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여행.

금년5월은 우리부부가 결혼한지 50주년이 되는 금혼식의 달이다.
나는 이 부족한 사람과 50년을 해로한 아내를 위해 세가지 선물을 준비했다.
첫째가 흑장미 50송이.
아내는 꽃다발을 안고 눈시울을 붉혔다.
두 번째 선물은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가곡,
이은상시, 박태준곡인 ‘사우-동무생각’을 첼로로 연주했다.
아내는 크게감동, 두 번 더 듣기를 원했다.
그리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세 번째 선물은,
아내가 평소 가보기를 원했던 일본의 북단 홋카이도의 여행이었다.
이른아침 우리는 차를 가지고 인천공항에 나갔으며 장기주차장에 주차한후 셔틀
버스로 터미널에 올라갔다.
엔화를 환전한후 제일제면소에서 아침식사로 소고기덮밥을 사 먹었다.
그리고 KE0765편으로 출발했다.

한국여자는 못당해.

낮12시 45분에 홋카이도의 신치토세공항에 착륙, 사증을 받기위해 입국심사를
받게됐다.
일본은 모든 외국인들에게 양손의 검지로 지문날인을 했고, 모자를 벗은상태로
얼굴을 촬영하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갚은줄에 섯고 아내가 먼저 법무성관리인 입국심사관 앞으로 나아
갔다.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아내와 심사관의 영어로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심사관이 촬영을 위해 모자를 벗으라고 하자 아내는 단호히 거부했다.
여자에게 모자는 화장의 일부이며 지금 모자를 벗으면 손질이 안된 머리 때문에
사진이 예쁘게 나올수 없어 거절한다는 것이었다.
심사관은 다시 모자를 벗으라고 했고 아내는 단호히 거절했다.
잠시 긴장된 시간이 흐른후 심사관이 타협안을 냈다.
모자의 챙을 올려 얼굴이 잘 보이게 해 달라는 것이었고 아내도 이에동의,
모자를 벗지않은채 챙만 약간 올리고 촬영을 마쳤다.
아마도 신치토세공항의 신기록일 것이다.
다음이 내 차례,
나는 다 봤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심사관앞으로 가서 똑바로 그를 쳐다봤다.
그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그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정말 한국여자는 못당해.’
나도 눈빛으로 대답해 줬다.
‘그걸 이제야 알았는가.’

한국은 신세계.

우리의 인솔자는 일본에서 대학을 다닌분으로 일본사정에 밝았다.
호텔을 향하는 버스안에서 그가 들려준 얘기.
일본은 우리와같은 밤문화가 없다.
모두가 퇴근하면 바로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서울에 와서 한국의 밤문화를 보면서 놀래고 감탄,
‘한국은 신셰계’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건 절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긍정적 평가라고 했다.
그들은 진심으로 활기넘치는 한국의 밤문화를 부러워하며 마음껏 즐긴다고 했다.

규정대로의 버스.

신치토세공항에는 HanatourJapan의 49인승 이스즈제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관광버스에 관한한 우리버스가 더 우수했다.
50대 후반의 일본인 운전사는 글자그대로 규정대로의 운전을 했다.
대부분의 구간이 시속70키로 였으며 간헐적으로 80키로 구간이 있었다.
나는 스피드게이지가 보이는 자리에 앉았음으로 그가 반드시 규정대로 운전하고
있음을 알수있었다.
절대로 과속하는 법이 없었다.
다른 하나는,
버스가 정차하는 모든곳에서 운행일지를 시간대로 기록하고 있었는데 그의 단아한
한문글씨가 인상적이었다.
우리의 한글전용이 정말 옳은것인지 다시 생각해 봤다.
우리가 일본, 중국, 싱가폴과 함께 한문문화권에 살고있기 때문이었다.
그 문화권의 글자를 모르면 정서적으로 고립될 수도 있다.

소란스러운 일본노인들.

