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주신 계절, 겨울.

문화사를 공부해보면 시대와 관계없이 모든 지역은 나름대로의 서로다른 지역
문화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된다.
특히 의,식,주 에서의 사로 다름이 두드러지는데 잘 살펴보면 그것이 그 지역의
기후와 밀접하게 관계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지역차이의 하나가 더운지방과 추운지방이다.
더운지방은 일상의 기후가 온화하고 과일이 풍부한 것은 물론 주요작물인 쌀과
밀등 식량의 이모작, 삼모작도 가능하다.
기온이 따뜻하기 때문에 옷도 간편하게 입고 있으며 살고있는 집도 햇볕과 비바람을
가리는 정도면 충분하다.
따라서 사람들의 성격도 느긋하고 낙천적이며 심한 경우 게을러 질수도 있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운지방은 아주 다르다.
환경이 혹독하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면서 살기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따르게
된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는 집을짓는 방법부터가 달라진다.
벽과 지붕이 두껍고 창문은 작아지며 난방하는 방법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몸을 따뜻하게 하는 모직물은 거의가 추운지방의 산물이며 일찌부터 동물의
털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작물의 재배기간이 짧은 것은 물론, 생산된 곡식을 저장하는 방법도 발달하게된다.
추운기간의 필수영양인 단백질과 지방질을 얻기위해 동물의 고기를 훈제보관하는게
그런예라고 할 수 있다.
치즈도 같은 범주로 분류할수 있다.
토인비가 말한대로 도전과 응전이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더운지방은 더운지방대로,
추운지방은 또 그대로 독특한 문화가 생긴 것은 환경에 적응한 서로의 노력과 방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 방법들의 총화가 곧 문화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철학, 특정이데올로기, 문학, 음악과 같은 정신작업은 거개가 추운지방에서 생겨났다는 점이다.
인문, 사회과학분야에서 추운지방과 더운지방의 양적, 질적 차이는 아주 두드러진다.
북미와 유럽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정신세계’ 는 이 차이의
결과가 어떤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차이의 핵심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기후-기온도 그 답의 한가지라고 할 수 있다.
추운계절은 야외활동이 어려운대신 창문을 닫는 실내에서의 생활이 길어진다.
일상생활과 농사, 수렵등에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들이 더 정교하게 만들어지고
한편으로는 종교나 철학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연환경 때문에 실내에 갇히지만 대신 자기의 내면을 마주하는 긴 시간을
통해 위대한 정신문화를 만들어 낼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일찍부터 겨울을 ‘신이 주신계절’ 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나는 반대한다.
여름이 강과 바다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산과 들의 계절이다.
그래서 독서의 계절은 사실 겨울이다.
야외활동이 어려워지는, 창문을 닫아 소음까지 차단된 집안은 인간의 내면생활을
위해 최적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우리모두는 현대인으로서 너무나 바쁘게, 쫓기면서 살고 있다.
정신없이 달리다보면 연말이되고 다시 새해가 시작된다.
겨울은, 그래서 속도를 줄이고 스스로 자기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돼야한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고있는가.
지금의 나는 누구이며 내 삶의 내용은 어떤것인가.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며 지금 그것을 얼마나 이루고있는가.
우리가 생각해 봐야할 숙제는 끝도없이 많을 수 있다.
겨울은 그 해답의 일부라도 찾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인간은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해서도 도구가 있어야 한다.
방편이 있어야 정신작업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무료하게 앉아 잡념만 계속해서는 긍정적인 답을 얻을수 없다.
가장 일반적이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책을 읽는 것이다.
책에는 이미 주어진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이라는 거울에 나를 비쳐보는 것이 독서다.
그래서 겨울이 독서의 계절이 되는 것이다.
나역시 겨울이 되면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스스로를 성찰한다.
그리고 그런 자기성찰을 통해 스스로를 한단계씩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다.
특히 나이들어서의 겨울은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할수있다면 더 넓게, 또 깊이 지금의 생활을 돌아보고 더 앞으로 나아가기위해
노력한다.
내게도 책은 언제나 훌륭한 도구이며 여기에 음악까지 추가하면 금상첨화다.

