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과 실리.
우리부부는오래전중국의운남성나평지역의오지를여행한일이있다.

먼지와매연이벌어진바닥틈새로사정없이밀려드는낡은중국버스는형편없는길을

털털거리며느리게달렸다.

그런데어떤곳에정차했을때밖을살펴보니아주생소한복장을한소수민족의장이

서고있었다.

우리는주저하지않고차에서내렸다.

보기드문소수민족의장은옛날우리나라의장날과크게다르지않았다.

우리가버스에서내린가장큰이유는버스가이곳에도착하기직전돼지새끼의네발을

묶어멜빵으로등에지고가는남자의모습을봤기때문이었다.

돼지를등짐으로지고가는인간을그때처음봤다.

장터한곳에가니그렇게등짐으로지고온돼지새끼들을거래하는곳이나타났다.

더놀랜것은우리것과거의똑같은인절미를파는노파가있었고,우리는불문곡직

그좌판앞에앉아인절미를사먹어봤다.

맛도거의같았으며가루빻기는거칠었지만차진맛은더있었다.

그리고값이아주쌌다.

정말오래간만에제대로된찰떡을맛본셈이다.

또한곳에서는애를업은젊은아낙이사탕수수를짤라서팔고있었다.

우리는그앞에주저앉아그아낙이적당한크기로짤라주는수수토막을씹었다.

정말그단물은고소하기까지했다.

다음이계란을사고파는곳이었는데그광경은생소하고놀라웠다.

그들은달걀을저울로무게를달아사고팔았다.

우리는전통적으로달걀한줄은열개,지금도포장방법만달라졌지여전히달걀갯수가

중심이다.

크고작은건따지지않는다.

그들은갯수가아니라실제무게를기준으로거래를하고있었다.

나중에중국에정통한분에게물어보니일반적으로중국에서는달걀을무게로사고판다는

것이다.

사실그차이는근본적이고본질적일것이다.

우리는몇개,즉명분이중요하다.

그들은얼마나무게가나가는가,실리가중요한기준이었다.

이차이는문화적인것이며문화는그대로우리의일상을지배하는익숙한전통이다.

그만큼바뀌기가어려운것도문화현상이다.

한민족이어떤문화를가지고있는가하는문제는삶의방식에반영되기때문에중요

하다.

형식이내용,즉삶의질을결정하기때문이다.

명분(名分)은신분에따라반드시지켜야할도의상의본분이며,

본분은본래의직분과그에따르는책임,의무다.

‘양반은얼어죽어도곁불은쬐지않는다.’가하나의대표적인예가되겠는데,

곁불은상것들이얻어쬐는불이기때문에사대부가얼어죽을지언정그불을가까이

해서는안된다는것이다.

신분에대한책임과의무가목숨보다중한게그것이며여기에서파생된것이체면문화다.

무엇을체면이라고하는가.

다른이들을대하는관계에서자기의입장이나신분,지위로보아반드시지켜야된다고

생각하는위신이그것이다.

따라서체면문화는자기의체면치례를위한삶의모양세-양식이며표현의체계라고할수

있다.

문화를익숙한전통이라고했다.

이익숙한전통은지금도우리사회깊숙이자리잡고있으며이전통문화에서자유스러운

사람은거의없다.

그리고체면문화는반드시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는파상문화를만들어낸다.

겉은화려하고요란한데그속은속빈강정과같은게바로그것이다.

우리의대표적인정서가그러하다.

명분에얽매이면실리를놓치는것은당연하다.

체면문화가무서운게그때문이다.

체면문화는타인의시선으로자신의위치와위신을확인하려는하나의전통문화다.

-남의눈이있지않은가.

-남부끄러워서못살겠다.

-남들이알면뭐라고하겠는가.

모두가남의눈-시선이기준이다.

내가나를내눈으로보고,내정체성을확인하는것이아니라‘남의눈’이‘나’를결정

하는문화가곧체면문화다.

