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국가에 민주시민이 없다.

기원전 800년대,
펠로포네소스반도의 최강자는 막강한 군사력의 도시국가 ‘스파르타’ 였다.
그러나 스파르타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그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다.
같은때,
넓은 플라자에 모여 문제를 함께 토론하고, 다수결로 결정하고, 그 다수결에
승복한 도시국가 ‘아테네의 시민정신’ 은 지금 우리들속에 살아 남아있다.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 라고 부른다.
그리스어 demos(인민) 와 kratia(지배) 가 어원이 되어 democracy 가 되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권력을 가짐과 동시에 스스로 그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형태다.
오늘날 거개의 국가들이 민주주의 정치형태를 수용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최선은 아니라 해도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정치제도중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의가 없다.
사회주의의 실험이 철저한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1)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로
되어있다.
민주-民主- 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뜻이며,
공화국-共和國- 은 공화정치를 하는나라, 즉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라는
의미다.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대표적 정치형태가 선거-투표다.
통수권자인 대통령도, 의회정치의 대의원인 국회의원도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
한다.
따라서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 외형에서는 민주국가임에 틀림이 없다.
1948년 8월 15일의 민주국가 건설을 기준한다면 68년밖에 안된 짧은기간에
이런 외형을 갖추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 이기도 하다.
그래서 1960년대의 경제압축성장과 민주화의 성취는 세계로부터 ‘기적적’
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건 사실 이기도 하다.
세계2차대전 이후 이 두가지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는 우리밖에없다.

제19대국회의 최근모습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참담함’ 그 자체다.
엄격히 말 하자면 그걸 ‘국회’ 라고 부를수도 없다.
온갖 저질의 인간들이 모여 국민세금으로 배를 불리고, 온갖 특권과함께 사욕을
채우는 것은 물론 사분오열된 계파간의 진흙탕싸움으로 날이 지새고 있다.
거기에 민주주의는 없으며,
국가를 생각하고 민생을 걱정하는 대의원-지역구가 선출한 국회의원도 없다.
도대체 이런 극단적인 혼란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정답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민주주의 정치의 본산인 국회에 ‘민주주의’ 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철학이자 정치적인 자기신념이다.
국회의원이 되기이전 먼저 이 철학과 이념이 분명해야 된다.
그 기본이 없기 때문에 지금과같은 정치외적인 요소들이 정치의 본질을 파괴하는
정치적 사고가 터진 것이다.
이런 현상을 ‘변고’ 라고 부르기도한다.

국회만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의 우리사회가 혼란스러운것도 따지고 보면 민주국가에 그 민주주의를 경영할
민주시민이 태부족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정치형태, 국가체제로 수용했다고 해서 저절로 민주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가 너무나 일천하다.
어떤의미에서는 당연한 과정일수도 있다.
민주주의를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말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숙제는,
국민일반이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 정치이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이다.
무엇이 민주주의인가.
민주국가가 되기위해서는 국민이 ‘민주시민‘이돼야 하는것인데 그 개념도 부족
하다.
아직은 학습도 부족하고 체험도 부족한게 현실이다.
민주주의를 자유와 방종으로 아는게 대표적이다.
그래서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민주주의는 대가를 지불해야 그 결과를 얻을수 있다는 사실에 이해가 부족하다.
극단적인 일부는 반독재투쟁 자체가 민주주의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을 정도다.
운동권정치가 거기서 나왔다.
이 암이 19대 국회에 전이된 것이다.

우리민족은 그 성향에서 민주주의가 자리잡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통적으로 ‘토론문화’ 가 없다.
질문없는교실, 강의실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성질이 격하기 때문에 말 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고, 대체적으로 거칠고 상스럽다.
민주주의는 결과이상으로 그 과정도 중요한 정치형태다.
그 과정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토론이다.
누구나 자기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차분히 전개할수 있어야하며 이 권리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토론문화가 부족하면 다양성이 사라진다.
어떤 하나의 의견만 강요된다면 이미 민주주의는 아니다.
우리가 앞으로 건전한 민주국가를 세우려면 반드시 토론문화가 활성화 돼야한다.
넓은 플라자에 모였던 아테네시민의 ‘시민정신’ 이 바로 그것이다.
내 의견도 주장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경청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첫걸음
이다.
그래야 건전한 토론문화가 생길수 있다.
내 의견과 다르면 곧 적이되는 풍토로는 어렵다.

