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동사나명사뒤에붙여쓰며,
동사나명사가하는일을지나치게즐기거나좋아하는버릇을나타내는말이다.
예를들어,
방랑벽(放浪癖)은정처없이떠돌아다니기를좋아하는버릇이며,
주벽(酒癖)은술에취하면으레나타나는버릇이다.
대개는나쁜술주정을뜻한다.
청결벽(淸潔癖)은지나치게깨끗한것에집착하는병적인수준을이르는말이며,
도벽(盜癖)은남의물건을훔치는나쁜버릇이다.
한편낭비벽(浪費癖)은물건아까운줄모르고헤프게쓰는나쁜버릇으로현대인들이
보편적으로가지고있는것이기도하다.
벽이라는글자는,
병역疒변에밝을벽辟의합성문자로서사람이어떤일에대해가지는병적집착을
설명할때사용하는구실을한다.
따라서‘벽’에는좋은습관도있고나쁜습관도포함된다.
이세상에癖이없는사람은없을것이다.
종류와정도의차이는있겠지만벽하나없이무미건조하게사는사람은없다고
보는게옳을것이다.
주벽이나도벽,낭비벽은분명나쁜습관이지만어떤특정한물건을모으려는
수집벽(蒐集癖)은긍정적인습관이라고할수있다.
주벽이나도벽,낭비벽은대단히고치기가어려운나쁜습관들이다.
어떤의미에선벽은병적인집착일수있기때문이다.
반대로건전하고긍정적인벽들은사람의됨됨이를향상시키고삶에활기를불어
넣어주며그생활을발전시킨다.
인간이‘벽’을가지는것은관심과호기심이있기때문이며어떤일에집중하는
기능이있기때문이다.
이능력이건전하고긍정적으로작용하면효율과향상을가져오지만그반대라면
능히한인간을파멸시킬수도있다.
알콜중독이나게임중독,마약중독이그런것들이다.
따라서그게누구든건전하고긍정적인인생을살려고한다면’좋은벽‘을가질
일이다.
나처럼나이가많아은퇴-노후생활을하는사람에게있어‘벽’은대단히소중한
자산이된다.
벽은노후생활의방법과내용을결정하는기본요소가되며벽의유무와종류에
따라삶의질은전혀다른것이될수있다.
긍정적이고건전한벽이분명하면몸은나이들어도정신은계속발전할수있다.
사고방식은깊이를더해가며세상을보는안목과분별력은하루가다르게향상될수
있다.
벽이형식이되어내용을그안에담기때문이다.
우리부부는‘대학교회’에출석하고있기때문에젊은이들과의접촉이많은편이다.
나는그들과의소통에서크게어려움을겪을때가자주있다.
그들은생각을깊이할줄모르고,
상식이크게부족하며(어떤겨우엔무식한수준이다.)
세상을보는안목이아주좁다.
‘보는것’에만익숙하고‘읽는것’이부족한사람들에게나타나는‘천박함’이그것이다.
그들에게는IT에대한중독현상은있어도‘벽’은거의없는것같다.
나이든사람도텔레비전리모컨을손에쥐고소파에앉으면그걸로그인생은종친것이나
마찬가지다.
‘벽’이없기때문이다.
그래서리모컨을경계해야한다.
크게볼때,나는네가지벽을가지고있다.
지금의내노후는그벽들이있어풍요롭고행복하다.
그첫째가‘독서벽’이다.
인간에게있어‘읽는기능’은문명을발달시킨원동력이다.
그중요한기능을가능하게해준게책이다.
책은글자가발명되고인쇄술이생기면서나타난‘문화적인산물’이다.
책은인류의동서고금을망라하는최고의수단이되어세계와세대를소통시키고있다.
내가가장좋아하는게책이고,
지금도가장많이사는게책이며,가장많이가지고있는것도책이다.
책에대한사랑과집착은어려서부터지금까지변함이없다.
지금도연간100권이상의신간을사서읽는다.
사실책을읽는기쁨은다른것과비교할수가없다.
내가책을좋아하게된것은엄친때문이었다.
