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친께서는1950년7월,6.25전쟁에서남침하는인민군과교전중전사하셨다.
그이후‘남은가족’인우리가겪은극심한고통과가난은어머니의표현대로‘소설로는다못쓰는’수준이었다.
가난한국가는우리들을돌볼겨를이없었고방치된유가족들은지금거개가주변부계층으로추락했다.
광복후,친일파의자식들은입신양명하고독립지사의자녀들이주변부계층이된것과하나도다르지않은역사의아이러니가그것이다.
어머니의피나는노력으로우리들은고등교육까지받을수있었고,주변부로밀려나는화는당하지않았다.
지금내아들은심혈관전문의이며그아들이결혼해서손녀를낳았다.
우리가족은해마다봄과가을,두번부모님이계신동작동국립묘지로성묘를간다.
손녀가돌이지났을때나는그아이를안고부모님앞에무릎을꿇고아뢰었다.
‘아버지,어머니이애가제손녑니다.
두분에게는증손녀가됩니다.‘
그리고,절로눈물이나왔다.
그건정말회한의눈물이었다.
전쟁의고통을겪었던중학생이할아버지가되어흘리는눈물인것이다.
이번가을,
전처럼부모님께성묘를갔을때,나는이제초등학교4학년이된손녀의손을잡고아버지의
묘비뒤에새겨진글들을읽으면서증조부에대한얘기를들려줬다.
그게역사이기때문이다.
1950년7월1일,증조할어버지는남침을시작한인민군과의교전에서전사하셨으며,그장소가경기도광주라는사실도알려줬다.
그리고평생자식들을키우며고생하신증조할머니가이곳에합장되어있는사실도들려줬다.
내손녀는성격이차분하고영민한아이다.
공부도잘하고,코넬대학병원에서의연수때문에도미한제아버지를따라뉴욕에가서1년동안미국국민학교에다닌일도있다.
그런데할아버지의긴얘기를다들은손녀의입에서는,
내게는물론,우리모두에게,대한민국이충격받을수밖에없는질문이나왔다.
‘할아버지,인민군이뭐야.’
역사를잊으면,그역사는되풀이된다.-yoro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