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삶은현역일때와은퇴이후에는그형식과내용에서전혀다른것이
된다.
노년의가장큰특징은,
어떤조직에도매이지않는자유다.
인간이그무엇에도구속받지않는다는것은경험해보지않으면결코알수도,
이해할수도없는일이다.
물론현역일때도부분적으로,한시적으로자유로울수는있다.
그게휴가때이다.
내가현역이었을때우리부부는9월에빠리에간일이있다.
여름철의관광객들은썰물처럼빠졌고,
그래서어디를가든진짜손님대접을받았다.
비수기를선택하는것은휴가라는제한적인자유를극대화하는수단이다.
한여름개미떼처럼해운대에몰려온갖불편과바가지요금을뒤집어쓰는
‘쏠림’에서의이탈인것이다.
다르게산다는것은말하자면그런것이다.
그건전적인이탈이며차별화이기도하다.
남과다르기를시도한다면그길은정말다양하다.
나는오늘이른아침시간에,
컴퓨터앞에앉아인터넷으로몇가지식품을주문하고인터넷뱅킹으로송금까지
끝냈다.
이어입력할글을교정한후블로그에올리고이메일을열어도착한내용들을
읽어본후필요한답장도보냈다.
그런데나는스마트폰이없다.
돈이없어못산게아니라안샀기때문이다.
아무리생각해도당장의절실한필요가없어서이다.
은퇴이후내노년은‘아날로그식생활’이다.
유선전화가있으니불편할것도없고
메시지와게임이위주인스마트폰은내게용도가없다.
게임은처음부터하지않았고메시지보다는육성이더좋기때문이다.
나도현역일때는휴대전화를허리에차고살았고어쩔수없이그것에종속되어
가공된‘바쁘다’를살았다.
아날로그적인삶의유유자적은그자체가행복이다.
그무엇도나를바쁘게하는것은철저히배제하고차단한다.
이것이은퇴생활-노년을사는노인들의특권이아니겠는가.
나는그특권을마음껏누리고있다.
매일아침한시간은,
아내의운동시간에맞춰첼로연습을한다.
이미생상의아름다운곡‘백조’는지나갔고지금은바하의무반주첼로모음곡중
제1번의프렐류드-전주곡을연습하고있다.
그게어떤곡인가.
모든첼리스트들의‘바이블’이아닌가.
그런곡에나같은아마추어가도전한다는것은사실무모해보이기까지하다.
그러나생각해보자.
늘즐겨듣던명곡을내가첼로로직접연주해본다는것은‘신세계’인셈이다.
바하를만나고,내가연주하는그의음악을듣는체험은사실각별한바있다.
프렐류드의3분의2정도연습하고있지만내가그곡을연주한다는자체가
내게는가슴벅찬행복이기도하다.
연주하기어려운곡이고잘되지도않지만매일매일발전하고있으며
어느날엔가는전부암보해서능숙하게연주할수있을것이다.
아침마다80노인인내가새로운악보에도전한다는것은심장이뛸만큼
행복한일이기도하다.
그리고무엇보다도그한시간은‘몰입’의시간이다.
그래서더보람을느낀다.
나처럼나이많은사람이첼로를하는경우는드물기때문이다.
자기의외모에대해상당히신경을쓰는사람들이있는가하면
자기안의,내적인충실함에더노력하는사람도있다.
값이엄청난명품을사서몸에지니는사람들은인생을양(量)으로사는사람들
이다.
시계도안가지고다닐정도로액서사리에둔감한사람들은자기의내면,즉
질(質)을위해사는사람들이다.
사실어느쪽이더낫거나좋다고단정할수는없다.
각자생각이다르고가치관이다르고,철학이다르기에그렇다.
나는성격상남과나를비교하는법이없으며명품에는눈길도주지않는질을
추구하는타입니다.
시계는시간잘맞고,옷은몸을보호하면되고,자동차는잘굴러가면그만이다.
그게얼마짜리라는것은내겐의미가없다.
대신‘나는누구인가.’
‘어떻게살고있는가.’‘인생의의미는무엇이며나는그해답을알고있는가.’하는
문제들에더집중한다.
남에게해가되고폐가되는것이아니라면그게무엇이든나대로의개성적인
삶을추구하고있다.
그래서남과는다르게보이고실제로도다르게살고있다.
그래서나는그런내생활을즐기고있다.
나도다른사람들과마찬가지로남들이나를평가하는말을자주듣는다.
보통의대화에서,블로그에달리는댓글에서,
그리고주변사람들로부터가장많이듣는말은,
‘대학교수같다’가가장많고,
‘박학다식하다’가그다음이다.
검사가됐으면좋았겠다는사람들도있는데내글이논리적이기때문이란다.
심지어는‘은퇴한영화감독같다’는분도있었다.
아내의친구들은‘배우같다’고해서놀란적도있다.
이런표현들의공통점은돈과는인연이먼것이고다음은책과깊은관계가있다.
나는정말책을많이읽는다.
지금도다섯권을함께읽고있다.
책을많이읽으면책을닮을수밖에없다.
그래서박학다식하다는얘기를듣고,교수와검사,영화감독이라는말까지
듣게되는것이다.
배우는좀뜻밖이긴하지만,
많이읽으면사람이달라질수밖에없다.
