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작심하고 우리단지 노인정에서 같은 또래의 노인들과 하루를 함께 지낸
일이있다.
장기, 화투, 바둑, TV시청, 잡담이 위주였으며,
점심은 부녀회에서 끓여주는 국수를 먹었다.
오후에도 비슷한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는 소비만 있었고 어떤 ‘생산성’도 없었다.
소비의 수준도 최하위였으며 소비하는 방법도 전혀 세련되지 않았다.
누구나 나이들면 ‘노인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바로 그때, 생각하는 방법에 따라 ‘삶의질’ 은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된다.
노인들과 그들의 노년은 겉으로 봐서는 같아보이지만 삶의내용을 기준하면
그 차이는 엄청나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 나이 때문에, 시간적 제약 때문에 이 간극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노인정에서의 체험은 그래서 더 값진 것 이었다.
지금 신문에 게재되는 유명인사들의 부고를 보면 향년이 90세 안팎이다.
정말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난 것을 실감할수 있다.
노인정을 다녀온후 나는 지금의 내 삶이 노인정에 죽치고 앉아있는 동년배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해 봤다.
어느한쪽이 더 좋거나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같은 노년이라도 더 생산적으로
살수있다는 생각을 해 봤다.
우리모두는 누구나 오래살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보니 단순히 오래 산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환자실에서 주사바늘을 주렁주렁달고 누워있다면 그건 사는게 아니라 단지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건강’ 이 없다면 그 돈은 휴지조각이다.
이건희 회장을 생각해 보면 된다.
오래사는것 보다는 건강하게 오래사는게 아주 중요해 지는 이유다.
죽는날까지 건강하게 살수있다면,
그래서 주변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수 있다면 그게 ‘고종명의 복’ 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당의 신체적 기질을 물려받아 건강한 편이다.
심장내과-심혈관 전문의인 아들이 예방적 차원에서 처방해준 최소단위의 고혈압
약과 남자들의 적인 전립선비대증을 예방하는약, 이렇게 두가지를 복용하고있지만
노인들에게 치명적인 지병은 없다.
나는 평생 인삼녹용을 먹어본 일이 없고,
보약 한제도 먹지않았다.
몸에 좋다는 음식을 따로 준비해 먹은일도 없다.
자당의 체질을 닮아 무슨 음식이든 가리지않고 작 먹고있으며 특히 하루 세끼는
거르는법 없이 잘 챙겨먹고 있다.
노인들에게 권하는대로 소식도 하지않는다.
전세계를 여행다니면서도 어디를 가나 가리는 음식없이 무엇이나 잘 먹었다.
평소 내 앞에 주어지는 음식들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것, 그게 곧 건강의 비결이
아니겠는가.
섭생은 건강과 직결된다.
그리고 반드시 아침에 일어나면 따뜻한 물 한컵을 마실일이다.
몸의 신진대사를 원활히 하기위해 이보다 더 좋은 습관은 없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변비를 모르고 산다.
사람이 나이들어 노년을 살게되면 가장 중요한 것이 사는방법, 삶의질이다.
이 세상에 늙지않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먼저 늙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줄 알아야 한다.
그 속에는 체험된, 값진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생활을 압축해서 설명할수 있는게, 내게는 스마트폰이 없다.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은 테블릿PC로 감상하지만 스마트폰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없는게 아니라 안 가지고 있다.
그건, 내 생활의 기조가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적 이기 때문이다.
PC로는 온갖검색, 이메일, 개인블로그, 온라인쇼핑, 인터넷뱅킹까지 익숙하게
하고있지만 내 생활의 베이스먼트는 아날로그다.
가장 큰 이유는 개인적으로, 정신적으로, 생활의 리듬에서 ‘노인다운 여유’를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니이들어서까지 종속적이고 쫓기는 생활은 하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메시지는 접속이지만 유선전화는 접촉이다.
문자에는 표정이 없지만 목소리는 훨씬 인간적인 여러 가지 미묘한 정보들을
전달해준다.
일반적인 노인들의 일상생활에서는 TV시청이 가장많고, 읽기-독서는 없다.
그러니 늙을 수밖에 없고 뒷방 늙은이가 되는 것이다.
머리-뇌는 쓰지않으면 급속히 퇴화하고 그만큼 시대에 뒤지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도 젊은이들과 대화하면서 내가 그들보다 훨씬 앞서있다는 것을 확신
할때가 많다.
앱을 능숙하게 쓰는것과 ‘지식’ 은 전혀 다른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하루에 일간지 두 개를 정독하고 있으며 주간지 하나와 월간지
하나를 정기구독하고 있다.
매년 줄어들긴 하지만 일년에 신간 50권 이상을 읽고 있다.
‘많이 읽는사람은 아무도 당하지 못한다’ 는 서양의 격언이 있다.
스스로 젊은이들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그렇다.
지금은 건명원 원장이신 최진석 교수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 에 푹 빠져있다.
나이들어 마음껏 책들 읽을수 있다는 것, 이게 진정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그 누구도 건강은 돈으로 살 수 없다.
