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소묘.
BY yorowon ON 3. 17, 2014
꽃.
남녘에서꽃소식이들려오니바야흐로봄이다.
그래서꽃은봄의전령이다.
꽃을좋아하고사랑하지않는사람은없다.
그런사람이있다면그건병이기때문에심리적치료를받아야한다.
한스님은메고다니는바랑속에큰확대경을가지고다닌다.
산길을가다꽃을만나면그냥지나치지못한다.
짧을때는한두시간,어떤때는한나절을,길때는하루를꽃앞에서머므르며
그럴때는확대경을꺼내더까가이꽃을살피면서꽃의아름다움에깊이빠진다.
그정도의정서라면이미큰스님이다.
우리네가정에는화분은한둘있어도일상안에꽃이없다.
정부가매주화요일을‘꽃사는날’로지정했지만그사실을아는사람은많지않다.
한때꽃은연간1조원의매출을올린적이있지만지금은8000억원대로떨어졌다.
우리국민1인당꽃소비액은연간1만5000원선,
놀웨이의16만원,스웨덴의15만원에비해10분의1수준이다.
꽃소비는국민소득과정비례한다는게정설이지만우리와는통하지않는다.
꽃소비가가장많았던2005년국민소득은1만6.500불,
2013년에는2만4,000불수준으로소득은45%늘었지만꽃소비는오히려
20%줄었다.
매화,난초국화는조선시대문인화의소재로선비들이즐겨그렸던꽃들이다.
그들은인격수양을위해꽃을가까이했고그렸던것이다.
꽃을사랑하는것은우리의전통이기도하다.
그런데왜지금은가정에꽃이없을까.
절대로가난해서가아니다.
꽃은돈으로사는게아니라‘마음의여유’가사는정서적인상품이다.
정치나경제,그리고사회문화와같은생활환경이하도사납고거칠어지니꽃을
돌아볼여유가사라진것은아닐까.
집안에,그일상안에꽃이있는삶과꽃이없는삶은질적으로크게다르다.
그래서이번봄에는꽃을사다집안을장식해보자.
스스로환경을바꿔행복해질수밖에없는세태가아닌가.
꽃은언제나우리의황폐한마음을정화해주는힘을가지고있다.
LaPaloma.
내가중학교에입학했을때는6년제였다.
가장인상적이었던것은과목마다선생님이바뀌는점이었다.
음악시간이되었을때몸집이자그마하고피부가유난히흰차병학선생님이들어
오셨다.
내가지금까지그분의존함을기억하고있는것은6년동안의인연때문이다.
나는중하교입학과함께인기최고였던브라스밴드에들어갔으며팔이길어서
슬라이트럼본을불게됐다.
그후악장이될때까지브라스밴드를담당하신선생님의지도를받았으며
나중에는밴드를연습시키기위해총보를읽는법까지배웠다.
그날차병학선생님은우리들에게스페인민요인LaPaloma(비둘기)를가르쳐
주셨다.
나는처음부터그노래에매료되었으며평생을통해이노래를사랑하고있다.
세바스챤이라디에르(SebastianIradier1809-1865)는,
스페인의작곡가로서한때프랑스궁정에서왕비의음악교사를할정도의실력파
였다.
1830연대그가쿠바를여행하던중쿠바의전통춤곡인‘하바네라’리듬을접하게
되었으며이에매료되어라팔로마를작곡하게되었다.
쿠바현지에서작곡했다는설과,
귀국후하바네라를유럽에알리기위해작곡했다는설이있으며,
죽기2년전에작곡했다는등여러얘기가있지만그게큰문제는아니다.
비둘기에실려보낸섬아가씨의순정을노래한이곡은유럽은물론,
전세계로퍼져국민가요의대접을받고있는명곡이되었다.
스페인가수들이부르는노래를잘들어보면같은곡인데가사는두가지가있다.
4분의2박자인하바네라리듬에실려있는선율은아름답기그지없으며그리디미칼한
연주는사람의마음을사로잡는다.
내가가장즐겨듣는연주는호세이글라시아스의노래이며,
빅마마신연아씨의노래도아주좋다.
4년연하의프랑스인남편과의듀엣이다.
악단으로는스페인의CarrandadeContadores의연주를좋아하는데그들은보칼과
기타,만도린으로뛰어난연주를한다.
Robbiedoes의Tyros연주도즐기는편이다.
마음이울적학때,뭔가일이잘안풀릴때,그리고이노래가듣고싶을때LaPaloma를
들으면기분이완전히바뀐다.
그게음악의힘이아니겠는가.
그래서나는평생이곡을사랑하고있다.
다른하나가우리가곡‘비목’,
가고파,그리운금강산과함께오늘의3대국민가곡으로불리는비목은사실알고보면
심금을울리는곡이다.
젊은소위김명희는백암산계곡의비무장지대에서6.25전쟁때산화한무명용사들의
돌무덤과녹슨철모,그리고글자도지워진쇠락한비목을발견한다.
그는그아픔을이렇게썼다.
‘초연(硝煙-화약의연기)이쓸고간깊은계곡,깊은계곡
양지녘에이름모를비목이여‘
비목(碑木)은비(碑)로서세워진나무이며
비(碑)는묘비(墓碑)의준말이다.
뜻은무덤앞에세우는비석(碑石),
따라서비목은무덤앞에세운나무로된팻말같은것이다.
1967년장일남은여기에불후의선율을붙여국민가곡을만들었다.
나는이노래를첼로로연주한다.
첼로로연주하기에아주좋은곡이며그비장한의미를더깊게풀어낼수있다.
그러나그누구에게도들려준적이없다.
오로지나를위해,나만을위해연주하는애청곡이다.
