.
병상에홀로눕지않았다면영원히알수없는비밀을깨달은것이다.

병원에서퇴원한후,
니키쿠삭은최저임금에가까운시급6.5파운드(1만1000원)에하루10시간씩
일하는옛직장에복귀했다.
주변의따가운시선도아랑곳하지앟고열심히일했다.
‘평범한삶에서행복을찾고있다.
성실하게일하며친한친구들과정을나누며살수있어정말행복하다.‘
그녀의고백이다.
그녀는거액의당첨금을암환자들의치료에쓰고있다.
니키쿠삭에게있어‘소유’는행복의절대조건이되지못했다.
니키쿠삭은평범한사람이지만극적인체험을통해그진실을깨달은것이다.
옛로마에이런속담이있다.
‘재산은소금물이다.’
마시면마실수록더큰갈증을일으키는게소금물이다.
인간의소유욕은끝이없다는뜻이기도하다.
소유는또다른것들을소유하려는속성이있다.
따라서인간은그‘소유욕’에종속하게된다.
그래서‘수전노-守錢奴-돈을모을줄만알았지쓸줄을모르는,돈을지키는
노예라는말이생겨난것이다.

객관적기준에서볼때,
충분히‘행복’할수있는사람이그렇지못한경우가많다.
‘불만’을가지고있는게대표적인케이스다.
만족할수있는데만족하지못하고있다.
가장큰이유는‘감사’가없기때문이다.
다음은‘남과비교’하기때문이다.
‘감사하는마음’은행복으로들어가는문이다.
감사하면만족할수있고,눈이열려제분수를알게된다.
수분-守分이그것이다.
자기의장점을모르면남과비교하게된다.
좀어렵게얘기하자면자기정체성-自己正體性부족인것이다.
철학이아니더라도,
행복은철저히‘주관적인개념’이다.
상대적인것이아니기때문에다른것들,다른사람들과비교할수없는것이다.
비교해서도안된다.
‘내가행복하면’되는것이다.
다른하나는불만의정체에대해솔직하고정직해야한다.
원인이자기에게있는데,
그것을다른사람,사회구조,국가적인시스템에전가하면죽을때까지행복
근처에도가보지못한다.
행복할자격이없는것이다.

강영우(67)박사는,
백악관국가장애위정책차관보를지냈으며,
지금은UN세계장애위원회부의장이다.
그는시각장애인이다.
그의부인석은숙씨(69)는지난4일자서전인‘해피라이프-행복한인생’의인세와
개인연금등을모아1000만원을남편의모교인연세대에장애학생장학금으로기부
했다.
2009년에도자기의모교인숙대에1000만원을기부한바있다.
석은숙씨는이렇게말한다.
‘행복한인생이란자서전을썼으니행복의비결을말씀드릴께요.
행복은모두가마음먹기에달렸습니다.‘
그래서,행복은‘자기느낌’이다.
그느낌을얻는일들은뜻밖에도소소한주변사들이다.
아주가까이에,잘살펴보면행복들이자리하고있는것이다.
행복에는어떤정형-定形-정해진모양새가없다.
행복을아주큰무엇일꺼라고기대하는사람은행복을만나지못한다.
행복은작은부스러기들처럼우리주변에널려있으면서지혜로운사람에게
발견되기를기다라고있기때문이다.

나는일때문에극과극의세계를경험한바있다.
연탄을때는단칸셋방에온식구가살고있는가난에서부터재벌가의속내까지
들여다본게그것이다.
‘소유’는두가족을극명하게갈라놨다.
가난은,온식구들을하나로묶었으며그끈끈한정으로역경을헤쳐가고있었다.
재벌가는‘넘치는소유’가가족을‘비인간화’하여감옥에들어앉아서까지도
부모자식간,형제간돈때문에송사를계속하고있다.
그게누구든인간은돈이많아지면평범한일상에서일탈하게된다.
니키쿠삭이겪었던게바로그런일이다.
자기에게익숙한일상만큼편안한조건도없다.
계층간서로다르게사는게그때문이다.
인간이모여사는사회는그게끝나는날까지계층이있게마련이다.
정도의차이만있을뿐이다.
과거공산국가의‘노멘클라투라’가그사실을웅변으로말하고있다.
때문에자기가진정행복하기를원하는사람이라면남과자기를비교하면안된다.
남의행복과내행복은서로가전혀무관하며다르기때문이다.
나의행복은전적으로‘내행복’인것이다.
그만큼행복은주관적이다.

다시‘반딧불봉사단’으로돌아가보자.
그들은결코부자들이아니다.
하루벌이의일용직들이다.
그런그들이넉넉지못한제주머니를털어없는사람들의집을수리해주는이유는
무엇일까.
도배만해준다는게두꺼비집과형광등으로까지발전하는이유는무엇일까.
그들은,
돈을주고살수없는,최고의가치를‘맛’보았기때문이다.
자발적으로내손을내밀어더어려운사람들을도와주는‘기쁨’을안것이다.
그들은‘행복’을느낀사람들이다.
‘행복은마음먹기에달렸다’는게그말이다.
반딧불봉사단은그일을그만두지못할것이다.
세상어디에서도,어떤일을통해서도그런‘기쁨’을느낄수없기때문이다.
그래서그들이행복한것이다.
그래서그들은행복할자격이있는것이다.

식탁에앉아그음식에‘감사’하는살람은,
이미‘행복의문’을지난사람들이다.
그음식을단지‘내돈으로샀다’고생각하는사람은죽는날까지‘행복’을
느끼지못하는한계안에서살게된다.
감사는만족을,그리고그만족은행복에이르는지름길이기때문이다.
이것은모두가종교이전의근본적인문제다.
‘안토니구두’의김원길대표는,
철저히자수성가한대표적인인물이다.
안해본고생이없는사람이기도하다.
‘옛날에는돈많이벌면성공한것이었다.
지금은많이먹으면병나는시대다.
돈만벌면성공하는시대가아니다.
남을이기는것이성공이아니다.
존경받고,행복하게사는게성공이다..‘
이고백은파란만장한체험에서나온것이기에진실이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