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종(別種) 이라는 말이있다.
다른종자라는 뜻이 있는데 씨앗이나 혈통이 다르다는 의미다.
다음이 다른종류, 갈래가 다르다는 뜻이다.
때로는 특별히 골라서 선물하는 물건을 이르기도하며,
독특한 사람, 별스러운 사람을 빗대어 이르는 말 이기도 하다.
아내의 대학동창들은 아내를 ‘별종’ 이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별명이 별종인 것이다.
외모, 사고방식.몸의균형, 움직임이 그들과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여자나이 75세라면 파파 할머니다.
주름진 얼굴에 몸은 굽고 다리는 휘어졌으며 걸음은 느리고 불안정하다.
그런데 아내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상당수 사람들은 아내를 60대로 보고있으며 심한 경우 50대 말로 보는 사람도
있다.
외모뿐 아니라 말도, 사고방식도 전혀 할머니가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히 75세의 노인이지만 젊은이들보다 더 활기찬 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아내를 보면서 ‘성격이 운명이다’ 라는 격언을 믿는다.
아내는 태생적으로 낙천적이고 낙관적이다.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의 장점을 먼저보고,
어떤 일이든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성격이 쾌활한만큼 생기가 넘치고 작은일에 감사하고 행복해 한다.
작은감동에도 쉽게 눈물을 흘리고 다른사람의 슬픔을 함께 아파한다.
이러한 아내의 태도는 타고난 성격,기질에서 나오는 것 이기 때문에 성격이
운명이라는 말은 맞는얘기다.
아내는 타고난 성격대로 즐거운 인생을 사는 것이다.
절대로 꾸며서는 할수 없는 일들이다.
사람이 타고나는 성격은 글자그대로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인 기질을 타고난 사람은 그만큼 불행하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비선택적 이라 해도 그렇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좋은성격, 좋은기질을 가진다는 것은 그래서 큰 행운
이다.
그런면에서 아내는 하늘의 복을받은 유쾌환 할머니다.
나는 그점을 늘 부러워한다.
아내가 가지고있는 성격, 성품,기질을 쉽게 설명할수 있는게 자동차다.
아내가 자동차 운전면허를 발급받고 내가 사서 선물한 차를 운전한게 1974년이다.
지금까지 42년간을 간단없이 운전하고 있으며 지난 9월에는 생애8번째 차를 새로
구입했다.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운전을 하지않는다.
힘도들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월평균 1500키로를 주행한다. 정말 대단한 거리라고 할 수 있다.
아내는 특히 밤운전, 안개, 비바람같은 악천후에 아주 강하다.
80대인 나는 가급적 운전을 하지않는다.
따라서 외출할때의 운전은 거의 아내가 도맡는다.
아내는 자기를 ‘남편의 전속기사’ 라고 부른다.
운전대만 잡으면 아내는 딴사람이 된다.
그만큼 지금도 운전을 즐기고 좋아한다.
런던에서 차를 빌려 보름동안 영국을 일주하는 자동차여행에서 나는 지도만 읽고
운전은 끝까지 아내가했다.
핸들을 넘겨줄 기미도 없었다.
그만큼 지금도 옛날과 똑같이 차를 좋아한다.
아내에게 차는 또 하나의 생활공간이다.
그안에서 그림도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휴식하고, 식사도하고 잠도잔다.
아내의 이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활의 뿌리는 무엇일까.
그게 그림 이다.
아내는 지금도 현역화가다.
75세의 할머니가 2015년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에서 구상부문에 입선했다.
화가로서는 가장 어려운 마지막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대출신이라 해도 모두 국전에 입선하는 것은 아니다.
아내는 그게 어디든 작은짬만 생겨도 스케치에 열중한다.
그림을 그리는 아내에게는 자동차는 그래서 발이며 또 날개이기도 하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돌아다니는 거리는 엄청난 것이다.
새벽에 떠나 섬진강에서 그림을 그리고 밤중에 돌아오는 실력이다.
그 체력은 강도 높은 운동에서 비롯되고 있다.
거의평생 에어로빅을 하고있으며 근자에는 요가가 추가됐다.
격열한 운동과 선(禪)을 함께하고 있는셈이다.
체격이 곧고, 걸음이 빠르며 몸이 날렵한 것은 모두가 운동 때문이다.
의사인 아들이 우리부부에게 하는 잔소리가 ‘운동많이 하세요.’ 다.
아내가 아뜰리에로 쓰는 거실의 한쪽벽은 약1.500권의 책이 서가에 꽂혀있다.
그림을 위한 자료수집에서 아내는 아주 부지런하다.
끊임없이 책을 읽고 그림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한다.
테블릿PC로 여러 가지 그림들의 디테일을 연구하는 자세는 진지하고 몰입적이다.
일단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너무 열중하기 때문에 시간가는줄을 모른다.
