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잡기.
한인간이이세상을살면서시류에휩쓸리지않고자기중심을잡는일은결코쉽지가

않다.

시류(時流)는그시대의풍조와유행이라는뜻이며

풍조는바람에따라흐르는,세상이나시대의추세다.

때문에그흐름을거스리는일은자기의가치관과주체성이확실하지않고는어렵다.

인간이자기중심을잡아야하는가장큰이유는시류나풍조가탁하기때문이다.

탁하다는것은불투명하다는뜻이며혼란스럽고어지럽다는의미다.

지금우리사회공동체는전례가없을정도로혼탁하고부정부패가만연해있다.

소수극단론자들이5개월이넘게국회를장악,국정이마비되는것이하나의좋은예가

될것이다.

민주시민과민주사회가자정능력이없기때문에가장비민주적인악순환이계속된것이다.

또하나절망스러운것은어디를둘러봐도희망이보이지않는다는점이다.

이는민초들이기댈언덕이없다는뜻이며그만큼허망하다는얘기다.

이사악하고타락한사회는계속해서우리들을선동하고있다.

선동은말이나글로서사람들을부추겨좋지않은일을하게하거나그런일에동조하게

충동질하는것이다.

대표적인것이이명박정권에서의‘광우병촛불’이며지금은세월호유족들속에들어앉아

그들에게나쁜생각을품게하는사탄들이다.

광우병촛불은세계적인웃음거리였으며세월호는이제대다수국민이외면하는계륵이

되고말았다.

민초들을선동하는악한세력들은나랏일을반대하는모든곳에나타나고있으며언제나

그주장은반대를위한반대한가지뿐이다.

과학도,객관적인사실도,법적인조치도그들에겐통하지않는다.

그들은선한사람들을선동하는일을위해태어난어두움의자식들이다.

사람이자기의중심을잡는다는것은그선동에넘어가지않는것이다.

그러기위해서는가치관과선악관이분명해야한다.

자기의합리적기준이견고하면어떤선동도그경계를넘지못한다.

선구자는어떤일이나사상,이념에있어그시대의다른사람들보다앞선사람이다.

법정이바로그런분이다.

그분이입적했을때많은사람들이슬퍼한것은우리들이선구자를잃었기때문이었다.

일찍이법정은이럼말씀을했다.

‘광고에저항하라.’

광고는널리알린다는뜻이며저항은굽히지않고맞서겨루는것이다.

광고는자본주의의꽃이다.

그것은온갖술수로소비자를현혹하고이익-돈을위해서는수단과방법을가리지않는다.

자본주의는시장이스스로만들어낸최상의시스템이지만그속에는인간을죽일수도있는

독소도있다.

광고는좋은면만보여주고그늘은가린다.

광고는아름답고선한것만보여주고어두운부분은보여주지않는다.

지금우리들은온갖광고에하루종일무방비로노출돼있다.

법정께서는왜광고에맞서겨루라고했을까.

자기중심을굳게잡아속지말라는뜻일것이다.

분별력을가지고그것에휘둘리지말라는말씀이다.

이제TV는병원의병실까지점령했다.

병을치료하기위해서는절대적인안정이필수적이다.

그병실에서TV는왕이되어군림하고있다.

왜병실에까지TV가들어갔을까.

아파서죽을지경이되었다해도‘연속극’은봐야하고이는마약처럼중독되었기때문

이다.

지금방영되고있는대부분의프로그램은두가지원칙에서만들어지고있다.

그하나가‘상업성’이다.

광고주가붙어야살수있기때문에그내용을막장까지끌고가는것이다.

다른하나가방송국간의무서운시청율경쟁이다.

공영방송을자처하는KBS까지그대열에가세하고있다.

상업주의와시청율경쟁은

더자극적이고,충동적이고,선정적이고파괴적인막장프로들을양산할수밖에없다.

그래서그모든피해는고스란히시청자의몫이다.

TV에중독되면그종속성때문에건전한정신을가질수가없다.

따라서자기중심을잡지못하면그게누구라도심각한중독성피해자가되는것이다.

TV를꺼야비로서본래의자기로돌아올수있다.

스마트폰은디지털시스템의총아다.

남녀노소불문모두가스마트폰을쥐고다니는시대가됐다.

가장많이사용하는패턴은메시지와게임이다.

이제앱의종류는다기억할수없을정도이며그신속함과편리함은타의추종을불허

한다.

디지털손목시계가처음나왔을때모두가경쟁적으로그걸사서차고다녔다.

그러나한세대가지난지금거의모든사람들은아날로그식시계를차고있다.

흐르는시간은어떤점이아니라연속된선이기때문이다.

지금과앞뒤를함께봐야하는세계다.

우리의육신-몸은아무리디지털기기로감싸도아날로그적인,동물적존재다.

생로병사로표현되는길고지루한시간적존재다.

스마트폰은좋은것이지만그건우리들이가지는여러가지수단중하나일뿐이다.

그게전부인양빠져서살면안된다.

아날로그와디지털의균형을잡는것,그게바로자기중심을잡는일이다.