아버지는당신이읽으시는월간지(政經)와내가읽는‘새벗’을반드시직접
내가책방에가서사오도록했다.
내가책과가까워질수있도록배려하신것이다.
그래서내가받은가장큰유산이곧책을좋아하게된‘독서벽’이다.
나는초등학교4학년때엄친앞에서먹을갈아붓으로쓰면서천자문을뗐다.
한문은책을깊이읽는데큰도움을준다.
책을읽으면모르는것을알게된다.
그깨달음은가장값진기쁨이며보람이기도하다.
지식을더해가는만족감은독서에서만얻을수있는수확이기도하다.
내가다른사람들로부터자주듣는말이‘박학다식’하다는것이다.
그건전적으로책을많이읽기때문이다.
책안으로들어가면,
시간과공간을초월할수있다.
3천여년전의수메르사람들과대화를나눌수있고,
알렉산드리아의그유명한고대도서관에도들어갈수있다.
소크라테스와얘기를나눌수있고,
예수와대화할수도있다.
파피루스와양피지로기록된모든옛이야기들을접할수도있다.
나는지금도변함없이종이책을읽는다.
독서하는방법에서그게정석이기때문이다.
책은문화적인산물이기때문에없어질수가없다.
밑줄을긋고,서가에서다시꺼내읽고,참고자료로활용하고,장서가지니는무게와
안정감을즐길수도있다.
이세상에책이가득꽂혀있는서가(書架)보다더장중한모습은달리없다.
책을읽지않는다는것은육신이밥을먹지않는다는것과하나도다르지않다.
정신에도양식이필요한것이다.
독서가없는사람들의정신적피폐가그래서생기는것이다.
대학이상의고등교육을받은사람들이서재가없다는것은정신적으로가난하게살기
때문이다.
다음이‘음악벽’이다.
예를들어,대규모의교향악단과합창단이베토벤의9번교향곡‘합창’을연주하는
경우,내가그연주를듣는수준과방법은거의전문적이다.
제1바이얼린과제2바이얼린의멜로디를구분해서들을수있으며,
비올라와첼로의소리도구분해서들을수있다.
더블베이스의음정이불안한것도지적할수있다.
내가첼로라는현악기를할수있기때문에현악기군의소리들을나누어듣는것이다.
풀륫,클라리넷,오보에,바순의목관악기군은Bb의클라리넷을오래동안연주했었기
때문에더날카롭게구분해들을수있다.
후랜치혼,트럼펫,트럼본,튜바는내가직접연주했던금관악기들이다.
합창은,베이스파트에서하이든의‘천지창조’와헨델의‘메시아’를연주했었기
때문에4부합창의음정과음색까지나누어들을수있다.
그래서나는모든음악을들을때아주즐겁고행복해진다.
다른사람들보다훨씬높은수준에서음악의진수를맛볼수있기때문이다.
내게‘음악벽’이있음을늘감사하고있다.
내가영화라는‘장르’에서‘예술성’을깨달은것은,
유현목감독이만든‘오발탄(1961)’과‘잉여인간(1964)’이었으며,
우리것의진정한아름다움을알게된것이임권택감독이1993년에연출한‘서편제’
였다.
내게는‘영화벽’이있다.
지금도엄선하고엄선한영화400여편을소장하고있으며계속좋은영화들을수집
하고있다.
나는이영화들을DVD풀레이어로감상한다.
그것은내가보고싶을때볼수있고,재미있는대목을반복해서볼수있기때문이며
좋은대사들을카드에옮겨적기위해서다.
같은영화라도얼마든지다시,재미있게볼수있고특정한대상,사람,풍경(사막등),
건물,소도구들,그리고색깍이나디자인에대해서도집중해서본다.
같은영화라도보는각도를달리하면더재미있게볼수있다.
한국어,일본어,영어의더빙을읽고보는재미도각별하다.
‘벤허’‘사운드오브뮤직’‘아라비아의로렌스’같은영화들은그내용과규모에서
다시만들어지기어려운명작들이며,
‘아바타’는영화사에하나의획을긋는작품이기도하다.
