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전 신입사원에서 고참부장이 될 때까지 30년이상 다니던 회사에서
정년퇴직했다.
그날저녁 직원들이 마련한 송별회를 마치고 늦게 귀가해 곧 잠이들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거의 반사적으로 회사에 출근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세수하면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봤을 때 비로서 내가 정년퇴직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잠시 혼란스러웠고 당황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거실 소파에 앉았을 때 늘 앉던 그 자리가 매우 생소하게
느껴졌다.
평소 퇴근후의 저녁시간에는 자연스럽던 그 자리가 출근하지않은 평일의 낮시간
에는 아주 낯설었다.
비로서 내 집인데도 내자리, 공간이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동안 낮시간의 내 자리는 회사였다.
그래서 정년퇴직한 지금의 낮시간 집에서는 내 자리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또하나의 문제는,
부부사이인데도 낮시간 집에서 마주앉으니 부자연스러웠고 부담스러웠다.
그동안 그런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이점은 아내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30년 이상을 남편이 출근한 공간에서 혼자 지내던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이다.
아내가 타온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몇마디 얘기를 나눴지만 곧 침묵으로 이어졌다.
아내는 퇴직한 남편을 위해 하루세끼를 준비했고 마주앉아 식사는 해도 오히려
불편했으며 ‘삼식이’ 라는 말이 무슨뜻인지 알것같았다.
정말 부담스러웠다.
결국 가장 가까운 부부사이라 해도 상대적으로 각자의 공간과 시간이 있어야 건전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하나 놀랜 것은 급격하게 체중이 줄어든 사실이다.
아내의 설명으로는 거의모든 남자들이 퇴직후 체중이 줄어들고 곧 다시 회복된다고
했다.
정말 놀라운 현상이었다.
퇴직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대단히 충격적인 일임에 틀림이 없었다.
우리집은 본래 나와아내, 그리고 아들과 딸, 네식구가 살았는데 아들이 결혼해서
나갔기 때문에 지금은 세식구가 살고 있다.
정년퇴직한후 내가 발견한 사실은 식구사이의 유대감 이었다.
아내와 딸은 유대감이 컸고, 공유하는 시간도 많았지만 나와는 그렇지 못했다.
회사에 다니는동안 집은 하숙같은 것이 되어 식구들과의 정서적 유대가 생기지
못한 것이다.
낮시간 세식구가 식사를 같이해도 나는 소외된 기분이었고 그들도 내게대해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아내와 딸이 함께 선호하는 TV프로그램과 내것은 달랐다.
그들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나와는 거리를 뒀고 나는 그게 섭섭했다.
아무리 한집에 살고있는 가족이라 해도 유대감이 부족하면 남과 다를게 없다.
회사일에 매달려 살다보니 가족과의 유대를 위해 노력하지 못했으며 퇴직한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있는 셈이다.
혈육이라 해도 유대감이라는 내용을 만들기 위해서는 형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평생을 가족의 부양을 위해 노력한 나로서는 그 거리감이 바늘끝처럼
아프게 가슴을 찔렀다.
어떤 배신감과 함께 패배감같은 것 이기도 했다.
아내는 내게 노인정에 나가보라고 권했다.
그곳에는 나보다 나이많은분들이 있었으며 백원짜리 화투를 치다 점심때가 되면
부녀회에서 끓여주는 국수를 먹었고 이어 TV를 보거나 잡담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도무지 생산적인 구석이 없었다.
다음이 아내의 권고로 가본 노인복지관,
프로그램은 여러개 있었지만 내 수준에 맞는건 하나도 없었다.
결국 노인정도 복지관도 내게는 맞지않았다.
비로서 나는 집안에 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으며 그동안 아들이쓰던
방문을 열어봤다.
그 텅빈 공간은, 내가 나를 위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고발하고 있었다.
준비없는 노년, 그게 얼마나 가혹한 현실인지를 그 텅빈 공간이 그대로 보여줬다.
자책과 함께 반성했으며 후회도 컸다.
회사일에만 매달렸던 어제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때는 그럴수밖에 없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함께 회사에 다녔던 친구를 찾아갔다.
그가 오래전부터 자기의 서재를 꾸미고 있음을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제일큰방을 자기의 서재로 꾸몄고 아내와 딸, 그리고 자기는 각자 자기방을
가지고 있었으며 거실은 함께 쓰고 있었다.
그방은, 한 인간이 노후를 보내기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구비돼 있었다.
정말 나는 깜짝 놀랬다.
그 친구는 치밀하게 자기의 노년준비를 했던 것이다.
읽고싶던 책들을 모아 큰 서가에 꽂아놨고,
특히 성능이 좋은 오디오시스템은 상당한 투자를 했다고 했다.
그 친구는 라틴음악을 좋아했고, 음반수집도 많았지만 전문지식도 대단했다.
그리고 컴퓨터,
거의 전문가 수준에서 컴퓨터를 활용하고 있었다.
윈도우-열린 창문으로 온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걷기운동도 열심히 하고있다고 했다.
그날의 학습과 견학은 결과적으로 내게 큰 도움이 됐다.
자극도 되었으며 그런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집에 돌아와 내 서재를 꾸미려고 했을 때 나는 재삼 나 자신에 대해 놀랬다.
나는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을 잘 할수있는지조차 몰랐다.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하는게 전부인 인생을 산 것이다.
책한줄 읽지않았고 종이신문도 제대로 읽지 않았다.
회사말고도 다른 인생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못한 것이다.
같은 동료였는데 한 친구는 거의 완벽한 서재를 갖추었고 나는 이제 빈방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건 인생관의 유무와 정도의 차이였다.
인생은 값과함께 가치도 있다.
값만 추구하다보면 가치의 세계를 모르게 된다.