민주주의에서 또 하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다수결 원칙에 승복하는 것이다.
51대 49의 고비가 바로 그것이다.
찬성쪽이 압도적으로 많은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단 한표차로 51대49가
되더라도 그 결과에 승복할수 있어야 민주주의다.
지난 대선이 끝난후 문재인 후보가 보인 추태의 핵심이 바로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사악한자세였다.
그 근본에서 그는 민주시민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정치를 하기 때문에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이다.
일부 세력은 결과를 엎으려하고,
다른 세력은 음모론을 제기, 원인무효까지 시도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결과의승복이 그 핵심이며 이는 어떤경우에도 훼손되어서는
안되는 원칙이다.
따라서 온전한 민주국가는 투명하게 실시된 투표와 그 결과에대해 완전히 승복
하는 민주시민이 있어야 가능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면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다수결의 핵심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정치후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비민주적 행태가 지연, 학연,
혈연등의 밀접한 관계다.
지금도 어떤 선거구에선 한 후보에게 99%의 지지표가 쏟아지는 경우가 있다.
그건 전체주의국가나 독재국가에나 있을수 있는 변고일 뿐이다.
결코 건전한 민주적 투표라고 하기 어렵다.
지연,학연,혈연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평가’를 저해하기 때문이다.
국회에 온갖 쓰레기가 진입하는 일차적인 원인이 거기에 있다.
결국 쓰레기국회는 유권자가 만든 것이다.
지역구의 대의원-국회의원은 그 선거구의 대표성을 가질수 있어야 민주주의다.
민주시민은 대의원 선출에서 후보에 대한 객관적평가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수준의 사람들이 태부족이기 때문에 국회에 가선 안되는 쓰레기들이 모여
들어 의사당을 개판으로 만드는 것이다.
전과자, 체납자, 군미필자등이 문제의 인간들이다.
유권자가 아니면 누가 이들을 걸러내겠는가.

민주주의국가는 그 다른이름이 법치국가다.
법이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함께, 편히살기 위해 만드는 약속이 곧 법이다.
법보다 주먹이 먼저에서 주먹보다 법이 먼저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법이다.
이때의 요체는,
모두가 법을 지키는 일이다.
일부만 지키고 일부는 안 지킨다면 그건 언제나 지킨쪽만 손해다.
대한민국은 법을 어기기에 아주 좋은 나라라는 말이있다.
그게 사실인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특히 기초질서에서 우리는 아직 후진국 수준이다.
여기에 범법자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이기 때문에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사법부에 대한 비난은 외국에나가있는 교포들까지 가세하는 수준이다.
모두가, 똑같이 법을 지키지 않는한 민주국가는 요원한 얘기다.
‘법을 지킬수록 손해본다’ 는 고등학생들의 설문조사는 우리앞에 켜진 커다란
경고등이다.

독재국가에는 비밀경찰과 강제수용소가 있다.
민주국가에는 공권력이 있다.
공권력은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법에의해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는 국가폭력
이다.
따라서 공권력의 건전한 집행은 민주국가를 유지, 발전시키는 수단의 한가지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렇게 막중한 공권력이 반민주세력에 의해 공격받는다면 그건 반국가적
범죄행위가 된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공권력’ 이 동네북 신세다.
만신창이가 되도록 얻어 터지고도 민원과 상부의 경고가 무서워 제자리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가장 반민주적인 이런 행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공권력 자체에도 문제가있다.
공권력의 일선인 경찰에 손을대면 무서운 대가를 치르게 해야한다.
우리모두가 안전하게 살기위해서 그렇다.
공권력이 살아있으면 민주국가이지만 그게 죽으면 민주주의는 반신불수다.
선진국 일수록 경찰력이 막강한 이유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반민주세력이 곧 좌파친북, 종북세력이다.
평양에서 자기의 정치적 신념과 이념을 주장한다면 존경받을만 하다.
그러나 서울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종북하는 것은 비열하고, 비겁하고, 교활하기까지
하다.
이 사악한 세력들이 우리사회에 끼치고있는 나쁜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의 경우 반 체제세력은 5%내외다.
우리는 그게 20%를 넘고 있다.
사실은 모두를 위해 이건 대단히 위험한 수준이다.
이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대항세력이 곧 민주시민이다.
민주국가는 민주시민이 있어 존재하는 것이다.
그 민주시민은 계속되는 학습으로 길러져야 한다.
정부의 일차적인 책무가 그것이다.
자유는 보호받아야 하지만 방종과 망종은 척결해야 한다.
아테네에는 넓은 광장이 있었고, 토론이 있었으며, 다수결결과에 승복하는
‘시민정신’ 이 있었다.
아테네가 살아있고 스파르타가 사라진 이유가 그것이다.
그 시민정신이 곧 민주시민정신이다.
어떤경우에도 민주시민없이 민주국가는 존재할수 없다.

자유와 책임은 나뉘어질수 없다.-하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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