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보면 알수있다.
어떤사람에대해,

가장짧은시간안에그사람을파악하는방법중하나가함께식사하는것이다.

같이밥을먹고얘기해보면,

개인의성품,식성,자라난배경,경제수준과교육정도,가치관까지도상당부분

파악할수있다.

더적극적인방법은함께여행을하는것인데이경우는보다심층적인장,단점은

물론,인간성에대해서까지파악할수있다.

여행은그속성상사람됨의여러모를드러나게하는측면들이있기때문이다.

그렇다면가정을방문하게되었을때그집에대한기본적인파악은어떻게할수

있을까.

그것도짧은시간에주관적인관찰로파악해야하는경우가장효율적인방법은

어떤것일까.

한가정이가지는‘성격’을파악하는일은원만한관계를위해서도필요한수단이

된다.

그래서관찰이중요해진다.

눈썰미가있는사람에게는어려운일도아니다.

가장단순하면서도대표적인방법은‘벽’을읽는것이다.

벽(壁)은,

건축물,즉집에서공간들을나누어구획하는기능을가지고있다.

보통사람들이살고있는가장일반적인거주공간-집이라해도10개에서15개정도의

크고작은벽면들이있게마련이다.

하나의벽은두개의벽면을가지는게보통이다.

거실과방들,베란다와창고등공간을구획하는벽들은반드시사람이쉽게볼수있는

벽면을가지게된다.

물리적으로공간을구획하는게벽이라면벽면은그집의성격을읽게해주는시각적

평면이된다.

그벽에무엇이있는가.

그벽에무엇이기대어서있는가.

그것들만자세히살펴봐도그집에대한기초적인파악은가능하다.

그래서벽은그집의‘얼굴’인것이다.

그리고그얼굴에는표정이있다.

그걸읽어보는것이다.

대개의경우어떤가정을방문했을때,

현관에딸려있는거실에들어서게된다.

토끼장의대표적인전형은,

한쪽벽에응접세트-소파가놓여있으며그앞에얕은탁자가있다.

그리고그응접세트건너편,그러니까마루를건너서보이는가장큰벽면앞에는

엄청나게큰텔레비전이군림하고있다.

그모습은위압적이고그집의중심이바로자기라는것을은연중나타내보이고

있다.

사실이그러하기때문이다.

응접세트-소파에앉아일별해보는몇개의벽면은비어있는경우가대부분이다.

벽이비어있다는것은,

가뭄으로갈라진논바닥을보는기분이다.

정서(情緖;희노애락을느끼는마음의작용,기능)가매마른,

나무막대기처럼건조하고단순한사람들이그집에살고있다는것을알수있다.

나쁘거나악한사람들은아니지만이해타산에아주빠르고‘소통’이안되는무서운

사람들이그들이다.

상대적으로이런집이가장많다.

대개는그렇게산다는얘기다.

다음은높다랗게군림하고있는텔레비전양옆의좁은벽면중한쪽에큰달력이

걸려있는경우가있고,

탁자의여백에여러개의크고작은사진틀들이놓여있는경우도있다.

큰달력에는좋은그림도있지만그보다는눈에잘보이는곳에커다란달력이

걸려있다는것은그집이,또는그집의가장이대단히‘계획적’인사람임을

말해주고있다.

이런가정의분위기는차분하고돌발적인일보다는계획적인일들이그연속성을

가지는안정적인가정이기도하다.

여러개의크고작은사진틀들은모든가족이가지는유대감을설명해주고있다.

특히분가해살고있는자녀손들의사진이그걸잘설명해주고있다.

이런가정일수록조상에대해엄격한절차를지켜내고있으며위계질서가분명하다.

자칫그것이권위주의가되어신세대와의갈등의소지가될수도있다.

아직도이런가정은많은편이다.

때로는그벽에아주큰찬장이서있는경우가있다.

고급스러운찬장속에는여러개의상패,감사패,아름다운도자기류,그리고고가의

위스키병들이줄을서있다.

어떤경우엔그찬장옆에유명브랜드의외제골프세트가기대어서있기도한다.

그집은,

뭔가를드러내서보여주고싶어하는집이다.

뭔가를감추고숨기는음습한가정과는정반대다.

드러내보이는것은자랑하는것이며그것은그렇게할수있는경제적인실력도있다는

무언의자기과시이기도하다.

자칫‘속물’소리를들을수도있는이런집에서크게부족한것이‘겸손’이다.

자기과시는방문객에게불쾌감을줄수도있기때문이다.

사실진짜부자는절대로드러내놓고자가자랑을하지않는다.

