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성공, 한국의 실패.

1990년대 이후 계속되는 디풀레이션함정에 빠진 일본은 침체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잃어버린 20년’ 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세계시장에서 밀리기 시작한 일본기업들은 한국의 삼성과 현대를 배우기 위해
연구에 나섰으며 설상가상으로 2011년 3월의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까지 터졌다.
모두가 그 20년이 30년이 될것이라고 예측하기까지 했다.
유효구인배율(有效求人倍率) 이라는 경제용어가 있다.
전국의 공공직업안내소에 신청된 구직자수에 대한 구인수의 비율로서,
60일간을 기준으로 총구직수를 구인수로 나누어 계산한다.
지난해 일본의 유효구인배율은 1.43이다.
취업희망자 1명당 1.43의 일자리가 있다는 의미다.
지금의 우리현실과 비교하면 정말 꿈같은 얘기다.
불과 4,5년전 까지의 상황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같은 차이가 아닐수 없다.

어느나라 경제나 가장 민감한 바로메타는 주식시장이다.
2012년 12월 아베가 집권할 당시 닛케이주가지수는 1만선 이었다.
지금은 2배로 높아졌다.
여러 가지 부수적인 원인들도 많지만,
일본경제를 살려낸 것은 일본의 정치라는데 이견이 없다.
‘아베의 세 개의 화살’ 은,
금융완화, 재정지출확대, 산업경쟁력복원정책 으로서 집권 6개월 사이에 전광
석화처럼 밀고 나갔다.
최고강도의 통화팽창을 시행했고,
과격하다는 말이 나올정도로 엔저(低)정책을 밀어붙였다.
이런 비상처방과 함께 규제를 풀었고 공공경제특구를 신설, 새로운 산업을 육성
했다.
규제천국으로 불렸던 일본은 지금 바이오산업, 인공지능, 자율주행차등 4차산업
혁명에서 선두를 달리는 나라가 됐다.
‘아베노믹스’ 가 먹힌 것이다.
올바른 정치의 힘이 나라를 어떻게 변화시킬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케이스가
아닐수 없다.
제대로 작동하는 정치의 힘은 그렇게 크다.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한 일본의 성공을 뒤집으면
한국이 실패한 이유를 알게된다.
국가를 정책적으로 선도하는 정치리더십의 실종,
정부의 발목을 잡아 실패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주사파잔당들이 장악하고있는 식물국회.
기득권 지키기에 혈안이된 노조와 이익단체들은 견고한 덫이되어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결국 정치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 근본원인인 것이다.
다른 한가지는 넓게퍼져있는
반자본주의시장경제와 반재벌정서다.
아이러니 한 것은,
결국 ‘일자리’ 는 자본주의시장경제와 기업이 건전해야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자식을 대기업에 취업시키기 위해 혈안이 돼 있으면서 그 대기업을 욕하는 이중성이
문제다.
자본주의시장경제가 탁월한 것은 ‘경쟁’ 때문이다.
경쟁은 언제나 더 좋은제품, 더좋은 서비스이 원천이며 발전의 근거다.
그 경쟁을 악으로 생각하는게 바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다.
다 똑같이, 가난하게 살자는 얘기다.
그들은 그게 ‘평등’ 이라고 우긴다.

일본의 ‘유효구인배율’ 1.43은,
정치가 만든 ‘마당’에서 기업이 일구워낸 ‘정상적인 일자리’ 다.
제대로된, 그리고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는 이익을 내고있는 기업이
그 필요에 의해 사람을 더 고용할 때 생기는 것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다른방법은 없다.
때문에 지금처럼 정치가 온갖 규제로 기업을 압박하고 반기업정서로 위협한다면
새 일자리는 생길수가 없다.
지금의 ‘일자리 빙하기’ 는
아주 뚜렷한 두가지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 하나가 지금끼지 언급한 정치적빈곤 때문에 기업을 위한 ‘마당’ 이 형성되지
않은것이며,
다른 하나는 ‘수요와 공급’ 의 법칙이다.
인력시장도 엄연한 시장이다.
일할사람은 차고 넘치고, 일자리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226개의 4년제 대학이 매년 쏟아내는 4-50만명의 절반도 흡수하지 못하는게
우리의 산업규모다.
나머지가 백수가 되는 것은 그래서 구조적인 문제이며 누가 집권해도 해법이 없다.
이점 똑바로 알고있어야 한다.
거짓공약에 또 속으면 안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카이로를 여러번 여행했다.
그때, 그곳에서 오래살고있는 교민 한분으로부터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정부의 청사를 방문하면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공무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벽에 기대어 서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민원인이 아니라 부패한 고위관료들이 뇌물을먹고 인사발령한 공무원
이라고 했다.
책상에 앉아서 일하고 월급받는 공무원과 벽에 기대어 서 있으면서 월급받는
공무원이 있는 것이다.
이집트가 가난한 후진국으로 남아있는 원인중 하나가 바로 부패한 정치다.
대중영합주의를 ‘표퓰리즘’ 이라고 한다.
국가가 아니라 개인의 영달과 오직 권력을 잡기위해,
사악한 정치모리배들이 ‘표’를 얻기위해 유권자들에게 나랏돈으로 사탕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국가채무를 갚지못해 쓰러진 그리스가 대표적인 케이스이며 포루투갈, 스페인,
이태리, 남미여러나라가 이 표퓰리즘 때문에 지금까지도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석유매장량 1위인 베네주엘라에서 차에 넣을 휘발유 구하기가 어렵다.
정치가 썪으면 그렇게 된다.

