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소묘.
짜장면,

내가중,고등학생이었던1950년대초,

궁핍한생활에서가끔씩이나마‘중국집’에가는것은커다란호사였다.

친구몇이어울려어렵사리생긴용돈을가지고중국집에가곤했다.

그때의중국집은거의가중국인이주인이자요리사였으며빈약한4인용식탁서너개가보통인좁은공간이었다.

이상한공통점은거개의중국집입구가낡아빠진유리창미닫이문이었으며대부분의중국인들은밀가루푸대로만든앞치마를두르고있었다.

우리들이들어서면‘장궤’는웃으며우리들을맞았다.

‘장궤-掌櫃’는중국사람을부자라는뜻으로속되게일컽는말이다.

‘어서와해.’

그리고우리들이식탁에자리잡고앉으면,

‘뭐먹어해.’하고묻는다.

우리가짜장면을주문하면,장궤는허리높이의밀가루투성이인탁자앞에서서밀가루푸대로덮어놓은반죽을적당량칼로잘라낸다.

그리고는그반죽을슬슬밀어길게만든후양손으로두끝을잡고늘려가면서탁자에때리기시작한다.

손님인우리들은그장궤의손에서반죽이가는국수가되는전과정을보게된다.

그게수타국수인것이다.

그리고는이미불위에서물이끓고있는냄비에그국수를삶아낸다.

다음은무쇠로된특유의‘웍’에춘장을볶다가돼지고기와함께썰어놓은야채들을쏟아붓고요란하게볶는다.

그때쯤이면우리들은그고소한냄새때문에입안에침이가득고인다.

삶은국수를사발에나누어넣고그위에막볶은짜장을얹어우리들에게가져다준다.

그짜장면의맛,

궁핍한시대가아니라해도그건천하일미다.

연전,갑자기집에손님이왔고,점심때가되자그손님은짜장면을시켜먹자고제안했다.

배달된짜장면을보는순간,그건전혀짜장면이아니었다.

기계국수에콜탈을쏟아부은것이었다.

그런데도그짜장면에이미중독된젊은손님은잘먹었지만우리부부는한젖가락뜨고는

더먹을수가없었다.

지나치게쏟아부은조미료가입안을마비시키는것같았다.

비교할수있으면진짜와가짜를가릴수있지만비교할수있는‘연륜’이없으면그게최고라고생각할수밖에없는일이다.

중독현상이그런것이다.

내가주말마다장을보러가는홈풀러스안에는제법음식을맛있게하는중국음식점‘만다린’이있다.물론한국인이운영하는집이다.

그집메뉴에는짜장면과삼선간짜장면만있다.

어느날,나는이미상당히친해진점장에게‘소고기유니짜장면’을만들어달라고했다.

점장은난처한얼굴로,

‘짜장이나간짜장은미리많이볶아놓고쓰기때문에별문제가없지만소고기유니짜장은그것만별도로볶아야하기때문에시간상어렵다.’는것이었다.

그날은일단물러났지만,

그후계속해서요구했고,급기야점장은주방으로들어갔다.

시간이길어진걸보면주방장과의얘기가잘안풀렸다는뜻이다.

그래도나는굽히지않고갈때마다계속요구했고,점장은다시주방장과담판,나한테만해주기로합의를봤다.

값은8천원으로정했다.

나는지금매주말,만다린에서내게만만들어주는소고기유니짜장면을,그깊은맛을음미해가면서즐겁게먹고있다.

물론지금도그집메뉴에는‘소고기유니짜장면’은없다.

먹는이야기한가지만더,

얼마전우리집에는전남구례에서택배로보낸달걀한상자가도착했다.

스티로풀상자이긴했지만몇개는살짝깨져있었다.

그달걀은내가어렸을때헛간의닭장에서꺼내오던,암탉이막낳은달걀과똑같았다.

조금작고,껍질이단단하고,그리고그고소한맛도똑같았다.

아내가친구의소개로주문한달걀이었다.

그닭들은사료가아니라들과산으로다니면서먹이를찾아먹기때문에달걀이그렇게맛이있다고한다.

글자그대로자연산유정란인것이다.