그래서언제나자기과시형은졸부(猝富;벼락부자)들이다.

부족한인간에게갑자기큰돈이생기면온갖변고가일어나는게그때문이다.

봐주기어려운풍경이기도하다.

드물기는하지만,

그비어있는벽에그림이걸리는경우가있다.

‘이발소그림’이그것이다.

이발소그림은소박하고,아름답고,즐겁다.

그래서그런집에사는사람들은소박하고선량하다.

그림이가지는깊은회화성은없지만벽에그림을걸수있는사람들이라면

기본적인정서가살아있는사람들이다.

그많은벽면에단한점의그림도걸려있지않은,

갈라진논바닥처럼매마르고거친가정들과비교하면그부류가다른사람들이다.

돈이많고적은것과상관없이그들은‘마음의여유’가있기때문에각박하지가

않다.

인간이가까이에서그림을본다는것은‘생각’을한다는깊은의미가있다.

수만년전의크로마뇽인들이동굴벽에그려서남긴그아름다운그림들이지금도

우리들을향해말을하고있다.

그림은‘의미’를소통하는고도의수단이기때문이다.

그래서가장전통적인문화현상이기도하다.

그집은규모도컸지만거실도아주넓었다.

그리고놀랍게도소파건너편,보통텔레비전이차지하는벽면에는그벽면과같은

크기의책장이서있었다.

그책장은고급스러웠고,유리문까지달려있었다.

그리고그안에는책들이가득차있었다.

우선그책장은장식적인면에서돋보였다.

나는깊은관심을가지고책장가까이에다가가서책들을살펴봤다.

그책들은모두가여러권이한질로된것이었으며고급양장본들이었다.

단행본은한권도없었다.

그중흥미있는제목의책을뽑아펴보는순간놀라움을금할수없었다.

겉은고급스러운양장본의책이었지만그속은하얀백지들이었다.

말로만듣던장식용책장과책이바로그것이었다.

그게‘거짓과위선’의집이다.

화려한형식,겉만있고내용이없는,사람을속이는위인들이그안에서살고있는

집이었다.

사악하고가증스러운인간들이그렇게산다.

우리사회에서는특히상당수의직업정치꾼들이그런부류에속한다.

우리의정치가3류인게그때문이다.

친구를따라방문했던그집은,

대기업임원을지낸분의가정이었으며크지않은거처에서노부부가조용히살고있는

집이었다.

거실의정면벽엔대단히크지만,

그비율에서안정적인한국화-풍경화가걸려있었다.

정말아름다운,깊이있고수준높은그림이었다.

우리는그분의서재에서담소를나누게되었다.

그서재에들어서는순간,나는압도당했다.

그방은책들로가득차있었으며거의모두가단행본들이었고첫눈에주인의

손때가묻은책들임을알수있었다.

역사관계책들이주류를이루고있었으며그분의책상오른쪽서가에는50권이

넘는각분야의사전류들이꽂혀있었다.

그건,공부하고연구하는‘지성의방’이었다.

수준높은학문의세계였고,방의주인이얼마나신실한분인가를그대로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사람이나이들어그런공간에서노후생활을한다는것은큰행운이며축복이아닐수

없다.

그건하루아침에만들어지는게아니다.

평생을그렇게살아온분의결실인것이다.

정말부러운집이바로그런집이다.

이제물량의시대는끝나가고있다.

비로서‘삶의질’을따지는시대가된것이다.

더구나전통적인의미의가족이해체되면서‘개인’의의미는더새롭게조명받고있다.

현대인들은‘개인들’이다.

개인에겐‘삶의질’이생명만큼중요하다.

일상에서의삶자체가자기정체성이다.

시대가그렇게변하고있다.

우선내가몸담고있는거처의벽들을살펴보자.

잘살펴보면그안에살고있는‘나’가보인다.

나는어느수준에서어떻게살고있는가를벽들은설명해준다.

이세상엔돈으로살수없는것들이있고,

돈으로해결되지않는심오한문제도많다.

특히모두가함몰돼있는스마트폰은,내게있어무엇인가를물어봐야한다.

어떤경우에도디지털은아날로그를대체할수없다.

그건,그근본에서서로다른차원이기때문이다.

그래서‘균형’이절실해진다.

개인은개성적인존재이며그뿌리에서아날로그적인존재다.

사방에버티고서있는비어있는벽에‘나’를입히자.

그래서가장개성적인내가살고있는‘격조높은나의공간’을만들자.

그것이내가창조해내는삶의질이다.

비어있는벽처럼삭막한것은없다.-yorowon.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