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도 변하고 있다.

우리는 전쟁의 잿더미에서 불과 두세대 사이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루었으며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전, 지금은 OECD회원국으로 부요한 나라가 됐다.
세계는 이를두고 ‘한강의 기적’ 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기적은 없다.
거기엔 우리들의 피와땀이 스며있다.
압축성장을 이룬 바탕에는 강력한 국가 리더십과함께 ‘교육받은 인력’ 이 있었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로서는 사람만이 자산이며 그들은 ‘공교육’을 통해 배출되었고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부존자원이 풍부하면서도 저개발과 가난을 극복하지 못한 나라들의 공통점이
교육받은 인력이 부족하고 정권이 극도로 부패한점이다.
거개의 남미국가와 아프리카가 여기에 해당된다.
공교육의 힘은 다른것으로는 대체가 안된다.
그게 어떤국가든 그 나라의 앞날은 전적으로 교육에달려있다.
‘교육백년대계’ 라는 말의 뜻이 그러하다.

지금의 우리교육을 정상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학생, 학부모, 교육을 담당하는 관료, 그리고 국민 모두가 같은 생각이다.
이 문제는 너무나 공공연한 것이어서 이론의 여지조차 없다.
사교육에 침식당한 공교육의 붕괴는 이미 그 한계를 넘어 재기가 불가능한 지경에
까지 와 있다.
‘교육망국-敎育亡國’ 이라는 말은 이제 하나의 개념이상의 구체성으로 우리모두를
압박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개인의 일이든, 국가의 일이든 마찬가지다.
사람이 능력이 있고 우수하면 그가하는 모든일도 우수할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전인교육을 받지못하고 ‘시험보는기술’ 만 배운다면 그 편협성은
모든일에서 전방위적 접근을 못한다.
사람은 많지만 쓸 사람이 모자라게 된다.
교육망국은 절대로 빈구호가 아니다.
지금과같은 교육으로는 다음세대의 발전을 기하기가 어렵다.
현상유지도 어려울 것이다.
이미 그런조짐은 여러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어쩌다 우리교육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
정말 개선할 여지와 방법은 없는것인가.
교육개혁없이 국가장래는 없다는 비상한 각오없이는 풀 수 없는게 교육개혁이다.
그래서 중요해지는게 ‘원인’을 찾아 아는일이다.
모든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지난 6월1일,
한국대학총장연합회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주최한
‘한국사회의 위기진단과 대응전략’ 이라는 세미나가 있었다.
전 호남대 총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한양대 석좌교수인 이현청 교수는
‘한국사회에는 입시지상주의 교육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모들이 자신의 교육적
소원을 자식을 통해 성취하려는 ‘한풀이’ 교육문화가 고착돼있다‘ 고 지적했다.
많은 원인들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원인이 부모의 보상심리에서 비롯된
한풀이에 있다는 지적은 현실성이 크다.
왜냐하면 왜곡된 교육현장에 있는 학생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스스로 어떤
판단이나 선택을 할수없기 때문이다.

한(恨)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아주 독특한 국민적정서다.
억울하거나, 원통하거나, 원망스러워서 쉽게 잊혀지지 않고 마음속에서 단단히
응어리가 되어있는 감정이다.
억울하다는 것은 애매한 일을당해 답답한 것이고,
원통은 분하고 억울한 것이다.
원망은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미워하는 마음이다.
자기가 교육받지 못한 일에 대해 이런 집요하고 복잡한 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이미
병적이다.
따라서 그것을 만회하려는 집착은 그만큼 강할 수밖에 없다.
보상심리가 생기는 원인이기도 하다.
보상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열등감을 가질 때 그것을 보충하려는 마음이다.
자기가 남들과 같은 교육을 받지못했을 경우 자식을 통해 그 빈곳을 보충하려는
마음이 곧 교육보상심리라고 할 수 있다.
그 바탕에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있기 때문에 이 보상심리는 한이되어 합리성을
결여한채 전혀 딴 방향으로 갈수가 있다.
교육이 왜곡된 기초가 그러하다.

