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쌀에서 해방되자.

지금은 부자들을 백만장자, 억만장자라고 부른다.
이때의 기준은 돈이다.
그러나 불과 얼마전만해도 우리들은 부자를 천석꾼, 만석꾼 이라고 불렀다.
그때의 기준은 쌀 이었다.
석(石)은 우리말 ‘섬’을 의미하며 곡식을 담는, 볏짚을 촘촘히 결여서 만든
그릇으로 멱서리 라고도 불렀다.
한섬은 대두 열말이 들어가는 무거운 용기였다.
그후 소두 열말이 들어가는 용기가 등장했는데 그게 ‘가마니’ 다.
가마니는 1900년대 초 일본에서 들어왔으며 그 어원은 일본어 가마스-かます 다.
내가 어렸을때만 해도 어른들은 한가마스, 두가마스 라고 말 했으며 한자로는
작은섬 입-叺 자를 쓴다.
가마니는 섬보다 볏짚을 촘촘히 엮은 것 이어서 알곡이나 소금을 담는 용기로
쓰였다.
지금은 가마니대신 튼튼한 종이나 비닐로 만든 자루나 포대가 널리 쓰인다.
쌀자루, 시멘트포대가 그것인데 많은 경우 푸대라고 잘못 말해지고 있다.

쌀은 전통적으로 우리의 주식이다.
지금은 소비량이 크게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쌀은 가장 중요한 식량이다.
쌀은 보리, 밀과 함께 세계3대 주요 농산물이며
벼의 재배는 인도에서 BC 7000-5000년대에,
중국에서 BC 5000년대에 시작 되었으며 우리나라는 BC 2000년경 중국에서
처음으로 들어왔다.
지금부터 1천여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의 주식은 피,기장,보리,밀등었다.
5,6세기경 까지도 쌀은 귀족들의 식품이었으며 고려시대 쌀은 물가의 기준이었고
관리들에게 봉급으로 지급되었다.
쌀이 대표적인 식량으로 정착된 것은 조선시대이며 쌀로는 밥을, 가루를 내어서는
명절이나 제사때 떡을 만들어 별식으로 먹었다.
내가 어릴때만 해도 안방 윗목에 쌀 몇가마니씩 쌓아놓은 집은 흔했다.
쌀과 장작, 그리고 김장만 있으면 추운겨울을 날수 있었던 시절이다.
쌀은 그렇게 귀한 물건이었으며 천석꾼, 만석꾼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지금 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쌀은 적정비축량 72만톤의 세배가 되는 200만톤이며
이를 보관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년간 6,320억원이다.
천문학적 세금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금년 쌀농사는 다시 풍년, 390만톤수요에 420만톤이 생산되어 남는 30만톤을 다시 정부가 수매하기로 했다.
재고가 늘어나고 관리비가 더 들어간다는 얘기다.
쌀은 왜 수요보다 과잉생산되고 있을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1993년의 우루과이라운드다.
농민들의 표를 의식하는 정치권의 계산과 전통적인 주식으로서의 식량안보라는
명분으로 쌀시장의 개방을 막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2005년 추곡수매제를 폐지하면서
농지 1핵타르(3000평)당 100만원을 주는 ‘고정직불금’ 과
쌀값이 목표가격 (18만8000원/80키로)보다 떨어졌을 때 차액의 85%를 메워주는
‘변동직불제’를 도입, 지금까지 11조 3.994억원이 지급됐다.
농림부에 따르면 금년에 지급될 직불금 예산은 1조8.017억원이다.
시장에서의 경쟁을 막아놓고 직불금 지급으로 재고의 누적과 관리비의 증가로
막대한 세금이 계속해서 새고있는 것이다.

지금의 쌀농사 구조는,
고정직불금과 변동직불금을 그대로 운영하는한 농민은 절대손해볼 염려가 없게돼
있다.
게다가 지금은 98%가 기계영농이다.
따라서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생산량을 줄일 이유가 없다.
반대로 쌀을 제외한 곡물의 자급율은 23%, OECD국가중 최하위이며
지금도 가축사료용곡물 1000만톤, 식용밀 200만톤을 수입하고 있다.
실로 엄청난 물량이다.
쌀을 생산하는 농업진흥지역-절대농지를 줄여 쌀 이외의 곡물을 재배해야할 필요성은
이미 제기된지 오래다.
정부는 작년말 10만 핵타르의 절대농지를 해제하는 계획을 발표한후 계속 줄여
나가고 있는 중이다.
학계에서는 쌀 소비의 감소를 감안, 더 줄여도 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곡물자급율이 낮고 절대농지를 한번 해제하면 다시 논으로 되돌리기가
어렵다는 문제와 함께 통일이되면 7.500만을 먹여야하는 식량안보의 문제까지 겹쳐
진행이 더딜 수밖에 없다.

