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의 시작과 끝.
1984년에발간된박노해(朴勞解)의시집‘노동의새벽’은

1980년대를상징하면서‘민족문학70년의고투어린핏방울이스며있다’는평가를

받으며박노해신화를낳았다.

1957년전남함평에서태어난그는본명이박기평(朴基平)이며

1989년한국에서는사회주의를처음공개적으로천명한‘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

사노맹‘결성을주도했다.

1991년반국가단체구성과그수괴로활동한죄목으로체포돼사형선고를받았다.

무기징역으로감형된그는1998년8월15일김대중대통령의사면으로복역8년만에

교도소에서나왔다.

그는지난2월세계를돌아다니며찍은사진으로세번째전시회를열었다.

거기서그는말했다.

‘만약지금재심을한다면그때일이무슨죄가되겠나,

군사독재였기때문에인간적인몸부림이처벌당했던것이다.

(사노맹)이누구를죽인것도아니고파괴한것도아니잖나.

사상의자유를가진나라에자본주의도있고사회주의도있는것이다.‘

그는천주교신자이기도하다.

지난2월4일세종문화회관에서의기자간담회,

-지금도사회주의를믿는가.

-당연히아니다,

나는생태주의자,페미니스트,자유주의자,보수주의자다.

-박노해가말하는보수란어떤것인가.

-전통가치를지키자는것이다.

인간에대한예의를잃지말고생명을존중해야한다.

-일부에서는변절자라고하는데,

-투옥후사회주의가붕괴됐다.(1991년소련의붕괴)

호송차를타고오가다만난주사파들은

소련이망한것이지‘주체사상’은건전하다고했다.

좀있다가스탈린이망한것이지레닌주의는옳다고했다.

6개월이지나니레닌주의가잘못됐지마르크스는옳다고했다.

그러더니후기마르크스는틀렸지만초기마르크스는맞다고했다.

그런모습들을보면서내가믿었던진리를철저하게성찰했다.

사회주의는잘못된것이었다.

그래서국가정치체제로서의사회주의는아니지만그것이담지한비판정신은

계승하겠다고했더니변절자라고한다.

사회주의는잘못된것이지만

그것이담지한비판정신은계승하겠다는박노해의고백은사실핵심을찌르는말이다.

마르크스를지지하든,반대하든자기시대의사회적모순을꿰뚫어본그의안목은

놀라운것이며이점나도늘공감하고있다.

우리모두가‘오늘’을기준으로‘어제’를재단하면안되는이유가그안에있다.

똑같이‘어제’를기준으로‘오늘’을재단해서도안된다.

시대에따라기준이서로어긋나기때문이다.

연봉1억원을받는노동자들이지천이고사업주의발목까지잡고있는‘노동귀족’이

존재하는오늘‘공산당선언’은설자리가없는게그런이유다.

칼마르크스(1818-1883)는,

헤겔에서이탈한후포이에르바하의‘유물론’에심취,푸롤레타리아의공산주의,

노동자계급의입장과혁명을주장하며1848년‘공산당선언’을발표한다.

여기에는1844년폴란드동남부의슐레지엔(당시는프로이센영토)에서3000여명의

직조공들이자본주의적착취와봉건적수탈이라는이중고를견디다못해대대적인

폭동을일으켜직조기를파괴하고자본가의집을습격한사건이영향을준것도사실

이다.

마르크스가목격했던노동자-직조공들의참상은기록으로보존된것이드물다.

증기기관의발명과직조기(방적기)의발명은수많은농촌인구를공장으로흡수했으며

열악한환경에서흑인노예수준의노동을강요당했다.

이제거의150여년전스코틀랜드의‘뉴래너크방직공장’의사례를통해그참상의

일부라도살펴보자.

당시노동자-직조공들은보통1주일에6일동안70-80시간을일했다.

통풍시설이없는공장안에는목화먼지가날아다녔고이탁한공기와기계의열기로

질식,실신하는경우도있었다.

요란한기계소리에그대로노출,귀가먹는것이보통이었고안전장치가미흡해

작업중부상은다반사였다.

부상을당해도보상은전혀없었다.

일을못하면그대로해고,병이나서결근하면일당도없었다.

유아원이없어아이를맡길데가없는부모는애를데리고나와젖을먹이면서키웠고

서너살이되면엄마를도와일을했다.

6세부터는정식노동자가되었다.