노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겪게되는 어려움이 그것이다.
내가 겪어보니 노후준비는 돈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였으며 철학이 담겨있는
문제였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명함이 있는인생’ 이었다.
회사에서 주어진 직함이 찍혀있는 명함,
모든 대인관계에서 나는 언제나 그 명함에 찍혀있는 과장아무개, 부장아무개의
직함이 그 기준이었다.
그러나 회사에서 정년퇴직했을 때 그 직함은 떨어져나간다.
자연인 아무개로 돌아온 그때,
그 이전의 모든 공식적 대인관계가 사라진 그때,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었다.
고위직에 있던 사람들이 퇴직후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까지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에반해 아내-여자들은 처음부터 인간대 인간으로 유대를 만들기 때문에 나이
들어도 자주 만날 수 있고 그 관계도 더 깊어진다.
내가 집에있으니 아내의 외출도 더 잦아졌다.
나보다 더 큰 ‘마당’ 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갈곳이 없었다.
‘명함인생’을 살았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으며 외딴섬에 혼자 버려진 기분이었다.
또 실제가 그랬다.
정년퇴직과 함께 새롭게 노년을 살고있는 나는 자주 우울해지고 의기소침해진다.
그리고 앞날이 두렵기까지 하다.
내집인데도 집안에서 내 자리가 없고,
가족간의 유대감도 없으며,
삼식이가 되어 아내의 짐이 되고있다는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다.
아내에게 용돈을 타 쓰는것도 자격지심이 생기는 일이다.
경제권을 아내가 가지고 있는것도 내가 처리를 잘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돈이 내 손에서 나가야 가정이 건전하다는 것도 깨달았고 이점 크게 후회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크게 나를 괴롭히는 것은 할 일도, 할 것도 없는 ‘무료함’ 이다.
무료는 사람을 지치게하고 늙게하고 병들게 한다.
전혀, 아무준비도 없이 퇴직했기 때문이다.
왜 준비를 못했는지를 아무리 자책해 봐야 아무소용도 없다.
내게 닥쳐있는 아픈현실은 그대로 현실일 뿐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 문제는 해결해주지 못한다.
나 스스로가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 곤혹스럽고 힘들다.
우리사회에서 은퇴는 커다란 심리적 충격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은퇴는 끝인동시에 또 하나이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제1인생의 마무리인 동시에 제2인생의 시작이다.
행복한 제2인생의 핵심요소는 돈이 아니다.
제2인생은 ‘나를 찾는시기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을 통해 나를 찾고 발전시키는 시기다.
100세 시대에 50-60은 속도를 줄이고 차선변경을 할때다.
그리고 다시한번 질주해 보는 것이 제2인생이다.
그건 쉬엄쉬엄가는 늙은이의 길이 아니다.
다시한번 자기의 열정을 불태울수 있는 기회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큰 마음먹고 나를 위해 내 서재를 만들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은 비어있는 이 방에 ‘나’를 채워넣을 것이다.
내가 제일먼저 깨달은 것은 그동안 ‘읽기’ 가 결정적으로 부족했다는 사실이다.
읽지않으면 무식해지고 무지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읽으면 알게되는게 세상의 이치다.
이제부터는 삶의질을 위해 읽기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너무나 뒤떨어진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보는 스마트폰에서 얻을수 있지만 지식은 읽어야 얻을수 있다.
특히 제2인생은 지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지금나는 새로 꾸미기 시작한 서재의 안락의자에 앉아있다.
먼저는, 작지만 기능적인 책상과 의자를 구입했다.
컴퓨터도 새로 장만했다.
안락의자는 친구의 충고대로 값이 문제가 아니라 앉아보고 가장편한, 인체공학적
으로 디자인된 외제를 샀다.
안락의자는 남은 여생을 함께하는 중요한 물건이기 때문에 잘 선택해야된다.
책상뒤의 벽에는 큰 서가도 마련했고 음악을 들을수 있는 오디오세트도 마련했다.
내 친구는 우선 모차르트의 음악을 많이 들으라고 했다.
노후생활은 TV보는 시간이 많아진다.
이점 친구이 충고가 크게 도움이 됐다.
서재에 내 전용의 TV를 놓되 우선 크기에서 32인치 full HD 로 구입하라고 했고,
이는 안락의자와 방의 크기가 TV와 가지는 거리의 배분에서 황금비율이라고 했다.
다음은 안락의자에 않았을 때 눈높이를 기준, 약간 낮게 설치하라고 했다.
벽에 높이걸린 큰 TV를 쳐다보는것과 알맞은 크기의 TV를 내려다 보는 것은
종속성에서 차이가 크다고 했다.
TV가 인간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규프로보다는 V.O.D.를 많이 시청하게 된다고 했다.
서재에 대한 1차적인 구상이 끝난후 나는 집중적으로 한가지 문제를 생각했다.
나는 정말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할수있을까.
정말 아무것도 없을수는 없지않은가.
그때 떠 오른게 화분이었다.
화분대를 만들고 하나둘씩 화분을 구입, 식물을 키워보는 것이다.
그일은 정말 잘 할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며칠전 부터는 하루 한시간씩 걷기운동을 시작했다.
의사도, 친구도, 식구들도 걷기운동을 권했다.
노후의 건강은 걷기가 기본이라는 것이다.
꾸준히 해 볼 생각이다.
이제 나는 내 서재를 중심으로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통해 제2인생에서 ‘나’를
실현해 나갈 것이다.
늦기는 했지만 출발이 됐으니 과정은 만들어 나가면된다.
나는 언제나 부지런하고 성실하기 살았기 때문에 나의 제2인생에 대해서도
낙관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 하루하루를 ‘나’를 위해 노력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우연히 현명해 진 사람은 없다.- 세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