선거철이 되니 여러명의 대선주자들이 나름대로 가장 민감한 문제인 ‘일자리’ 에
대해 여러가지 공약성 발언을 하고 있다.
사실, 이번대선에서 가장큰 정치적 이슈는 말할 것도 없이 ‘일자리문제’ 다.
그런데 그들이 쏟아내고있는 ‘해법’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현실성이 있는게
하나도 없다.
모두가 입에발린 소리를 하고있고,
듣기좋은 소리로 유권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지적되어야 할점은 ‘경제’를 ‘정치논리’ 로 풀려는 속임수가 있고,
경제에 대한 전문성에서 크게 떨어지고 있다.
실물경제를 제대로 알고있는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바탕에서 기업을지원, 경쟁력을 가지게하고 그 경쟁력에서 규모가커져
더 많은 종업원을 고용하는 선순환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전무하다.
그게 시간이 많이걸리는 일이고 당장의 열매(표)가 없기 때문이다.

그중 대표적인 ‘표퓰리즘’ 이
문재인의 81만명 공무원 증원계획이다.
국가재정-세금으로 공공부문에 새 일자리 81만개를 만들겠다는 것은,
앞으로 수십년간 매해 40조원 이상의 세금을 더 걷어야 가능하다.
이는 열악한 처지의 비공공부문의 1000만명이 새로생긴 공공부문 81만명을
부양해야하는 망국적 공약이다.
국민을 바보로 보고있다는 얘기다.
카이로의 부패와 하나도 다를게 없다.
집권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안 가리는 사악함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 케이스는 그 악덕이 도를 넘고 있다.
지금의 실업자들과 판단력이 없는 좌파들은 그에게 표를 줄수있지만 나머지는
자기수입에서 매년 40조원의 조달을 위해 세금을 더 내야한다.
이건 순수한 의미의 ‘일자리’ 가 아니다.
돈을 주기위해 사람들을 벽에 기대어 서게하는 표퓰리즘일 뿐이다.
그리스의 조기 은퇴자들은 자기가 수령하는 연금의 금액을 지키려다 그 연금
자체를 받지못하는 수렁에 빠졌다.
국가가 ‘디폴트’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게 포퓰리즘의 공통된 종말이다.

우리가 과연 일본과같은 ‘전화위복’의 성공을 걷을수 있을까.
지금대로라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치가 변해야 한다.
정치가 변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잘 뽑아야 한다.
유권자의 가장큰 책무가 그것이다.
일본의 성공과 우리의 실패에서 얻을수 있는 가장큰 교훈은,
유권자가 그 생각의 수준을 높여 정치지도자를 제대로 선택하는 일이다.
누가 뭐라해도 ‘잃어버린20년’ 의 고리를 끊은 것은 아베와 자민당이다.
불과 5년전만 해도 일본과 우리는 사정이 비슷했다.
그 ‘판’을 바꾼게 일본의 정치다.
그래서 건전한 상식으로, 상식적인 발언을 하는 후보를 유심히 살펴봐야한다.
표퓰리즘을 막지못하면 그대로 당하는게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한번 쓰러지면 거의 일어서지 못하는게 표퓰리즘후유증이다.
지금 우리는 그 길목에 들어서고 있는중이다.

보편적인 현상에는 보편적인 원인이 있다.- yowo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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