작은몸집으로전속력으로돌아가고있는방적기계밑을기어다니면서떨어진실과

천조각을주웠다.

끊어진실을잇기쉬워섬세한원단직조에는손가락이가는아이들을많이고용했다.

지금의기준으로이들의열악한노동환경을본다면천인공노할일이지만그때는그게

당연했다.

마르크스가본것은글자그대로푸롤레타리아-무산대중의참상이었으며이들에대한

무자비한자본가의수탈이었다.

그시대-자기시대에그런‘사회적문제’를꿰뚫어봤다는것은확실히마르크스의

혜안이라고할수있다.

그는노동과자본주의의무서운모순을발견했던것이다.

그는푸롤레타리아의혁명을역설했으며종당에는자본주의가소멸한다고믿었다.

과정으로서의푸롤레타이라독재는필요했으며그는공산주의로가는중간과정을

사회주의로정의했다.

문제의핵심을읽을수있었던혜안은적중했지만

그의예견은빗나가고말았다.

자본주의는소멸하지않았으며

사회주의는실패했고,,능력껏일하고필요한만큼가져가는공산사회는도래하지

않았다.그것은처음부터실현불가능한망상이었다.

사회주의는잘못된것이지만그것이담지한비판정신은계승하겠다는박노해의말은

그런의미에서진실이다.

사회주의는이상(理想)이고자본주의는엄연한현실이기때문이다.

짜르시대,

지하공산당의다수파인볼세비키는푸롤레타리아주도하에노동동맹으로부르주아

민주혁명을완성한후사회주의혁명으로전환시키는노선을견지,1917년10월혁명

으로권력을장악,레닌이이를주도했으며각국공산당결성의지표가되었다.

그러나볼세비키의10월혁명을곧‘공산혁명’이라고말하기에는문제가있다.

최근까지의연구들은혁명에동조,봉기한민중들은이데올로기로무장했다기보다

오래계속된짜르의학정(虐政)에반기를든측면이강하기때문이다.

레닌에이어정권을인수한스탈린은‘철의사나이’답게짜르보다더한독재와탄압을

계속했다.

동구(東歐)로불리는위성국들은물론크메르루즈의재앙과한국의6.25전쟁으로까지

점철된동남아까지그세력을넓혔으며실로이기간중직,간접으로2억의인간이

희생됐다.

혁명은성공했으나사회주의평등은오지않았고새로운‘노멘클라투라-특권계급’이

등장,인민을학대했다.

그들은온갖사치와부를누렸고비밀경찰을장악,인민을감시했으며자기들의

적을숙청해나갔다.

짜르보다몇배심한학정이었다.

볼세비키혁명후74년이지난1991년이악의제국은사회주의실험에서완전히

실패한채붕괴되었다.

술에취한엘친은탱크위에올라서서이를전세계게알렸다.

1991년은악의제국소련이붕괴한해이며

그해5월,

나는모스크바에여러날머물렀었다.

실로그건하늘이내린‘기회’였다.

내가사회주의참상에대해관심을가지게된것은소련의노벨상작가인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하루’를읽고난후부터였다.

(문예출판사가발간한이책은지금도쉽게구할수있다)

아내의표현대로내가읽은사회주의(공산주의)관계책들을쌓아놓으면내키를넘었을

것이다.

특히마르크스의‘자본론’5권을읽는데는1년이더걸렸다.

그때는힘들었지만지금은커다란지적자산이되어사회주의를비판할수있는학문적

바탕이되고있다.

국내사이비좌자들의행태를보면그들이자본론을만져보지도못했음을감지할수

있다.

내가마지막으로읽은책이주카나다소련대사를지낸야코블레프의‘공산주의종언’

이다.

모스크바,

이오래된도시의1991년모습은‘유령의도시’그대로였다.

그때그곳에는사회주의의끝이그대로드러나있었다.

내가그처참한모습을발로걸어다니면서손으로만져보고온몸으로체험했다는것은

그래서커다란‘행운’이아닐수없다.

역사의살아있는증인이됐기때문이다.

모스크바올림픽때지었다는코스모스호텔,

그러나호텔에들어섰을때리셉션데스크엔사람이없었다.

있을수없는일이었다.

휴식시간이기때문에모두가쉰다는것이었으며여직원들은담배를피우면서잡담에

열중하고있었다.

손님,서비스같은개념자체가없었다.