그래서 아내에게는 무료한노년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나이들어서도 분명한 자기일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아내는 자기의 책상을 평생 지키고 있다.
그 위에는 언제나 아내가 즐겨읽는 영문소설이 펼쳐저 있다.
아내는 성경도 영어로 읽는다.
더 쉽고 이해가 빠르다고 한다.
책과 읽기는 아내의 한부분이다.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학구적인 자세가 바뀐적이 없다.
지금도 엄청난양의 책들을 읽고 있다.
아내의 친구들중 노년생활에서
‘자기일’을 분명하게 가지고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아내가 한탄하는게 있다.
‘모이면 남편흉보고, 연속 드라마얘기뿐 건전한 화제가 없다’ 는게 그것이다.
아내가 행복한 할머니 인 것은,
지금도 계속 그림을 그리는 현역화가라는 점이다.
매일 매일 창의적인 작업을 한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일이 아니다.
내가봐도 아내의 그림은 매년 그 수준이 달라지고 있다.
특히 근자에는 그림에 무게가 더 실리고 표현이 깊어지고 있다.
자기분야에서 계속 노력하고 공부하고 진전이 있다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
이미 젊어서부터 그림을 그려왔었기 때문에 지금의 생활로 연결된 것 이기도
하다.
그림은 늙어서도 얼마든지 그릴 수 있는 전문분야다.
재능은 타고나는 것 이지만 각고의 노력없이는 발전할 수가 없다.
아내에게는 몇가지 개인적인 특성이 있다.
그 하나가 손목시계를 차지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TV를 전혀보지 않는다.
나도 뉴스외에는 거의 시청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와함께 VOD로 좋은영화는 시청한다.
최근에 함께시청한 영화는,
룸, 바닷가마을 다이어리, 브루클린, 디브,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등이다.
아내가 텔레비전을 시청하지 않는 것은 그림과 독서 때문에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내가 화가아내를 돕는일에서 힘든작업은 종이를 화판에 붙이고 떼어내는 일이다.
아내의 전공이 수채화이기 때문에 이 작업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림을 그릴때의 연속성을 위해 식사준비는 거의 내가하고 있다.
내가 은퇴하면 교대하기로 약속했던 일 이기도 하다.
밥짓는 것은 기본이고 반찬도 이제는 여러 가지를 만들 수 있다.
그게 어떤일이든 되풀이 하면 전문성이 생기는 것을 알았다.
나도 바쁘게 지내기는 마찬가지다.
인터넷에 블로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당 한편씩 글을써서 올리고 있다.
내용을 구상하고, 자료들을 수집하고, 다시 이를 숙성시킨후 A4용지 10매
분량을 직접 손으로 쓴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다.
자판 두드리는 속도는 우리가족중 내가 제일 빠르다.
80노인이지만 그래서 젊게살고 있다.
어려운 현악기인 첼로도 매일 연습하고 있으며,
음악의 세계에서 얻는 즐거움은 그 질감이 아주 다르다.
여기에 더해 걷기운동도 주 5회이상 쉬지않고 한다.
일간지 2개, 주간지 1, 그리고 월평균 5권이상의 신간을 읽는시간도 벅차다.
식탁에서 나누는 우리부부의 대화는,
바하에서 말러까지, 그리고 미켈란제로에서 고호까지 망라된다.
우리부부가 함께 문화사 공부를 즐기기 때문에 그런 광장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우리부부는 나이에 구애됨 없이 항상 젊게 살고있으며 건전하고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여기에는 ‘별종’인 아내의 영향이 아주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난 5월의 ‘금혼식기념’ 도 더 의미가 깊었다.
우리가 흔히듣는 말중에
‘그 나이에 무슨……’ 이라는게 있다.
사실은 그것을 극복할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옛날과 달라서 무엇이든지 할려고 마음만 먹으면 수단은 얼마든지 있는
시대다.
반드시 많은돈이 있어야 하는것도 아니다.
몸이 늙었다고 마음까지 늙을 이유는 없다.
정신적 으로는 얼마든지 젊게살수 있다.
결국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이미 늦었다’ 는 없다.
나는 나이70에 첼로를 시작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즐거움은 독특하고 차별적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 악기를 하나씩 하라고 늘 권한다.
한편 노후를 젊고 건강하게 살기위해서는 호기심과 관심을 놓으면 안된다.
지금은 우리모두에게 노년은 ‘제2의인생’ 인 시대다.
75세와 80인 우리부부는 분명히 노년기의 구세대지만 ‘삶의질’ 에서는
지금의 젊은세대에 결코 뒤지지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떤면에선 앞선부분도 있다.
제2의 인생을 진지하게 살고있기 때문이다.
생명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변할수 없는 자연의 섭리지만
뜻있게 살아가는 것은 인간 각자의 몫이다.-yoro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