결코어느한쪽에집착하면안된다.

어떤경우에도우리의육신은디지털의속도대로가지못한다.

그누가라도인간의아날로그적인한계는벗어날수없기때문이다.

우리들은매일매일정보의홍수속에서살고있다.

스팸을걸러내도쌓이는게정보다.

그게누구든,

이정보의홍수속에서자기에게필요한정보를빼내기위해서는분별하고선택해야된다.

무엇이그일을가능하게하는가.

그게상식과지식이다.

알아야면장을한다는말이그뜻이다.

홍수속에서진주를찾아내는일은상식과지식만이할수있는기능이다.

그런데상식과지식은‘보기’로는얻지못한다.

보기는일별하는것이며남는게없다.

그래서언제나변함없이필요한게‘읽기’다.

읽기는생각을수반하기때문에남게되며그축적이정보를갈라내는최고의기능이된다.

지금은점점더보는것이위주가되는시대로나가고있다.

때문에그만큼‘읽기’는더요구되고있다고할수있다.

종이신문,종이책이그대안이다.

읽으면서밑줄을긋고여백에주를달고,필요따라다시읽을수있는게그세계다.

인간은읽기를통해서만정신적으로성장할수있다.

자기의중심을잡는일에서읽기보다더큰무기는없다.

이각박하고황폐한세상에서풍요롭게살기위해서는어떻게해야할까.

풍요에는두가지길이있다.

그하나가물질적인풍요다.

돈이많아나쁠것은없지만사실은쓰기가더어려운게돈이다.

잘쓰면좋지만잘못쓰면폐인이된다.

다른하나가정신적인것,정서적인풍요다.

이풍요를누리는길이좋은취미를가지는것이다.

자기중심이분명한사람일수록취미도분명하다.

그게어떤분야든전문가의수준에까지이른분들도많다.

그런사람들은같은시간에두배의인생을사는분들이다.

그림,악기,글쓰기,화초기르기,각종수집,낚시,등산,여행,운동,요리등수도없이많다.

한번주어진인생을무미건조하게산다면그건차라리악이다.

지금은취미생활도다양하고동호인모임도많다.

마음만먹으면길은넓게열려있다.

취미는인생을깊이있게,넓게살도록인도해준다.

한인간이인간적으로성숙해지는계기는남을위해내것을내어줄때다.

즉‘이타적인삶’을살때사람은성장한다.

막징역을살고나온출소자,

그를보살폈던교도관,그리고오래전에감옥에갔다온사람들이모여봉사하는작은모임이

있다.

목수,전기기술자,도배와미쟁이가그들의직업인데그들은한달에한번씩모여아주어려운사람의집을자기들돈으로고쳐주고있다.

벌써수십채를그렇게고치고수리했다.

그들은똑같은대답을한다.

‘이일을통해진정한행복을느낀다.’

그건정말이다.

그들은봉사를통해기적의의미를깨달은것이다.

비로서자기중심이분명한,결코시류에휩쓸리지않는견고한인간이된것이다.

그들은선을만들고그선을위해자기의돈과기능을바치고있다.

어찌하늘이그들을복주지않겠는가.

그래서그들이행복한것이다.

그들의인생이가지는깊고오묘한의미는이기적인사람은결코알수가없는비밀이다.

한인간이시류에휩쓸리지않고자기중심을잡고살기위해서는

반드시경제적으로독립할수있어야한다.

즉,돈이있어야된다는얘기다.

따라서직업이분명하되전문직이면더좋다.

뛰어난기능-기술이있으면정년도극복할수있다.

수입도많아야한다.

그래야어려운이들을위해헌신하고봉사할수있다.

돈이없거나부족하면독립하기가어렵고그만큼중심잡기도어렵다.

돈은중립적인것이기때문에쓰기에따라의미가달라진다.

그돈을선한뜻으로가지고있으면뒷심이생기고자신감을가질수있다.

그만큼더독립적이고개성적인사람이될수있다.

그러나어떤경우에도그돈을버는방법과수단은도덕적이어야한다.

도덕성은견고한인간이되는기초이며

도덕적이면정의가따라오기때문이다.

지금우리들이몸담고있는이세상은,

전에는존재하지않았던전혀새로운환경이다.

그것은,

이미우리사회공동체가전통적으로가지고있던가치관이변할수있다는의미다.

이미우리들이가지고있던가치관은크게오염되고깊이상처받았다.

사회생활의양식과내용이아무리발전해도가치관이잘못되면올바른삶은살수가없다.

그한가지사례가물질-돈이모든것의잣대가되는왜곡이다.

돈은있다가도없어지지만인간-사람을그렇지가않다.

그인간이자기의중심을잡고,한사람의온전한개인으로살기위해서는물질-돈도

극복돼야한다.

인간의생명,존엄성이물질-돈에종속된다면그건이미죽은사회다.

그어떤것도인간-사람을대체할수없고,없어야한다.

따라서중심을잡는다는것은참된인간선언이기도하다.

무엇이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를능가할수있겠는가.

왜사는지그이유를아는사람은어떻게살아야하는지를안다.-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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