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 모든 가정의 초미의 관심은 ‘자녀교육’ 이다.
특히 거개의 가정이 한자녀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더 집중적이다.
자녀교육에 관한한 모든 가정은 글자그대로 온갖자원을 동원 전력투구하고 있다.
그래서 겉으로의 교육열은 세계최고수준이다.
그런데도 놀라운 아이러니는 100만 백수의 존재다.
교육열 자체는 좋았지만 그 목표와 수단, 방법, 그리고 과정에서 수많은 하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백수가 캥거루족이 되었을 때 부모의 모든 노력은 도로가되고 집안에 깊에 드리운
침울한 분위기는 한탄으로 이어질 뿐이다.
이제는 시기적으로 이 참담한 문제에 대해 분연히 맞설때도 되었다.
더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하면 가정, 사회, 나라의 근간이 흔들릴수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그걸 심도있게 분석하고 짚어봐야 한다.
그래서 어떤 출구를 찾아야 한다.
근자 계속 보도되고있는 엽기적인 아동학대를 보면 뜻밖에도 가해자는 대부분 그
부모들이다.
가장 큰 이유는 자식을 개인적으로 처분할수 있는 ‘소유물’ 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린 자식이라 할지라도 그 자식도 하나의 인격적존재임을 인정했다면 그런
가혹한 학대는 있을수가 없다.
자식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처럼 소유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식에 대한 모든
결정도 자기마음대로 하는게 현실이다.
자식의 진로문제도 마찬가지다.
자기자식이 어떤 천부를 타고났으며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하는지 살피지 않는다.
자기의 수준에서, 자기의 판단에 따르고 있으며 주위의 쏠림현상에 무비판적으로
합류한다.
다른 하나는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을 통해 이루어보려는 보상심리다.
여기에서 억지와무리가 생긴다.
지금 학원에 다니고 있는 애들이 엄청난 사교육비-돈을 쓰면서도 결국은 똑같아
지는게 그 때문이다.
똑같아지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모순이 바로 그것이다.
프로-전문가가 되기위해서는 이미 7세 이전부터 차별화 교육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에미들의 부족한 안목이 아이들의 앞길을 망치고있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우리격언에 ‘한가지 재주는 다 가지고 있다’ 는게 있다.
그건 사실이다.
모든 인간은 하늘이 주신 천부를 쥐고 태어난다.
자기가 좋아하고 남보다 잘 하는 일이 그것이다.
애들을 잘 살펴보면 똑같은 애는 하나도 없다.
사람은 그게 누구든 업(業)을 가져야 하며 그 업이 평생 자기를 먹여살린다.
특히 지금은 모든분야가 전문가의 시대이며 평생직장은 없다.
일생동안 여러번 직장을 옮기게 되며 그때마다 자신을 엎그레이드 해야하는
시대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의 변화는 더더욱 천부-적성의 극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천부가 직업이 되면 행복은 보장된다.
그러나 무지한 부모들의 부족한 안목 때문에 이 조합을 놓치면 백수가 되어
평생을 고생하게된다.
자기 아이의 천부를 볼줄모르는 부모라면 더 얘기할 것도 없다.
모르는 사람은 손에 쥐어줘도 모른다.
비극이 아닐수 없다.
어린이집, 유치원, 각종학원으로 이어지는 외곽교육시스템은 그 부모, 특히
에미가 자기자식을 직접기르지 않아도 되는 ‘편의’를 제공한다.
자식의 양육을 상당부분 ‘돈’ 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함정은 가정에서의 ‘밥상머리교육’을 앗아갔고, 전인교육을 받지못한
망종들을 사회에 풀어놓는 역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알바는 할지언정 제 자식의 가장 중요한 어린시절의 기초교육을 장사꾼들에게
맡기고 있다.
사실은 그렇게 하고있는 부모역시 그렇게 자란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는 동안 자신은 편할지 모르지만 자녀의 인간적기초교육은 망가지고 있다.
이런현상은 지금 하나의 사회적 풍조가 되어가고 있다.
부모가 기르지 않고 가르치지않는 애들을 학원이 제대로 가르칠 리가 없다.
인간은 전통적으로 가정, 부모에게서 직접 배워야할 일들이 아주많다.
특히 윤리, 도덕, 질서교육이 그렇다.
그게 생략되면 인간성이 부족한, 본능쪽에 더 가까운 망종이 될 수밖에 없다.
가정교육, 부모의 책임이 사라진 자리에 나타나는게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대단히 크고 결정적인 후유증을 가지고오는 문제다.
각종학원은 필요에 의해서 생긴 보조적 기능의 시스템들이다.
한 아이가 모든과목, 모든분야를 다 잘 할 수는 없다.
이때 필요한게 보충교육이며, 보완교육이다.
학원이 담당하는게 바로 이 기능들이다.
따라서 애를 학원에 보내기 전에 그 아이에게 부족한 과목, 분야가 무엇인지
철저히, 분명하게 가려내어 파악해야 옳다.
그래야 사교육비-돈도 절약할수 있고 보충교육도 집중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거개의 에미들은 그런 합리적인 검증절차 없이 남들이 하니까
경쟁적으로 나도한다는 쏠림현상에 빠져있다.
생각해 보자,
한 아이가 한두개의 학원에 다닌다면 그건 효과적일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보통 다섯군데 이상, 심하면 열곳의 학원을 다니는 애들도 있다.