가격도저렴하고혼자먹기에는너무아까워서내블로그를사랑해주시는독자들에게알리고싶었다.

‘산,들좋은달걀’010-6234-4877김영복.

패션쇼.

지난10월17일,

서울대치동의‘서울무역전시장’에서는‘2012봄-여름서울패션위크’가개막됐다.

국내정상급디자이너27명이참가하는‘서울컬랙션’.

5-10년차디자이너10명이참가하는‘테이크오프’.

5년미만신인디자이너10명이참여하는‘제네레이션넥스트’로구성된국내최대패션쇼행사였다.

일간신문한면을다장식한그기사에는10컷의사진도함께실렸다.

가끔텔레비전을통해보게되는패션쇼나신문의사진을보면거기에는예외없이전통적인‘공통점’이있다.

우선여성모델들이하나같이깡말라있다.비린내가날정도다.

작고하신앙드레김이이런얘기를한적이있다.

‘영양실조가된모델지망생을병원에입원시켜치료하는일이있다.나는개인적으로그렇게말라야하는이유를모르겠다.’

지나치게말라야한다는것은그게비일상적이라는뜻이다.

보통여자들은그렇게까지마르지않는다.

다음이그모델들의‘무표정’이다.

젊은여자의얼굴에표정이없다는것은‘죽은얼굴’이라는의미다.

왜그렇게무서운얼굴을해야하는가.도시알다가모를일이다.

다른한가지는,

그모델들이입고나오는옷들이다.

정말,단한가지도일상에서그대로입을수있는옷은없다.

어떤여자가그런옷을입고거리에나설수있으며사무실에갈수있겠는가.

일상에없는것은거짓이다.

그래서나는우리나라의패션쇼를볼때마다우리와는무관한‘그들만의잔치’라고생각한다.

치약의튜브까지몇번씩눌러보는무서운보안검사를두번이나받고나서야‘엘알’에탑승할수있었다.

취리히를떠나텔아비브로가는이스라엘항공기는단연유대인손님이많고,그들은아주무례한탑승객들이다.

앞좌석의유대인과중간좌석의유대인이일어선채화통같은목소리로얘기를나누고,나머지도비슷하게소란스러운게기내풍경이다.

몇번의경험을통해각오는했지만역시불쾌했다.

그런데화장실에가려고기내의뒤쪽에가보니제일뒷좌석한줄에완전비키니의젊고아름다운여자들이앉아담배를피우고있는게아닌가.

자세히보니서비스를끝낸스튜어디스들이었다.

기내가약간덥긴했지만그건정말뜻밖의풍경이었다.

놀래는내앞에서그들은깔깔대며웃기까지했다.

일진이좋은날은좋은일도계속해서생기는법.

텔아비브(봄의언덕이라는뜻)에서식사를하기위해들어선식당은크고깨끗했으며웨이터는지중해가내다보이는좌석으로나를안내했다.

음식을주문하고기다리는데갑자기식당중앙통로에아가씨들이줄지어나타나는게아닌가.이미음악은달라져있었다.

그게바로이스라엘식패션쇼였다.

그아가씨들은젊고,눈부시게아름다웠으며손님들에게웃음과키스와윙크를보냈다.

깡마른여자는하나도없었다.

모두가팔등신미인에적당히살이붙은건강한모델들이었다.

그리고그들이계속걸치고나오는옷들은누구나쉽게입을수있는일상적이고실용적인디자인과색상이었다.

오래동안나는스페인여자가가장아름답다고단정하고있었다.

이기준이바뀐게‘모스크바대학’에서다.

러시아의젊은아가씨들은세계최고의미인들이다.정말아름다웠다.

놀라운것은,그들도중년이되면절구통같은허리가되고우악스럽고억척같은‘여편네’로변한다는사실이다.

세상에탱크같은러시아의중년여인들을당해낼것은아무것도없다.

레닌도스탈린도안된다.

진단.

나는갈등과혼란으로점철된지금의우리사회를크게세가지로정의한다.

‘경망(輕妄)스럽다’가그한가지다.

그하는말이나행동이방정맞다는뜻이다.