호텔에서의 아침식사,
식당은 넓고 깨끗했으며 화식과 양식의 뷔페로 음식은 맛이있었다.
나는 밥과 일본의 된장국 미소시루를 즐기는 편이며 나나쯔께같은 짭짭한 반찬을
좋아한다.
그런데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는 일본인 노인네명(남여각2명)이 너무 큰
소리로 말하고 웃어대는 바람에 분위기가 나빠졌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않도록 자라는 것이 일본인들인데 남들을 전혀 개의치않는
시골노인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동서양을 막론, 그래서 사람은 교육을 잘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누구든 인간은 배우지 못하면 본능대로 사는 것이다.
도덕과 윤리가 그것을 제어할수 있어야 동물과 구별된다.

다다미의 추억.

첫날 투숙한 호텔방은 다다미였다.
우리집은 아버지가 불하받은 목조의 적산가옥이었다.
아래층은 온돌로 개조했지만 이층은 다다미방 그대로였다.
나는 중학생때부터 오래동안 다다미방에서 지냈다.
일본에 와서 오래간만에 다다미방에 앉아있으니 추억도 새로웠다.
풀냄새가 약간나는 다다미방은 우리의 온돌같은 따스함이 전혀없는, 사람을 늘
긴장시키는 주거라고 할 수 있다.
때를따라 우리는 온돌에서 푹 퍼질수 있지만 일본인은 그게 불가능하다.
근자 일본의 젊은 임산부들이 한국의 산후조리원에서 출산하는 이유도 따뜻한
온돌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기질적 차이도 결국 서로다른 주거문화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다다미는 절대 온돌을 따라올수 없는 한계가 있는 주거방식이라 할 수 있다.

어글리 코리안.

후라노시 에서의 점심은 오무라이스에 카레를 겻들인 이상한 음식이었다.
정말 맛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깨끗하기는 했지만 아주작은 음식점이었다.
인솔자가 설명한 이유는 이랬다.
처음에는 후라노시에 있는 일류식당에서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을수 있었다.
그러나 일단의 한국관광객들이 너무 매너가 나빠 한두집씩 한국인을 거절했고
지금은 어떤 일류식당도 한국인 관광객을 받지않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작은식당에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개판을 친’ 것이다.
충분히 앞뒤가 맞는 얘기였다.
삿뽀로에서도 우리는 일류식당에 가지 못했다.
샤브샤브와 대게는 마음껏 먹었지만 맛은 하나도 없었다.
정말 씁쓸한 기분이었다.
하나투어는 발품을 팔아서라도 다시 일류식당을 찾아야 한다.
높은 여행경비에 비해 너무 형편없는 식사였다.
‘클래식’ 급에는 맞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가지.

버스이 주행거리가 길어지면 인솔자가 재미있는 얘기를 하게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일본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가지는,
첫째가 건강이다.
사실 동서고금에 별 차이가 없는 절대조건이기도 하다.
둘째가 기술,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에서는 갑자기 직장이 사라질수도 있다.
그래서 어디서나 업(業)이 될 수 있는 기술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가 돈,
일본이나 한국이나 다를게 없다.
돈은 현실이고 돈 없이는 살수가 없다.
순서에서는 차이가 있을수 있지만 내용은 결국 같은게 인생이 아니겠는가.

중국인들.

삿뽀로 호텔에서의 아침식사중 일단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들어섰다.
분위기는 금방 아수라로 변했다.
큰 목소리들, 접시마다 산더미처럼 가져온 음식을 먹는게 아니라 입속에 쑤셔넣고
있었다.
보통 한 사람이 바나나를 다섯 개이상씩 먹었으며 그 모습은 여러날 굶은사람들
같았다.
정말 야만스러웠다.
우리도 얼마전 까지는 저랬을 것이다.
우리는 쫓기듯 식당을 빠져나왔다.

시청직원 모집광고.

삿뽀로시의 대형건물에 세로로 크게써서 걸어놓은 이색적인 광고가 있었다.
삿뽀로시가 직원을 모집한다는 광고였다.
안전, 가옥안전점검요원 모집광고였다.
그건 우리에게는 아주 생소하고 특이한 광고였다.
‘시청직원 모집광고’ 라니.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경차가 더 많다.