단 한가지도 제대로 할수 없다는 것은 놀랄일도 아니다.
에미의 안목이 부족하고 자기철학이 없으면 이런 ‘교육낭비’ 가 생긴다.
이제 한가지 사례로 설명해 보자.
현역화가인 아내는 상당한 수준의 영어실려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영어소설을 원서로 읽고있으며 처녀땐 미국인 가정에서 그집애들의
가정교사를 한 일도있다.
아내가 미술지도를 하고있는 아이들중 거의 모두가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다.
아내가 애들 수준에 맞는 영어로 어떤 질문을 하면 알아듣는 애가 없고,
대답을 해도 알아들을수 없는 발음과 문장실력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아는대로 영어의 학원비는 상대적으로 아주높다.
이 비싼돈을 지불하면서 무엇을 배우는가,
에미들은 체크하지 않는다.
사실은 못한다.
체크할 실력이 안되기 때문이다.
모든학원이 마찬가지다.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있는지 돈을 지불하는 에미들이 체크하지 않는한 그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학원에 보내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그게 수업에 보충, 보완이 되고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그걸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에미들에게도 그만한 실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아니면 비싼돈 개물에 타 먹는격이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게 그 말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체면문화’ 에 살고 있다.
외화내빈이 대표적인 정서다.
실속보다는 체면, 간판을 먼저 따지는것도 그 영향이다.
백수가 무엇인가.
학력간판이 앞선, 속빈강정이다.
그래서 경쟁에서 낙오한 것이다.
자녀교육에 관한한,
자신들을 위해, 자녀를 위해, 한가정과 사회를 위해 이제는 변해야 한다.
더 이상의 백수양산은 모두를 위해 해롭고 위험하다.
실력이 되지않는 애들을 닥달해서 삼류대에 보내봐야 백수밖에 더 되겠는가.
지금까지의 결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이제는 실속을 차려야 살아갈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특목고, 마이스터고가 그 대답이다.
일류대에 갈 수 없는 자식이라면 일찍 직업교육으로 가야한다.
천부와 적성을 살려 진로를 결정하면 그 자식은 크게 성공할수 있다.
천부는 경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타고나는 재주는 당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길로 가야한다.
헬리콥터맘들은 생각보다 많다.
심한 경우 자식의 결혼생활에 까지 간섭한다.
일단 성인이 되었으면 독립시키는게 원칙인데 헬맘들은 마음을 놓지못한다.
그래서 계속 간섭하고 고부간의 문제가 자식과의 문제로 비화, 파탄을 맞는다.
이런 경우 한가지 기초적인 질문이 생긴다.
자식에게 올인하는 것이 좋다고 하자.
그러면 ‘자기의 노후’ 는 누가 준비하는가.
엄청난 부자가 아니라면 이 문제는 아무도 피할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이다.
지금현재 은퇴노인 5명중 1명은 빈곤계층으로 추락하고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준비여하에 따라 축복일수도, 재앙일수도 있다.
자식도 중요하지만 결국 더 중요한 것은 자기자신이다.
자식이 부모의 인생을 살아주는것도 아니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자기의 노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할만큼 자식에게 빠져있다면 그 혹독한 대가는
본인이 아프게 치러야 한다.
겪어본 사람들이 하는 절박한 경고다.
내게는 이상한 습관이 하나있다.
어떤 가정을 방문하게되는 경우 반드시 살펴보는게 있다.
그게 그집 주부의 ‘책상’ 이다.
백에 하나 어렵지만 자기책상이 있는 엄마가 있다.
그 위에 놓여있는 책들도 상당한 수준이다.
비록 애들의 엄마이고 한가정의 주부지만 ‘자기의 생활’ 이 있는 여성이다.
그런 엄마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사실은 그런엄마의 자녀들이 더 성공적이다.
기초가 있고, 독립심과 책임감이 어려서부터 길러지기 때문이다.
자식 뒷바라지 하다 닭쫓던 개처럼 지붕만 쳐다보는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에게는 ‘자신의 생활’ 이 없다.
에미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자기자리’ 가 없는 것이다.
이보다 더 허망한 일이 달리 또 있겠는가.
그런데도 거의모든 엄마들은 그렇게 살고 있다.
어떤 자식도 엄마의 그 빈자리를 보상해주지 않는다.
텅빈인생으로 마감하는 것이다.
다늦게 가슴을 쳐봐야 아무소용도 없다.
백수문제는 백약이무효다.
한번 백수가되면 백수로 끝날 확률이 높다.
누가 그런인생을 만들었는가.
일차적인 책임은 에미들이 져야한다.
어린 자녀가 스스로 판단하기 이전, 모든 것을 결정한게 에미들이기 때문이다.
백수를 줄이기 위해서도 무엇보다 먼저 에미들이 변해야 한다.
바른가치관, 세상을 제대로 읽을수 있는 교육과 안목,
자식의 천부를 살필줄 아는 혜안,
학원교육의 내용을 체크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
어린자녀가 성공하는것도, 백수가 되는것도 결국은 에미들의 책임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있어 곡식이 자라는 밭과같다.
척박한 땅에서는 열맥를 기대할수 없지만,
비옥한 밭에서는 풍성한 열매를 얻을수 있다.
그 누가 이 섭리를 거스릴수 있겠는가.
속이 빈 사람은 겉을 꾸미고
속이 찬 사람은 안을 가꾼다.- yoro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