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한 여론조사에서,
올해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이라고 답한 국민은 11%,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답한 국민은 4%였다.
대한민국이 한계에 왔고 지금 이대로는 벽을 넘을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절감
하고 있다.
‘죄수의 딜레마’ 라는 덫이있다.
자기지역, 자기집단, 자기세력만의 이익을 추구하다 서로가 뒤엉킨채 함께 벼랑으로
밀려가는게 그것이다.
이 무서운 덫을 벗어나지 못하면 함께 벼랑아래로 떨어진다.
그걸로 끝이다.
우리모두는 지금 나라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좋은쪽으로 발전하기 보다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라를 ‘경영’ 하는 정치가 회복이 어려울만큼 망가진것도 사실이다.
오직 ‘정권-권력’을 쥐려는 패싸움과 ‘표’를 얻기위한 표퓰리즘만 있을뿐이다.
대한민국을 유지하는 ‘정신’ 이 죽어가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의 전부가 너무깊이 썪었기 때문에 치유가
불가능한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또 하나의 악재가 세계경제다.
특히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는 치명적이다.
최근의 연도별 수출실적을 살펴보자.
2013년 5596억달러,
2014년 5727
2015년 5268
2016년 4955억달러다.
우리제품이 갑자기 나빠져서가 아니라 세계경제가 나빠지면서 우리가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정부가 목표로 정한 금년의 경제성장율도 2%수준이다.
이제 곧 그 여파가 가계에서 나타날 것이다.
수입이 줄 수밖에 없고, 똑같이 일자리도 줄고,
직장에서는 40대도 벌써 눈치가 보일만큼 해고의 압박이 나타날 것이다.
정치가 무너져 그 기능이 죽었고,
세계경제가 나빠져 먹고살기가 힘들어진다면 이는 최악의 국면을 맞게된다는
얘기다.
정말 우리는 이 악재들을 이겨낼수 있을까.
‘우리는 여기까지인가’ 하는 심각한 질문이 나오는 이유다.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으로서는 뚜렷한 돌파구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암담하다.
우리에게는 온 국민이 집단적으로 겪었던 주기적인 위기가 있었다.
1960년의 4.19,
1961년의 5.16뒤엔 대물림의 빈곤을 극복했고,
1979년 10.267뒤엔 국가주도경제를 시장경제로 전환했으며,
1997년 외환위기를 온국민의 힘으로 극복했고 기업들은 체질을 바꿨다.
이 위기들을 극복할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게 ‘국민’ 이다.
절대로 정치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국민은 누구인가.
나와너, 그 한사람 한사람이 국민이다.
‘내가 대한민국’ 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뀐다.
제도로서의 정치보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사고방식, 의식수준, 안목, 판단력,
애국심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정권과 정치모리배들은 모두 지나가지만 대한민국은 영원하다.
그래서 더더욱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역량이 요청되고 있다.
중심을잡고, 바른길로 갈 수 있는 힘은 국민에게만 있다.
귀납법적으로 설명한다면,
지금의 혼란과 참담함도 그 근본적인 원인의 상당부분은 국민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국가를 경영하는 정치판도가 국민의 정당지지율로 짜여지기 때문이다.
국회에서의 정당분포를 만드는게 ‘표’ 가 아닌가.
이제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
갤럽이 1월 4-5일 전국의 성인남여 1천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지지율이 40%로 나타나 있다.
2016년 11월 제3주에 31%였던 지지율이 불과 6주 사이에 9%포인트가 높아진
것이다.
객관적 조건에서 민주당지지율이 갑자기 올라갈 정치적 이유는 없다.
죽을쑤고 있기는 그들도 마찬가지다.
이 지지율이 박근혜에 대한 배신감과 반감,
집권 새누리당에 대한 분노,
개인적으로 겪고있는 어려움에 대한 반사회적 감정,
문재인이 말하는 시민혁명으로 판을 엎어버리려는 폭력적인 욕망등이라면
대단히 위험천만한 판단일뿐이다.
