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지금세계에는200여개의나라가있으며

그중인구가5000만명이상이면서1인당국민소득이2만달러가넘는나라는

7곳이다.

인구가많으면서도경제적으로풍요로운부자나라들이다.

미국,일본,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그리고한국,이렇게7나라다.

한편‘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세계의부자클럽으로불린다.

34개의회원국이있으며우리한국도이미가입돼있다.

객관적인조건으로본다면대한민국의모든국민은상대적으로부요한사람들

이며행복하게살고있어야한다.

그런데도OECD국가중

삶의만족도에서는27위로0ECD평균치에미치지못하고있으며

2015년기준행복지수에서는조사대상143개국중118위로최하위권이다.

세계전체에서는자살율이3위이며OECE에서는1위다.

국민소득3만불에육박하고있는나라에서그국민들이행복하게살고있지

못하다는증거들이다.

사실심각한문제가아닐수없다.

왜우리국민들은객관적인풍요속에서도행복하지못할까.

자살이라는극단적인선택을하는이유는무엇일까.

정말이제는이문제에대해깊이생각해볼때가되었다.

이미가지고있는것을누리지못하는것은자기정체성의문제라고볼수있다.

그것은결국사고방식의문제이며가치관의영역으로압축된다.

가장먼저생각해볼수있는것은,

행복에대한정의를어떻게하고있는가하는문제다.

무엇을행복이라고하는가.

그정의와자기답변이분명하면혼란을겪지않고도행복하게살수있다.

즉행복의자기기준이분명해야하는게우선이다.

남의것이아닌,남들이누리는행복이아닌자기의행복에대해정체성과입장이

정리돼있어야한다.

행복에서모든사람들에게적용되는절대기준은없다.

그만큼상대적이고주관적이기때문에행복에대한자기정의가선행돼야한다.

행복에대한자기철학이있어야하는것이다.

상당수의사람들이행복을곧소유라고생각한다.

원하는것을많이가지면행복하다는게그런생각이다.

만약소유를행복으로생각한다면그소유가없어졌을때는불행해진다.

극단적인예이기는하지만,

14조원의큰재산을소유하고있는이건희회장은지금식물인간상태로

병원에누워있다.

때문에그어마어마한소유도이건희회장의행복과는무관하다.

행복은‘느낌’이기때문에소유가절대적인조건이못되는것이다.

다른하나는,

대개의경우그누구도행복을느낄수있을정도의소유에는쉽게이르지

못한다는점이다.

‘재물은소금물과같다.’는로마의격언이그것이다.

인간의소유욕은끝이없으며결코만족을모른다.

소유가행복이라고생각하는사람은평생노력해도행복해질수있는확률이

거의없다.

행복은소유가아니기때문이다.

참으로불행한케이스다.

박탈감이라는말이있다.

마땅히누려야할권리나좋은것을누군가에게빼앗겼다고느끼는일이다.

모든사람들은정도의차이가있을뿐‘상대적박탈감’을가지고있다.

우리모두는항상남과나를비교하면서살고있다.

비교는긍정적인면도있지만부정적인면이더크다.

‘내게없는모습은부러워하지말라’는광고문구고있지만그게쉬운일이

아니다.

남과나를비교하면저절로상대적박탈감이생기게된다.

이감정이무서운것은자기부족을인정하기보다는공정하지못하다는불만을

먼저가지기때문이다.

일단불만이생기면결코행복해질수없다.

그래서상대적박탈감은행복의큰적이다.

자기의주체적정체성,철학,가치관이제대로정립돼있지못하면상대적박탈감의

포로가된다.

감사는만족감을가지게하며,

만족,자족하는마음은행복의문을여는열쇠다.

가장작은일에감사할수있는사람이크게감사할일도만나게된다.

스스로자기의분수를알고이를지키는사람은만족과함께감사에이르게된다.

우리는감사하는일에몹시서투른민족이다.

마음을얼굴에나타내는것을엄격히금한유교문화가그렇다.

그것은‘감사합니다’라는말도억압했다.

그래서다른사람에게감사하는마음은있어도나타내지못하는습관이생긴

것이다.

아주작은일에서부터감사할줄알아야하며그것이발전해서만족에이를수있다.

만족해하는마음없이행복은없다.

만족과자족,그리고감사는행복해질수있는절대조건이라고할수있다.

감사에는연습이필요하다.

아주작은일에서부터감사해야큰일에감사할수있다.

감사는만족에이르는지름길이며만족하는마음은행복을담는그릇이다.

인간이기본적으로가지고있는욕심은,

인류가발전해온원동력이기도하다.

그러나그것이지나치면부작용이생기는것이며어떤경우에도욕심그자체는

채워지지않는다.