그만큼비목을사랑하고있다는뜻이다.
비목은그런노래다.
이산가족상봉.
이산가족-離散家族은,남북으로헤어진채살고있는가족을이르는말이다.
우리나라에이산가족이발생한것은크게두번의계기가있었다.
그하나가8.15광복으로상당수의인구가남쪽으로넘어왔으며,
다른하나가6.25전쟁중북쪽을회복한연합군이중공군의개입으로후퇴할때
대규모난민으로남쪽에내려온경우다.
3년4개월만에재개된지난2월의상봉은
남측이산가족455명과북측268명이헤어졌던가족을60여년만에만났다.
1988년이후2013년말까지등록된상봉신청자는12만9.264명이며,
이중44.7%인5만7.784명이고령으로사망했고55.3%인7만1.480명이
생존해있다.
지금의방식대로라면이대기인원들이가족을상봉하기위해서는20년을기다려야
한다.
모든생존자가생애에한번만이라도북측가족을만나기위해서는상봉인원을
6600명수준으로늘려야한다.
따라서면회소상시운영,서신교환,화상상봉등의다양한방법이강구되어야한다.
매년2200여명이북의가족을만나보지못한채고령으로사망하고있기때문이다.
국경이아닌,휴전선이라는분계선(分界線)때문에혈육을만나지못하고있는곳은
이지구상에우리밖에없다.
참으로불가사의한일이다.
쿠바도여행이가능하고,대만과중국은이미자유스럽게왕래하고있다.
옛서독과동독도이렇지는않았다.
금강산호텔에서11시간의상봉을끝내고헤어지는혈육들의절규와표정은이땅의
비극이얼마나처절한것임을그대로보여주고있다.
당사자가아니면그누구도그애절함을모른다.
이산가족상봉에관한한,
북한은극악무도한범죄자들이다.
혈육의문제를정치적으로,정략적으로악용하고있는그들의비열함과악랄함은
비교할데가없다.
그들은우리가제안한‘상시상봉문제협의’도거절했다.
따라서그러한그들을추종하는종북세력들은이땅에기생하고있는해충들이다.
가족이만나는것은인륜의문제이며그무엇으로도막으면안되는인도적인일이다.
‘프라이키우프제도’는서독이도입했던방법으로돈을주고동독의상봉대상자들을
서독으로데려온제도다.
우리도지금의대기자7만2000여명이죽기전에가족을만날수있는방법을모색
해야된다.
그들의눈물이마르기전에특단의대책을내놔야한다.
자업자득-自業自得.
자업자득은자기가저지른일의과보(果報-인과응보의준말)를자기자신이받는다는
뜻이다.
영국의세계적인경제지‘파이넨셜타임-FT’은1888년1월에창간한비즈니스전문
일간지로런던본사에서만45만부를찍는조간이다.
북미는물론유럽과아시아에서현지영문판을발행하고있으며각지역의상세한
상업및경제분야의심층보도로상당한권위를가지고있다.
영국정부의재정정책에큰영향을미치는것은물론보도의전문성으로각지역경제
에도상당한영향력을가지고있다.
2013년10월10일자파이넨셜타임은
한국이고학력자의과잉으로무거운대가를치르고있다고보도했다.
이신문은‘한국에서고교졸업자10명중7명이대학에진학한다’면서대졸자과잉으로
한국경제가성장에방해를받고있다고보도했다.
신문은OECD국가중한국의대학진학율이가장높다면서해마다대졸자는초과공급되는
반면노동시장이요구하는고졸자는연간3만명이상이부족하다고지적했다.
이어FT는,
한국인들은대학졸업장이직업,결혼,임금등에영향을미치고있다고생각하고있으며
실제로대졸자들이고졸자보다평균33%이상의많은임금을받고있다고보도했다.
한편,
2013년말을기준으로통계청이집계,발표한결과를보면대학졸업자중비경제활동인구는
307만명이다.
비경제활동은취업을포기했거나포기를강요당하고있다는의미다.
고등교육을받은사람307만명이백수로있다는것은‘화약고’로도볼수있는나쁜
현상이다.
어떤계기에불꽃만닿으면그폭발력은우리사회를크게흔들수있다.
사람은자기처지가비관스러우면열등감과함께반항적이되고본래생각과는전혀다른
행동도우발적으로할수있다.
그래서‘화약고’인것이다.
차단벽이없는화약고가얼마나무서운것인지는겪어본사람들만이알고있다.
야권의불법집회에가담하는것은물론,민주노총의불법시위에도참가하고,
각종시민단체의반정부집회에도섞일수있다.
제주해군기지,밀량송전탑문제와희망버스,그리고근자의철도노조파업에까지
따라다니며구호를외쳐대는젊은이들중상당수는이들백수로봐야한다.
수많은가정들이피나는돈으로자식을대학까지보냈지만절반이상이백수가되어
무거운짐이되고있다.
그것이업보가되어우리사회의불안요인이되고있다면그게바로자업자득이다.
어떤정권도이런구조적인문제는쉽게해결할수가없다.
하나의사회공동체가가지고있는‘잘못된가치관’의문제이기때문이기도하다.
그만큼뿌리가깊다.
따라서‘화약고’는현실이지만가치관을바꾸는작업은계속되어야한다.
그첩경이살아있는‘공교육’이다.
지금처럼공교육이사교육에밀려있다면이작업이불가능해지며위험은계속커갈
뿐이다.
이문제는우리스스로가해결하기전에는개선의여지가전혀없다.
우리모두가현실적으로‘위기감’을가져야하는이유도그것이다.
내부의적은외부의적보다몇배나더그해독이크다.-황장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