속이차오르고그건밖으로드러나게돼있기때문이다.
그래서내가항상경계하는삶이
‘빈수레의요란함’이다.
예나지금이나난영화광이다.
왕년에자주드나들던곳이단성사와피카딜리였다.
큰영화관이었고스크린과뒷좌석의거리는정말까마득했다.
나는지금영화관에안간다.
더정확히는가지못한다.
얼마전아내와함께‘국제시장’을보기위해영화관에갔었고,
다시가지않기로다짐했다.
우선공간이좁아스크린이코앞이니어지러웠다.
다름이귀청을때리는음향,그건살인적이었다.
그리고20분넘게강제로보여주는광고들,
이미그열악하고폭력적인환경에길들여진사람들은,
단성사와피카딜리를모르기때문에거기앉아있을것이다.
그래서나는좋은영화는영화DVD로구입,
집에서혼자감상한다.
500여편이상을가지고있고본영화를다시보기를즐기기때문에
이방법은내게안성맞춤이다.
스마트폰을안가지는것과지금의열악한영화관에안가는것은결국비슷한
이유다.
내게절실히필요한것들이아니기때문이다.
아파트는공동주택이다.
한동에여러가구가토끼장처럼이웃하고사는게지금의어쩔수없는세태다.
끊임없이들려오는개짖는소리,
엘리베이터안에남아있는개오줌과음식쓰레기국물의역한냄새,
그리고죽어라고피워대는담배연기가계속올라와괴롭히는것은
이웃을생각하지않는가장이기적인인간들의폭력이라고할수있다.
관리사무소에서게시판에,방송으로아무리민원을얘기하고개선을호소해도
들은척도안한다.
우리가3만불에접근하고도중진국을벗어나지못하는게이런소프트웨어에서
약하기때문이다.
나는빠리의프랑스인민박집에서
밤10시가지나자하이힐을벗어들고살금살금계단을올라가는‘레이디’를보고
문명이무엇인지절감한경험이있다.
밤10시가지나면변기의물도내리지못했다.
재미있는것은그들이그렇게하는것은이웃을배려하는마음도크겠지만
처벌이무섭기때문이라고한다.
법과규칙이무서운것이다.
우리를더어렵게하는것은결국어설픈사법의솜방망이라고생각하면한탄이
절로나온다.
돈이없어결혼못하는사람들이많다는신문기사를자주읽는다.
한편으론측은지심이생기기도하지만또한편으론젊은이들의용기없음에실망
하기도한다.
그들이생각하는‘결혼’의기준이돈많이드는허례허식이기때문이다.
왜젊은사람들이그길을답습해야하는가.
내친구는과년한딸을결혼시키는데채200만원도안썼다.
딸과사위가그간저축한돈으로살집(원룸)과간단한가구를장만했고,
아버지는교회에서예식을치르면서들어간약간의비용과100명이채안되는
하객들의간단한점심준비가전부였다.
왜사정이안되는데도화려한호텔예식을고집하는가.
골이비었기때문이다.
달리설명이안된다.
정체성부족이그것이다.
남들을따라갈줄만알았지자기만의독창적인결혼식은생각자체를못하고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우리사회가체면문화권인것이다.
남들의눈과평가와인정받기를위해전혀불필요한돈과시간을낭비하고있다.
이제는이런잘못된관행도끊을때가되지않았을까.
남들과는다르게살겠다는생각만할수있다면불가능할것도없다.
전통문화의관점에서,
‘남자는부엌에들어가면안된다.’였다.
그래서라면도끓이지못하는것을자랑하기까지한다.
은퇴이후남자가아내에게서가장크게미움받는일이‘삼식이’때문이다.
하루세끼를차려줘야하는아내의입장에서그게얼마나힘들고귀찮은일인가.
그래서요리를배워야한다.
나는개인적으로내가먹고싶은음식을만들어먹기위해요리책을읽고음식을
만든다.
인터넷만열어도온작레시피가넘쳐난다.
하루한끼정도아내를위해음식을만들어대접해보자.
부부관계가좋아지는것은말할것도없고남편대접이달라진다.
구습에얽매일이유가없다.
남들이뭐라하건신경도쓰지말자.
‘요리하는남자’는얼마나실제적인가.
좋은의미에서남들과다르게산다는것은거의전부가긍정적인효과를선물
한다.
내가경험해서확신하고있는사실이다.
정체성은어려운얘기지만내식대로사는것이상은아니다.
이원복덕성여대총장은,
‘요즘대학생들은앎의차이가거의없다’며,
‘우리시대만해도내가아는걸친구가모를수있고친구가아는것을내가
모를수있었다.
그런데지금은아는것도모르는것도다같아져버렸다.
그이유는지식과정보의원천,소스가TV와스마트폰이대부분이기때문이다.‘
정곡을찌르는분석과판단이다.
소스가하나밖에없으니모두가같아진것이다.
지식과정보의보편화다.
그래서지금은더개성적이어야앞설수있다.
남들과다르게산다는것은유별나자는것이아니라경쟁에서우위를확보하자는
실리적인요청인것이다.
그리고언제,어디서나돋보이는것은
‘개성적인,질을추구하는인간’이다.
이사실은변하지않는다.
껍질을벗지못하는뱀은죽는다.-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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