할수없이응접용소파에않으려하니낡아찢어진곳에용수철이튀어나와있었다.

유럽기준,2급정도의객실은침대의스프링이고르지않아숙면할수가없었다.

화장실의화장지는마분지수준.

그리고모스크바의밤은아주어두웠다.

이튿날부터둘러보기시작한이수도에는거짓말처럼문을연가게가하나도없었다.

물한모금사마실데가없었으며점심식사도호텔에돌아와서해야했다.

식재료판매가안되기때문에문을연식당이전혀없는것이다.

(북한이운영하는평양식당이유일하게문을열고있었고,맛은형편없었다.)

어디를가든집시보다더집요하게덤벼드는러이사인행상들,

그리고모두가침울한모습으로큰가방을들고다녔으며어디서든줄이보이면가서

섰다.

내가서본줄은,하나는립스틱줄이었고다른하나는담배줄이었다.

전차나버스의도색이너무낡아도시의침울함을더했다.

호텔옆쓰레기통을뒤지는아이들은6.25전쟁때의우리같았다.

골목마다늘어선줄은며칠이지나도줄어들지않았다.

감자를사기위해그렇게긴줄에서있다는것이다.

유일하게문을열고있는크레므린광장에면한굼백화점은조악하고조잡한물건만

있었고살게없었다.

모스크바같은유서깊은큰도시가‘상업활동’이정지되어있다는것은흡사흑백영화의

한장면이멈춰서있는것과같았다.

사회주의는모스크바를‘죽은도시’로만들었다.

광장한모퉁이에는지하에‘레닌묘’가있다.

그는감색정장에물방울넥타이를하고튀어나온이마를드러낸채유리관속에서

미이라가되어누워있다.

나는가까이다가가서정중하게마음속으로말했다.

‘레닌선생,

혁명은완전히실패로끝났소이다.‘

74년간의사회주의실험은완전한실패로끝난것이다.

그는아무대답도없었다.

살아난다한들무슨말을하겠는가.

사회주의와자본주의를비교설명한다는것은결코쉬운일이아니다.

그러나오래동안의사회주의섭렵을끝내고내린결론은뜻밖에간단한것이었다.

인간은물질이있어야생존할수있다.

결국이데올로기는인간이그물질을소유하는형태의차이인것이다.

자본주의에는‘내것’,‘네것’,그리고‘우리것’이모두있다.

그러나사회주의에는내것,네것은없고‘우리것’만있다.

산업시설의국유화와통제경제가그것이다.

인간이그물질을소유,확대재생산,발전시키는것은내것이며네것이기때문이다.

사유재산은그속성상‘효율’을먹고사는데그건계량화할수없는기적같은힘이다.

그러나‘우리것’은사실아무의것도아니다.

거기엔애착도효율도있을수없다.

사회주의경제가피폐해지는이유가그것이다.

북한의개인텃밭이집단농장에비해몇배의소출을내는게그증거다.

개인의‘사유재산-내것’을인정하지않는사회주의는그래서반인간적이다.

일당독재때문에사회주의체제를고집하는중국도경제는자본주의시스템을도입,

오늘의부자나라가됐다.

‘흰고양이든검은고양이든쥐만잘잡으면된다.’

등소평의실용주의가중국의먹는문제를해결했다.

마르크스의비판정신은‘정의로운사회구현’을위해서도살아있어야한다.

지혜로운유럽인들은사회주의의높은이상과의회민주주의의실용적인방법을접목,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를발명했다.

오늘날유럽의대부분의국가들은사민주의를채택하고있다.

자본주의는사유재산을인정하고보호하는한존속할것이다.

아무리그안에많은문제점을안고있다해도오래동안검증된장점들이단점을

보완하는시스템이기때문이다.

이미북한주민의90%가‘시장활동’을통해살고있으며소득의71%를시장에서

챙긴다고한다.

통일을위해서는좋은현상이다.

시장보다더좋은자본주의실습장은없기때문이다.

배급을줄수없는사회주의는페지될수밖에없다.

국제에너지기구에따르면,

북한의총발전량은우리의5%수준이라고한다.

제한적이나마그전기를쓸수있는인구도26%에불과하다고한다.

전기,물,종이는생활수준을가늠하는바로메타다.

이제사회주의의끝은평양에서도이미시작되고있는것이다.

그거대한흐름은무엇으로도막지못한다.

송곳을보자기에싼다고감추어지는것은아니다.-yoro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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