때문에자기신념과정체성이분명한사람들이살기어려운것이다.

주변의따가운시선에굴복하는사람들이대부분이지만끝까지견디어내는강인하고

개성적인사람들도많다.

체면문화는‘현대인의삶’과는상충되는정서라고할수있다.

21세기를사는현대인들은점점더개성적이기를요구받고있다.

남의눈이기준이아니라내눈이기준이되는환경에서생활하고있다.

체면문화도시간이지나면서서서히바뀔수밖에없는소이다.

이제명분에살고죽는체면문화의덫을구체적으로살펴보자.

그하나가모든인생의중대사인결혼문제다.

통계에의하면결혼적령기에있는남녀의40%정도가막대한결혼비용을마련할길이

없어결혼을미루거나안한다는것이다.

결혼정보회사인‘듀오휴먼라이프연구소’는,

최근2년안에결혼한남녀1.000명을대상으로실시한‘결혼비용실태’를조사발표했다.

이들신혼부부가결혼할때치른총비용은평균2억5천만원에이르는것으로나타났다.

이제그내역을크게나누어살펴보면,

주택마련(거주)에1억8천만원,

예물장만에1,670만원,

예식장관련비용이1.594만원,

예단마련에1,555만원이들었다.

남녀간분담비율은평균6대4로신랑쪽이62%인1억5,598만원,

신부쪽이38%인9천398만원을부담했다.

통계청이발표한초혼결혼연령은

남자32.1세,여자29.4세였으며,

이런젊은이들이2억5천만원을마련한다는것은현실적으로불가능한일이다.

결국부모가부담해야하는악순환이계속될수밖에없는구조적인문제인것이다.

그렇다면돈없이는결혼을못하는가.

나는미국인들이결혼하는케이스를여러번목격했으며초대받아참석한일도있다.

그들은둘이서시청에가서결혼신고를하는것으로결혼절차를대신하는경우도있고,

둘이서시장이나,목사,신부앞에서결혼서약을하는것으로끝낼수도있으며,

가족만으로,또는약간의친구들을초대하는아주간략한결혼식도올리고있다.

물론재벌이엄청난결혼파티를하는경우도있다.

그들은이미월세집에살고있거나보편화된임대주택에살고있기때문에주거비용이

따로필요없으며,

예물,예식장비용,예단마련같은비용은개념자체가없다.

말하자면돈이없어결혼못하는일은전혀없는것이다.

그들이가장중요시하는결혼조건은두사람의진정한사랑이다.

나머지는살아가면서장만한다.

집도,살림살이도,자동차도전부할부다.

할부금갚다인생끝내는게미국인들이다.

그만큼온갖할부제도가최고로발달해있다.

결혼적령기에있는멀쩡한사람들이돈이없어결혼못하는일은아시아여러나라에해당

되는데특히우리가심한편이다.

돈이있어야결혼할수있다는것은

결국체면문화의대표적인산물이라할수있다.

대부분의부모들이거액을마련해서결혼식을제대로치르려고하는것은

‘남의눈’때문이다.

내눈으로내가사는것이아니라남의눈으로내가살기때문에생기는변고라고할수

있다.

또하나는눈딱감고실속있는결혼식을올릴‘용기있는이단자’가없기때문이다.

결혼식을못하고동거하는케이스의대부분이용단을내리지못해서그런것이다.

이제는결혼문화도바뀔때가됐다.

예식장을운영하는장사꾼들의부추김과사치,허영때문에얼마나많은돈이낭비되었으며

돈이없어서결혼못하는젊은이들이양산된것이아닌가.

2억5천만원이아니라2천5백만원으로도결혼할수있어야한다.

돈안받는공공시설에서가족,친구들이조촐히모여예식을치르고잔치국수와떡잔치로

끝내면기백만원도안든다.

내친구하나는실제로아들결혼식을그렇게치렀고모두가진심으로그용기에박수를

보냈다.

다른사람이라고못할이유가어디있는가.