자칫 민주당만 어부지리를 얻을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지금 형편이 수권정당으로서의 정치적 수준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있는 현실이다.그래서 위험한 것이다.
국민의 정치적수준이 그대로 나타나는게 국회다.
지금 국회가 우리모두에게 보여주고있는 코미디는 결국 유권자의 수준이다.
민주당이 받고있는 지지율도 그 수준에서 다를게 없다.
이성적 판단보다는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선동된 선택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대상자중 26%는 지지정당이 없다고 대답했다.
지금의 정치현황에서 이 26%는 이성적으로 관망하는 세력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대선이 시작되면 수많은 변수가 나타날 것이고 정치권은 이합집산이 계속될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려보고 냉정히 판단해도 하나도 늦을게 없다.
아무런 정치적 실적이 없는,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정당을 미리 지지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표값’ 이 싸면 악순환은 끊이지 않는다.
국민의 정치적 수준이란 무엇인가.
정치집단에 대한 분석과 판단을 통해 선택하는 기준이 곧 국민의 정치수준이 아니
겠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근자에 자주 자괴감을 느낀다.
자괴(自壞)는 외부의 힘에 의하지않고 저절로 무너진다는 뜻이며,
자괴감은 자신의 무능함이나 한심한 때문에 생기는 부끄러운 감정이다.
80평생에 지금과같은 혼란스러움은 처음겪어본다.
특히 다른때와는 달리 자괴감을 느끼는 이유는 스스로의 부족 때문에 우리사회
공동체가 안으로부터 무너지고 있는 참상을 보고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가해진 충격때문이 아니라 안으로부터의 부패와 무능, 무기력 때문에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을 생각하면 자괴감을 안 가질수가 없다.
정말 우리는 여기까지인가.
이게 우리공동체의 한계인가.
우리의 국민적수준, 역량이 이것밖에는 안되는 것인가.
결국 이 질문들은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평가해 봐야한다.
여기서 주저 앉을것인가.
아니면 이 난국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수 있는것인가.
정말 우리 모두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비교를 통해볼 때 가장 잘 나타난다.
우,열이 확실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 블로그를 통해 언급한바 있지만,
나는 미국인들과 10년, 일본인들과 10년, 도합 20여년을 외국인들과 한 사무실에서
일했다.
20년은 짧은기간이 아니며 우리와 다른 그들을 심도있게 관찰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미국과 일본은 명실상부한, 동서양을 대표할 수 있는 선진국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장점을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우리의 단점이 보인다.
그리고 우리의 단점이 구체적이되면 충분히 개선할수 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변하면 곧 나라가 변하는 것이다.
우리가 변해야 썩은정치권도 바꿀수 있다.
어찌 정치뿐 이겠는가.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다.
국민이 변하면 나라가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는 열린마음으로 우리의 단점을 살필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직해야 답을 찾을수 있다.
그들은,
간판이 아니라 철저히 실력위주다.
학력, 학벌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앉는다.
자기분야 에서의 업무처리능력-실력으로만 인정받는다.
따라서 자기가 맡은일-자기분야에 대해 놀랄만큼, 꾸준히 공부한다.
일류와 전문가만이 살아남는 구조다.
따라서 업무생산성이 아주높다.
그들은 순환보직에 따라 전세계에 펴져있는 지사근무를 통해 세계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다.
사물과 사안을 보는 안목에서 이건 아주 큰 차이다.
아침에 출근, 사무실에서 사무를 보기시작하면 공과사는 무섭게 구분한다.
사적인 전화도 없다.
철저히 일에 몰두하며 그만큼 출,퇴근시간이 정확하다.
각자의 저녁시간, 삶은 철저히 보호된다.
잔업이 있는 경우 잔업수당은 엄격히 지급된다.
특히 일본인의 경우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없다.
유치원 에서부터 교육받는다고 했다.