건강하기 위해서는 몸으로 노력해야 하며 건강은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내 건강의뿌리는 걷기에 있다고 확신한다.
중,고등학교 6년동안 왕복2시간의 거리를 매일 걸었으며,
대학도 버스에서 내려 언덕하나를 넘어가는 거리를 4년동안 걸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때까지도 시내버스가 없었기 때문에 그게 어디든,
얼마나 멀든, 걸어서 다녔다.
14층 아프트에 16년 살면서 퇴근해서 집에갈땐 반드시 계단을 걸어서 올라갔다.
은퇴한 지금 17년째 하루 1시간씩 빠른걸음으로 걷기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정말 마사이족 만큼 걷고있는 셈이다.
운동은 ‘의지’ 로 한다는 말은 정말이다.
나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섭씨30도이하, 영하5도이상이면 걷는다.
그리고 운동뒤엔 스스로 내몸에 맞게 개발한 스트레칭을 한다.
이번 겨울에도 눈에 미끄러져 크게 두 번 넘어졌지만 후유증은 전혀없다.
모두가 스트레칭의 덕분이다.
몸이 아무리 건강해도 늙으면 노인이다.
반대로 머리가 맑으면, 매일 공부해서 머리가 새로워진다면 정신적 으로는 젊은이
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젊은이들을 앞설 수 있는 부분이 그렇다.
읽는양도 엄청나지만, 쓰는양도 엄청나다.
매주 한편씩 블로그에 올릴 글을 쓴다는 것은 대단한 정신작업이다.
어떤대는 벅찰때도 있을정도다.
그래서 내 머리는 녹슬시간도 없다.
머리는 쓰면쓸수록 좋아진다는 말은 정말이다.
특히 서로다른 정보와 지식들을 연결, 새로운 내용을 만들어 내는 창의력에서
더 그렇다.
‘편집과 기획력’ 은 현대가 요구하는 지식의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모든글을 직접 손으로 쓴다.
워드로 입력한후 교정작업은 컴퓨터를 쓰지만 초기원고는 종이에 직접 손으로
쓴다.
창조적인 작업이기 때문이다.
손에있는 54개의 뼈마디는 움직일때마다 뇌신경을 자극한다고 한다.
뇌가 그만큼 젊어지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내 기질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80대의 노인이 되었는데도 호기심은 물론 음악과 영화에 대한 열정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어제도 베토벤7번 교향곡의 2악장을 반복해서 여러번 들었다.
첼로파트의 그 놀라운 선율은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음악가인지를 웅변으로 들려
주고 있다.
하이든 교향곡 95번의 3악장,
그 청아한 첼로의 독주는 놀랍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첼로를 연습하고 연주한다.
나는 중학생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영화광이다.
설 연휴때 ‘미씽,사라진 여자’ 와 ‘럭키’를 봤다.
오버액션, 자연스럽지 못한 연기, 그리고 불량한 녹음상태는 크게 실망스러웠다.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내가 평가하는 우리영화는 ‘서편제’ 와 ‘신세계’ 다.
신세계수준이면 세계시장에 내 놔도 먹힐 것이다.
내게는 아주 독특한 습관이 있다.
그게 ‘메모’ 다.
스터디카드와 필기구는 항상가지고 다니며 그게 무엇이든, 어떤곳이든 소재가 될수
있는 것은 즉석에서 메모한다.
그렇게 메모한 카드가 수만장이다.
그 카드들을 모두 활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호기심과 기록, 그것만으로도 삶의 질은
달라진다.
인간이 호기심과 기록을 잃으면 발전할 수가 없다.
문학이든, 음악이든, 철학이든 그게 어느 분야라해도 최고의 걸작들은 모두 메모와
스케치에서 시작되었다.
하루에 종이신문 한 장도 제대로 읽지않는 생활에서 무슨 인간적발전이 이루어 질수
있겠는가.
게으름보다 무서운적은 달리없다.
그래서 부지런 하다는 것은 하늘의 축복이기도 하다.
우리집에 소파가 없는 이유는 그게 앉기만 하는게 아니라 결국은 사람을 드러눕게
하기 때문이다.
리모컨을 쥐고 소파에 앉으면 그 인생은 종친것이나 마찬가지 라는게 그 얘기다.
사람은 생각하는대로 살게 돼 있다.
그래서 생각이 중요한 것이다.
똑같은 수준에서 똑같이 생각하면 다르게 살수가 없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다르게 살 수 있다.
오래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살건인가가 더 중요하다.
소비만 하면서 살면 빨리늙고 일찍 죽는다.
그러나 다르게 살면 ‘수퍼노인’이 될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게 읽기다.
읽는기능은 인간에게만 있는 독특한 것으로서 그 기능이 있었기 때문에 글자로
기록된 역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다르게 살수있는것도 읽기를 통해 성현들의 지혜를 배울수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그 지혜들이 누구에게나 개방적 이라는 사실이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70청년이 있는가 하면 30노인도 있다.- 이종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