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년.

설이지나 또 한해를 보냈으니 이제는 갈데없는 80노인이다.
이미 떠난 친구도 몇 있지만 대부분이 살아있으니 평균수명이 늘어난것을
실감할 수 있다.
지금의 80대는 대표적인 구 세대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광복을 맞았으며 민족상잔의 참혹한 전쟁도 철이들어
겪은 마지막세대 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구 세대는 춥고 배고픈 것이 얼마나 무서운것인지 아주 잘 알고
있으며 지금의 우리가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도 알고 있다.
양쪽을 비교할수 있는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언급 한바 있지만,
이러한 구 세대의 파란만장한 일생에 대해 서울대 사회학과 주경철 교수가
쓴 글이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현재 생존해 계신 우리나라 어르신들은,
관솔불로 불밝히던 어린시절을 보낸후 전등과 상,하수도를 사용하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거쳐 이제는 컴퓨터와 스마트폰까지 익숙하다.
식민지, 광복, 전쟁, 혁명, 군사정변, 계엄령, 대통령암살, 개헌등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구경하기 힘든 일들을 죄다 겪으며 민주화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무엇보다 보릿고개에 시달리던 최빈국 상태에서 벗어나 경이로운 경제발전을
이룬 세계10위권 국가에서 노년을 보낸다.
이들이야말로 인류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한 세대가 아니겠는가.‘

주경철 교수의 압축된 설명에서 보듯,
우리는 정말 굴곡이심한, 파란만장한 세상을 힘겹고 고생스럽게 살아왔다.
그래서 지금의 노년이 더 소중하고 의미가 깊다.
그런면에서 많은 노인들이 불우한 노년을 살고있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압축성장시대 함께 고생했던 그들이 빈곤계층이 된 것은 사실상 국가적
숙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을 위한 국가차원의 복지가 이루어져야 하는 시급한 문제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의 노년은 생각하는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다.
질문이 있는노년과 없는 노년이 그것이며 대답이 있는노년과 없는노년이
그렇다.
그 질문은 긴 인생을 살아온 한 인간이 자기자신에게 묻는 것이며 또
대답이기도 하다.
‘내 인생의 목표는 무엇이며
나는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하다 어디로 가는것인가‘ 가 대표적인 질문이다.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서 사는 노년과 그렇지 않은 노년은 삶의 질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가진다.
주변을 살펴봐도 이 차이는 극명하다.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노년도 있고 하릴없이 시간에 실려가는 노년도 많다.
나이가 들었어도 계속 창조적인 삶을 사는 노년도 있고 무료한 시간 속에서
의미없는 삶을 사는 노년도 있다.
이제는 현역에서 은퇴하고도 3,4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시대다.
그래서 모두에게 노년은 정말 제2의 인생인 것이다.
준비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그래서 먼저 노년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나의 노년은 과연 어떤것인가.
나를 향한 질문과 대답속에 그 내용이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이루었는가.
나는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늘 분명한 대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깨달음’ 이다.
80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공부하고, 알아지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 그것이 변함없는 내 질문과
대답이다.
나는 아직 깨달음에 온전히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 노년의 하루하루 생활은 깨달음을 향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신앙생활도 큰 도움이 된다.
근본적인 질문과 대답은 그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깨달음에 다가가는 노력은 나태를 허용하지 않으며 끊임없는 학구열을 가지게
한다.
온갖 틀에서 벗어난 노년기는 이런 과정을 가기에 더 없이 좋은기회다.
모든이들의 노년기에서 가장 큰 적은 무료함이다.
살아있는 인간이 그 나이에 관계없이 할 일이 없어 심심하다는 것은 차라리
죄악이다.
그래서 노년은 더 긴장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깨달음을 향한 가장 일상적인 수단은 책이다.
책은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보물창고이자 모든 질문의 답을 가지고있는 현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모두는 글자가 쓰여지기 시작한 이후의 모든 기록을 읽을수 있다.
책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책은 우리를 지혜의문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이며 깨달음의 길을 함께
가는 반려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 노 부부가 함께 책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실에 늘 감사한다.
분야는 달라도 과정은 같은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의 생활비중 가장 큰 지출이 도서구입비다.
노년은 책 읽기에는 더없이 좋은 하늘이 주신 기회다.
읽고싶은 책을 방해없이 마음껏 읽을수 있고 언제나 읽을수 있다.
80노인인 내가 지금까지 변함없이 좋은시력으로 책을 읽을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항상 깊이 감사하고 있다.

나의 노년에서 글쓰기는 아주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글 쓰기가 전적으로 ‘창작’이기 때문이다.
A4용지 10매 정도의 글 한편을 쓰기위한 노력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제목이 정해지고 plot를 세운후,
디테일한 온갖 자료들을 수집하고 찾아야 하며 사전은 물론, 옥편, 한글맞춤법
까지 살펴봐야 한다.
이때 가장 활용도가 높은게 컴퓨터다.
대영박물관부터 미국 국회의사당 도서관까지 섭렵한다.
노력만 하면 거의모든 자료들을 찾을수 있는세상이다.
일단 초고가 작성되면 몇 번에 걸쳐 수정,보완하며 워드로 한글에 올린후에도
계속 오자를 찾아내고 내용도 몇 번씩 수정하게 된다.
한시간에서 두시간 정도의 키보드 두드리는 일도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
이렇게 힘든 작업인데도 나는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그게 ‘공부’ 이기 때문이며 동시에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창작’ 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창작하는 인간은 그 정신에서 늙지않는다.
오히려 매일매일이 새로워진다.