그동안 쌀 소비가 어떻게 줄어들었는지는 통계보다도 밥그릇 크기의 변화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행남자기의 밥그릇을 기준할 때,
1942년에 만든 커다란 밥그릇은 550cc,
1952년에는 크기가 좀 줄고 깊어졌지만 530cc,
1965년엔 낮아지고 옆으로 퍼진 그릇으로 500cc,
1975년에는 좁아지고 높이가 올라갔지만 450cc,
1992년엔 다시 낮아지고 옆으로 퍼졌지만 400cc,
2006년엔 사발모양으로 작아지면서 350cc,
2013년엔 공기그릇의 작은 모양으로 260cc다.
지금은 애들 밥그릇 크기의 스테인리스 용기를 쓰고 있다.
한편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1인당 쌀 소비량을 1년을 기준했을 때,
1970년 136.4키로,
1980년 132.4
1990년 119.6
2000년 93.6
2010년 72.8
2015년 62.9로 줄어들었다.
라면과 빵등의 대체식품과 육류의 소비가 늘어난 대신 쌀은 급격히 그 소비가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이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1970년에서 2015년이면 불과 45년 사이인데 쌀의 소비량은 136.4키로에서
62.9키로로 반토막이 났다.
그런데도 쌀 생산량은 400만톤 수준을 유지, 수요에 대해 30만톤을 과잉생산
하고 있으며 그 누적분이 200만톤을 넘어 관리비 증가를 압박하고 있다.
소비량 감소로 과잉공급이 심각해지고 있는 쌀시장에서 근자 큰 고객으로
떠 오르고 있는곳이 편의점들이다.
1인가구 증가로 도시락산업이 뜨면서 편의점 CU의 겨우 올 상반기 간편식
제조공장 8곳에서 구입한 쌀은 총 5.500여톤, 이 추세라면 년말까지 1만5천톤을
구매할 것이다.
한편 GS25와 세븐일레븐의 쌀 소비량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농림부는 편의점 빅3의 금년 쌀 소비량을 대략 3만톤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재고 200만톤에서 3만톤은 코끼리 비스켓 수준이다.
쌀의 과잉생산, 재고관리, 직불금 문제는 이제어떤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이
숨길수 없는 사실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쌀의 과잉생산,공급문제를 해결하는 정공법은 쌀시장개방이다.
쌀도 다른 농산품-상품과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경쟁, 살아남도록 해야한다.
거의 해마다 겪는 배추파동이 좋은 사례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면 값이 떨어지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배추농사를 짓는 농부는 이익을 위해 물량을 조절해야 하고 특히
품질의 우수성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
절대농지, 직불금지급은 이러한 시장에서의 경쟁을 막아 사실상 쌀농사의
자생력을 죽이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쌀을 시장에 개방하는 것이 길게보면 쌀농사를 살리는 길이다.
쌀의 1인당 소비량도 계속 줄어들 것이다.
출산율저하와 인구 고령화도 영향이 있을것이며 특히 먹거리의 다양화,간편화가
쌀 소비를 줄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문제를 현실적으로 풀어야 하는 정부-정치권이 농민의 표를
의식,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쌀이 시장으로 나가는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임은 변하지
않는다.

지난6월 우리부부는 금혼식기념으로 일본의 홋카이도를 여행했다.
일본에 있는동안 나는 의식적으로 일본음식으로만 식사를 했다.
쌀밥과 일본된장국인 미소시루, 그리고 나나쯔께같은 건건이를 주로 먹었다.
밥맛에 놀랬다.
이미 기능적으로 품종개발을 했다는 얘기는 들었었지만 그렇게 밥맛이 좋을줄은
몰랐다.
나는, 며느리도 내게 부탁할정도로 밥을 잘 짓는다.
군대에서 우리분대장 이기두 상병에게 배운 기술이다.
그만큼 쌀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잘 알고 있다.
계속 고시히까리를 먹다가 백진주로 바꾼게 최근이다.
그러나 일본의 쌀밥은 그 맛이 백진주를 능가하고 있었다.
중국공산당 간부들이 일본의 무공해 쌀을 수입해서 먹고있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
이다.
그 물량도 엄청날 것이다.
우리는 이제겨우 기만톤을 시험수출하고 있는 수준이다.
우리쌀이 세계시장에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품질을 기능적으로 개발해야한다.
특히 가격경쟁에서 불리한 조건을 극복해야한다.
‘쌀은 주식’ 이라는 온실속에서 경쟁자들이 기다리고있는 시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일대 개혁이 있어야 살아남을수 있다.
농협과 농진청이 중심이 돼야하는 이유다.
그러나 지금처럼 농협이 금융업에만 매 달려있으면 가능성은 거의없다.
공룡처럼 커진 농협에는 아무도 손을 대지못한다.
그래서 농업-농사-농민과는 점점 멀어지는 관료집단이 돼가고 있다.

앞으로 쌀소비는 계속 줄어들 것이다.
한편, 경제적 으로도 한해 1200만톤을 수입하는 곡물을 자체생산해야 한다.
이래저래 이제 쌀은 당면한 현실의 문제가 됐다.
절대농지를 계속해제, 여타곡물의 재배면적을 늘려나가야 하며
반시장적인 직불금제도도 손질해서 쌀농사에만 집착하는 농민들이 그 생각을
바꾸도록 해야한다.
누적되는 재고를 줄여 늘어나는 세금-관리비도 줄여야 한다.
결국 이 문제는 정치적인 것이다.
표앞에서는 여당도 야당도 없다.
일이 이 지경이 된게 그 때문이다.
따라서 열쇠를 쥐고있는것도 정치권이다.
농민만 유권자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비싼 쌀값에 천문학적숫자의 직불금과 관리비를 부담하고 있는것도
결국은 유권자들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쌀은 주식이다’ 라는 강박관념에서 해방될때가 됐다.

스스로 혁명하지 않으면 혁명을 당한다.- 서양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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