이번겨울에 내가 읽고있는 책들은,
스위스 태생으로 독일과 미국에서 공부한후,
인간의 정신세계, 철학적인 인식문제, 언어철학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있는
페더 비에리교수의 ‘삶의 격’을 읽고있으며,
하루 한두페이지밖에 읽을수 없는 어려운 내용이지만 자기성찰에 꼭 필요한
양서임도 사실이다.
다음이 컬럼비아와 하버드에서 중동사를 연구하고있는
유진 로건의 ‘아랍’ 이다.
저자가 아우르는 아랍의 세계는 광범위하며 내용들도 역사안에 있는 사실들이다.
오늘의 아랍을 이해하기위한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다른한권은,
폴 에얼릭과 앤 에일릭이 함께쓴 ‘진화의 종말’ 이다.
이책은 이번이 다섯번째로 읽을만큼 그 내용이 뛰어난 책이다.
내용이 풍부하고 특히 저자들의 전문적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인간의 진화가 가져올 불안한 결말에 대한 저자들의 혜안이 특히 돋보인다.
정말 일독을 권하고싶은 책이다.
또 한권은,
김승진의 ‘인생은 혼자 떠나는 모험이다’ 이다.
한국인 최초로 ‘단독, 무기항, 무원조’ 로 작은 요트를 타고 209일에 걸쳐 세계를
일주한, 모험으로 가득찬 악전고투의 기록이다.
나역시 반평생을 바다낚시로 바다에서 살았었기 때문에 더 감명깊에 읽었다.
인간의 정신력이 얼마나 강하고 위대한것인지 이 일기를 읽으면서 재삼느꼈다.
한국인이 쓴 보기드문 책임에 틀림이 없다.

겨울은 인간정신이 정화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겨울이면 보통때보다 더 심도있게 음악을 듣는다.
특히 바하의 무반주첼로모음곡 6곡,
베토벤의 9개의 교향곡,
말러의 교향곡1번 ‘타이탄’,
헨델의‘수상음악’을 집중해서 듣는다.
바하음악의 경우,
중후한 삐에르 푸르니에의 연주를 즐겨듣지만,
첼로라는 악기로는 포코 필리피니의, 스트라디바리가 1710년에 만든
‘Gore Booth’ 연주를 즐겨듣는다.
그 청아한 첼로음색이 나를 사로잡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9개는 전혀 독립적이다.
지휘자에게도, 연주자들에게도 베토벤의 교향곡은 스스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교과서와도 같은 작품들이다.
베토벤의 교향곡은 그래서 음악의 총화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매해겨울 어김없이 봄이 오기까지 이 9개의 교향곡을 반복해서 듣고 있다.
1989년 캬라얀이 사임한후 무려 80명의 연주자가 베르린 필에 입단했으며,
지휘봉은 아바도가 넘겨받았다.
이 새롭게 편성된 오케스트라는 1999-2000년어간 도이체 그라마폰 레이블로
1번부터 9번까지 전곡을 DVD포멧으로 녹음했다.
특히 1,2,4,8번은,
더블베이스 3, 첼로 4, 비올라 6, 제2바이얼린 8, 제1바이얼린 10개의
소규모 편성으로 초연당시의 편성을 존중한 특징이 있다.
5,6,7,8번은 베르린 필하모닉홀에서의 실황녹음이며,
1,2번은 필하모닉 실내악홀,
3,8번은 필하모닉홀 에서의 비공개, 소규모 청중앞에서의 녹음이다.
그래서 모든곡이 실황연주의 생동감이있다.
나는 5개의 DVD디스크로 출시된 앨범을구입, 소중하게 가지고 있다.
2006년 국내음반시장 조사에서 바로 이 앨범이 단연 수위를 차지할만큼 널리
사랑받고 있다.

말러 교향곡1번 ‘타이탄’은 우리시대의 음악이지만 베토벤교향곡에 버금가는
무게를 가지는 작품이다.
아직은 공부하면서 듣는 과정이며 특히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를 선호한다.
헨델의 ‘수상음악’ 은 내겐 각별한 의미가 있다.
트레버 피녹교수가 지휘하는 잉글리쉬 콘서트의 연주가 그것인데,
이 오케스트라가 편상하고있는 악기는 전부가 고악기들이다.
따라서 헨델의 음악을 헨델당시의 악기로 들을 수 있는 희귀하고 특이한 음반이다.
같은 악기라도 현대악기와는 그 음색이 아주 다르다.
나는 이 음악들을 헤드폰만으로 듣는다.
얼마전 아들이 아주 성능이좋은 새 헤드폰을 사다줘서 지금을 그것으로 듣고 있다.
나처럼 금관, 목관악기와 현악기까지 연주할수 있는 경우 헤드폰으로 들어야
각 악기군의 음색을 구별해가며 감상할 수 있다.
그건 정말 즐겁고도 전문적인 음악듣기다.
나는 내가 선정한 겨울음악들을 들으면서 ‘영혼의뜰’을 거닐고 있다.
그건 인간정신이 정화되는 귀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겨울은 정적인 시간이며 자기의 내면과 마주할수 있는 시간이다.
우리들 대다수는 평소 이런 시간을 가지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겨울, 신이주신 계절에 자기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옳다.
사람은 그 안이차야 무게가 있으며,무게가 있어야 안정감을 가질수 있다.
지금처럼 혼란스럽고, 천박하고 비열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의
무게, 자중(自重)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수 있다.
특히 책과 음악은 가장 오래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돈 인생의 반려이기도
하다.
열린마음으로 책을읽고, 정직한 마음으로 음악을 듣는다면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값진 계절의 선물을 받을 것이다.
그 귀한선물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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