음대 작곡과 교수였던 내 친구는 늘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나보다 음악에 대해서는 더 넓게, 깊게 알고있어.’
어떤면에선 그건 참말이다.
음악에 대한 사랑은 내 평생에 걸쳐 변한적이 없다.
중학교때 슬라이트럼본을 손에 잡은이래 평생 악기를 손에서 놓지않았다.
폐활량 때문에 관악기에서 손을 뗀후 계속해서 잡은 것이 어려운 현악기인
첼로다.
나이 70에 첼로를 시작한 사람은 결코 많지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매일아침 바하의 무반주첼로모음곡 1번중 프렐류드로 연습을
시작한다.
음악의 세계,
그것은 환상의 세계이며 영감과 기쁨으로 가득찬 세계다.
나의 노년에서 음악은 더 구체적이 되었다.
듣기만 하는 음악과 직접 연주해 보는 음악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 악기를 하라고 권한다.
노년의 삶에서 음악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수 없는 놀라운 정신의 세계이자
우리의 영혼이 거니는 아름다운 뜰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신생활이 풍요로워 지는 것이다.

내가 지금의 영화관을 잘 가지않는 이유는
스크린이 너무 가까워 어지럽고,
토키가 너무커서 청력을 상할수 있으며,
그렇게 긴 광고를 봐줄수가 없기 때문이다.
생동감은 떨어지지만 VOD는 집에서 온갖 콘텐츠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정말 IT의 시대답게 영화도 이제는 집에서 얼마든지 즐길수 있는 수단이
생긴 것이다.
나의 노년에서 영화는 아주 독특한 자리에 있다.
영화라는 종합예술은 기술의 발전으로 더 풍성한 볼거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제공하고 있다.
영화는 재미있고, 구름보다 더 높은 상상력을 가지게 한다.
상상력은 글을 쓰는 창작활동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영화를 많이보면 얻는게 아주많다.
내게있어 최고의 영화는 ‘벤허’ 와 ‘사운드오브 뮤직’ 이며,
최근의 것으로는 ‘아바타’ 다.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작품들이다.
얼마전 우리 부부는 ‘국제시장’을 보면서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게 우리세대의 파란만장한 일생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500여편의 명화DVD를 가지고 있으며 계속 사 모으고 있다.
그것들은 서가에 책처럼 꽂혀있으며 자료를 찾을 때 책처럼 꺼내서 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책에서 만나고,
찰튼 헤스턴은 DVD에서 만나는 것이다.

내게는 보통사람들이 누리기 어려운 프리미엄이 있다.
그게 화가인 아내의 그림들이다.
내 서재에서 마주 보이는 벽에는 아내가 그린 그림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제일먼저 걸린다.
그 그림들을 보는 행복은 각별한 것이다.
그게 어디든 비어있는 벽은 슬픈일이다.
나는 본래 그림을 아주 좋아한다.
가장 사랑하는 외국화가는 고호이며 아이비로 뒤덮인 고호의 무덤을 찾아
오베르에 가기까지 했었다.
오래전 암스텔담에서 있었던 고호전,
전 세계에서 그의 그림들이 한자리에 모인, 국가 전시회가 있었다.
3층 입구에 들어서자 그 유명한 ‘감자먹는 사람들’ 이 걸려있었다.
나는 그 그림앞에서 압도되어 눈물을 흘렸다.
그가 생전에 팔았던 단 한점의 그림, ‘아르르의 붉은포도밭’ 은 구 소련시절
모스크바의 푸시킨 박물관 2층에서 감상했었다.
그때의 감회는 지금도 새롭다.
미술을 ‘그리움’ 이라고 정의한 학자가 있다.
맞는말일 것이다.
인생의 노년에서 그 아름다운 그림을 가까이 하면서 살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형식이 내용을 만든다는 명제는 사실이다.
같은 물 이라도 담기는 그릇모양에 따라 그 모양새가 달라지는것과 마찬가지다.
같은 시간이라도 어떤 ‘틀’ 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모양이 될 수 있다.
같은 노년을 살아도 삶의 내용은 그 틀에 따라 서로가 아주 다른 것이 그 이유다.
그 틀은, 곧 우리들의 마음이며 생각이다.
나는 나의 노년이 무료하거나 무의미한 것이 되지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기 때문이다.
소파가 없으면 게을러 질 일이 없다.
그래서 우리집엔 소파가 없다.
대신 인체공학으로 설계된 핀란드제 안락의자가 있다.
나는 그 의자에 깊숙이 앉아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즐긴다.
아내와 나는 자주 저녁시간 가까운 카페에 나가 커피를 마시고 샌드위치와 케익을
사 먹으며 많은 얘기를 나눈다.
주변에는 모두 활기찬 젊은이들 이다.
우리도 정신적 으로는 그둘중 하나가된다.
물리적인 시간은 극복하기에 따라 전혀 딴 것이 될 수 있다.
특히 노년기가 그렇다.

습관은 습관에의해 정복된다.- 토마스 아 켐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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