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을 읽으면 사람이 보인다.

댓글은 덧글, 또는 답글이라고도 부르는 우리말 명사다.
그러나 아직은 표준국어로 사전에 등재되지는 않았다.
국립국어연구원은,
댓글은 표준어로 지정되지 않은 신조어지만
‘대답하는글’
‘덧붙이는 글’을 뜻하는 말로서,
‘대+사이시옷+글’ 로서 조어법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많은 네티즌들도 댓글을 사용하고 지지하고 있음으로 ‘댓글’ 로 통일하는 것이
좋을것같다.
굳이 학문적인 뜻을 구하자면,
인터넷등에 올라온 원문에 대해 짤막하게 답하여 올리는 글 이라고도 할수
있으며 인터넷 게시물밑에 남기는 짧은글 이라고 정의할수도 있다.
영어의 가장 가까운 단어는 comment 일 것이며 결국은 원문에 대한 독자의
의견이라고 정리할수 있다.

댓글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악플과 선플이 그것이다.
악플은 악성댓글이며 악성리플이기도 하다.
사이버 범죄의 일종으로 인터넷 안에서 상대방이 올린 글에대한 비방이나
험담으로 악의적으로 쓰는 댓글이기도 하다.
일종의 언어폭력으로서 심한 경우 피해자가 자살하는 경우까지 있다.
악플러들은 익명성뒤에 숨어 자기를 감춘채 타인을 괴롭히는 사악한 인간들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반해 선플은,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판단, 좋게 평가하여 답글을 올리는
경우다.
크고작은 시민단체들이 선플달기를 권장하는 것은 악플의 나쁜영향을 줄이고
건전한 사이버공간을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더 넓게는 SNS라는 사이버공간이 존재하는한 댓글문제는 언제나 모두가 신경
써야하는 예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것이 아무리 사이버공간이라 해도 인간관계의 기본은 예의이기 때문이다.
예의의 기본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다.

‘글은 곧 그 사람이다’ 라는 경구가 있다.
길게쓰든, 짧게쓰든 글은 사람이 쓰는것이며 그 글속의 내용이나 문체, 문장력
안에는 한 인간의 인간적 성숙도가 나타나게 된다.
다른 하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개되는 글들을 읽으면 지금의 세태를 알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 블로그에 달려오는 댓글은 물론,
인터넷 신문등에 달리는 수많은 댓글들을 늘 읽고 있다.
참으로 많은 네티즌들이 각기 다른 글들을 올리고 있으며 그 표현과 내용을
살펴보면 글자그대로 천태만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크게 묶어 나누면 적어도 몇가지 범주로 묶을수 있으며 그 범주들에
대해 분석, 설명하면 글을쓰는 사람들의 행태가 보이는것도 사실이다.
글은 사람이며, 곧 인격이기 때문이다.
짧은 한줄의 글 속에는 한 인간의 인간성이 나타나는 법이다.

댓글들의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은,
반사적, 즉흥성이다.
다른사람의 글을 읽고 그 글에대해 긍정이든 부정이든 어떤 평가를 하려면
먼저 잘 읽어보고 깊이 생각하는게 먼저다.
다시 읽어보고, 생각하면 그 내용이 더 명료해지고 깊이 이해할수 있다.
그 다음에 자기의 생각을 시간을 두고 정리해야 한다.
말하자면 남의글을 읽고 그것을 평가, 분석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는
의미다.
즉흥적이고 반사적인 댓글들에는 이 깊이가 없다.
매사를 빨리빨리 하는데 익숙한 사고방식과 생활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한편 수많은 댓글들 중에는 좋은 글들도 상당히 많다.
그런 글을 쓰는 사람들은 아주 신중하고 깊이 생각하고 글쓴 사람을 모독
하지 않는 방법으로 자기생각을 피력한다.
말하자면 글을쓰는 사람 사이의 예의가 있는 것이다.
즉흥적인 글엔 이런 상식과 예의가 없다.
악플의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된다.

다음이 표피적인 지적들이다.
특히 악플에 이런 경우가 많은데 그 문장을 읽어보면 지식과 상식이 부족하고
전문성이 없다.
행간(行間)을 읽는다는 말이있다.
문장과 문장사이, 아무 글자도 없는 그 빈 공간을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글쓴이의 깊은 생각이 숨겨져있는 그 공간에서 글자보다 더 깊은
오묘한 내용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판단이 표피적인 것은,
그것밖에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며 암기교육이 만든 가장 큰 피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모든 지문은 글자뒤에 숨겨져있는 뜻이 있다.
그것을 읽는능력을 ‘안목’ 이라고 한다.
정보의 홍수속에서 이 안목이 없으면 구분, 분별, 판단을 제대로 못하게된다.
수박 겉 핥기로 끝난다는 얘기다.
지금의 세대가 그렇고 세태가 그러하다.
내용의 근처에는 가 보지도 못한채 그게 전부인줄로 착각하고 있다.
인생을 그런식으로 산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댓글을 쓰고있는 상당수의 네티즌들은 그 정신세계가 아주 천박하다.
그들이 원문에 대해 쏟아내는 욕설과 상소리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글은 속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생각의 표현이다.
그 인간이 험하고 상스러우며 비이성적이고 무식하면 쌍소리 욕이 나올수
밖에 없다.
품위있는 언어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이며 교육이 부족하거나 잘못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일수록 오만방자해서 오직 자기의생각, 의견만이 제일인양 독선적
이다.
온갖 악플이 사이버공간에 끼친 나쁜영향은 필설로 다 설명할수 없을정도다.
아무리 선플로 대항한다해도 승산은 없다.
포졸열이 도둑하나를 잡지못하는 이치가 그것이다.
앞으로도 악플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또한 세태의 한 범주이기 때문이다.
사악한 인간들이 우리속에 섞여 사는것과 같은 이유다.