우리는 전체승용차에서 경차비율이 10%정도,
일본은 경차가 전체의 80%라고 했다.
실제로 경차가 아주 많았다.
도시의 주차면적확보 문제도 있겠지만 그만큼 실리적 측면이 크다고 할수도있다.
그들은 허세가 없고 현실적 이었다.

난신의 굴.

호텔을 떠나기 위해 방을나서서 복도를 걷는데 일행이 묵었던 방문이 열려있어
안을 보게됐다.
사람이 떠난자리가 난신의 굴 이었다.
돼지우리가 따로 없었다.
우리부부의 원칙중 하나가 숙소를 떠날때는 가급적 들어섰을때의 모습을 복원해
놓는 것이다.
한국인의 자존심을 위해서이다.
사람이 떠난 자리는 바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얘기해 준다.
우리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투어의 용기.

4일간 같은버스를 이용했는데,
그 버스에는 텔레비전도 음악도 없었다.
정말 가장 쾌적한 여행을 할수있었다.
여행자체가 심,신의 휴식이 아닌가.
그게 하나투어의 방침이라고 했다.
사실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사실은 조용한 것이 원칙이다.
국내버스여행도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교.

외국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면 언제나 여행했던 나라와 우리를 비교하게된다.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그게 눈에 보인다.
사람, 거리, 차량, 건물에서 일본과 우리는 크게 다르지않다.
어떤면에선 우리가 앞서있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은 단정하고 조용하고 깨끗했다.
반면 우리는 시끄럽고 더럽고 무질서했다.
일본을 극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생활환경개선을 위해 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 많이 개선될 것이다.

여행의 원칙.

일본을 여행하려는 경우 많이듣게 되는 말이있다.
‘도시를 보려면 오사카를, 자연을 보려면 홋카이도로 가라.’
홋카이도는 넓고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오염이 전혀 없는 거대한 자연이 거기 있었다.
남한보다 약간작은 면적에 인구는 십분의 일 정도니 자연이 보존된 것이다.
잘 정돈된 농경지는 넓었지만 사람은 거의 볼수없었다.
그리고 시골마을은 단정하고 깨끗했다.
우리부부는 겨울에 다시 홋카이도를 여행하기로 했다.
설국을 보기위해서다.
여행은,
‘젊었을때는 먼곳을, 나이들면 가까운곳으로 여행하라’ 는 말이있다.
겪어보니 그게 정말이었다.
우리부부는 30-40대에는 돈을 아끼고 저축해서 여행준비를 했고,
50-60대에는 집중적으로 해외여행을 했다.
주로 북미, 유럽, 중동, 마그레브 지역을 여행했다.
특히 사막지역을 여러번 갔고 지금도 다시 사막에 가는 꿈을 가지고 있다.
70대에는 인도, 싱가폴, 중국으로 좁혔고 80대인 지금 일본여행을 했다.
일본은 우리와 시차가 없기 때문에 편하게 여행할수 있었으며 음식도 잘 맞았다.
우리부부는 오래동안 여러 가지 형태의 여행을 해 봤다.
해외여행의 경우 최고의 패턴은 현지에서 차를빌려 자동차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게 마지막 코스였다.
특히 유럽지역에서 자력으로 자동차여행을 할수있다면 여행의 최고고수이며
베테랑이다.
우리경험으로는 우선 영국에서 시작하는게 좋다.
영어교통표지판, 영어지도, 영어대화, 그리고 안전한 나라가 영국이며 모든곳에
BB(민박집) 가 있다.
해외여행의 최고패턴인 자동차여행에 도전해 보기를 권한다.

국토를 보기위해 여행하는것과
국민을 보기위해 여행하는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루소.

2 Comments

  1. journeyman

    2016년 6월 30일 at 10:31 오전

    결혼 5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흑장미 50송이, 첼로 연주, 홋카이도 여행이 다 부러운데
    그 중에서 첼로 연주가 제일 부럽습니다.
    저도 금혼식 이벤트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시작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게 되는군요.
    훗카이도 여행 이야기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 yorowon

      2016년 7월 19일 at 11:50 오후

      악기를 하나 선택해서 배우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악기는 정말 여러가지로 유익한 물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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