성서에이런경구가있다.

‘욕심이쌓이면죄가되고,

죄가쌓이면죽음에이른다.‘

뿐만아니라

‘돈은일만악의뿌리’라고도했다.

그누구도스스로적정선을지키기는어렵다.

지나친욕심이무서운것은그것이행복을앗아가기때문이다.

특히소유를행복으로생각하는사람들에게더그렇다.

왜냐하면욕심-탐욕은결코채워지지않기때문이다.

욕심이커지면불가능한목표를세우게된다.

그러니행복을그만큼더멀어지는것이다.

욕심자체가없으면발전도없다.

그러나그욕심이지나치면악이된다.

동서고금에예외가없다.

그래서자제할줄아는마음과균형감각이절실해진다.

요즘은‘통이크다’와‘대박’이라는상업용어가크게유행하고있다.

사회상을읽을수있는현상들이다.

통이크고대박이면작은것들은무시된다.

인간의일상에서디테일이가지는힘을이해하는사람이라면큰통과대박이

얼마나무서운생각인지알아차릴것이다.

작은것들을무시하면기초,기반을잃는것이다.

작은것들이견고하게쌓여기초가되고그위에건축된사회가건전한것은

문화사를읽어보면저절로알게된다.

행복도마찬가지다.

작은행복을모르면큰행복도모른다.

정말아름다운행복은작은것들안에있다.

그부스러기행복들은언제나주변에널려있으며먼저그것들을챙길줄알아야

큰행복도만날수있다.

작은것을우습게보면안되는이유다.

평범한일상이중요한게그때문이다.

앞에있는행복을몰라보는눈으로는멀리있는큰행복도찾지못한다.

지금의IT세대를가리켜

‘아는것은모두가알고모르는것도모두가모른다’고말한다.

정보의소스가하나이기때문이다.

그래서나타난현상이‘몰개성’이다.

가장개성적일것같은세대가가장몰개성하다는것은아주큰아이러니다.

행복은상대적조건이아니라자기만의절대적조건에서느끼는독특한감정이다.

때문에개성적인간이되는게먼저다.

남들과는전혀다른,

자기만의가치관과신념,철학이있어야한다.

행복이‘절대적느낌’이기때문이다.

SNS는그래서개성적인간의적이다.

그건모두를물타희석시키는사악함이다.

지금과내일은,

철저히개성적인간의시대다.

가장전문적인인간만이성공할수있다.

그리고그런인간만이자기의참행복을누리게된다.

그행복은남들과는전혀무관하고다른,자기만의절대적인행복이다.

행복을오늘이아니라내일에서기대하는사람들이뜻밖에많다.

내일의행복을기다리는것이잘못된것은아니지만그것이오늘의행복을

찾지못하는구실이되면안된다.

내일은내일이되면다시내일이된다.

기다리다끝날수있다는얘기다.

우리모두는내일어떻게될지알수가없다.

그래서오늘이중요해진다.

오늘,여기에있는내가중요한것이다.

그래서행복도지금여기에서느낄수있어야옳다.

행복은멀리있는것도아니며거창하기만한것도아니다.

행복은오늘이라는일상안에살아있다.

발견하고,차지하고,누릴줄알아야한다.

그게현명한인간의지혜로운삶이다.

오늘을회피하고싶은사람들도있다.

삶의환경이열악하기때문이다.

그러나,그렇다하더라도내일보다는오늘이현실적으로더중요하다.

작은행복들은모두가오늘안에있다.

행복은기쁘고,즐겁고,만족해하는느낌이다.

그래서행복은어떤보이는물건이아니다.

느낌은사람마다아주다르다.

홍어삭힌것.

그똥내나는음식을마주하면참지못하고코를싸쥐고도망가는사람들이있는가

하면그게꿀맛인사람들도얼마든지있다.

사람은그렇게서로가아주다르다.

그래서모두에게적용되는행복의절대조건은없다.

내가행복하면그게바로행복이다.

그리고그행복은내일이아닌,오늘안에있다.

감사하고만족한눈으로찾으면누구나쉽게발견하고마음껏누릴수있다.

그래서소박해야하는것이다.

거창한눈에는행복이보이지않는다.

지금우리모두는충분히행복하게살수있는일반적인조건은가지고있다.

이미국가적수준은거기에가있는것이다.

나머지일은그안에서내행복을찾는것이다.

그것은결코어려운일이아니가.

마음먹기에달린것이다.

소박한눈만있으면가능한일이다.

매화를찾아천하를헤매다돌아오니

내집뜰에매화가피어있구나.-한국격언.

새블로그주소를알려드립니다.(조선블로그는12월말로종료됩니다.)

http://blog.naver.com/yorowon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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