방정은신중하지못한것이다.

그어디에서도‘무게’를느낄수가없다.모두가가볍게,반사적으로,말과행동을하고있다.

신중하지못하면실수는따라오게돼있다.

컴퓨터와휴대폰을통해나타나는온갖경망스러운말들은그도가지나쳐무서울정도다.

도대체어쩌다가사회가이렇게경망스러워진것일까.

‘보기’만있고‘읽기’가없어졌기때문이다.

눈으로보기만하는것은찰라적이고그때뿐이다.

반면읽기는생각을해야하고스스로판단하도록해준다.

그다음이‘잔망(驏妄)스럽다’이다.

경망과비슷한뜻이기는하지만이말에는맹랑하다는의미가포함된다.

이치에맞지않는당돌한언,행이있다는뜻이다.

상식과원칙에서어긋나는일이자주벌어지는게그때문이다.

어떻게중학생이자기학교교감을때릴수있는가.

우리가막장에살고있다는증거다.

마지막이‘표피(表皮)적’이다.

온갖껍데기는화려하고요란한데그아래의내용은빈약하기짝이없다.

표피적인것은찰라적이고자극적이고선동적이다.

경망과잔망,그리고표피적인것들의공통점은‘깊이’와‘무게’가없는점이다.

그래서사회가온통경박해지는것이다.

지금우리사회의온갖갈등과혼란의가장큰원인은깊이와무게의부족이다.

말도안되는온갖괴담들이먹혀드는게그래서이다.

지금우리모두는‘속도가깊이를잠식하는위태로운시기’를살고있다.

그래도나는비관하지않는다.

지금과같이정(正)이깨지는반(反)의시대가지나가면합(合)의세계가오기때문이다.

그역사적이고변증법적인거대한흐름은그무엇으로도막지못한다.

한가지크게아쉬운것은,그리고비극적인것은,

이럴때앞장을서주는‘큰그릇’이없다는점이다.

충격.

엄친께서는1950년7월,6.25전쟁에서남침하는인민군과교전중전사하셨다.

그이후‘남은가족’인우리가겪은극심한고통과가난은어머니의표현대로‘소설로는다못쓰는’수준이었다.

가난한국가는우리들을돌볼겨를이없었고방치된유가족들은지금거개가주변부계층으로추락했다.

광복후,친일파의자식들은입신양명하고독립지사의자녀들이주변부계층이된것과하나도다르지않은역사의아이러니가그것이다.

어머니의피나는노력으로우리들은고등교육까지받을수있었고,주변부로밀려나는화는당하지않았다.

지금내아들은심혈관전문의이며그아들이결혼해서손녀를낳았다.

우리가족은해마다봄과가을,두번부모님이계신동작동국립묘지로성묘를간다.

손녀가돌이지났을때나는그아이를안고부모님앞에무릎을꿇고아뢰었다.

‘아버지,어머니이애가제손녑니다.

두분에게는증손녀가됩니다.‘

그리고,절로눈물이나왔다.

그건정말회한의눈물이었다.

전쟁의고통을겪었던중학생이할아버지가되어흘리는눈물인것이다.

이번가을,

전처럼부모님께성묘를갔을때,나는이제초등학교4학년이된손녀의손을잡고아버지의

묘비뒤에새겨진글들을읽으면서증조부에대한얘기를들려줬다.

그게역사이기때문이다.

1950년7월1일,증조할어버지는남침을시작한인민군과의교전에서전사하셨으며,그장소가경기도광주라는사실도알려줬다.

그리고평생자식들을키우며고생하신증조할머니가이곳에합장되어있는사실도들려줬다.

내손녀는성격이차분하고영민한아이다.

공부도잘하고,코넬대학병원에서의연수때문에도미한제아버지를따라뉴욕에가서1년동안미국국민학교에다닌일도있다.

그런데할아버지의긴얘기를다들은손녀의입에서는,

내게는물론,우리모두에게,대한민국이충격받을수밖에없는질문이나왔다.

‘할아버지,인민군이뭐야.’

역사를잊으면,그역사는되풀이된다.-yorowon.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