조롱은 남을 비웃고 놀리는 것이다.
인격모둑인 셈이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댓글을 통해 상대를 조롱하고 있다.
그게 누구든 차별이 없다.
우리모두는 아무나 조롱하는, 조롱할수 있는 깨진세상에 살고 있다.
건전한 사회공동체는 어떤 경우에도 조롱할수 없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
예를들어 충무공 이순신을 조롱할 사람은 없다.
그런, 충무공과 같은 살아있는 존재가 있어야 건전한 공동체다.
심지어는 대통령까지고 마구 조롱한다.
참된 권위와 권위의식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지하지 않아도 다수가 선출한 대통령은 나라의 대표이다 통치권자다.
그 대통령의 직(職)은 조롱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
정당한 권위를 조롱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다.
그 침이 어디로 떨어지겠는가.
결국 피해자는 자기자신이 된다.
어리석기 때문에 그 이치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많은댓글들을 읽으며 늘 아쉬워하는 것은 ‘대안제시’ 가 없다는 점이다.
비판하고 욕 하기는 쉬워도 그 글보다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반대만 있고 대안이 없다면 반대를 위한 반대가 된다.
지금의 야당이 꼭 그 꼴이다.
그것은 결코 건설적인 현상이 아니다.
대안이 없다는 것은 실력이 딸리기 때문이다.
생각이 없고 궁리가 없으니 대안이 나올수가 없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게 어떤 글이든 그 글을 쓴 사람은 그걸 어렵게 썼다는점이다.
절대로 가볍게 읽고 쉽게 비판하면 안된다.
글을 써본 사람은 다 알고있는 얘기다.
그게 어떤 글이든 잘 읽어보면 칭찬할 부분이 반드시 있다.
다른사람의 글을 비판하기전 스스로도 깊이 생각하고 대안을 만들 수 있어야
공평하고 정당하다.
아니면 비겁할 뿐이다.
비겁이 발전하면 비열이 된다.
비겁하고 비열한 좀비가 되는 것이다.

내게는 ‘광우병촛불’ 이 항상 아킬레스건이다.
그건 결정적인 국제망신 이었으며 우리의 형편없는 수준을 그대로 드러낸
가슴아픈 불상사였다.
무엇이 광우병촛불을 만들었는가.
‘쏠림현상’ 이 그것이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없이 커다란 쏠림에 휩쓸려 자기를 상실했었기 때문
이다.
한 인간이 자기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가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댓글도 마찬가지다.
쏠림현상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자기의 주체적인 생각이나 판단이 없으니 큰 흐름을 타는 것이다.
그게 모여 여론을 만든다.
결국 그 여론이 오도된 결과는 낳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현상의 대부분이 그런 식이다.
이제 댓글을 쓰겠다면 먼저 자기생각을 정리해서 올려야 된다.
비록 악플이라 해도, 그게 익명성이라 해도 자기에 대해서는 끝까지
자기가 책임지는 자세가 그것이다.

이제는 모두가 두려워해야할 얘기를 해보자.
사이버공간의 모든 글은 끝까지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다.
바야흐로 핀테크(fintech)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P2P(개인간금융거래)의 IT은행이 이미 그 업무를 시작했으며,
창업10개월만에 투자, 대출에서 100억원을 돌파한 핀테크 은행도 있다.
점포와 객장없이 IT기술로 운영되는 P2P는 기존의 은행들과는 달리 전혀
새로운 대출심사기준으로 운영된다.
빅데이터의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 그것인데,
그들은 은행업무의 전문성과 IT기술에서 전문가 들이다.
대출신청자의 쇼핑내용은 물론, SNS의 사용습관,
인터넷 검색내용, 각개인이 올리는 글들도 심사대상이 된다.
개인의 어떤 부정적 경향성이 신용불량자로 판단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전체 대출신청자중 이렇게 걸러진 10%정도가 대출을 받게되며 연체도 없다.
앞으로 내가 남기는 글들이 흔적이 되어 족쇄가 될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더해 인터넷은행까지 생기고 있다.
빅데이터가 빅브라더가 되는 것이다.
이제는 정말 모두가 신중하게, 책임감을 가지고 글을써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흔적은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글은 곧 인격이다-yoro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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