최근의‘소스코드’는차원을달리하는SF의새영역을보여줬으며,
굿윈대위역을맡은verafarmiga는생애최고의연기를보여주고있다.
‘추격자’와‘황해’를연출한나홍진감독과‘내깡패같은애인’의김광식감독은
우리가지켜봐야할실력파들이다.
나는‘영화광’이라는소리를자주듣는다.
그만큼영화를좋아하고자주보고있다.
앞으로도마찬가지일것이다.
내게있어영화는상상력의보고이며계속새글을쓸수있는거대한창고이기도하다.
그게누구라도나이가들면반추(反芻)할게있어야한다.
말하자면추억의되새김질인것이다.
내게는그게평생해온‘바다낚시’다.
체력이달려낚시는못하지만낚시에대한반추는큰즐거움중하나다.
낚시장가득히담겨있는,온갖손때묻은도구들을보고만지면더그렇다.
온갖풍상을다겪은낚시대들,언제나곧쓸수있도록손질된수십개의릴들,
여러나라의낚시줄들,그리고종류도다양한낚시바늘,내가개발한채비가그것들이다.
그외에도여러가지소도구가아주많다.
나는동해에서의던질낚시,남해에서의찌낚시,서해에서의배낚시를모두해봤으며
가장나중에는덕적도근해에서오래동안배낚시를했었다.
그때주로잡은것이우럭이었으며,
나는이우럭낚시에대해정말많은연구를했었다.
우럭배낚시는음력으로한달에두번,조금,무시에서한물,두물,세물까지할수있다.
밤하늘에뜬달이정확히반달이면그날이바로조금이다.
세물이지나면물이너무빨리흘러채비를바닥에닿게하기가어렵다.
인천을기준할때간만의차이는최대가9미터다.
우럭이가장잘잡히는계절과물때,
새벽에서저녁때까지의시간대별어획고의차이,
날씨가맑았을때와흐렸을때,그리고비가올때의차이,
밀물때와썰물때,그리고바람이없을때와있을때의차이,
가장잘무는미끼,바닥을기준할때의채비의높이와고패질의속도,
낚시를맨목줄의굵기와길이,
채비의여러가지변형과다른자료들을기록으로정리,통계를냈으며여기에근거해서
가장잘물리는기본채비를개발했다.
그리고그채비를우리팀모두에게지급,그전과비교한결과어획량에서30%이상의
차이가났다.
사실그건대단한결과인것이다.
선장들도내가개량한채비를인정,나를‘기술자’라고불렀다.
다른별명하나는‘국제신사’인데그건내가쓰레기를전혀남기지않았고,
손바닥보다작은고기는잡지않았기때문이었다.
낚시방법에대한연구는정말무궁무진하다.
그즐거움또한마찬가지다.
고기만많이잡겠다면그건어부지낚시꾼은아니다.
모든‘벽’은하루아침에만들어지지않으며,
억지로급조되지도않는다.
그건긴시간을통해쌓이는이끼같은것이다.
‘벽’이중요한것은,
그게긍정적이고건전한것이라면우리의삶을풍요롭게해주기때문이다.
이세상에늙지않는사람은없다.
지금은평균수명이길어졌기때문에노후생활도아주독립적이고개성적일것을
요구하고있다.
노인정,지하철,자식에게얹혀살며등이굽도록애업어주기,하릴없이리모컨을
손에쥐고소파에앉는것은모두가바람직스러운노후는아니다.
노후는건강,경제력과함께긴세월을살아야하는‘콘텐츠’가있어야한다.
그중하나가바로‘벽’이다.
몇가지의좋은벽만가지고있다면그노후는풍요롭고행복해질수있다.
노후를위한건강도,돈도,벽도모두가그것들을준비할수있을때해야된다.
시간은흐르는것이기때문에되돌릴수가없다.
하루하루미루고,적극성을가지지않으면어느날갑자기맞딱뜨리는사고처럼
우리들을덮칠수있는게‘불안한노후’다.
바야흐로모두가자기의‘벽’을준비해야하는비상한시대를살고있는게우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