미국인들은 남을위한 배려에서 우리나 일본인보다 앞섰다.
일반적으로 포용력이 큰 사람들이다.
그들 모두는 높은 수입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검소하며 절약정신이 몸에 배어있다.
과소비나 낭비는 죄악시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들에게 공통된점은,
애사심과 애국심이다.
회사에 대한 소속감과 자부심이 강한 것은 회사가 그들을 상당한 수준으로 대우하기
때문이며 국가에 대한 충성도는 기초교육에서 다져지는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준법정신이 강했다.
일본인은 유치원에서부터 집중해서 교육을 받는다고 했으며 미국인들은 법을 어기는
경우 그 처벌이 아주 가혹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가지 특이했던점은,
근무중 부서를 바꾸고 싶을 때 이를 공개적으로 신청할 수 있고 가능하면 그 희망
대로 부서이동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효율면에서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정치적 입장이나 정당지지에 대한 태도에서 일본인들은 침묵하는 편이지만,
미국인들은 서슴치않고 자기입장을 밝혔다.
비록 자기와는 정치적견해, 입장이 달라도 친구는 여전히 친구였다.
나와 ‘다른생각’ 에 대해 절대로 적대시 하는법이 없었다.
‘그는 나와는 다르다’ 는 것 뿐이다.
서로다름을 상대적으로 인정하는 풍토는 우리와는 아주 달랐다.
진영,패거리정치가 없는 이유일 것이다.
오래전 우리부부는 프랑스 빠리의 제16구 빌리에의 한 프랑스인 중산층가정에서
한달간 민박을 한 일이있다.
그들과 한지붕 밑에서 먹고자며 같이 생활해 봤다.
빠리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5층 돌집의 아래층이 었는데 오래된
집안은 고색이 창연했다.
우리가 지금살고있는 아파트와는 비교가 안될정도로 불편하고 낡은 주택이었다.
단순비교라면 우리의 아파트는 그집에 비해 최신식의 편리하고 기능적인 주거
라고 할 수 있다.
분명히 하드웨어에서는 우리가 앞서있는 것이다.
그러나 같이 지내보니 그들의 정신세계는 우리가 쉽게 따라갈수 없는 차원이었다.
소프트웨어 에서는 그 간격을 메울수가 없었다.
우리의 숙제는 그래서 하나밖에 없다.
정신적으로 성숙해 지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미국인과 일본인의 수준에서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어
개선하고 보완해야한다.
먼저 내가 변해야 대한민국이 변한다는 명제는 그래서 불변이다.
우리는 여기까지 인가,
여기가 우리의 한계인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주기적인 혼란을 극복해온 역사가 있지않는가.
지금의 혼란은 분명 그 전과는 성격이 다르다.
너무 깊이 썪었고, 상처도 깊다.
그만큼 회복에는 시간이 많이걸릴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치유하지 않으면 우리가 살아갈수가 없다.
첫째가 국가안보다.
그게 있어야 우리의생명과 재산을 지킬수 있다.
다음이 깊이썪은 정치판을 뒤엎어야 한다.
그건 ‘표’로서 가능하다.
좌익과 종북좌빨을 확실하게 걸러내야 한다.
경제는 간섭을 줄이고 시장에 맡기면된다.
그러나 국가백년대계인 교육은 이대로 두면 안된다.
입시를 위한 암기는 정상적인 교육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은 국가리더십의 역량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이 전과는 아주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우리모두 명심해야 한다.
정치판의 기존세력들을 전부 물갈이 해야한다.
이제 다시 잘못선택하면 회복은 어렵다.
특히 국가안보문제는 깊이 생각해야한다.
거기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으로 대한민국땅에 산다는 것이 비선택적인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안보
문제도 비선택적이다.
그 누구라도 이 문제에선 자유로울수 없다.
하이에나가 어디에 있는지는 치타가 가장 잘 안다.-아프리카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