체면문화의두번째슬픈희생자가100만이넘는백수들이다.

대학을나왔지만수백통을쓴이력서는대답없는메아리가됐다.

더이상집에앉아손을벌릴수도없어건설현장,막노동판으로나서는젊은이들이늘어

나고있다.

일당은6-7만원선,잔업을하는경우10만원까지받지만체력이달리고몸에탈이날수

있다.

대학까지나온사람이‘직장’이없으면그끝은폐인이되는것이다.

열등감에사로잡히고낙오자가되어힘이없으며어느축에도끼지못한다.

애인도,결혼도생각할수없고도시내일을예측할수없어집구석에처박히는수가있다.

이제극단적인대비를해보자.

나는이발관에간지가아주옛날이다.

계속목옥탕이나동네사우나에달려있는이발실에서머리를커트하기때문이다.

지금내머리를커트해주는이발사와는14년째단골이다.

오래사귀면서알아낸정보로는,

그는하루에적게는20명,많게는35명의손님을받는다.

평균하루에27.8명이다.

1인당커트비용이1만원이니하루평균27만원을버는셈이다.

일주일에화요일만쉬고있으니평균한달에26일을일한다고볼수있다.

따라서월평균수입은702만원이된다.

연봉으로환산하면8천424만원,

그는중졸학력이고집이가난해서그때부터이발소에서물긷고청소하는일부터배웠다.

아무리불경기라해도이발은불경기가없다고한다.

투자라고해봐야사우나주인에게내는월세와가위와빗몇개,드라이어와염색도구

몇가지가전부다.

안전성,투자대회수율,평균수입에서그는우리사회에서는상위권에들어가는계층이다.

대학을나와일당6,7만원의막노동판과비교하면엄청난차이다.

현대사회는결국‘학벌’이아니라‘기능’이기준이되는경제시스템으로돌아가고있다.

백수는경쟁세서탈락한낙오자들이며내일을기약할수없는방랑자들이다.

무엇이,이멀쩡한젊은이들을이어두움의계곡으로몰아넣었는가.

‘체면문화’가그주범이다.

‘남의눈’으로내가살다가만난재앙이다.

이제는이‘명분’을버려야한다.

실속을차리지않으면살아남을수가없다.

곁불은안쬐겠다는고집으로죽는것보다명분을내려놓고곁불을쪼이면서살아남는게

더중요하다.

그걸실리(實利)라고부른다.

우리말에이런게있다.

‘체면이밥먹여주냐’

맞는말이다.

언제나밥을먹여주는것은‘실리’이며‘실속’이다.

실속은실제의속내용이며겉으로드러나지않는알짜이익이라는말이다.

체면은남의눈으로나를사는어리석음이며실속은내눈으로내가사는지혜다.

앞으로전개되는‘현대사회’는명분으로는살수없는실리의사회,실속의사회로

계속진화한다.

때문에명분에집착하는사람은밥을얻어먹지못한다.

대신‘기능’을가지고있으면밥을굶는일은없다.

기능이무엇인가,타고난재간,재주다.

그걸천부(天賦)라고부른다.

천부를살리는것,그게진짜교육이다.

인간은자기가좋아하고잘하는일을할때가가장행복하다.

돈도따라오고모든경쟁에서성공할수있다.

이제대단히시사적인통계하나를보자.

1993년한해40만쌍이결혼했다.

그런데2013년엔,인구는늘어났는데도32만쌍이결혼,20여년전보다크게줄었다.

결혼은안하거나못하고있는젊은이들이그만큼많다는얘기다.

이유는체면을지킬수있는돈이없기때문이다.

그러나명분을버리고실리를취하면해결못할일도아니다.

따라서이제는생각을바꿔야한다.

남의눈이아니라내가주체가되어내삶을살아야한다.

수분(守分)하는정신으로익숙하지만잘못된전통을깨야한다.

대가를치러야결과를얻을수있기때문이다.

정원에는정원사가심은나무만자라는것은아니다.-스페인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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