다음은 이 한풀이 교육보상심리가 ‘입시지옥’ 이라는 기현상을 낳았다.
오직 대학입시에 모든 교육활동이 집중되면서 입시의 성공과 실패가 마치 인생의
성공, 실패처럼 비약되고 직업선택에 까지 자아실현, 자아성취의 의미가 아닌
입시성패의 결과로 인식되고 있다.
교육이 ‘대학입시’ 가 위주가 되면,
가장 중요해 지는게 시험과 점수다.
단 한점이 경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이기 때문에 학원-사교육시장이 커진 것이다.
한풀이 하는 부모의 목표가 대입시험이라면 그 자식은 점수전쟁에 내 몰릴 수밖에
없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교가 아닌 학원에서 입시기술을 연마해야 하는 학생들은
청소년기도 없는 ‘입시지옥’ 속에서 사육되고 있을뿐이다.
한풀이의 맹점은,
인생의 목표가 하나로 좁혀지는 위험이다.
다른길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자란 세대가 어떤 삶을 살지는 긴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더 큰 피해는.
우리의 중,고등교육이 ‘입시인간’ 이라는 정형화된 상품을 생산해 내고있는 점이다.
전인교육(全人敎育)이 원래의 목표다.
심,신이 함께 크고있는 청소년들에게는 인간전체에 대한 커리큘럼이 있어야한다.
학과목과 함께 도덕, 윤리, 예능, 체육이 교육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이 덕목들이 ‘입시’ 에 밀려 고사했다.
지금의 교육을 통해 어떤 인간형이 배출될것인지는 더 물을 것도 없다.
또 하나는 ‘입시인간’에서 탈락하는 상당수가 입시교육에서 제외되어 ‘포기한인간’
을 배출하고 있는문제다.
좌절을 겪은 이 부류는 다시 열등감과 함께 제2의 교육적한을 품는 세대가 되어
‘세습’ 의 악순환이 될수있다는 점이다.
그런 현상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봐야한다.
우리모두가 힘을 합해 ‘공교육’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하는 절박한 이유다.
다른 방법으로는 절대로 이 문제를 해결할수 없기 때문이다.
땜질은 끝까지 땜질일 뿐이다.

교육적 한풀이의 바탕에는 또하나의 사회인습적인 요인이 있다.
그게 ‘간판’ 이다.
우리사회에서 ‘학력’ 은 곧 가장확실한 간판이다.
외화내빈의 왜곡된 정서가 낳은 사회적 고질병이 그것이다.
이 문제의 바탕에는 ‘신분상승’의 욕구가 크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된다.
가장 깊은 뿌리에는 노비문화가 있다.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족보‘ 가 모셔지는 것은 그것만이 자기, 자기가문이 노비가
아니었다는 것을 기록으로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신분상승욕구는 교육적한으로 승화, 입시지옥과 공교육붕괴를 불러왔다.
실력보다는 간판이 우선인 한 이문제는 풀기가 쉽지않겠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오직 ‘실력’ 만이 인정받는 사회풍토가 조성될 것이다.
그렇게 갈수밖에없다.
세계가 그걸 요구하고 있기때문이며 이미 우리도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

교육적한풀이에 더해진 재앙이 수많은 대학의 난립이다.
학원모리배와 지방토호들이 만들어낸 4년제 대학이 국공립, 사립합해 226개다.
이좁은땅에 이렇게 많은 대학이 생기다보니 작은도시가 뽑는 청소원 지원자의
60%가 대졸생이다.
실제로 합격, 빗자루를 들고 서 있는 대졸자가 30%이상이라고 한다.
이러한 인적, 교육적낭비는 국가를 좀먹는 부정적 요인들이다.
더 큰 피해는 잘못된 ‘눈높이’ 가 자신의 수준, 실력은 알지도 못하면서 중소,
중견기업을 기피, 백수를 택하는 기현상을 낳고있다는 점이다.
이제 이들은 캥거루족이 되어 늙은 부모를 파먹고 있다.
100만 백수의 문제는 글자그대로 속수무책이다.
아마 그들의 상당수는 마음을 고쳐먹지 않는한 백수로 늙을 것이다.
누가 그들을 이지경으로 몰았는가.
배우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보상하려했던 부모들이 그 책임의 상당부분을
짊어져야 한다.

고등학교의 17%가 마이스터고등 특목고다.
처음에는 정원미달이었지만 지금은 평균 5대1의 경쟁이며 중학교의 내신1등급이
아니면 원서도 못쓴다.
산학연계의 이 고등학교 졸업생은 98%가 실습하던 기업에 취업한다.
아주 머리가 뛰어나 학문의 길로 나아갈 사람이 아니라면 이제는 대학에 갈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퍼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실을 보는 눈이 실리적이 되어간다는 의미다.
정부도 지금의 17%에서 33%까지 끌어 올리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
진학률도 85%에서 70%로 떨어졌다.
시작은 미미한 것 같지만 시간이 갈수록 변화의 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변하고 있다.
지혜로운 부모, 학생이라면 이런 변화의 낌새를 빨리 알아차려야 막차까지 놓치는
실수를 하지않을수 있다.
교육개혁은 명분이 아니라 ‘실리’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우리는 가장먼저 초등학교부터 살펴봐야 한다.- 김옥길 (전 이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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