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배우라’ 는 말이있다.
기록된 역사는 ‘그때’ 의 증언이며 교훈이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미족은 역사에서 배우고, 어리석은 민족은 역사를 읽지않아 재앙이
되풀이 되는 것 또한 역사다.
사람사는 세상은 시간에 의한 시차는 있어도 그 삶의 내용은 형식만 바뀔뿐
크게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역사적 내용’은 그 역사를 읽기만 해도 지금을 개선할 수 있다.
그게 바로 되풀이되는 재앙을 피하는 길 이기도하다.
우리는 스스로 인정하는대로 ‘읽지않는백성’이다.
읽지않으면 모르게 되고 모르면 당하게 된다.
그걸 역사적 악순환이라고 부른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 이다.
청나라에 의해 국토가 초토화되고,
굴욕적이고 불평등한 강화조약을 체결한 병자호란(1636-7)이 일어나기 직전인
1633년(인조11년) 6월 13일자 ‘인조실록’을 보면,
감찰기관인 사헌부의 박지계(朴知誡)가 위기에 처한 국가를 혁신해야 한다는
상세한 부국강병책을 상소한 대목이 나온다.
박지계는 본관이 함양이며,
‘동문선습-조선시대 아동학습서’을 지은 박세무가 그의 조부다.
박지계는 승정원에 속한 정3품 관직인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인조반정후 산림학자 등용정책으로 천거된 충청지역의 대표적인 재야학자로
주자학을 깊이 연구했으며 정치적 으로는 소론을 형성했다.
산림학파는 심화되는 정쟁 때문에 정계를 떠나 산촌이나 농촌에 묻혀 글짓고,
책을 읽는 것으로 낙을삼던 선비들에 대한 통칭이다.
조정에 들어오게된 박지계는,
청나라의 세력이 날로커져 조선의 안전을 위협하고 전쟁의 위험이 목전에 와있는
것을 알게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료들은 부국강병의 대비책을 건의하지도 않았다.
박지계는 이런 관료들을 비판하면서 ‘군병을 훈련시켜 강하게 하려면 먼저 국가를
부유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고 강조하면서,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데는 백성들을 풍족하게 하는 것이 근본’ 이라고 주장했다.
백성들을 풍족하게 하는 근본대책은,
‘부역을 가볍게 해 백성들로 하여금 스스로 농사와 생업에 진력할수 있게하는 것’
이라고 건의했다.
부역(국가가 보수없이 백성에게 지우는 노역)을 줄여야 백성이 자유롭게 생업-
경제활동에 매진할 여력이 생기고, 유인이 생긴다는 주장으로 박지계는 이게바로
부국의 근본이라고 상소한 것이다.
그러나 무책임한 정부와 관료들은 구체적이고 절절한 부국강병책을 외면했다.
대신 무의미한 정쟁으로 귀중한 개혁, 준비의 기간을 허비했다.
제도를 개혁하고 총력을 다해 이를 시행했다면 전쟁의 참화에서 국가를 지켜낼
대비가능한 기간이었다.
그렇다면 그때 임금(인조)과 관료들이 국가안보보다 더 우선해 치열하게 싸운
정쟁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1626-35어간의 주된 정쟁의 쟁점은,
반정으로 왕이된 인조의 아버지를 생부인 정원군으로 봐야하느냐,
아니면 할아버지인 선조를 아버지로 봐야하는가의 문제였다.
다른 하나는 인조의 생모가 죽었을 때 그 상을 3년으로 하느냐 1년상으로 할것인가
와 같은 명분과 예법에 대한 것이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통치와 관료들의 조선은 국가위기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채
정쟁으로 날을 지새다 병자호란이 치욕을 당한 것이다.
이게 못난조선의 민낯이다.
지금 나라안팎에서 풍파가 동시에 밀려오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 사람의 생각도 바뀌어야 이를 극복하고 선진으로 발전할수 있다.
식민지의 치욕적인 삶을 살고도 조선시대의 정쟁이 반복되고 있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식자들이 지금 우리의 형편이 조선말기와 같다고 진단하는 이유다.
그 무엇보다 먼저 ‘생각’ 이 바뀌어야 하는 절실한 이유다.
생각의 수준을 높이지 않고는 결코 다른방법이 없다.
때문에 지금의 공교육붕괴가 왜 무서운지를 빨리 깨달아야 한다.
역사교과서의 파동을 보면 위험은 생각보다 더 깊고 넓게퍼진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모두가 박지계가 돼야하는 이유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다면 그 다음은 당연히 선진화다.
지금 우리가 그 문턱을 넘지못하고있는 역사적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한다.
그 어느때 보다도 ‘자기성찰’ 이 요청되는 때 이기도 하다.
역사에 배우지못하면 그 역사가 되풀이 된다는 것을
또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다.- yoro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